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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이 능력을 숨김-147화 (147/301)

147. 가족모임

용인에서 출발한 어머니는 서울 모처에서 지혁과 수아를 픽업했다.

“어머니~ 안녕하세요~”

수아는 밝은 목소리로 인사했다.

“그래~ 오랜만.”

목소리는 밝지만, 어머니의 얼굴은 긴장으로 굳어 있었다.

지혁은 어머니에게 말했다.

“어머니, 제가 운전할게요.”

“아니야. 괜찮아.”

“제가 길 알잖아요. 어서요.”

지혁이 운전대를 잡고, 차는 곧 출발했다.

백미러로 어머니의 얼굴을 살피며 말했다.

“우리 엄마 오늘 신경 많이 쓰셨네?”

지혁의 말에 어머니는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맞아요~ 어머니 오늘 너무 고우세요~ 10년은 젊어 보이세요. 호호.”

두 사람의 말에 어머니 표정의 좀 풀리기 시작했고, 지혁이 한마디 더 했다.

“어머니, 아직 늦지 않았어요. 지금이라도 좋은 어르신 만나서······.”

“적당히 해라.”

“네.”

긴장 풀어주려고 한 말에 어머니가 정색하자, 수아는 옆에서 키득거리며 웃었다.

잠시 후.

오 회장 댁에 가까워지니 어머니는 다시 긴장하기 시작했고.

“어머니.”

“응?!”

지혁의 부름에 어머니는 깜짝 놀라서 대답했다.

“그냥 밥 먹고 오는 거예요.”

“······.”

“저랑 며느리가 옆에 있잖아요.”

“맞아요~ 어머니~”

수아는 어머니 팔짱을 끼며 콧소리로 말했다.

어머니는 피식 웃었고.

지혁은 그녀의 표정을 확인한 후, 다시 운전에 집중했다.

오 회장 댁 도착.

위이잉-

인터폰을 누르지도 않았는데, 차고 문이 자동으로 열렸고.

수아는 놀라서 말했다.

“어머, 뭐야?! 누군 줄 알고?”

지혁은 중얼거리듯 말했다.

“차 번호 물어봤던 게 이거 때문이었나?”

오 회장댁에는 고화질 CCTV가 여러 곳에 설치되어 있다. 카메라를 통해 차 번호를 확인하고 문을 열었을 것이다.

주차 후, 현관 쪽으로 걸어오니.

“어서 오세요.”

오 회장과 함께 가족들이 마중 나와 있었다.

어머니는 공손하게 인사했다.

“아주버니, 안녕하세요. 형님······.”

어머니는 큰어머니 얼굴에 시선이 꽂혔고, 눈물이 약간 글썽였다.

과거에 어떤 사이였던 간에, 몇십 년 만의 만남이었다.

“동서, 어서 와.”

큰어머니의 표정은 복잡 미묘했다. 반가우면서도 꺼리는 얼굴.

할 말은 많지만, 나눌 얘기가 없는 사이.

두 사람 사이에 어색한 기운이 감돌았다.

“너희들은 뭐하냐? 작은어머니한테 어서 인사드리지 않고.”

오 회장 바로 옆에 있던 오 부회장이 먼저 인사했다.

“작은어머니 안녕하세요. 오진양이라고 합니다.”

“부회장님. 안녕하세요. TV에서 많이 뵈었습니다.”

어머니는 오 부회장의 인사에 어쩔 줄 몰라하며 화답했다.

그럴 만도 한 게, 이변이 없는 한 그는 선도그룹의 총수가 될 사람이며, 이미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적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오 부회장 또한 어머니의 어려워하는 반응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였으나.

오 회장이 말했다.

“제수씨. 부회장님이 뭡니까. 조카한테. 그냥 이름 부르세요. 말씀도 편하게 하시고.”

“네?!”

어머니는 화들짝 놀라며 난감해했고, 오 회장이 물었다.

“진양아. 너 작은어머니 기억하지?”

“기억하죠.”

“뭐 불편할 게 있겠냐?”

오 부회장은 집안의 장손이며, 나이도 꽤 있다. 어릴 적, 작은어머니를 봤던 기억이 확실히 있었다.

“작은어머니 말씀 편하게 하세요. 전 괜찮습니다.”

“으응······.”

어머니는 마지못해 대꾸했고.

지혁은 이 모습이 신기해서 바라봤다.

‘오 부회장······ 의외네?’

권위적인 사람이라, 아무리 작은어머니라도 거리를 둘 줄 알았다.

이렇게 각자 인사를 나누는 동안.

지혁은 계속 한 사람을 주시하고 있었다.

오 회장이 지혁의 시선을 느끼고 먼저 말했다.

“처음 보지?”

그는 오혜빈을 불렀다.

“혜빈아. 네 동생 지혁이다.”

오 회장은 마치 지혁을 친아들 부르듯 말했고.

