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 진짜 오는 거야?
“오진원이요?”
오 회장의 셋째아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높게 평가받고 있는 인물.
특히, 최 부회장이 그를 좋게 평가했던 게 신경 쓰였었다.
지혁은 편한 자세를 풀고, 허리를 곧추세우며 물었다.
“좀 더 자세히 얘기해 보세요.”
오 부회장이 오진원을 찾고 있다는 건 전혀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다.
윤 부장은 지혁의 달라진 표정을 보고, 약간 부담을 느꼈다.
“뭐, 특별한 건 없고······ 부회장님이 그 사람을 찾고 있는데, 찾기가 쉽지 않다는 그런 얘기였어.”
“······.”
지혁은 잠시 생각하고 물었다.
“왜 찾는지는 얘기 안 해요?”
“그런 얘기는 안 하던데? 부회장님이 아랫사람에게 지시만 하지, 뭐 이유까지 설명했겠어?”
지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그렇겠네. 왜 찾을까?’
오 부회장의 의중을 생각하느라 심각해져 있는데, 윤 부장이 덧붙여 말했다.
“그리고, 좀 급해 보였어.”
“······.”
“분위기와 말투 보면 알잖아. 급하고 안절부절못하는 분위기랄까?”
지혁은 생각했다.
‘오진원을 급하게 찾고 있다는 건데······.’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예의주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맞다.”
윤 부장은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 소리쳤다.
“우리 처음 비서실 왔을 때, 오 실장이 고 차장에게 특별지시했었잖아. 그 사람이 오진원 아니었어? 지원팀에서 근무하니까, 알아보라고.”
“······.”
“맞네~ 그 사람이 오진원이네. 어째, 이름이 익숙하다 했어~ 도대체 그 양반이 누군데 그래?”
지혁은 윤 부장이 누군지 잠시 잊고 있었다.
오랜 기간 능력을 숨기고, 욕먹지 않을 만큼 일하며, 편하게 회사생활 하는 처세의 달인.
그의 최고 장점인 눈치와 기억력이 발휘되는 순간이었다.
‘오 부회장이 오진원을 찾으려는 게 급해 보인다는 걸 캐치하고, 고 차장에게 한마디 했던 걸 기억하는 것도 그렇고.’
지혁은 이런 윤 부장이 자기 사람이라는 게 새삼 든든한 기분이 들었지만.
“누구야? 누구냐니깐?”
‘아무리 윤 부장이라도······.’
이 비밀까지 공유하기는 부담스러웠다.
지혁은 이제 본 모습을 드러내고, 오 부회장과 대치 중이었다.
말 그대로 줄 타는 중.
매사에 신중해야 했다.
“나중에 찾고 나면 말씀드릴게요.”
“뭐야······ 나도 못 믿는 거야?”
“······.”
윤 부장이 장난스럽게 핀잔 섞인 말을 했으나.
지혁은 지금 조금도 장난스럽지 않았다.
윤 부장은 지혁의 표정을 살핀 후, 그에 대해 더 묻지 않고 다른 얘기를 꺼냈다.
***
다음날.
출장자 전원이 오전 내내 개인 시간을 보내고, 늦은 오후에 공항에서 바로 만났다.
“오 실장~ 잘 쉬었어?”
최 부회장은 밝은 얼굴로 먼저 아는 척했고, 지혁도 웃으며 인사했다.
“네~ 잘 쉬었습니다. 부회장님도 잘 쉬셨어요?”
그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피곤하면 더 잠이 안 와.”
“에이~ 노인처럼 말씀하지 마세요. 요즘 누가 60대를 나이 많다고 해요?”
“하하. 그래?”
최 부회장은 기분 좋게 웃었다.
미국 출장 오기 전까지만 해도, 최 부회장은 지혁에게 거리를 두며 쌀쌀맞게 대했었다. 아니, 어제 미팅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그런데, 오늘은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도대체 종잡을 수가 없어. 속을 모르겠어.’
그게 최 부회장을 상대하기 가장 어려운 이유였다.
공항에 모인 사람들.
어찌 됐든 중요한 일을 잘 마무리한 상황이라 분위기는 밝았고, 왁자지껄했다.
“······.”
어느 순간.
볼륨이 음소거 된 듯 조용해졌다.
지혁은 의아하여 뒤를 돌아봤더니.
오 부회장이 나타났다.
두 사람은 서로 곱지 않은 눈으로 바라봤고.
지혁이 먼저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그래.”
지혁은 천천히 오 부회장의 눈빛과 표정을 살피며 생각했다.
‘진정되었나 보군. 어제와 다르네.’
