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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이 능력을 숨김-125화 (125/301)

125. 무수골

‘샤이 피플’ 설득이 완료된 후.

지혁은 착실히 계획을 준비해 갔다.

지금은 속도가 중요하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언제든 달라질 수 있기에, 그들이 결심했을 때 실행에 옮겨야 한다.

그러나 최근 의전 일정이 많아서 속도를 내기 어려웠다.

더군다나 오 회장이 경호업무까지 가능한 지혁을 자주 찾기에 현장에 갈 일이 많았다.

속도를 내야 하지만, 그러기 힘든 상황.

하지만 지혁 옆에는 황 과장이 있었다.

모든 비밀을 공유하는 지혁의 절대적인 조력자 황성준 과장이.

“오 차장님~ 간담회 대상자들과 일정 조율 완료했습니다.”

“네, 과장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황 과장은 지혁에 비해 외부 일정이 상대적으로 적었고, 지혁의 지시를 받아 간담회 준비를 도맡아서 했다.

“우선 20명 규모 회의실로 예약했거든요? 지침 주신 대로 고급스럽지 않은 곳으로요.”

지혁은 간담회 전에 대상자들을 모두 만나볼 생각이었다.

선도그룹과는 조금의 연관성도 없을 만한 곳을 알아봐달라고 요청했었다. 간담회 전까지는 절대 보안을 유지해야 하므로.

“회의실 위치가 어디죠?”

“도봉산 자락에 있습니다.”

“좋네요.”

지혁은 업무 일정을 살핀 후 말했다.

“내일 오후로 하죠. 괜찮겠죠?”

“네. 대상자들도 이 일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어서, 어떻게든 시간 내서 올 겁니다.”

지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럼 전 반차를 써야겠네요.”

황 과장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럼 저도 써야겠네요~”

“······.”

지혁은 자신 때문에 수고하는 황 과장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표정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도리어 황 과장은 지혁의 표정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요? 저 가지 말아요? 작전상 필요하면 안 갈게요.”

“아니요. 와 주시면 저야 고맙죠.”

황 과장은 물끄러미 지혁을 바라보다가, 피식 웃고는 어깨를 살짝 때렸다.

“오 차장님! 안 어울려요!”

“······.”

“그냥 하던 대로 하세요. 왜 눈치를 보면서 시키세요?”

“······.”

“제가 원해서 하는 거라니까요.”

황 과장과 깊은 대화를 나누며 ‘가스라이팅’에 대한 오해는 풀었지만.

그래도 예전에 비해 황 과장을 대하는 건 좀 조심스러워졌다.

“네······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뭘요~”

지혁은 시계를 보고 말했다.

“저 또 의전으로 나가봐야 하는데.”

“하하, 바쁘시네요~”

“그러게요. 오 회장님은 특별 지시를 내렸으면, 좀 덜 불러주시면 좋겠는데. 도리어 더 찾으시니······.”

이렇게 말은 하지만, 지혁의 표정은 나쁘지 않았다.

오 회장의 신임을 받고 있다는 거니까.

“황 과장님께 한 가지 중요한 부탁을 드렸으면 하는데요.”

“편하게 말씀하시라니까요~”

지혁은 핸드폰 사진을 보여주었다.

“우와~ 이게 뭐예요?”

좌석 수가 많은 거대한 강당이었다.

“우리 회사에서 가장 규모가 큰 강당인데요.”

‘이걸······ 왜 보여줬을까?’

황 과장은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꼈다.

“여기 장소 섭외 좀 해주세요.”

“······.”

황 과장은 눈을 끔뻑이며 생각했다.

‘그냥 한다고 하면 해주는 곳인가? 아닐 거 같은데.’

황 과장은 말을 살짝 더듬으며 물었다.

“누, 누구한테 얘기해야 하는데요?”

“그건 황 과장님께서 알아보셔야죠.”

지혁은 임무를 내릴 때 목표만 말한다. 좋게 말하면 과정에 대한 자율성을 보장하는 거고, 나쁘게 말하면 결과만 가져오라는 거다.

“아······.”

“날짜는 최대한 빨랐으면 좋겠어요. 오 회장님도 간담회 일정에 무조건 맞추겠다고 했으니까.”

‘아, 부담스러운데.’

“기꺼이 도와주신다면서요.”

“그거야 능력이 되는 선에서······.”

지혁은 피식 웃고는 말했다.

“능력 되는 거 아니까 부탁드리는 거예요.”

