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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이 능력을 숨김-131화 (131/301)

131. 낙하산을 펴다 (1)

선도캠퍼스에서 간담회가 끝난 후.

복귀하는 차 안에서 오 회장은 계속 생각했다.

‘비서실장은 왜 그랬을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이해가 안 되는 건 지혁의 행동이었다.

‘오 차장은 왜 그렇게까지······.’

회사의 정의를 세우기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개인적인 감정이 있어 보였다.

‘이건 저격이야. 그게 아니라면 굳이 이런 위험한 방식을 선택할 이유가 없지.’

둘 사이에 뭔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 회장은 잠시 생각하다가, 조수석에 있는 지원팀장을 불렀다.

“지원팀장.”

“네.”

여러 증인 앞에서 명백히 가려진 일이지만, 우선 비서실장 관련된 문제의 사실관계부터 확인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비서실장 샅샅이 조사 해봐. 오늘 패널로 나온 인물들 외에 더 피해받은 사람들은 없는지, 금전적으로 해먹은 건 없는지 등. 무슨 말인지 알지?”

“네, 알겠습니다.”

“문제가 확인되더라도 감사나 법무에는 얘기하지 말고, 우선 내게 보고해. 절대로 어디 거치지 마.”

“알겠습니다.”

웬만하면 권고사직으로 마무리할 생각이었다. 그에게 빚진 것도 있고, 미우나 고우나 오랜 세월 함께한 시간이 있었으니.

“그리고 말이야.”

“네.”

오 회장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오 차장에 대해서도 알아봐.”

지원팀장은 잘 이해가 되지 않아서 뒤를 돌아보며 되물었다.

“뭘 말씀이십니까?”

“뭐든.”

“······.”

“가족관계, 출신, 학력 등 최대한 자세하게. 그리고 비서실장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지원팀장은 오 회장의 이런 지시가 의아했다.

‘뭐 때문에 그러실까. 이런 적은 없었는데.’

“왜 대답을 안 하지?”

“아,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오 차장에 대해 알아보는 건 극비리에 진행해야 해.”

“······.”

“자네도 입조심하고.”

“네.”

그로부터 며칠 뒤.

오 회장은 지원팀장으로부터 보고받았다.

비서실장이 조직 내에서 막후 정치를 벌인 건 모두 사실이었으며.

비리 문제도 일부 있었다.

다만, 규모가 크진 않았다. 개인 재산 축적보다는 사람들을 섭외하고 포섭하기 위한 금전 비리 문제였다.

오 회장은 퇴직금이라 생각하고, 이 부분은 덮고 가기로 했다.

다만······.

“이거 사실이야?!”

지혁에 대한 보고서를 잡은 오 회장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네. 사실입니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여러 검증 단계를 거쳤습니다.”

“이럴 수가······.”

오 회장은 보고도 믿기 어려웠다.

지혁의 아버지 이름은 ‘오종원’.

그의 할아버지는 선도그룹 창시자 '오성근' 회장으로 되어 있었다.

지원팀장은 오 회장의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비서실에 발령받은 이후, 계속 비서실장의 뒷조사를 하고 다녔다는 건 확인했습니다. 그 외에 특별한 건 없었습니다.”

“······.”

이 정도면 더 확인할 필요가 없었다.

지혁은 자신이 오종원 이사의 아들인 걸 알고 있고, 비서실장을 타겟으로 삼았다는 게 뻔해 보였으니까.

‘다 알고 있었구나.’

그리고 간담회의 목적도 확실히 이해했다.

‘복수였어.’

***

“누구 아들이냐? 대답 안 할 거야?”

“······.”

“난 네 입으로 듣고 싶다고 했다.”

오 회장의 목소리는 격양되어 있지만, 표정은 그렇지 않았다.

안타까움과 애틋함이 담긴 복잡한 얼굴이었다.

‘뒷조사를 한 건가?’

지혁은 지금 오 회장이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부른 것 같다고 생각했다.

‘사실대로 말해야겠지.’

고민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제 아버지는 성함은 오 종자 원자 되십니다.”

“······.”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오 회장은 복잡한 눈빛으로 지혁을 바라봤고, 지혁은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오종원이 누군지, 오 회장과 어떤 관계인지 등의 얘기는 필요치 않았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 알고 있을 거라고 충분히 짐작했으니까.

“왜 그랬나?”

오 회장이 침묵을 깨고 말했다.

