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 재방문 (2)
지혁의 눈두덩이 파르르 떨렸고.
최면에 깊이 빠져든 이후, 밝은 표정을 지었다가, 인상을 찡그리기도 하며, 표정이 시시각각 바뀌고 있었다.
그렇게 지혁의 변화를 관찰하다가, 최면치료사는 서서히 대화를 시도했다.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최면치료사의 질문과 동시에 지혁은 떨림을 멈추었다.
“제 말 들리시죠? 당신은 잘 듣고 있습니다. 잘 대답할 수 있습니다. 어디십니까?”
“그······ 세계.”
지혁은 흐릿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군요. 주변에 뭐가 보이나요?”
최면치료사의 물음에 지혁은 더듬더듬 말했다.
“오래된 상가 건물. 벽면 여기저기 피 묻은 자국. 2층 계단으로 이어지는 곳 시체 여러 구가 보이고요. 제 주변 사람 중에 정상인이 몇 없어요. 두 팔과 다리 멀쩡한 사람이 한 반 정도고······.”
지혁은 최면치료사의 말을 잘 따랐다.
아주 자세하게 상황묘사를 해주었고.
너무나도 끔찍한 얘기에 최면치료사는 마른침을 삼켰다.
‘꿈으로 꿔도 끔찍하겠다. 저걸 진짜로 경험했다고?’
최면치료사는 자신의 실력을 의심하지 않았지만, 지혁이 쏟아내는 말들을 믿기가 쉽지 않았다.
“어디 계신 줄 알겠네요. 자, 그 얘기는 이제 그만하고요.”
지혁은 눈 한쪽이 없는 얼굴을 묘사 중이었는데, 아무리 최면 치료라도 더 듣기가 힘들었다.
“지금 혼자 있나요?”
“아니요.”
“그렇군요. 함께 있는 사람이 누군지 아나요?”
지혁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한 사람은 영감님이라 불리는 분인데, 에이원 캠프를 이끌고 있습니다. ‘그 세계’가 오기 전에 현실 세계를 약간 경험하신 분이죠.”
“그렇군요. 또 있습니까?”
“장건이라는 놈인데, 나중에 영감님 뒤를 이어 에이원 캠프의 리더가 되는 녀석입니다. 몇몇 극단적인 선택으로 인해, 캠프원들을 몰살시키죠. 자신도 죽고.”
“······.”
“제 눈을 믿었어야 했는데. 검증되지 않은 색을 믿었다가······.”
최면 중이라 그런지, 지혁은 주절주절 말이 많았다.
그 외에 함께 있는 사람들 묘사도 끝난 후에, 최면치료사가 물었다.
“지금 뭐 하고 있나요?”
“1층 계단 아래에 모닥불 피우고 모여 있는데. 전투가 끝나고 쉬는 중인 것 같아요. 영감님이 옛날얘기를 해주고 있어요.”
“그렇군요. 제대로 찾아온 모양이군요.”
“네.”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나요?”
“네.”
“그럼 영감님 얘기를 들어볼까요? 다 듣고 나면 저희에게도 말씀해주세요.”
잠시 후.
지혁은 심각한 표정으로 영감님 얘기를 전해주었다.
역사는 되풀이되며, 글러브를 벗는 건 폭력의 시대가 도래할 징조라는 것.
안 그래도 지혁의 증언이 심상치 않았었는데.
얘기를 들을수록, 최면치료사는 소름이 돋았다.
“지혁 씨, 잘 들었습니다. 잠깐 좀 쉴까요? 동료들과 함께 모닥불 앞에서 쉬세요. 우리 대화는 잠시 후에 나누겠습니다.”
그때, 민 교수가 최면치료사에게 다가와 작은 소리로 물었다.
“지금 지혁 씨가 말하는 거, 사실이 아니겠지?”
“그건 모르지만, 어쨌든 지혁 씨가 경험한 것이긴 해.”
“······.”
민 교수는 고개를 갸웃하다가 물었다.
“뭐야, 그럼 사실이라는 말이잖아.”
“······.”
잠시 생각하다가, 이 상황이 무엇을 뜻하는지 깨닫고는 표정이 심각해져서 다시 물었다.
