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사원이 능력을 숨김-157화 (157/301)

157. 쌍두마차 (1)

“진원아······.”

오 부회장이 나직한 목소리로 오진원을 불렀지만.

그는 오 부회장과 오혜진 사장에게 나가달라고 말한 뒤.

두 사람은 없다는 듯 행동하고 있었다.

“지혁아, 이것 좀 봐봐.”

지혁은 오진원을 보며 생각했다.

‘은근히 단호한 면이 있네.’

상대가 오 부회장이어도, 오진원은 매몰차게 행동했다.

오 부회장은 멈칫하다가.

“에이······.”

집무실을 나가버렸고.

오 사장 역시 머뭇거리다가, 한마디 하고 나갔다.

“진원아, 급한 일 끝나면 연락 좀 해.”

오진원은 대꾸하지 않았고, 오 사장도 밖으로 나갔다.

“······.”

집무실에 둘만 남게 되자, 지혁이 물었다.

“이렇게 해도 괜찮아요?”

“뭐가?”

“저분들 은근히 뒤끝 있던데?”

오진원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대답했다.

“어쩔 수 없지. 난 지금 방해받기 싫으니까.”

“······.”

“어쨌든 빨리 보고서 좀 봐봐.”

사람에 대한 공감 능력이 많아 보였는데, 이럴 때는 또 칼 같았다.

“선도증권이 내 담당이거든? 오늘 경영 보고 받기로 했어. 경영진단 측면도 있고, 연간 계획을 세울 때는 미래기획실 의견을 들어야 하거든.”

“······.”

“회장님 의사결정이 필요한 사안에 대해서도 실질적으로 실차장이 결정하는 거야. 미래기획실에서 보고한 건에 대해서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재가만 하시니까.”

지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래서 선도그룹에서 미래기획실 파워가 센 거겠지.’

“더욱이 오늘 경영보고는 선도증권 대표이사 연임 건과도 관련이 있어. 전년도 실적이 좋아서 연임시키자는 의견이 지배적이지만, 그래도 한번 봐야지.”

대표이사 연임 건이면, 실차장이 신경 쓸만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그 얘기를 왜 저한테 하세요?”

얘기를 듣던 내내 궁금했었다.

처음엔 오랜만에 회사에 왔으니, 시스템적인 부분에 관해 물어보려 한다고 생각했었으나.

점점 얘기를 들어 보니, 이건 상의하는 거였다.

“너도 같이 가자고.”

“······.”

지혁은 황당해서 실차장을 바라봤다.

“거길 제가 왜 가요?”

“같이 좀 가주면 안 되겠냐?”

“네?”

“형 복귀해서, 처음 받는 관계사 경영보고인데. 네가 옆에서 코칭 좀 해줘.”

지혁은 어이가 없어서 말했다.

“코칭을 왜 제가 해요? 아래 유능한 팀장들 많으시면서. 그분들이 진짜 전문가들 아니에요?”

오진원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지금 내가 필요한 건 전문가가 아니라, 통찰력 있는 의사결정자야.”

“······.”

“의사결정 하는 데 도움을 줬으면 하는 거야. 지금 가는 자리는 팀장들은 큰 도움 안 돼.”

오진원은 웃으며 말했다.

“실적도 좋겠다. 연임하고 싶어서 얼마나 날 구워삶겠어? 준비도 많이 했을 거고.”

“······.”

“형이 귀가 좀 얇거든. 아직 분위기 파악이 안 된 것도 있고. 지금은 딱 너 같은 사람이 필요해.”

지혁은 생각했다.

‘나를 본 지 얼마나 됐다고 저런 소리를 하는 거지.’

근데, 희한하게도 오진원의 부탁에는 거절하기 힘든 무언가가 있었다.

“같이 가자. 응?”

오진원은 지혁의 팔짱을 끼며 말했고.

지혁은 어이가 없어서, 웃고 말았다.

***

그날 오후.

선도증권 회의실.

“어서 오십시오. 실차장님!”

“하하. 안녕하세요.”

대표이사는 일어서서 깍듯이 오진원을 맞이했다.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여전하시네요.”

오진원도 웃으며 화답했다.

“회사를 떠나 있던 게 오래돼서 회의 자리가 어색합니다. 잘 부탁드릴게요.”

“네, 염려 마십시오.”

사람 좋은 오진원이 왔다는 것에, 대표이사는 안도감을 갖고 있다가.

“어?”

