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 위험한 남자
추 이사 또한 나가려다가 문 앞에 서 있는 오진원을 보고 멈춰버렸다.
“이사님 여기서 뵙네요. 선도전자로 발령 나셨다면서요?”
해맑게 웃으며 말하는 오진원을 향해, 추 이사는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네, 오늘 발령 났습니다.”
“회장실에서 지원팀장, 의전팀장 모두 경험하셨으니, 저희 형님 모시는 데 문제없겠네요. 나중에도요.”
“······.”
회장직을 암시하는 듯한 뼈 있는 말에, 오 부회장의 표정이 굳었고.
추 이사는 임원들 다 모이게 하라는 지시를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했다.
“부회장님, 회의는······.”
오 부회장은 고개를 저으며 얘기했다.
“회의는 나중에 합시다. 손님 왔으니까.”
“네.”
추 이사는 고개를 숙인 후 부회장실을 나갔다.
덜컹!
추 이사가 나간 뒤.
오 부회장실에는 정적이 흘렀다.
오진원이 돌아온 이후, 두 사람만의 시간을 갖는 건 처음이었다.
“어쩐 일이냐?”
오 부회장은 경계하는 눈빛으로 물었고.
오진원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냥 차 한잔하려고 왔어요.”
“갑자기? 여기 화성까지?”
선도전자 부회장실은 경기도 화성 선도캠퍼스 안에 있다.
“하하. 차 한잔하러 멀리도 왔죠? 형님 집무실이 가까이 있으면 좋을 텐데.”
“······ 일단 앉아라.”
“네.”
잠시 후, 여비서가 차를 내왔고.
두 사람은 소파에 마주 앉아 찻잔을 들었다.
“너 바쁘게 지내더라?”
“······.”
“원래 안 그랬잖아?”
예전의 오진원은 지금처럼 열정적으로 일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설렁설렁 일하며, 간혹 천재적인 모습을 보이는 사람이었는데.
오진원은 복직한 뒤, 각 계열사를 휘젓고 다니며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었다.
“오래 쉬고 왔는데, 달려야죠.”
“혹시 욕심이 생긴 건 아니고?”
피식.
오진원은 이 말에 웃었다.
오 부회장은 관심사는 항상 한결같았고. 그걸 숨기지 않았다.
“욕심이라······.”
오진원은 오 부회장의 말을 되씹고는 웃으며 말했다.
“글쎄요. 그건 뭐, 두고 보면 알겠죠.”
“뭔 말을 그렇게 하냐?”
오진원은 미소만 지을 뿐 그에 대해선 더 대꾸하진 않았다.
“저 회사 복직한 지 3개월 정도 되었는데.”
“그래, 그동안 형이랑 시간 한번 안 갖고 말이야.”
오 부회장은 계속 오진원이 자기 아래로 들어오길 원하고 있었다.
‘위협을 없앨 수 없다면, 품고 가는 게 낫지.’
오진원이 말했다.
“3개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잖아요.”
“······.”
“몇 가지 궁금한 게 생겼거든요. 궁금증을 풀고 싶기도 하고, 형님 얼굴도 볼 겸 해서 온 거죠.”
“그래?”
일단, 자신과 대화하기 위해서 왔다는 것 자체가 긍정적인 신호로 여겨졌다.
오 부회장은 꼬았던 다리를 풀고.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뭐든 얘기해 봐라.”
오진원은 망설이지 않고, 바로 말했다.
“형에게 회사란 뭐예요?”
***
“뭐?”
오 부회장은 황당한 얼굴로 오진원을 바라봤다.
‘갑자기 뭔 뚱딴지같은 소리야?’
오진원은 오 부회장을 보며 대답을 기다렸고.
오 부회장은 황당한 얼굴로 물었다.
“궁금했던 게 그거야?”
“네.”
“아니, 이게 무슨······.”
오진원이 어렸을 적부터 좀 엉뚱한 면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사람 쉽게 변하지 않는다더니······.’
오 부회장이 실소를 머금자.
“형님, 잘 대답해 주셔야 해요. 중요한 질문이에요.”
오진원의 표정은 진지했다.
오 부회장은 웃으며 넘기려다가.
잠시 생각하고는 말했다.
“회사가 뭐긴 뭐냐. 이윤을 추구하는 집단이지.”
“······.”
“그리고 내겐 집이나 마찬가지기도 하고. 사실 우리의 집 아니냐.”
특별할 게 없는 대답이었다.
오진원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었다.
“그럼 직원은 형님에게 뭐예요?”
“······.”
이쯤 되니, 오 부회장은 이상함을 느꼈다.
