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 뿌린대로 거둔다
간담회가 있던 날 아침.
‘선도그룹의 미래를 위한 임직원 간담회.’
최 부회장은 흥미로운 제목의 메일을 확인했다.
‘발신자 : 오지혁 차장’
웃으며 생각했다.
‘드디어 터트리려나 보군.’
최 부회장은 지혁을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그가 비서실장과 관련된 인사들을 간담회 패널로 섭외하여, 그들과 사전에 만남을 가진 것도 알고 있었다.
‘선도캠퍼스 대강당에서 한다고? 뭔 일을 어떻게 벌이려고 이럴까?’
지금까지는 지혁이 최 부회장의 생각 범위 안에서 움직이고 있었기에, 크게 걱정하진 않았었다.
최 부회장은 간담회에 참석하였고, 오 회장의 옆자리에 앉았다.
“회장님, 이게 정말 오 차장 아이디어입니까?”
“그렇네. 획기적이지?”
“획기적이다 못해. 도발적이네요.”
최 부회장은 수십 년 회사생활을 했지만, 이런 간담회는 본 적이 없었다.
그 또한 일 처리 하는 데 급진적인 성향이라 젊은 시절 또라이 소리 좀 들었었으나.
지혁이 벌인 것과는 비교할 수준이 아니었다.
“이런 행사를 허락하신 회장님도 참 대단하십니다.”
“······.”
평소와 다른 모습을 꼬집어 한 말이었고, 오 회장은 그 속뜻을 알아들었다.
“그러게. 어느샌가 내가 컨펌을 하고 있더군.”
“······.”
“저 친구 아주 요물이야.”
그리고 오 회장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고.
최 부회장은 그런 모습도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단상 위에 선 지혁을 보며 생각했다.
‘위험한 놈인가.’
최 부회장은 지혁을 높게 평가했으며, 그를 그룹의 주인으로 세울 생각도 하고 있지만.
거기엔 전제 조건이 있었다.
‘내가 컨트롤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자신보다 한 수 아래여야 하는데.
처음으로 지혁이 ‘위험인물’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측이 불가능한 위험인물은 최 부회장의 후보군에는 없었다.
좀 더 두고 보자는 마음으로 간담회 자리를 끝까지 지켰는데.
간담회 자체는 괜찮았다. 내용도 좋았고, 그 자리에서 해결하려는 결단력도 좋았다.
‘어? 갑자기 뭐야?’
끝난 줄 알았던 간담회의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15명의 패널이 돌아가면서 한 사람을 향해 얘기하기 시작하는데.
모양새는 그룹을 걱정하는 거였으나.
실체는······.
내부의 사람을 이용하여 집중 공격하는 ‘공개처형’이었다.
정신적, 물리적으로 회생 불가능한 상태로 만들어 버리는 끔찍한 방식.
‘아니······ 뭘 이렇게까지.’
최 부회장은 지혁의 아버지가 누군지, 비서실장과 어떤 사연이 있는지도 알지만.
이건 좀 심하다는 생각이었다.
‘너무 과하잖아.’
최 부회장은 오 회장 건너 자리에 앉아 있는 비서실장을 힐끔 보았다.
온몸을 떨며, 넋이 나간 듯한 표정.
그러나 지혁은 비서실장이 그러거나 말거나, 새파란 불이 뚝뚝 떨어지는 듯한 눈빛으로 몰아붙이고 있었다.
심지어 마지막엔 오 회장까지 몰아세웠다. 지혁이 원하는 대답을 듣기 위해.
최 부회장이 지혁에게 처음으로 의구심이 든 순간이었다.
‘이 사람은······ 아닌가?’
***
‘당신에게 퇴사를 권고한다.’
오 회장의 한마디에 대강당은 정적에 휩싸였다.
비서실장은 선도그룹 직원 1만 명 앞에서 ‘권고사직’을 당한 것이다.
말을 뱉은 오 회장 자신도 얼떨떨했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야.’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에 결심하고 뱉은 말이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십수 년을 함께한 사람이다.
하지만 늦었다. 만인 앞에서 뱉은 말.
오 회장은 굳은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 말이 없었다.
그대로 대강당 출구로 향해 걸어갔고, 그의 뒤를 비서실이 따랐다.
지혁은 오 회장이 나가길 기다렸다가, 직원들에게 말했다.
“이상으로 간담회 마칩니다. 늦은 시간까지 고생 많으셨습니다.”
“······.”
