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사원이 능력을 숨김-149화 (149/301)

149. 눈과 귀 (1)

지혁이 선도물산을 방문하기 전.

선도물산 대표실은 난리가 났다.

“뭐? 그룹 회장실에서 오늘 온다고?”

비서실의 갑작스러운 보고에 대표이사는 기겁하여 물었고.

“네, 좀 전에 연락받았습니다.”

대표이사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이, 이유가 뭔가?”

“물어봤는데, 그건 말씀을 안 해주셔서······.”

“······.”

“한가지 확인된 건 회장님이 오시는 건 아닙니다.”

“뭐?!”

대표이사는 고개를 갸웃했다.

“방금 회장실에서 온다고 하지 않았나?”

“네, 비서실장님만 오신답니다.”

“······.”

“오지혁 비서실장님이요.”

‘오지혁······.’

대표이사는 입을 벌린 채 멍하니 있었다.

오 회장의 조카.

전 비서실장 강정철 전무를 전 직원들이 보는 앞에서 집으로 보내버린 남자.

그룹을 장악하는 실세 중의 한 명.

요즘엔 그의 영향력이 오 부회장 못지않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무엇보다도, 신임 대표가 긴장하는 건.

그가 가는 곳엔 칼바람이 난다는 것.

특히, 임원 보내버리는 걸로 명성이 높다.

현재 대표이사도 지혁이 보낸 홍 대표의 빈자리로 들어온 것이다.

꿀꺽.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대표이사는 절로 마른침이 삼켜졌고.

등에도 땀방울이 맺히고 있었다.

‘젠장, 대표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뭘까. 나 잘못한 거 없는데. 아직 뭐한 게 없잖아.’

대표이사는 비서실에 다급히 말했다.

“일단 빨리 현황보고 준비하고, 부사장 오라고 해.”

“한 전무님 말씀이십니까?”

“그래! 빨리!”

똑. 똑.

잠시 후, 한 전무가 들어왔다.

“대표님, 부르셨습니까.”

“한 전무님, 어서 오세요.”

한 전무는 직책상 선도물산 이인자지만, 영향력은 가장 막강하다.

그래서 대표이사는 한 전무를 항상 깍듯하게 대한다.

“갑자기 무슨 일로.”

“그룹 비서실장이 오후에 온답니다.”

“비서실장이요?”

“네, 오지혁 이사요.”

“아······.”

‘오지혁이 온다고?’

한 전무는 놀라서 그의 이름을 되새겼다.

“그 사람, 의미 없는 행동을 하지 않잖아요.”

“······.”

“왜 오는 걸까요? 뭘 알아야 대비할 텐데.”

“잠시만요.”

한 전무도 우선 진정하고, 머리를 굴렸다.

대표이사는 그런 한 전무를 초조하게 바라봤다.

‘아······ 혹시.’

한 전무는 지혁을 잘 알고 있다.

그가 휘두르는 칼이 얼마나 날카로운지 말이다.

상대를 안 하는 게 상책이다. 여지 자체를 만들지 말아야 한다.

“대표이사님.”

“네.”

“유남혁 상무 말입니다.”

한 전무는 한숨을 쉬고는 유 본부장 얘기를 꺼냈다.

“원복시키시죠.”

“네? 갑자기요?”

바로 어제, 대표이사는 상품본부장이던 유남혁 상무에게 인사발령을 냈다.

오혜진 사장의 의도대로 만 1년이 되자마자 본부장 자리에서 내린 것이다.

“하루 만에 인사발령을 뒤집어요? 언제는 바꿔야 한다면서요.”

오 사장의 지시라서, 한 전무 또한 내키지 않는 일을 한 거였는데, 차라리 잘 됐다 싶었다.

‘거부할 명분이 생겼어. 비서실장이 왔었다고 하면, 오 사장님도 이해하시겠지.’

대표이사는 난감한 얼굴로 말했다.

“직원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대표이사가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주요 직책자 자리를 발령 내고선 하루 만에 원복시키면······.”

“대표님, 체면이 중요합니까? 안위가 중요합니까?”

“······.”

“제가 비서실장을 잘 압니다. 보통 사람 아니에요. 대표님도 어느 정도는 짐작하실 텐데.”

대표이사의 금세 표정이 굳어졌고.

한 전무는 한숨을 쉬고 말했다.

“비바람은 피하는 게 신상에 좋아요.”

***

대표이사실.

저벅. 저벅.

검은 정장을 맞춰 입은 6명의 그룹 비서실 직원들이 들어오자, 위압감이 엄청났다.

그리고 그 뒤에 따라 들어오는 남자. 오지혁.