‘면접 보는 것도 아니고, 뭐 하자는 거야.’
“너 지금 뭐 하는 거냐?”
“대답해 주세요.”
오 부회장은 이런 질문을 듣는 것 자체가 약간 불쾌하게 느껴졌다.
피식 웃고는 오진원에게 쏘듯이 말했다.
“직원? 몰라서 물어? 우리 집에서 일하는 사람이지 뭐야.”
“······.”
“일 해주고 돈 받는 사람이지. 아니야?”
오진원의 표정이 약간 굳어졌다.
“그럼, 우리가 고마워해야 할 사람인가요?”
“뭔 말도 안 되는 소리야. 그들이 고마워해야지.”
“······.”
“우리 집 때문에 먹고 사는 사람들 아니냐? 무슨 그런 뻔한 질문을 하고 그래. 아주 원초적인걸.”
다른 사람이었다면 이렇게 대답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너로서의 모범답안은 아니니까. 오 부회장은 친동생이란 앞이라 편하게 말한 거였고, 그의 본심이기도 했다.
“월급 타가는 사람들이니 고마워해야 한다······.”
“쓸 사람은 많잖아. 입사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천지에 널렸는데.”
“정말······ 명쾌하시네요.”
오진원은 어이가 없었다.
‘유능한 인재들이 우리 회사에서 일해 준다는 건, 고마워해야 하는 거 아닌가?’
오 부회장을 보며, 어떻게 그런 생각을 가질 수 있는지 신기하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했다.
하지만 반박하지는 않았다.
오늘은 오 부회장의 얘기를 들으러 온 것이기에.
지혁이 오 부회장에 대해 우려하는 걸,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미래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미래? 우리 회사?”
“네.”
“우선 있는 걸 잘 지켜야겠지.”
“······.”
“우리 회사의 강점인 반도체, 핸드폰 사업을 잘 지켜나가야지. 현상 유지.”
오 부회장은 눈을 빛내며 말했다.
“형은 우주산업을 보고 있어. 선대 회장님이 하신 것처럼, 선도그룹의 새로운 미래 먹거리를 고민하고 있단 말이야. 이미 우주는 새로운 비즈니스 영역이 되었고, 내가 회장이 되면 그 분야에 역량을 집중시킬 생각이야.”
“우주산업이요? 우리 회사는 그쪽 분야는 지금까지 전혀······.”
“왜 방산 사업하고 있잖아. 기술력이 전혀 없진 않아. 그리고 역량을 집중해서 안 될 게 뭐가 있겠니? 우리 그룹이 어떤 회사인데.”
“······.”
“뭐, 핸드폰은 우리가 처음부터 하고 있던 거였나?”
“반도체를 하고 있었잖아요.”
오 부회장은 오진원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형한테 다 계획이 있어.”
“······.”
“넌 아무 걱정하지 말고 따라오기만 하면 돼.”
이때, 오진원은 오 부회장을 눈빛을 마주했는데.
눈 속에 욕망과 자신감이 이글거리며, 똘끼마저 느껴졌다.
이후, 오 부회장은 ‘미래’에 대한 본인의 ‘이상’을 술술 얘기했고.
‘위험해 보인다.’
정확히 뭐라고 찝기는 어렵지만, 깊은 대화를 나눌수록 위험해 보인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지혁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오지혁? 그 자식은 왜?”
오 부회장은 지혁의 이름이 나오자, 말이 험하게 나왔다.
안 그래도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추 이사를 그룹 비서실에서 내보낸 것 때문에, 지금 한창 감정이 안 좋은 상태였다.
“일 잘하잖아요. 좀 거칠어서 그렇지, 생각도 올바른 것 같고요.”
“걔는······.”
오 부회장은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아버지가 계실 때까지 만이야.”
“······.”
“내쫓아야지.”
“······.”
“딱 보면 모르냐? 강도 같은 놈이라고. 진원아, 너도 조심해라. 가만히 있다가 걔한테 다 뺏긴다.”
오진원은 오 부회장과 지혁 두 사람 모두 이해가 안 되었다.
‘왜 이렇게 서로 적의를 가지고 있을까.’
지혁은 나름의 이유가 있었지만.
오 부회장은 그냥 지혁을 싫어했다.
“그렇군요······.”
오진원은 얘기를 들으러 온 자리니까, 반박하지 않았다.
‘참······ 생각이 많아지네.’
오 부회장이 물었다.
“질문 다 끝났냐?”
“뭐······ 대충이요.”
“그래, 그럼 나가자. 오랜만에 형제끼리 식사나 하자. 술도 한잔하고.”