직원들도 아무런 말 없이 조용히 일어나 대강당을 빠져나갔다.
안내요원의 지시에 따라 조용히 이동할 뿐, 1만 명이 빠져나가는데 조금의 웅성거림도 들리지 않았다.
많은 성과가 있는 간담회였으나, 드러내놓고 좋아할 수 없는 분위기.
텅 빈 강당에 혼자 남아 있는 한 남자 때문이다.
지혁은 단상 위에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오 차장님.”
직원들이 다 빠져나간 걸 본 뒤, 황 과장이 지혁에게 다가왔다.
“가시죠.”
“먼저 나가 계세요.”
황 과장은 비서실장을 힐끔 보고 작게 말했다.
“기다릴게요. 돌발행동이라도 하면 어떡해요.”
그가 보기에 비서실장은 지금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았고, 지혁 혼자 두기에 염려되었다.
“나가 계세요.”
지혁은 간단하게 한 번 더 말했고.
황 과장은 머뭇거리다가 먼저 나갔다.
선도캠퍼스 대강당.
넓고 텅 빈 곳에 지혁과 비서실장만 남았다.
계속 정적이 흐르던 중.
지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다 나가고 저밖에 없어요.”
이 말에 비서실장은 푹 숙이고 있던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
비서실장의 눈은 핏물이라도 떨어질 것처럼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내가 너한테 뭘 잘못했지? 왜 이러는 건데?”
“······.”
“업무적으로 힘들게 한 것도 없고, 온 지 얼마 안 되어 평가를 준 적도 없잖아.”
“······.”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냐고.”
비서실장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적의는 지혁이 먼저 드러냈었다.
두 사람 간의 신경전을 먼저 시작한 건, 분명 지혁이었다.
하지만······ 근원을 따져보면 시작은 지혁이 아니다.
“저 오종원 이사 아들이에요.”
“······ 뭐?!”
비서실장은 잘못 들었나 싶어서 눈을 부릅떴다.
지혁은 숨기지 않았다.
비서실장은 어차피 떠날 사람이고, 만약 다른 사람에게 지혁의 신분을 밝힌다 해도 이젠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이미 노 전 부회장과 최 부회장이 알고 있다. 거기에 선도물산의 한 전무까지.
한 사람도 아니고, 세 사람이나 알고 있으면 아무리 조심해도 머지않아 퍼지게 될 거로 생각했다.
“이게 뭔 소리야? 오종원 이사?”
“네. 당신이 보내버린 사람이요.”
지혁은 더 이상 그를 비서실장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았다.
“다 빼앗고 보내버렸잖아요. 형제간에 의도 상하게 하면서요.”
“그걸······ 어떻게.”
“이 세상에 영원한 비밀이 있을 거로 생각해요?”
지혁은 피식 웃고는 말했다.
“안 어울리게 순진한 척하시네.”
비서실장은 오늘 여러 차례 충격받아서 쓰러질 지경이었다.
그래도 지혁은 계속 몰아붙였다.
잔인했다.
조금의 자비도 없었다.
“그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 않나?”
“······.”
“일자리 잃은 거 말고 뭐가 더 있지? 가족이나 형제를 잃은 건 아니잖아요?”
비서실장은 입술을 깨물었다.
“오종원 이사의 아들에게 당했다고 생각하면 그래도 좀 덜 억울할 거 같은데.”
“······.”
“뿌린 대로 거두는 거니까. 안 그래요?”
지혁은 출입구를 향해 몸을 돌렸다.
“사무실에 있는 개인 짐은 택배로 보낼 테니까, 다신 선도본관에 얼씬도 하지 마세요.”
“······.”
“한 번만 더 내 눈에 띄었다간, 나도 날 어쩌지 못할 거 같으니까.”
쾅!
지혁은 거칠게 대강당 문을 닫고 나갔다.
***
간담회의 여파는 컸다.
그다음 날부터 미래기획실은 풀가동되어 간담회에 나온 주제별로 TF팀을 구성하였다.
오 회장은 TF팀으로부터 매주 대면보고를 받았으며, 그룹에서 해결해야 할 우선순위로 분류되어 집중 관리 되었다.
대한민국 1등 글로벌 기업답게, 집중하여 문제를 들여다보니 좋은 변화들은 금방 생겨났다.
시간이 지날수록 선도그룹의 직원들은 이 일을 시작해준 지혁을 칭송했으며, 결단을 내려준 오 회장을 존경했다.
