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 또 다른 복직자
“아······ 옷 되게 불편하네.”
오진원은 1층 로비를 걸어가며 말했고, 지혁은 그 옆에서 웃고 있었다.
“곧 익숙해질 거예요. 저도 몸이 기억하더라고요.”
지혁 또한 ‘그 세계’에서 5년간 전투복만 입다가 정장을 다시 입었었다.
본인 경험담에 비추어 한 얘기였으나, 그 사실을 모르는 오진원은 피식 웃고는 대답했다.
“너랑은 달라. 몇 년 동안 운동복과 청바지 외에 다른 옷을 입어본 적이 없어. 한 걸음 움직일 때마다 숨 막히는 것 같네.”
“······.”
두 사람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
지혁은 이런 게 어색하지 않았으나······.
‘오늘은 좀 다른데?’
평소보다 시선을 더 집중 받는 기분이었다.
오진원 또한 잘 주목받는 사람이었기에 많이 어색하진 않았지만.
“왜 이렇게 쳐다보지? 내 얼굴 기억하는 사람들 몇 명 없을 텐데.”
“일단 빨리 올라가시죠.”
평소보다 과한 사람들 시선에, 지혁도 좀 부담이 느껴져서, 게이트를 향해 걸음을 빨리했다.
미래기획실과 비서실이 있는 27층.
지혁과 오진원이 나타나자······.
말 그대로 난리가 났다.
-뭐, 뭐지?!
-오 상무님? 진짜?!
-오 상무님! 어서 오십시오!
-와~ 여전하셔.
-전보다 얼굴이 더 밝아지신 거 같은데?
-오 상무님과 비서실장님. 두 분 같이 계시니까, 분위기 장난 아니다.
오진원은 회사를 나가기 전까지 미래기획실의 경영진단팀장으로 있었다.
그와 함께 일한 직원들은 그를 기억할 수밖에 없었다.
오진원은 직원들을 지나쳐가며, 얼떨떨한 표정으로 인사를 나눴다.
“아이고. 그래요. 기억해줘서 고맙긴 한데······.”
-돌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다리고 있었어요.
-상무님, 오시니까. 너무 좋아요!
고마우면서도 미안한 기분이었다.
직원들이 이 정도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줄은 생각 못 했었다.
소란스러운 분위기에 뭔가 싶어서, 최 부회장은 집무실 밖으로 나와 있었고.
“아니······ 뭐야?!”
최 부회장은 오진원이 회사에 있는 모습이 믿기지 않아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하. 부회장님도 마중 나오셨네요.”
지혁이 웃으며 말했지만, 최 부회장은 황당한 얼굴로 물었다.
“어떻게 된 거야? 말도 없이.”
지혁은 오진원에게 물었다.
“말 안 했어요?”
“너 얘기 안 했냐?”
두 사람의 공통점이었다. 자잘한 부분은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
회사에 복귀하는 게 중요했지, 사전에 알리는 건 부차적인 일이었다. 어차피 오면 알게 되니까.
“그렇게도 회사에 복귀 요청을 드렸었는데, 이렇게 보게 되네······.”
최 부회장은 허탈해서 중얼거렸다.
오진원이 말했다.
“부회장님 얼굴 봤으니, 전 이만 가볼게요.”
“어디 가시게요.”
“가장 큰 어르신께 인사드리러 가야죠.”
최 부회장은 눈을 부릅떴다.
“설마······ 회장님 뵈러 가려고요?”
“왜요. 안 계세요? 지혁이한테는 계신다는 얘기 들었는데.”
최 부회장은 눈을 끔뻑거리며 생각했다.
‘이렇게 바로 회장님을 만나러 간다고?’
오진원은 겉보기엔 부드럽지만, 강단이 있는 사람이었다.
결정한 일에 대해선 주저함이 없었다.
“많이 놀라실 텐데. 얘기하고 온 건 아니겠죠?”
지혁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들이 아빠 만나러 오는데, 꼭 얘기해야 하나요.”
최 부회장은 그런 지혁을 바라봤다.
‘두 사람······ 성향은 반대지만, 행동하는 건 은근히 비슷해.’
오진원은 발걸음을 돌리며 말했다.
“우선 인사부터 드리고, 다시 올게요.”
“아······ 네.”
***
“회장님, 올해 새로운 프로모션으로 신규 회원 모집에 박차를 가하여, 전년 대비 매출 증가가 예상되며······.”
[어머!]
[이게 누구셔~]
[잘못 본 거 아니죠?]
오 회장은 선도카드 대표이사와 미팅 중이었는데, 밖이 자꾸 소란스러워서 신경이 쓰이고 있었다.