대표이사실의 직원들은 그를 보고 반가워했지만, 회의실에 모인 임원들은 불편한 표정이었다.

지혁은 그룹 비서실 직원들을 회의실 뒤쪽에 배석시킨 뒤, 테이블 중앙의 대표이사 바로 옆자리에 앉았고.

스크린 앞에 선 남자는 인사와 함께 바로 시작했다.

“안녕하십니까. 선도물산 전략실장입니다. 비서실장님 오랜만에 뵙게 되어 대단히 반갑습니다.”

전략실장의 인사에 지혁은 미소로 화답했다.

“지금부터 선도물산 경영보고 드리겠습니다.”

경영보고는 약 15분간 진행되었고.

보고 내내 지혁은 집중해서 들었다.

사회생활 초년생 시절부터 열정적으로 일했던 곳이다.

선도물산을 떠난 뒤, 어떻게 변화되었을지 매우 궁금했었다.

“이상 보고 마칩니다.”

“네, 잘 들었습니다. 흠······.”

지혁은 턱을 괴고 생각했고, 회의실에는 싸늘한 정적이 흘렀다.

모두 긴장된 얼굴로 지혁의 입만 바라봤다.

“대표님.”

“네, 비서실장님.”

“제가 뭐 경영을 알겠습니까마는······.”

“아유, 아닙니다. 편하게 말씀 주십시오. 저희가 알아서 새겨듣겠습니다.”

지혁은 전략실장에게 말했다.

“15페이지 다시 띄워줄래요.”

“네!”

15페이지는 금년도 계획에 대한 보고였다.

“지금까지 진행한 거야, 과거니까 어쩔 수 없지만.”

선도물산의 전년 실적이 좋지 않았다.

“저가 전략을 구사하는 건 신중하셔야 합니다. 신임 대표셔서 성과에 급한 마음이 드시는 건 이해하지만, 브랜딩은 한번 무너지면 다시 세우기 어렵습니다. 제가 상품 경험은 좀 있으니까, 그 관점에서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지혁은 선도물산 상품기획팀에서 팀장으로 있다가, 비서실로 발령받았었다.

“SPA브랜드가 아니라면 값싼 제품으로 고객들에게 인식되는 건, 정말 주의하셔야 합니다. 이건 선도물산 내에서 여러 차례 경험이 있던 일이에요.”

“······.”

대표이사는 탐탁지 않은 얼굴로 대답하지 않았고, 지혁은 한마디 더 했다.

“그래요, 대표님 생각이 옳을 수도 있어요. 어쨌든, 간단합니다. 책임지시면 되는 거예요. 전 우려의 뜻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흡!’

‘책임’이라는 단어에 대표이사는 정신이 퍼뜩 들었고, 정중하게 대답했다.

“주신 말씀 명심하겠습니다. 연간 전략에 대해 다시 살피도록 하겠습니다.”

선도물산 임원들은 대표이사의 이런 모습에 약간 눈살을 찌푸렸다.

‘아무리 비서실장이라지만, 너무 설설 기는 거 아니야?’

‘와······ 카리스마. 그룹 비서실장이면 원래 저런 거겠지?’

‘꼭, 오너와 경영자가 대화하는 것 같네. 아, 오너일가니까, 오너가 맞긴 하지.’

‘오지혁이······ 진짜 많이 컸다.’

다들 저마다의 생각에 빠져 있는데.

“상품본부장님 계십니까?”

지혁은 갑자기 상품본부장을 찾았다.

***

‘상품본부장’이라는 말에 임원들은 일제히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하루 만에 직책자가 바뀌었으니까.

꿀꺽.

대표이사는 침을 삼키며 생각했다.

‘한 전무 얘기 듣길 잘했네. 진짜 이것부터 확인하네.’

“네! 비서실장님.”

유남혁 이사.

한때 지혁의 직속 상사였던 그가 큰 소리로 대답했다.

“아직 그 자리에 계시네요?”

“네?”

유 본부장은 당황하여 생각했다.

‘뭐지? 왜 지금까지 버티고 있냐고 묻는 건가?’

유 본부장도 하루 만에 원래 직책으로 원복해서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네, 운 좋게도 아직 있습니다.”

유 본부장은 가볍게 대답했고.

“하하.”

지혁은 큰 소리로 웃었다.

“정말 운이라고 생각하세요?”

“······.”

유 본부장은 대꾸하지 않았고, 지혁은 다른 임원들과 비서실 직원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본부장님은 제가 선도물산에 근무할 때 직속 상사로 모셨었습니다. 친해서 이렇게 대화하는 거니까, 오해 없으셨으면 합니다. 오랜만에 보니 반가워서요.”