그리고 지혁에게도 변화가 생겼다.
-엇. 오지혁 차장님이다.
-인사해볼까?
-바쁘신데, 괜히 귀찮게 하는 거 아닐까.
-아, 몰라. 난 인사드려 볼래.
복도를 지나가던 직원들은 지혁을 향해 깍듯이 인사했고.
“안녕하십니까!”
“네, 안녕하세요.”
지혁은 가볍게 인사를 받아주었다.
선도그룹에서 지혁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원래 유명인이기도 했지만, 직원들은 그를 그저 특출난 직원이 아닌, 그룹을 이끌어갈 예비 경영자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선도그룹의 VIP가 된 것이다.
하지만, 간담회로 인한 부작용도 있었는데.
“팀장님, 오늘 의전 일정은 제가 가야죠?”
“아, 아니에요. 내가 갈게요. 오 차장님은 중요한 일정 많잖아요.”
“저 며칠째 쉬고 있는데요? 그리고 왜 자꾸 존대하세요. 이상해요.”
의전팀장은 간담회 이후로 지혁에게 하대하지 않았다. 이젠 팀원같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게 편해서 그래요. 무슨 일 있으면 연락드릴게요.”
의전팀장은 말을 뱉고서 도망치듯 나갔다.
‘생각했던 것보다 심한데.’
주변인들의 변화를 예상 못 했던 건 아니었지만, 지금은 거의 고립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존중받는 왕따랄까.
특히, 업무적으로 부딪힐 일이 많은 비서실과 미래기획실은 대부분의 일에서 지혁을 배제했다.
겉보기엔 배려지만, 결과적으로는 지혁은 없다고 생각하고 일을 하는 것이다.
그건 오 회장도 마찬가지였다.
간담회 전까지만 해도 지혁을 수시로 찾고, 모든 의전 일정에 지혁을 특별 지목하여 호출했었는데.
지금은 전혀 찾지를 않는다.
‘때가 올 거야.’
하지만 지혁은 조바심을 갖지 않았다.
적절한 때에 한 번쯤은 기회가 올 거로 생각했다.
어찌 되었든 간담회를 한 건.
회사에 필요한 일이었으니까.
***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났을 무렵.
지혁은 여느 때처럼 사무실에 혼자 고립되어 있었는데.
“오 차장.”
지원팀장이 지혁을 불렀다.
“네.”
“회장님이 찾으시네.”
생각지 못한 말에 지혁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를요?”
지원팀장은 의전팀장과 달랐다.
지혁이 어려워졌다고 해서 갑자기 지혁에게 존대하지는 않았다.
“그래, 기다리시니까 어서 가봐.”
갑작스러운 호출이라, 지혁은 오 회장의 의중이 전혀 짐작되지 않았다.
‘맞더라도, 알고 맞아야 덜 아픈데.’
왠지 좋은 일은 아닐 것 같고.
지혁은 소스를 줬으면 하는 표정으로 지원팀장을 바라봤는데.
그는 피식 웃고는 말했다.
“안 좋은 일은 아닌 거 같아. 어서 가봐.”
“네.”
저벅. 저벅.
회장실로 향하며 지혁은 여러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간담회 이후 오 회장을 독대하는 건 처음이었으니까.
‘갑자기 뭘까. 혹시 해외 출장 가시려 그러나.’
지혁이 베트남에서 풀바디랭귀지를 펼쳤을 때, 출장 시 같이 다니면 좋겠다고 했던 오 회장의 말이 떠올랐다.
똑. 똑.
어느덧 회장 집무실에 도착하였고, 문을 두드렸다.
“오지혁입니다.”
[들어와.]
지혁은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오랜만에 보는 오 회장.
한 달 새에 더 노쇠해진 것 같았다.
‘어디 편찮으셨나? 그런 소식 들은 건 없었는데.’
그의 안색을 유심히 살피며 안으로 들어갔는데.
오 회장은 지혁을 보자마자 대뜸 물었다.
“자네 말이야.”
오 회장의 눈빛이 일렁였다.
물기가 찬 건지, 눈빛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느낌이었다.
“언제까지 숨길 생각이었나?”
“네?”
오 회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지혁의 앞으로 다가왔다.
“네가 직접 말해 봐.”
그는 ‘오 차장’이라고도, ‘자네’라고도 부르지 않았다.
마치 조카 부르듯, 지혁을 편하게 불렀다.
“너······ 누구 아들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