‘무슨 일이지?’
선도카드 대표 또한 신경 쓰였으나, 애써 무시하고 보고를 이어갔다.
“따라서 선도카드에서는 올해 예상 매출액을······.”
오 회장은 대표이사의 보고가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회장실 부근이 소란스러운 건 잘 없는 일이라, 계속 신경이 쓰였다.
리셉션에 호출해볼까 고민하던 찰나에.
삑-
호출 벨이 울렸다.
“잠시만요.”
오 회장은 선도카드 대표에게 양해를 구하고, 버튼을 눌렀다.
“무슨 일인가?”
탁자 위의 스피커로 목소리가 울렸다.
[회장님. 생각지 못한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빨리 알려드려야 할 것 같아서······.]
“누군데 그래?”
[오진원 상무님 오셨습니다.]
“오······ 뭐라고?”
오 회장은 잘못 들었나 싶어서 되물었고.
선도카드 대표도 눈이 커졌다.
임원급 중에 오진원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오진원 상무님이요······.]
오 회장의 손이 덜덜 떨렸다.
“알았어. 잠깐만 기다리라고 해.”
스피커 버튼을 끈 뒤.
“대표님, 어서 진행하시죠. 좀 빠르게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대표이사는 민망한 얼굴로 말했다.
“회장님, 중요한 부분은 거의 끝났습니다. 여기서 마쳐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될까요?”
“네.”
“미안해요.”
선도카드 대표는 오 회장에게 인사 후 나가면서, 바로 핸드폰을 켰다.
‘통화. 오진양 부회장.’
잠시 후.
지혁이 들어왔고.
“비서실장······.”
오진원이 왔다고 들었는데, 지혁이 등장하니 오 회장은 뭔가 싶었다.
“실력이 검증된 인사를 등용했으면 해서, 모시고 왔습니다.”
“뭐?”
지혁의 소개와 함께 오진원이 나타났다.
오 회장과 오진원.
마주 선 두 남자.
어색한 정적 속에 오진원이 입이 천천히 열렸다.
“회장······.”
그는 입을 다물고, 다시 말했다.
“아버지.”
오 회장은 굳은 표정으로 오진원을 바라봤다. 하지만, 눈은 살짝 충혈되어 있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동안 건강하셨어요?”
“······.”
오 회장은 대꾸하지 않고, 복잡한 눈빛으로 오진원을 바라만 봤다.
갑자기 나타난 셋째 아들. 오 회장은 궁금한 게 많았지만, 우선은······.
“비서실장.”
“네.”
“자리 좀 피해주게.”
지혁은 오진원이 오게 된 경위를 설명하고, 혹시 모를 돌발상황을 대비하여 옆에 있으려 했다.
“우선, 제가 설명을 좀 드리고.”
“아니, 설명은 진원이한테 들을 테니까, 이만 나가 봐.”
피는 물보다 진했다.
아무리 지혁이 오 회장에게 신임을 얻고 있어도, 몇 년 만에 만난 부자 사이에 낄 수는 없었다.
지혁은 이렇게 또 한 번 벽을 느꼈다.
‘이런 거구나.’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대화 나누십시오.”
오진원은 괜찮다며, 지혁에게 눈을 찡긋해주었다.
***
지혁이 나간 뒤.
오 회장은 여전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해, 넋을 잃고 오진원을 보기만 했다.
그의 유능함과 타고난 매력도 알고 있지만.
자신의 트라우마 때문에, 애써 깎아내리려 했던 아들.
첫째보다 부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아비로서 오진원에게 몹쓸 짓을 많이 했었다.
지금 그를 보면서, 가슴 벅차게 반가우면서도, 아팠다.
오진원은 오 회장에게 가장 아픈 손가락이며, 자식 중에 가장 신경 쓰이는 사람이었다.
“저 계속 서 있게 두실 거예요?”
“앉아라.”
“네.”
환한 얼굴에 구김살 없는 태도.
예전과 다름없지만, 오랜만에 만난 아들의 얼굴에서 느껴지는 세월의 흔적은 어쩔 수 없었다.
마흔이 넘은 아들.
기억에 없던 주름을 보는 게 마음이 편치 않았다.
“세월이 꽤 지났구나.”
“아버지, 건강하신 거죠?”
“너는? 밥은 잘 먹고 다녔냐?”
“네~ 보시다시피요.”
어떻게 지냈는지 안부도 궁금했지만.
전혀 소식 없던 사람이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나타났는지, 오 회장은 그게 가장 궁금했다.
“근데, 어쩐 일이냐?”