지혁은 해맑게 웃었고.

유 본부장도 살며시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하면서 티격태격 한 적이 있으나, 악감정은 없는 사이였다.

“잘 지내셨어요?”

‘성격이 변한 건가?’

한 전무는 지혁의 행동이 의아했다. 공적인 자리에서는 일 외에 다른 얘기 하는 걸 극도로 꺼렸던 걸로 기억한다. 시간 낭비라면서 말이다.

근데, 지금 지혁은 유 본부장에게 계속 사적인 대화를 시도하고 있었다. 선도물산 임원들과 그룹 비서실 직원들 모두 보는 앞에서 말이다.

“네, 그럭저럭 지냈습니다.”

“표정은 안 그래 보이시는데~”

모두가 의아해하는 가운데.

단 한 사람, 대표이사만이 이 대화를 초긴장 상태로 보고 있었다.

“새로 오신 대표님이 힘들게 하진 않으세요?”

“······.”

지혁은 웃으며 장난스럽게 말했지만, 듣는 사람은 장난이 아니었다.

‘빨리 회의가 끝났으면······.’

대표이사의 손에는 땀이 잔뜩 배어 있었다.

“네, 그런 거 없습니다. 잘해 주십니다.”

유 본부장은 어제 부당한 인사이동을 당했었으나, 어쨌든 하루 만에 원복했으니 그에 대해서는 마음에 두지 않으려 했다.

“흠······.”

지혁은 대표이사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그것참 다행이네요.”

꿀꺽.

대표이사의 목울대가 크게 움직였다.

지혁은 고개를 숙이고, 잠시 생각하다가.

“대표이사님?”

“네!”

그는 눈을 부릅뜨고 긴장해서 큰 소리로 대답했다.

“이만 마칠까요?”

“감사합니다!”

“······.”

대표이사는 말이 헛나왔다는 걸 인지하고, 재빨리 다시 말했다.

“아, 네! 알겠습니다.”

***

상품본부장실.

대표이사실에서 경영보고를 마친 뒤.

유 본부장은 자리로 돌아와 업무 중이었다.

똑. 똑.

[네.]

“본부장님~”

“엇!”

유 본부장은 지혁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깜짝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비서실장님!”

“하하. 앉으세요. 놀라셨어요?”

지혁은 미팅이 끝난 후 대표이사와 환담한 뒤, 바로 상품본부장실로 왔다.

“어쩐 일로.”

“선배님한테 인사드리러 온 거죠~ 같은 상품기획 출신 아닙니까.”

유 본부장은 빙그레 웃었다.

“앉으십시오. 차 한 잔 드릴까요?”

“네~ 부탁드립니다.”

상품본부장 실에는 지혁과 유 본부장 두 사람만 있었다.

지혁은 웃으며 말했다.

“둘밖에 없는데, 말씀 편하게 하셔도 됩니다. 본부장님한테 존대 들으니 어색하네요.”

“아유, 아닙니다. 어떻게, 감히.”

“왜요, 직급도 저보다 높으시잖아요.”

유 본부장은 피식 웃고는 말했다.

“그룹 비서실장님이시지 않습니까.”

“······.”

“직급이 중요한 게 아니죠. 전 이게 편해서 그러니까.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유 본부장이 정중하게 거절하니, 지혁도 더 권하지 않았다.

잠시 후.

유 본부장을 차를 건네며 말했다.

“드시죠.”

“네.”

유 본부장은 차를 마시며 생각했다.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는데. 사람이 변한 건가. 아니면 다른 생각이 있는 건가.’

지혁은 차를 마시다가.

찻잔을 입에서 떼고, 천천히 말했다.

“본부장님.”

“네, 실장님.”

“용건이 있어서 온 거고요.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릴게요.”

지혁은 유 본부장을 보며 생각했다.

‘선도물산에는 임원급이 필요해. 한 전무는 이미 오 사장 사람이고, 유 본부장은 아무 세력이 없는 사람이니까.’

“제 눈과 귀가 되어 주실래요?”

유 본부장의 눈이 커졌고.

지혁은 뚫어지게 그를 보았다.

오 부회장과 오 사장이 선도물산을 신경 쓰는 이유.

지혁 또한 잘 알고 있다.

선도물산은 선도그룹의 지주회사다.

‘선도물산을 장악하는 자, 그룹을 장악한다.’

어느 정도 자리가 잡혔으니, 지혁은 이제 서서히 저변을 넓혀야 한다고 생각했다.

“무슨 말인지 아시죠?”

유 본부장은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네, 비서실장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