***

도봉산 YMCA 무수골 캠프.

지혁은 차에서 내려, 도봉산 산세를 올려다보았다.

“장소 잘 잡으셨네.”

“공기 좋죠?”

“비밀 모의하기 딱 좋은데요?”

“······.”

무수골 캠프장은 꽤 넓었는데,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운영을 하는 건가요?”

“그러니까 예약받았겠죠.”

“혹시 전체를 다 빌린 건 아니죠?”

“에이~ 사비로 하시는데. 제가 설마 그랬겠어요.”

비밀리에 벌이는 일이라 회의실 예약은 사비로 수밖에 없었다.

“영수증은 챙겼습니다. 나중에 청구할 거예요.”

황 과장은 이 말에 피식 웃으며 생각했다.

‘안 할 거면서.’

초창기에 비해 많이 바뀌긴 했지만, 지혁은 여전히 돈 쓰는 것을 아끼지 않는다.

고요한 YMCA 무수골 캠프장.

예약해 놓은 ‘난(蘭) 회의실’ 앞에 도착했다.

“여깁니다.”

“······.”

“좀 전에 윤 팀장님이 연락해주셨거든요. 모두 도착해 계세요.”

후유-

지혁은 심호흡했다.

‘샤이 피플’들이 참석을 결심하긴 했지만, 그들을 안심시켜야 한다. 그래야 간담회 날 용기 있게 의견을 말할 수 있다.

그게 오늘 지혁이 그들을 만나기로 한 주이유였다.

덜컹.

문을 열고 들어갔다.

“······.”

모여있던 사람들은 회의실에 들어온 차가운 눈빛의 젊은 남성을 집중했고.

회의실 안에는 싸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지혁은 모인 사람들의 눈을 바라봤다.

의심스럽고 걱정되고 기대도 되는 복잡한 눈빛.

윤 팀장이 지혁을 향해 손짓하며 인사했고, 지혁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눈인사했다.

그리고 가운데 앞에 서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오지혁입니다.”

“······.”

박수 소리도 인사도 없었다.

지혁 앞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직급은 이사 혹은 부장. 선도그룹 관계사에서 다 한자리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선도물산 디자인실장 말고는 지혁이 아는 얼굴은 없었다.

‘위압감이 있네.’

지혁은 갓 서른이 넘은 ‘차장’이다.

이런 사람들 앞에서 위압감을 느끼는 게 지극히 정상이다.

‘분위기에 밀리면 안 돼. 예의 차리는 것보다는 실력을 보이는 것에 집중하자.’

참석자들 또한 여러 생각을 하며, 지혁을 유심히 보고 있었다.

‘이 남자가 오지혁이구나.’

‘생각보다 매우 젊네?’

‘실물이 더 낫구먼.’

‘명성이야 익히 들었지만······ 괜찮을까? 너무 어린데.’

지혁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과연 이 젊은이가 비서실장을 상대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은 거두지 못했다.

비서실장은 대단한 사람이니까.

“길게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

“결심을 하셨기에 이 자리에 오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지혁은 참석자들의 눈을 하나씩 마주 보며 말했다.

“절대로 겁먹지 마십시오.”

참석자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어찌 보면 불쾌하게 들릴 수도 있는 표현이었지만.

그들이 우려하는 핵심을 제대로 파고들었다.

“있는 그대로 말씀해주시면 됩니다.”

지혁은 힘주어 또박또박 말했다.

“간단합니다.”

“······.”

“아무것도 신경 쓰지 말고, 그렇게 해주세요.”

***

“당부의 말씀은 그 정도로 하고요. 간담회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지혁과 오 회장이 얼마나 이 일에 진심인지, 그리고 왜 필요한 일인지 직접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 또한 '안심'을 주기 위해서 말이다.

“간담회는 오 회장님이 직접 지시하신 일입니다. 오랜 기간 근무하시면서 느꼈던 부조리 혹은 아쉬운 점을 가감 없이 말씀해주시면 됩니다.”

“······.”

“그리고 이 일의 총진행은 제가 합니다. 전 살아 있는 간담회를 원합니다. 감정적이어도 좋고, 고성이 오가도 좋습니다. 물리적 충돌이 일어나지 않는 한, 그대로 둘 생각이니까. 쌓아놨던 거 마음껏 발산하시면 됩니다.”

윤 팀장은 피식 웃으며 생각했다.

‘말하는 거 하고는······ 오 팀장답다.’