못 볼 것 봤다는 듯, 뒤따라 들어오는 한 남자의 얼굴에 시선이 박혔다.

“그래도 봤으면 아는 척 좀 해주시죠. ‘어?’가 뭡니까?”

지혁이 웃으며 말하자.

대표이사는 황급히 90도 각도로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아, 안녕하십니까!”

“네~ 안녕하십니까. 간담회 때 뵙고 처음인 거 같네요.”

지혁은 가볍게 인사했지만.

대표이사는 긴장감으로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비서실장이 여기 왜 온 거야? 회의 참석자에 없었는데.’

오진원은 대표이사의 굳어진 표정과 지혁의 평온한 얼굴을 번갈아 보다가 말했다.

“아······ 대표님. 미리 말씀을 못 드렸네요. 제가 비서실장님께 함께 오자고 한 건데. 도움이 되실 것 같아서요.”

“아, 아닙니다! 잘 오셨습니다. 비서실장님! 많은 가르침 부탁드리겠습니다!”

오진원은 지혁의 등장과 동시에 선도증권의 대표이사와 임원들의 긴장된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얘는 그동안 뭘 어떻게 해왔길래.’

지혁이 존재만으로 분위기를 휘어잡는 게 신기하기도 했고.

그의 본모습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들었다.

모두 자리에 앉은 뒤, 대표이사가 말했다.

“그럼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오진원은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손을 뻗으며 말했다.

“네~ 하시죠.”

대표이사가 직접 발표했다.

“선도증권 경영보고 드리겠습니다. 우리 회사는 역대 최대 실적을 달성했습니다. 매출액은 12조 78억 원으로 전년 7조 6,000억보다 약 60% 증가했으며······.”

알고 있던 대로 선도증권의 실적은 놀라웠다.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도 30% 정도 크게 올랐습니다. 선도증권은 신규사업보다는 기존의 주력 사업을 발전시켜서······.”

선도증권이 해 온 일들을 얘기 중이었는데, 즉 자신의 경영 능력을 어필하는 거였다.

이번 경영보고가 연임과 관계있다는 걸 알기에, 대표이사는 부끄러움도 무릅쓰고 자화자찬을 이어갔다.

실제로도 워낙 실적이 좋았고, 없는 얘기 하는 건 아니었다.

“또한, ‘동학개미’로 불리는 개인투자자가 대거 유입된 이유도 적지 않았고······.”

모두가 알고 있는 진짜 이유는 보고 말미에 살짝 언급했다. 그래도 완전히 생략한 건 아니니, 양심은 있는 거였다.

약 30분 뒤.

“이상 보고 마칩니다.”

짝짝짝.

큰 박수가 이어졌다.

기분 좋은 내용뿐이었으므로, 박수 소리가 클 수밖에 없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선도증권이 큰 성과를 냈군요.”

오진원이 웃으며 말했고.

대표이사는 고개를 숙이며 화답했다.

“감사합니다. 모두 미래기획실 이하 많은 분이 가르침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오진원은 웃으며 말했다.

“경영보고 중에 수치가 하나 안 좋은 게 있던데요.”

“······.”

“영업이익률은 왜 안 높아졌을까요? 그 부분은 하락 폭이 크던데.”

대표이사는 잠시 생각하다가.

원론적인 얘기로 대답했다.

“영업활동의 수익성 때문인 것 같습니다.”

“······.”

오진원은 대답 없이 뚫어지게 대표이사를 보았고.

제 발 저린 나머지, 대표이사가 다시 말했다.

“순수한 영업활동으로 인한 이익 증가보다는 외부적인 요인이 커서 그런 것 같습니다.”

‘어쨌든 잘한 건 잘한 거니까.’

본인들도 이유를 파악하고 있는 것 같고, 결과가 좋았기에, 오진원은 찬물 끼얹지 않고 넘어가려 했다.

“그런 것 같은 게 뭡니까?”

잠자코 있던 지혁이 나섰다.

“그런 거면 그런 거지. 왜 말을 모호하게 하나요? 뭐 켕기는 거 있습니까?”

***

대표이사는 당황하여 대답하지 못했다.

선도그룹의 명사수.

경영자와 임원 전문 저격수.

지혁이 나서서 말하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렸다.

“어? 왜 대답을 못 하시지? 이상해 보이는데요?”

“아, 아닙니다! 켕기는 거 없습니다!”

“이번엔, 켕기는 거 ‘없는 것 같습니다’가 아니라 ‘없습니다.’네요.”