불나방처럼 죽을 자리를 향해 돌진하던, 그 오 부회장이 아니었다.
차분하고 젠틀한 평소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부회장님, 잘 쉬셨어요?”
그는 최 부회장에게 먼저 인사했고.
최 부회장은 웃으며 대답했다.
“네, 덕분에 잘 쉬었습니다. 어제 제가 결례를 범했다면······.”
차기 오너가 될 사람.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의 권위를 건드렸던 걸 사과하려 했다.
“아닙니다. 최 부회장님 입장에선 필요한 일을 하신 건데요.”
오 부회장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직원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어서 갑시다.”
오 부회장이 왔으니, 이제 체크인 창구를 향해 이동했다.
“이래서 더 불안해······.”
지혁은 이런 오 부회장의 극도로 일관성 없는 모습이 더 불안하게 느껴졌다.
무슨 짓을 할지, 짐작할 수 없으므로.
“나도 동감일세.”
지혁의 혼잣말을 들은 최 부회장이 웃으며 말했고.
지혁이 민망한 표정을 짓자, 그는 어깨를 두들기고는 먼저 걸어갔다.
***
전용기를 타고 온 선도그룹 직원들은 구분된 창구에서 체크인했고.
옆 창구에 줄 서 있는 일반 승객들은 이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외교관들인가?
-부럽다.
지혁은 차례를 기다리다가, 옆에 긴 줄에 선 커플의 대화를 우연히 듣게 되었다.
-그럼 어쩌겠어. 우린 싸게 왔잖아.
-뉴욕을 왕복 15만 원에 왔다는 게 말이 돼?
-하하. 그건 그래.
-KTX 부산행 금액이랑 별 차이가 안 나.
순간······ 지혁의 등골에 땀이 쫙 났다.
‘뭐?!’
지혁은 ‘그 세계’의 징후 중 하나로 항공권 가격을 신경 쓰고 있었으나.
이런 가격은 들어보지 못했었다.
하와이에서 들었던 것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의 저렴한 금액이었다.
-가격만 싸면 1시간 넘게 기다려도 괜찮아~
-자기야. 우리 특가 뜨면 유럽도 한번 가자.
-특가 기다릴 것도 없어~ 평상시 가격도 엄청 싸더만.
-근데······ 여행 제한 다 풀리고, 상황 좋아지면, 가격 다시 올라가지 않을까?
지혁은 이 말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일시적인 현상인가?’
펜데믹 상황이 해제되고 여행 제한이 풀리면서, 일부 항공사 간에는 출혈 경쟁을 하고 있었다.
-글쎄, 그렇다고 갑자기 확 올라가진 않겠지.
-그럴까?
-그럼~ 상황 좋아졌다고 가격 갑자기 올려버리면 누가 이 항공사 이용하겠어.
윤 부장은 뒤에서 지혁을 툭툭 건드리고 말했다.
“실장님, 뭐 하세요?”
지혁 앞에 선 선도그룹 직원들은 이미 체크인을 끝내고 빠져나가고 있었다.
“먼저 가세요.”
지혁은 두 커플의 대화에 집중하느라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고.
윤 부장은 지혁을 지나쳐 창구 앞으로 갔다.
-자기야, 그래도 모르니까. 지금 실컷 다니자.
-그래. 미래는 모르는 거니까.
-요즘 항공사가 너무 많아져서, 자기 말처럼 가격이 막 오르진 않을 거 같긴 해.
-바야흐로, 해외 여행하기 참 좋은 시기지~
-호호. 비행기가 꼭 대중교통 같다니깐.
‘해외 여행하기 참 좋은 시기.’
‘대중교통.’
이젠 괜찮아졌을 거로 생각했는데.
헉. 헉.
지혁의 숨소리는 급격히 거칠어졌다.
햇빛을 볼 수 없는 하늘.
자욱한 연기.
길거리의 실체들.
항상 등 뒤를 경계하고 다녀야 하며.
잠 한숨도 편히 자기 힘들었던 나날들.
‘진짜······ 오는 거야?’
‘그 세계’의 조각을 조금이라도 발견하게 되면, 이렇듯 지혁의 몸은 의지와 상관없이 반응한다.
급기야, 자리에 주저앉았고.
“오 실장님!”
이 모습을 가장 먼저 발견한 윤 부장이 뛰어왔고.
다른 선도그룹 직원들도 지혁에게 몰려들었다.
오 부회장도 희한한 눈으로 지혁을 보고 있었다.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녀석이. 갑자기 왜 이래?’
지혁은 과호흡 증상을 보였고.
눈앞이 점점 캄캄해져 갔다.
‘오 실장님! 야! 정신 차려 지혁아!’