지혁이 선도본관으로 떠난 후, 윤 팀장은 이런 모습을 오랜만에 봐서 반가웠다.

취지, 시간, 장소 등 전반적인 설명을 하였고, 참석자들은 묵묵히 얘기를 들었다.

그런데, 조용히 듣기만 할 뿐, 아무도 질문을 하지 않았다.

‘얘기가 있을 만한데.’

이들이 의구심이 없어서 질문을 안 하는 게 아닐 거로 생각했다.

“다들 너무 조용하시네요.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보셔도 됩니다.”

“······.”

그래도 조용했고, 지혁은 이들을 보며 생각했다.

‘왜 샤이 피플인지 알겠네. 실장급 되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소극적이야.’

비서실장이 철저히 계획적으로 사람들을 골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궁금한 게 있어야 정상일 텐데요.”

그때, 뒤쪽에서 누군가 쭈뼛쭈뼛 손을 들었고.

지혁은 그 사람을 가리키며 말했다.

“네, 말씀하시죠.”

“안녕하세요. 선도전기 김일중 이사라고 합니다.”

“네, 이사님 안녕하세요.”

“저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아마 여기 계신 분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실 겁니다.”

지혁은 잠자코 그 남자를 바라보았다.

“이게 간담회입니까, 비서실장 청문회입니까?”

“······.”

“개인의 목적을 위해서, 이해관계자들을 불러 모았다는 생각이 좀 들거든요? 음······ 이용당하는 느낌이랄까요?”

막상 말을 하니, 똑 부러졌다.

“지금까지 비서실장에게 이용당하며 회사생활 했는데, 또 다른 사람에게 이용당하고 싶지 않습니다.”

지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질문 끝나셨으면, 답변드려도 될까요?”

“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둘 다입니다. 간담회이자, 비서실장 청문회입니다.”

“······.”

“그런 인간을 비서실장 자리에 두면 안 되잖아요. 선배님들 모두 선도그룹을 아끼지 않으십니까?”

지혁은 참석자들을 ‘선배’라고 칭했다. 이 또한 계획적인 거였고, 효과는 있었다.

이 표현 한 마디로 참석자들의 표정이 좀 누그러졌으니까.

“그리고 이용이라는 말씀을 하셨죠.”

지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이용한다고 말할 수 있죠. 선배님들 못지않게 저 역시도 비서실장에게 앙금이 좀 있거든요.”

지혁의 눈빛이 빛났다.

“그런데요.”

김일중 이사를 똑바로 보고 말했다.

“선배님들도 절 이용해주시면 좋겠습니다.”

“······.”

“제가 꽤 날카롭거든요. 휘두르면 썰어 버립니다.”

앉아서 듣고 있던 디자인실장이 살짝 미소 지었다.

“제가 앞에서 칼춤 제대로 출 테니까, 지원 좀 해주십시오.”

“······.”

“서로를 이용해 보죠.”

이후, 더 이상의 질문은 없었다.

***

“좋은 아침~”

비서실장은 여느 때처럼 사람 좋은 미소를 흘리며, 직원들에게 반갑게 인사했다.

-우리 비서실장님은 항상 먼저 인사하셔.

-얼굴만 봐도 기분 좋아지지 않니?

비서실장은 이런 수군거림을 유심히 들으며, 만족해했다.

‘나이스한 남자. 멋진 남자.’

이런 오글거리는 생각을 하며 자기도취에 취한다. 사람들에게 존중받는 걸 그 무엇보다도 중시하기 때문에.

상쾌한 기분으로 책상 앞에 앉아, 이메일 창을 열었는데······.

‘선도그룹의 미래를 위한 임직원 간담회.’

“음?”

생소한 메일 제목을 보고, 바로 클릭 버튼을 눌렀다.

‘임직원 간담회? 보고를 받았던 적이 있었던가?’

메일 내용을 읽을수록, 비서실장의 표정은 점점 굳었다.

‘오늘······ 오늘?!’

분명 보고 받은 적 없고, 처음 보는 내용인데, 오늘 한단다.

비서실장은 뭔가를 느꼈고, 스크롤을 빨리 내려갔다.

그의 동공이 커지고,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참석자 : 오종건 회장······.’

비서실장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뭐지? 씨발, 뭐지?’

마지막 간담회 장소를 확인하고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장소 : 화성 선도캠퍼스 대강당’

그곳은 1만 명 수용이 가능한 선도그룹 최대의 대강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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