“······.”

지혁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그룹 미래기획실 실차장님 앞인데, 보고하실 때 맺음말은 확실히 해주셨으면 좋겠고요.”

“네, 주의하겠습니다.”

대표이사는 이렇게 넘어가나 싶었는데, 천만의 말씀이었다.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우리나라 증권사 중에서 선도증권만 매출, 영업이익이 상승했습니까?”

“······.”

“다른 증권사는 저조한데, 선도증권만 좋았는지 물었습니다.”

대표이사는 우물쭈물하다가.

‘말 돌리지 말자, 큰일 난다.’

좀 전의 상황을 떠올리고 말했다.

“다른 증권사들도 실적이 좋은 것 같습······ 아, 아니. 좋습니다.”

“그럼 선도증권의 타 증권사에 비해 잘한 건 없는 건가요?”

“······.”

‘우리가 잘하긴 했는데.’

대표이사는 어떤 화살이 쏟아질지 몰라서, 섣불리 입을 열지 못했다.

“얘기하세요. 할 말은 하셔야죠. 있는 그대로 얘기하시면 됩니다.”

대표이사는 입술을 깨물고 말했다.

“‘동학개미’ 사회 분위기도 있었고요. 부동산 상승으로 인해 증권으로 재테크 몰림 현상 등 외부적인 요인이 분명 많았습니다.”

“······.”

“대부분의 증권사가 그 수혜를 입은 건 사실이지만, 우리 선도증권은 타 증권사에 비해 매출액과 영업이익에서 더 큰 폭의 성장을 이룩했습니다. 우리가 이룬 성과는 단순히 외부적인 영향만은 아닙니다. 경영자들과 직원들의 노고가 분명히 있었습니다.”

지혁은 가만히 대표이사의 눈을 바라보았고.

대표이사는 속으로 조마조마했다.

‘젠장, 또 무슨 소리를 하려나.’

지금은 지혁이 저승사자보다 더 무서웠다.

“실차장님.”

지혁은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던 오진원을 불렀다.

“어, 얘기해.”

“제 개인적인 의견입니다만.”

“그래.”

“대표님 연임시키셔도 될 것 같습니다.”

***

“음······ 어?!”

오진원은 놀라서 반문하고 말았다.

‘아니, 이 공개적인 자리에서 갑자기······.’

대표이사는 황당함에 눈을 끔뻑거렸다.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고 계시네요. 잘되는 집이 가장 우려해야 할 점은 ‘안주’라고 생각합니다.”

“······.”

“압도적인 격차라며 안주하고, 위기의식을 잃어버린 순간. 적은 어느새 다가와 목을 겨누고 있습니다.”

그의 비유가 범상치 않았다.

말하는 내용도 그렇고, 그의 표정까지.

“잘 나가다가 그런 식으로 허망하게 골로 가는 강자들 많이 봐 왔어요.”

오진원은 황당했다.

‘얘는 뭔 말을 이렇게 하지?’

그런데 귀에는 쏙쏙 들어왔다.

“위기의식은 생존을 위한 선택입니다.”

지혁은 선도증권 대표이사와 임원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건 우리 선도그룹의 문제점이기도 한데, 말 나온 김에 한 말씀 더 드리겠습니다.”

“······.”

“현장을 다니다 보면, 우리 회사를 위기라고 보는 분들은 없더군요.”

회의실에 있는 사람들은 생각했다.

‘당연한 소리 아니야?’

‘무슨 위기야.’

‘그 어느 때보다 실적이 좋은데.’

‘회사가 잘 나갈 때는 즐기면 좋잖아.’

지혁이 말했다.

“지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생각하는 분들 많을 거예요.”

“······.”

“그래서 전 위기라고 생각합니다. 위기는 잘 나갈 때 찾아오고, 차츰 잠식해 가거든요.”

지혁은 대표이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실적이 좋은데, 미래에 대해 준비도 하고 계시는지 생각해보세요.”

“······.”

“대표님은 무슨 말인지 이해하실 것 같아서 말씀드립니다. 단기적인 성과. 절대 안 됩니다.”

대표이사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명심해 주십시오. 단기 성과는 모래성입니다. 때가 되어, 물 들어오면 다 무너지는 겁니다.”

분위기에 휩쓸려가기보다는 할 말을 하는 사람.

쓴소리라도 진심이 느껴지기에 수긍하며 듣게 된다.

오진원은 지혁의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이런 사람이 리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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