“지금까지 왜 그랬던 거야?”

신분을 왜 숨겼냐는 질문이었고, 지혁도 그 의도를 충분히 알아들었다.

다만······.

자신도 정확한 이유를 알지 못했다.

오 부회장에게 접근하기 위해서?

오 회장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지금까지 그게 이유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목적이지 이유가 아니었다.

‘진짜 이유는······.’

자기 행동에 의구심이 들었다.

‘내가 왜 숨겼을까.’

숨기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쉽게 밝힐 수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진짜 이유는······.

“그냥······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

“저도 그 사실을 안 지 얼마 안 되었고요. 인제 와서 제가 회장님의······.”

오 회장의 조카라는 말을 하려다가 관두었다. 그 말이 입에서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내 조카잖아.”

그런데, 오 회장이 대신 말해주었다.

“우리······ 가족 아니냐?”

뭉클.

오 회장의 말에 지혁의 한쪽 가슴이 아렸다.

결혼 전까지, 아버지 없이 어머니와 단둘이 살아왔다.

아버지를 떠올리게 하는 사람에게, 어머니와 수아 말고는 없을 것 같은 ‘가족’이라는 말을 들으니.

가슴이 아려왔다.

부인하며 살았지만, 지혁의 가슴속에는 아버지의 부재로 인한 아픔이 있었던 것이다.

“내가 너의 큰아버지잖아.”

빠득.

지혁은 감정을 억누르기 위해, 어금니를 깨물었다.

오 회장은 씁쓸한 눈빛으로 지혁을 바라봤다.

“그래······ 내가 달갑지만은 않겠지.”

“······.”

“나한테도 복수할 생각이냐?”

***

이렇게 말한다는 것은 비서실장 간담회 사건에 대한 전말을 다 이해하고 있다는 거였다.

“말해봐라. 나한테도 비서실장에게 하던 것처럼 할 생각이야?”

오 회장은 지혁을 바라봤다.

경계와 위협의 눈빛이 아니었다.

지혁이 딱하다는 듯 바라보는 처연한 눈길이었다.

“왜 그렇게 물어보시는 거죠?”

“······.”

“회장님께서 아버지께 잘못한 게 있으신가요?”

오 회장은 이 물음에 잠시 생각하고는 대답했다.

“나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잘못한 게 있지.”

“······.”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잘못한 건 잘못한 거지. 내 동생의 것을 다 빼앗고 매몰차게 내쳤으니.”

오 회장은 변명하거나, 숨기려 하지 않았다.

지혁이 알고 있는 사실대로 말했다.

“그 당시 일에 대해서는 비서실장 탓을 하고 싶진 않아.”

“······.”

“어차피 너도 다 알고 있는 것 같으니 말하는 건데. 비서실장이 내 속마음을 알아채고 움직여준 것일 뿐이야.”

후유-

오 회장은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그때 난 이 자리를 지켜야만 했고, 그러려면 네 아버지가 그룹에서 사라져야 했어.”

지혁은 오 회장의 얘기를 듣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결과는 안타깝지만.”

“······.”

“승부였다고 생각합니다.”

지혁은 오 회장을 바라봤다.

“두 분 모두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게 아니니까요. 복수하고 싶은 마음?”

지혁은 피식 웃고는 말했다.

“전혀 없었다면 거짓말입니다. 약간은 있었는데, 비서실에 와서 회장님 뵌 다음부터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그 이후에 여기저기 알아보면서 이해하는 마음도 들었고요.”

“······.”

“어차피 몇십 년 전 이야기잖아요. 어찌 됐든 전 어머니 보살핌 아래 잘 자랐고, 대한민국 최고 대기업에 입사도 했어요.”

지혁은 서글프게 웃었다.

“뭐······ 아버지가 기억에 없는 게 이유기도 하겠죠.”

어릴 적 아버지와의 추억이 있었다면, 쉽게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했을 거로 생각했다.

“그래······.”

오 회장은 눈가를 훔쳤다.

“갔더구나.”

오 회장은 지혁을 조사하면서 오종원 이사의 사망 소식을 접했다.

“너 어릴 적에 간 거지?”

“······.”

“내 동생을 그렇게 떠나보낸 게 마지막 모습이라니······.”

오 회장은 손수건까지 들어서 눈시울을 닦았다.