“그러니까, 꿈꾸거나 무의식중에 하는 소리가 아니라는 말이지?”
“그래, 억눌린 기억을 살리는 최면 치료 중이고. 난 그 분야에서 실패한 적이 없으니까.”
민 교수는 놀라서 최면치료사를 바라봤다.
‘지혁 씨 입에서 나오는 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이······ 진짜라고?’
최면치료사도 한숨을 쉬고 말했다.
“무슨 생각하는지 알아. 혼란스러운 건 나도 마찬가지야.”
***
약간의 휴식 후.
최면치료사는 다시 대화를 시도했는데.
질문의 양상이 좀 달라졌다.
치료라기보다는 마치 예언자에게 묻는 것 같았다.
“폭력의 시대가 도래할 거라고 했죠?”
“네.”
“그 시기가 언제입니까?”
지혁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고.
꿀꺽.
대답을 기다리는 동안 최면치료사는 마른 침을 삼켰다.
잠시 더 기다리다가.
“시기를 알기는 어렵습니까?”
“징조가 보이기 시작하면, 멀지 않다고 했어요. 정확히는 알 수 없대요.”
“······.”
“제가 좀 더 자세히 알려달라고 물어보니까, 영감님이 성경 구절이라며 이런 말을 하네요.”
지혁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그날이 도적같이 이르리라.”
“······.”
꿀꺽.
조용한 치료실에 또 한번 침 삼키는 소리가 울렸다.
민 교수도 옆에서 손에 땀을 쥐고 듣고 있었다.
“때가 되면. 아무도 모르게, 갑자기 온대요. 절대로 피할 수 없도록요.”
“좋습니다.”
최면치료사가 물었다.
“그럼 재앙······ 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건 어디서부터 비롯되는 겁니까? 자연재해라든지······.”
지혁은 바로 대답했다.
“사람입니다.”
“······.”
“사람에게서 모든 일이 비롯됩니다.”
“그럼, 사람이 자연 파괴한다든지 해서 그러는 건······.”
지혁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지도자의 순간적인 오판이 세계를 뒤집어 놓습니다.”
최면치료사는 생각했다.
‘아······ 전쟁을 얘기하는 건가? 하긴, 폭력의 시대라고 했으니까.’
“전쟁 나기 어려운 시대이지 않습니까? 모두가 그 후폭풍을 예상할 텐데, 국지전 정도가 아니라면.”
피식.
지혁은 최면 상태에서 미소를 지었다.
최면치료사는 그 모습이 섬뜩해 보였다.
“누군가의 목을 그어 살인해 본다고 상상해보세요.”
“······.”
“그 행위 자체가 어렵습니까? 약간의 힘과 날카로운 칼만 가지고 있으면 누구든 가능할걸요?”
최면치료사는 숨죽이고 지혁의 말을 들었다.
“어려운 건 그 의지를 갖는 것이죠. 아무 생각 없이 눈 딱 감고 하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어려운 게 아니에요. 미사일 버튼 누르는 거 자체가 어렵겠습니까.”
“······.”
“폭력의 시대는 그렇게 일어난다고 했어요. 때가 되면 순식간에 시작되고, 온 인류는 파국으로 치닫습니다. 세상은 하루아침에 달라져요.”
한동안 침묵이 흘렀고.
최면치료사는 얼굴에 땀을 흘리고 있었다.
“지금까지 얘기는······.”
“네, 영감님이 다 해주신 겁니다.”
“혹시······ 그날. 그러니까, D-day의 풍경에 관한 얘기도 해주셨습니까?”
이 물음에.
지혁의 얼굴은 일그러졌고.
몸을 심하게 떨었다.
떨림이 멈추지 않자, 민 교수가 옆에서 다급히 말했다.
“이제 그만하자. 필요한 기억은 다 본 것 같은데.”
최면치료사는 고개를 끄덕이고 지혁에게 크게 소리쳤다.
“제 지시에 따라 당신은 최면에서 깨어납니다.”
부들. 부들.
“하나, 둘.”
딱!
핑거스냅 소리를 끝으로, 지혁은 최면에서 깨어났다.
***
지혁은 얼떨떨했다.
온몸은 땀으로 젖어 있고, 손발이 차가웠다.