윤 부장의 외침이 점점 멀게 느껴졌다.
지혁은 졸린 기분을 느끼며 생각했다.
‘치료받든가 해야지. 이게······ 뜻대로 안 되네.’
징후를 보면, 과호흡이 오는 증상.
의지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있음을 지혁은 처음 깨닫고 있었다.
***
지혁은 하루 연차를 내고 쉬었고.
한국에 도착한 지 이틀 만에 출근했다.
똑. 똑.
[오지혁입니다.]
지혁은 노크 후 회장실로 들어갔다.
“어, 어서 와라.”
오 회장은 걱정스러운 낯빛으로 지혁을 바라봤다.
“괜찮냐? 며칠 더 쉬어도 되는데.”
말은 이러지만, 오 회장은 지혁이 없으니 불편했다.
“별거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오 회장은 지혁의 안색을 유심히 살폈는데, 괜찮아 보였다.
“공항에서 쓰러졌었다며.”
“네.”
“자네 복직 전에 췌장암도 앓았었다고 들었는데.”
지혁이 말한 적은 없었다.
오 회장이 개인적으로 알아본 것이다.
“네, 이제 괜찮습니다. 정상적으로 생활하는 데 지장 없는 걸로 진단받았습니다.”
“정밀 검사 좀 다시 받아봐야 하지 않겠나?”
“정밀검진 받은 지 얼마 안 됐습니다. 이상 없습니다.”
“혹시 폐소공포증이라든가, 공황장애 같은 게 있는 건 아니지?”
“······.”
오 회장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아무것도 못 하고 내 동생을 떠나보낸 게 너무 죄스럽고 미안했거든. 정밀검진에서 이상 없었다면, 그건 됐고. 큰아버지가 잘 아는 의사 소개해줄 테니, 상담 한번 받아봐라.”
“······.”
“요즘은 정신과 가는 거 부끄러운 거 아니야. 강박증, 스트레스 장애, 공포증 등 회사생활 하다 보면 올 수 있는 거거든.”
지혁은 잠자코 들었다.
“나도 정기적으로 상담받아. 거부감 가질 거 없어.”
상담 자체에 거부감은 없다.
다만, 마주하기 싫은 끔찍한 기억을 만날까 봐 엄두가 나지 않을 뿐이었다.
‘그 세계’에서의 몇 년.
일반인들은 상상도 못 할 참 많은 일들이 있었으니까.
그렇다고 ‘징후’를 볼 때마다 오는 과호흡 증상을 그대로 둘 수는 없었다.
“알겠습니다.”
지혁은 무겁게 대답했고, 오 회장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바로 어딘가에 전화했다.
“내일 오후로 잡았다. 마침 금요일이니까, 상담받고 바로 쉬는 거로 해.”
“네, 회장님.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흠~ 그럼.”
오 회장은 자세를 고쳐잡고 지혁을 바라봤다.
“출장 보고 좀 들어볼까?”
“······.”
“있는 그대로 얘기해야 해. 진실이 아닌 건 금방 알 수 있으니까.”
다른 경로로 들은 게 있는 건지, 아니면 본인의 통찰력을 믿고 하는 말인지 모르겠으나.
지혁은 오 회장이 빈말하는 게 아니라는 건 알고 있다.
지혁은 있는 그대로 짧게 출장 보고했고.
“그 정도면 적당히 잘 마무리된 거네?”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최 부회장님 역할이 컸습니다.”
“근데······ 한가지 얘기 안 한 게 있는 거 같은데?”
지혁은 오 부회장과 언쟁이 있었던 부분만 제외하고 말했다.
과정 중에 일어났던 일이고, 마이너스가 될 만한 일은 굳이 얘기할 필요가 없었다.
“너, 부회장이랑 다툼이 있었다며?”
지혁은 어금니를 깨물었다.
‘젠장, 다 알고 있구나.’
지혁은 어떻게 대답할지 생각하다가.
‘오 부회장을 차기 회장으로 세운다는 생각은 확고하시잖아.’
이 사실은 여러 번 대화를 통해 확인했었다.
그리고 지혁은 오 회장에게 잘 보여야만 했다.
‘어설프게 변명하느니······.’
“죄송합니다.”
“······.”
“제가 주제넘게 행동했었습니다. 앞으로 주의하겠습니다.”
오 회장은 지혁을 가만히 보다가.
피식 웃고는 말했다.
“자네가 뭘 미안해.”
“······.”
“진양이가 실수할 뻔한 걸 막았다고 하던데.”
오 회장은 한숨을 푹 쉬고 말했다.
“그 녀석을 어떻게 믿고 회사를 맡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