오혜빈은 웃으며 인사했다.

“반가워요.”

“네, 누나. 말씀 많이 들었어요. 말 편하게 하세요.”

‘미인이네. 그리고 다른 형제들과 분위기가 달라.’

지금까지 만난 형제는 오진양과 오혜진.

두 사람의 공통점은 음침하다는 거였다. 말수도 적고, 표정 변화도 잘 없으며, 묵직하다.

하지만, 오혜빈은······.

“호호~ 어머~ 나도 얘기 많이 들었어. 너무 반갑다~ 그럼, 말 편하게 할게?”

“······.”

“막내 타이틀 뺏기니까, 좀 아쉽긴 해~”

지혁보다 3살이 많은 그녀. 첫 대면에서 느낀 건, 인간 비타민 같았다.

***

“차린 건 없지만, 많이 드세요~”

오 회장이 숟가락을 들면서 대가족의 저녁 식사는 시작됐다.

지난번 지혁이 혼자 왔을 때도 상차림이 푸짐했지만.

오늘은 차원이 달랐다. 거의 뷔페 수준이었다.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이렇게 대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많이 드세요.”

어머니의 인사말에 오 회장은 어서 드시라고 웃으며 손짓했다.

비교적 조용하게 식사가 이루어지는 가운데.

“동서.”

큰어머니가 입을 열었다.

“네, 형님.”

“어떻게 지냈는지 지혁이한테 대충 얘기는 들었어.”

“······.”

“그동안 고생 많이 한 거 같더라.”

“고생은 뭘요. 아니에요.”

큰어머니는 사람 좋은 미소로 말했다.

“그래도 볕 뜰 날이 있네. 이렇게 회장님한테 가족으로 인정받고, 아들이 높은 직책으로 승진도 하고.”

“······.”

“얼마 전에 아파트도 받았다며?”

지혁은 잠자코 들으며 생각했다.

‘뼈가 있는데?’

대화 속에서 큰어머니가 이 상황을 탐탁지 않게 여긴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주식에 투자하는 개미들 보면, 조금만 지수 떨어져도 벌벌 떨고 그러잖아. 푼돈 좀 벌어보겠다고 말이야. 근데, 동서네는 재테크를 참 지혜롭게 했어. 그치?”

“······.”

말 속에 뼈가 있어도, 말투와 분위기에서 자연스러움을 유지했다.

어머니 또한 눈치가 있는 사람이기에 표정이 굳어졌다.

오 회장에게 빌붙어 재미 보고 있다는 뉘앙스를 확실히 알아들은 것이다.

오 회장은 눈살을 찌푸렸지만,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짚고 넘어가면, 분위기가 더 이상해지므로.

‘한마디 할까.’

지혁은 어머니의 불편한 표정을 보며, 나서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호호~ 그러니까요. 큰어머니 말씀이 맞아요~”

갑자기 수아가 나섰다.

“저도 우리 남편이 이런 식으로 임원이 될 줄은 몰랐어요~ 본인 실력으로 팀장까지 초고속으로 올라가긴 했는데. 어디 큰아버님 아니었으면, 이렇게 빨리 임원이 가능했겠어요?”

“······.”

“혈연으로 맺어지면, 능력 같은 건 상관없나 봐요~”

지혁은 속으로 생각했다.

‘뭐야? 편들려는 거 아니었어?’

수아는 형제들을 보며 말했다.

“도련님과 형님들은 어떠셨어요? 혹시 시작부터 임원?”

큰어머니의 표정이 굳었다.

“능력 보여줄 시간도 없으셨겠다~ 근데, 아버지 잘 만난 것도 능력이죠. 뭐. 안 그래요? 큰어머니?”

“······.”

수아는 장난스러운 미소로 큰어머니에게 말했다.

“임원 되기 참 쉽죠잉~ 호호.”

낙하산이란 걸 돌려 까는 말.

형제들에 비하면, 지혁은 낙하산 축에도 못 들었다.

풉.

오혜빈이 웃음을 참느라 손으로 입을 가렸고.

큰어머니는 얼굴이 벌게져서, 입을 다물었다.

지혁도 속으로 웃었다.

‘우리 아내 꽤 하는데?’

부창부수(夫唱婦隨)

뜻이 잘 맞으며, 행동이 일치하는 부부.

지혁 못지않게, 수아도 한 방 날릴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집요했다.

“식사 거의 다 하신 거 같은데, 제가 과일 좀 내올까요?”

큰어머니가 말렸다.

“아니야. 됐어. 아주머니 시키면 돼.”

“에이~ 이런 건 며느리가 해야죠.”

“······.”

“여기 며느리는 저밖에 없잖아요. 호호.”

큰아버지 댁에 며느리가 없음을 상기시킨 거였으며, 큰어머니의 표정은 더 굳어졌다.