오 회장이 짧은 말로 함축적으로 물었고.
오진원은 웃으며 대답했다.
“다시 일하고 싶어지면 오라고 하셨잖아요.”
“······.”
오진원은 회사에서 쫓겨난 게 아니라, 제 발로 나갔었다.
오 회장은 그가 회사에 남아서 오 부회장을 돕길 바랐다.
확실한 인재이며, 직원들의 존경을 받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럼, 이제 생각이 달라진 거냐?”
오진원은 자신이 회사에 남는 게 오 부회장에게 짐이 될 거로 생각했고.
어릴 적부터 쌓아온 서러움이 폭발한 것도 있었다.
회장 자리에 욕심이 있는 건 아니지만, 모두가 자신을 원하는데도, 무조건 아니라고만 하는 아버지에 대한 서운함.
“일하고 싶어졌어요.”
생각이 달라졌다고 대답하지는 않았다.
오 회장의 바람대로 오 부회장을 돕기 위해 온 건 아니니까.
20만 명의 직원들을 생각해야 한다는 지혁의 우려를 확인하고 싶었고.
“그래? 왜? 갑자기?”
“지혁이 때문에요.”
지혁이란 남자가 회사생활을 어떻게 하는지 직접 눈으로 보고 싶기도 했다.
***
“지혁?”
“네. 회사니까, 비서실장이라고 해야 할까요.”
오진원은 웃으며 말했지만, 오 회장은 웃지 않았다.
“자세히 말해봐라. 좀 혼란스럽구나.”
오진원은 지혁이 최 부회장과 함께 자신을 찾아왔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
오혜빈과 통화하다가 새로운 친척 동생이 생겼다는 얘기를 들었고, 그에 대한 소식을 알아보다가 호기심이 생겼다는 듯 얘기했다.
“그 녀석 일하는 게 대단한 거 같더라고요. 몇 가지 얘기도 들었거든요.”
“······.”
“제가 사람을 좀 좋아하지 않습니까? 자연스럽게 호기심이 생겼어요.”
당위성을 만들기 위해 둘러댄 말이었으나, 진심이기도 했다.
“호기심? 겨우 그것 때문에?”
오진원은 웃으며 말했다.
“아버지는 어떠셨어요? 지혁이가 일하는 거 보면 좀 신기하지 않아요? 전 얘기만 들어도 피가 끓는 거 같던데.”
“······.”
“호기심도 있지만, 의미를 찾은 것도 있죠.”
오진원은 그간 봉사활동을 하며 살았던 얘기를 했다.
“그 봉사활동 또한 의미 있는 일이었지만, 다른 일을 통해 제 본심을 달래려 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
“한창 회사생활 할 때, 비즈니스에 매력을 느끼고 순수하게 일을 즐기면서 했던 그 때가······. 지혁이를 보며 그 시절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오 회장은 그의 말이 진심인지 확인하기 위해 눈을 유심히 보고 있었다.
“미래기획실 경영진단팀장으로 있으면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짜증 날 때도 있었지만.”
오진원은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더 많은 성취감을 느꼈었거든요. 아직 저에게는 그게 진짜 세계라는 생각이 든 거예요.”
자신을 찾기 위해 돌아왔다는 것.
오 회장은 어렴풋이 이해했다.
“그 생각이 떠오른 계기가 지혁이라는 말이지?”
“네.”
오 회장은 생각에 잠겼고.
오진원은 그 모습을 유심히 보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안 받아주실 거예요?”
“그런 게 어딨냐. 이 회사는 네 집인데.”
오진원은 싱긋 웃었고.
오 회장이 물었다.
“원하는 자리가 있냐?”
“미래기획실에서 근무하고 싶어요.”
지혁과 그룹을 관찰할 수 있는 자리로 가고 싶었다. 그리고 정해진 과업보다는 프로젝트와 같은 단편적인 일을 해나가는 게 본인 성향에 맞았다.
“어쩌냐? 자리가 없는데. 너 왔다고 갑자기 경영진단팀장을 다른 데 보낼 수도 없는 거고.”
오진원은 웃으며 말했다.
“한 자리 비어 있다고 하던데요?”
오 회장은 눈을 크게 뜨고 생각하다가, 오진원을 째려보며 말했다.
“몇 년 만에 돌아와서는 승진부터 시켜달라는 거냐?”
오진원은 웃으며 말했다.
“잘할 테니까, 힘 좀 실어주세요.”
그리고 지혁을 떠올리고는 한마디 더 했다.
“지혁이도요. 한 거에 비해서, 지금 직급은 너무 짜던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