오진원은 미소 짓고는 대답했다.
“네, 그러시죠.”
***
금요일 저녁.
지혁은 완벽히 방전돼버려서 소파에 누워 TV만 보고 있었다.
“자기야~ 우리 한강에 가서 치맥 하자~ 불금이잖아.”
수아가 옆에서 재잘거렸다.
“나 피곤해······.”
항상 정력이 왕성한 지혁도 요즘엔 피곤했다.
오 회장 수발에 더하여 오진원까지.
오진원이 여기저기 달고 다니는 탓에 여유가 없었고, 피곤이 쌓여 있었다.
“잠깐 나갔다 오자~ 한강 바로 앞이잖아. 길만 건너면 한강공원인데.”
한강 뷰 아파트에 살고 있으니, 한강공원은 가까웠다.
“거실 창에서 한강 보이잖아. 그냥 집에서 먹자.”
수아의 입이 나온 걸 보고. 지혁이 달래듯 다시 말했다.
“오늘은 쉬고, 내일 나가자. 내일 토요일이니까, 오후부터 일찍 나가면 되지.”
“······.”
“서방님 요즘 돈 버느라 힘들어.”
수아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돈 잘 버니까. 봐준다.”
“하하. 그래.”
지혁은 안도의 한숨을 쉬고,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며 누워서 TV를 보고 있었는데.
[안녕하세요. 스포츠 뉴스입니다. 요즘 이종격투기 참 인기 많죠? 국내 선수들도 활약 중인, 세계 최대 이종격투기 단체 UFG에서 오픈핑거 글러브를 없앤다는 방침입니다.]
수아는 옆에서 사과를 먹으며 중얼거렸다.
“미쳤나 봐. 글러브도 안 끼고 이종격투기를 한다고? 안 그래도 살벌한데······.”
“잠깐만, 조용히 해봐.”
누워있던 지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정색하고 TV에 집중했다.
수아는 지혁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보여서, 사과 씹는 소리도 줄였다.
[이미 몇몇 소규모 격투기 단체에서는 글러브를 벗고 맨손 격투하는 방식을 채택했는데요. 자극적인 격투에 점점 시청자를 빼앗기자, UFG에서도 전격적으로 글러브를 없애기로 했습니다.]
지혁의 몸이 떨리고 있었다.
‘뭐였더라. 이거 들었던 것 같은데······.’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이 현상은 ‘그 세계’와 관련된 거라는 건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헉- 헉-
또 과호흡의 일어났고, 가슴이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우려의 목소리 또한 큽니다만, UFG 의지는 확고합니다. 관계자 인터뷰 내용 보시겠습니다.]
헉- 헉-
가뿐 호흡 소리를 들은 수아는 놀라서 소리쳤다.
“자기야! 왜 그래!”
놀라서 지혁에게 다가왔고.
겁에 질린 얼굴로 TV에 시선이 꽂혀 있는 걸 확인했다.
“보지 마! 눈 감아!”
수아는 소리 지른 후, 재빨리 리모컨을 찾아서 끄려는데.
“멈춰!”
사자후에 수아는 놀라서 동작을 멈췄고.
지혁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봐야 해. 피하면 안 돼.”
“······.”
“피한다고 피해지는 게 아니라고.”
헉- 헉-
“자기야, 나 무서워. 일단 호흡부터.”
‘오픈포커스’
지혁은 정신과에서 만났던 민 교수의 조언을 떠올렸다.
‘자신을 통제하기 어려울 때, 시선을 멀리 두고, 주변 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자신으로부터 집중력을 떨어뜨리세요. 심호흡을 천천히 하면서······.’
지혁은 그녀가 알려준 대로 하려고 노력했다.
흡- 휴우-
차츰 호흡이 돌아오고 있었고.
수아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잠시 후.
호흡이 진정된 뒤, 지혁은 수아에게 말했다.
“자기야, 좀 전에 소리 질러서 미안해.”
“아니야, 괜찮아. 그보다는 병원 좀 가자. 자기 갔다 온 지 꽤 되지 않았어?”
수아는 울 듯한 얼굴로 지혁을 바라봤다.
월 1회는 방문하라고 했는데, 갔다 온 지 거의 석 달이 되었다.
“내일 한강 안 가도 되니까, 병원부터 갔다 와. 응? 제발.”
지혁은 피식 웃고는 수아를 꼭 안고 말했다.
“알았어. 갔다 올게. 내일 오전에 일찍 갔다 올 테니까, 한강은 원래대로 오후에 가자. 나도 치맥 먹고 싶어.”
수아를 안고 토닥여 주는 지혁의 얼굴엔.
수심이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