오종원 이사가 회사를 떠날 때 오 회장은 먼발치에서 그의 뒷모습을 지켜봤었다.

그게 오 회장이 기억하는 오종원 이사의 마지막이 되었다. 다시는 볼 수 없는 막냇동생의 모습.

오 회장은 옛 생각이 떠오르는지, 어깨까지 들썩였고.

지혁은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건 회장님 탓이 아니에요. 췌장암으로 돌아가셨어요.”

“내가 알았다면 어떻게든 살렸을 거다. 바보 같은 녀석······ 왜 그걸 혼자······.”

오 회장은 한참을 울다가, 목멘 소리로 말했다.

“네 아버지는 형제 중에 내가 가장 사랑하는 동생이었다.”

지혁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네 아버지가 어릴 적에 얼마나 귀여웠는지 아니? 성격도 밝고, 애교도 많고······.”

오 회장은 말을 잇지 못하고, 다시 울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지혁도 괜히 찡해져서, 계속 심호흡하며 감정을 진정시켰다.

오 회장은 감정을 추스른 뒤 말했다.

“어머니는 건강하시니?”

“네. 잘 지내고 계세요.”

오 회장은 시계를 본 뒤 말했다.

“제수씨 댁이 어디지?”

“용인이요.”

“10분 뒤에 출발하지.”

“네?”

지혁은 당황했다.

‘어머니가 많이 놀라실 텐데.’

오 회장은 지혁의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

“왜? 싫어하시려나?”

“싫다기보다는······ 놀라실 것 같습니다.”

오 회장은 잠시 생각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야. 그래도 가. 내겐 시간이 얼마 없어.”

***

지혁의 어머니 집 앞.

검은색 세단 두 대가 섰다.

통상 비서실, 경호팀 대동하여 차 세 대가 다니는데.

이번엔 경호팀만 따라왔다.

“연락드렸나?”

“아니요. 못 오게 하실 것 같아서, 일부러 연락 안 드렸습니다.”

“흠······ 그래.”

오 회장은 마음을 다잡았다.

문전 박대를 당할지라도, 겪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딩동.

벨 소리가 울린 뒤.

철컹.

어머니가 문을 열었다.

“어? 아들~ 이 시간에 웬일이야?”

“······.”

“택배인 줄 알았네. 그냥 비번 누르고 들어오면 되지 벨은······ 어머.”

어머니는 들어오라며 문을 활짝 열다가, 지혁 옆에 선 낯선 듯 익숙한 노인을 보았다.

오 회장을 한눈에 알아본 것이다.

“제수씨, 오랜만입니다.”

“······.”

지혁은 조마조마한 얼굴로 어머니의 표정을 살폈다.

‘당장 나가라고 소리치시는 건 아닐까.’

그런데, 의외로 어머니는 차분했다.

“들어오세요.”

“감사합니다.”

오 회장은 집 안으로 들어섰고, 어머니가 말했다.

“집이 좀 누추합니다. 오실 줄 알았으면 신경 써서 청소라도 했을 텐데.”

“아닙니다. 깔끔하게 해놓고 사시네요.”

“이쪽으로 앉으세요.”

“네.”

잠시 후, 어머니는 다과와 음료를 가지고 왔다.

어머니가 사과를 포크에 찍어, 오 회장에게 건네었다.

“내어놓을 게 없네요. 이거라도.”

“감사합니다.”

오 회장이 사과를 먹는 중에, 어머니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런 날이 올 거로 생각했습니다. 지혁이가 비서실에 갔다는 소식을 듣고, 가족사를 끝까지 숨겼어야 했나 후회가 들었는데······.”

“······.”

“회장님 사업과 후계에 걸림돌 되지 않도록, 지혁이는 제가 잘 타이르겠습니다.”

어머니는 뭔가 문제가 생겨서 온 거라고 생각한 거였고.

오 회장은 손을 들어 어머니의 말을 막았다.

“제수씨, 제가 먼저 말씀드릴게요.”

“······.”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만나서 정말 다행입니다.”

오 회장의 따뜻한 말에 어머니는 눈시울을 붉혔다.

“당시에 어쩔 수 없었지만, 전 두고두고 후회했습니다. 이제 갚겠습니다.”

“······.”

그는 어머니를 향해, 결의에 찬 눈으로 말했다.

“지금부터 아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리고 지혁이는······.”

창으로 늦은 오후의 햇살이 금빛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제 아들처럼 생각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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