이후로, 식사 자리가 끝나는 동안.

큰어머니는 입을 함부로 놀리지 못했다.

***

2층 접견실.

형제들끼리 모였는데, 수아도 함께였다.

오 부회장은 지혁 옆으로 와서 작은 소리로 말했다.

“야, 제수씨는 어르신들 모시라고 하지 왜.”

지혁은 웃으며 말했다.

“형제들하고 얼굴 좀 익히고 싶대요.”

“······.”

식사 자리에서 수아는 화려한 말빨로 분위기를 휘어잡았고, 오 부회장은 그런 그녀가 부담스러웠다.

‘오혜빈.’

위스키를 마시며 지혁은 오혜빈의 이마를 살폈다.

‘최 부회장과 색이 같군.’

오혜빈은 ‘하늘색’을 띄고 있었다. 고귀한 품성을 가진 성장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색.

조금 다른 게 있다면 약간 노란 빛을 띠고 있었는데, 오늘 봤던 밝은 모습이 그 이유였다.

‘오 부회장의 대안이 되진 않겠어.’

‘하늘색’을 보이는 사람들은 아무리 뛰어난 품성을 가졌어도, 최고 우두머리가 될 수 없다.

리더가 되는 데 가장 중요한 건 권력의지다.

‘하늘색’의 사람들에겐 그게 없다. 뛰어난 참모로서는 적격하지만, 최고 리더가 되면 능력 발휘를 못 한다.

아무리 출중한 해도, 의지 없는 사람을 자리에 앉히면, 버티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쉽네. 그래도 가까이 지내는 게 좋겠어.’

지혁은 오혜빈의 이마에서 시선을 거두고, 다시 위스키 잔에 입을 갖다 대었다.

“다들 묘하게 닮았어요. 지혁 씨도 그렇고.”

수아는 재잘거리며 말했다.

“어머! 그래요?”

오혜빈이 웃으며 맞장구쳤다.

수아와 오혜빈이 대화를 주도했고, 오 부회장과 오 사장, 지혁은 주로 듣기만 했다.

“네~ 기분 탓인가? 특히, 제가 아주버님을 TV에서 자주 보긴 했지만, 우리 남편과 닮았다는 생각은 안 했었거든요?”

“······.”

“형제라고 생각하고 보니까, 두 사람 참 닮았네요~”

수아는 오 부회장과 지혁을 번갈아 보며 말했고.

오 부회장은 표정을 굳힌 채 가만히 있었다. 지혁도 기분이 썩 유쾌하진 않았다.

“그렇네. 좀 닮긴 했어.”

오 사장도 피식 웃으며 말했고.

“피가 어디 가겠어.~”

오혜빈도 웃으며 맞장구쳤다.

“아, 맞다.”

수아는 생각났다는 말했다.

“형제가 한 분 더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

이 얘기가 나오자, 오 부회장의 표정이 굳어졌고, 지혁은 그런 오 부회장을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아까 식사할 때 잠깐 얘기 들은 거라 물어본 건데~ 제가 꺼내지 말아야 할 말을 했나요~?”

수아는 이러면서 할 말 다 하고 있었다. 저녁 식사 자리부터 그녀는 꼭 토크쇼 진행자 같았다.

“제 위로 오빠 한 명 더 있어요~ 오진원이라고.”

오혜빈이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며칠 전에도 연락했었는데~”

‘음?!’

이 말에 지혁은 깜짝 놀라서 그녀를 바라봤고.

오 부회장의 눈도 커졌다.

***

“진원이랑 연락했었다고?”

접견실로 올라온 이후,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오 부회장이 큰소리로 물었다.

“네, 잘 산대요~”

오혜빈은 오 부회장과 나이가 10살 넘게 차이나며, 자연스럽게 존대한다.

오 사장도 헛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우리 집에 진원이랑 연락되는 사람이 있었어? 쇼킹하네.”

“왜? 진원 오빠랑 연락하면 안 되는 거야?”

지혁은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하긴······ 난 계속 미국에 있었으니까. 집안 분위기를 모르지. 얼마 전 연락이 왔길래, 다시 왕래하나보다 싶었는데. 아닌가 보네~”

오 부회장의 표정이 다급해졌다.

“혜빈아.”

“네, 오빠.”

“그럼 진원이 연락처를 아는 거니?”

“그럼요. 알죠.”

지혁의 눈알이 이리저리 돌아갔다.

‘어떻게 할까. 왠지 오 부회장이 먼저 알게 되면 안 될 것 같은데.’

지혁은 다른 사람은 눈치 못 채게, 오혜빈 가까이로 접근했다. 만약, 번호를 부른다면 놓치지 않기 위해서.

“그럼, 오빠한테 좀 알려줄래?”

“음~”

오혜빈은 혀를 쏙 내밀고 말했다.

“진원 오빠가 알려주지 말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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