‘참 이상하게 개운하단 말이야.’
지난번 정신과에 갔다 왔을 때도 그랬다.
실컷 울고, 감정적으로는 힘들었으나.
개운했다. 오늘도 그런 기분이었다.
‘다들 표정이 왜 이래?’
지혁은 상쾌한 기분을 느꼈으나, 앞에 있는 두 사람은 토끼 눈이 되어 지혁을 보고 있었다.
얼굴도 굉장히 피곤해 보였다.
“두 분 괜찮으세요?”
두 사람은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이다가, 최면치료사가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기분은 어떠세요? 어디 불편한 데는 없으시고요.”
지혁은 웃으며 말했다.
“네, 개운합니다. 어차피 불안할 거면 실체를 마주하는 게 마음 편하거든요.”
“······.”
“마음의 준비를 좀 더 확실히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옆에서 가만히 있던 민 교수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우리한테 뭐 해주고 싶은 조언은 없나요?”
“조언······.”
민 교수의 질문으로부터 지혁은 새삼 깨달았다.
‘그래, 내가 뭔가······ 말을 했었지.’
기억은 어렴풋이 나지만, 명확하진 않았다. 마치 잠결에 한 말처럼 말이다.
기억하려고 애쓰니, 조금씩 생각이 떠올랐다.
“제가 한 말을 믿으시나 보네요.”
“······.”
최면치료사와 민 교수. 두 사람은 뭐라고 대꾸하지 못했다.
최면치료사의 실력을 의심하지 않지만, 최면 중에 지혁이 한 말을 믿기도 어려웠기 때문이다.
지혁은 피식 웃고는 말했다.
“조언이라······ 그냥 인생을 즐기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
“어차피 세상 멸망하니, 욜로로 살라는 말씀을 드리는 게 아니고요. 뭐, 그렇게 지내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만.”
최면치료사와 민 교수는 집중해서 지혁의 말을 들었다.
“자신의 원하는 일 혹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일에 집중하는 게 인생을 즐기는 게 아닐까 싶어요.”
“······.”
“저도 지금 그러고 있거든요. 당장 내일 죽더라도 후회가 없도록요. 음······ 말하고 보니 좀 이상하네요. 후회가 전혀 없기는 힘들겠죠. 하하.”
민 교수는 듣던 와중에, 문득 현타가 찾아왔다.
‘내가 지금 뭔 소리를 듣고 있는 거야. 참나······.’
지혁은 한 마디 더했다.
“운동 열심히 해두세요. 특히 호신술 위주로요. 그리고 재난 시대 대응법에 관련된 책이 있이 있거든요. 맨손으로 불피우는 법 등, 제한된 자원 속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인데. 한 권 정도는 구비해 놓으시는 게 좋습니다. 큰 도움이 될 거예요.”
그리고 지혁은 씁쓸한 얼굴로 말했다.
“만약, 살아남는다면요.”
***
지혁이 한창 정신과 상담 중이던 토요일.
최 부회장과 오진원은 아침부터 골프 모임을 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라운딩을 마친 후, 그늘집으로 향했고.
오진원은 고개를 저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와······ 부회장님 여전하시네요.”
“에이~ 약한 척은. 간신히 이겼구먼.”
최 부회장은 오진원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그동안 봉사활동 하면서 지낸 거 맞아요? 실력이 더 는 거 같던데? 연습한 거 아니에요?”
원래부터 죽이 잘 맞았던 두 사람. 오진원이 행방을 숨기기 전엔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골프 모임을 했었다.
“골프는 아니고요. 게이트볼은 좀 쳤습니다.”
“농담이죠?”
“하하.”
오진원은 큰소리로 웃기만 했고, 대답하지는 않았다.
‘진담이야? 농담이야?’
골프에 진심인 최 부회장은 다시 물어보고 싶었지만.
“자, 한 잔 드리겠습니다~”
딸깍!
최 부회장의 잔에 맥주를 따라준 후, 본인 잔도 채운 뒤 말했다.
“시원하게 한잔하시죠~”
“좋습니다.”
두 사람은 한껏 웃으며 잔을 부딪쳤다.
짠!
“캬~ 좋네요~ 젊은 사람들은 노인네랑은 잘 안 놀아주려 해서. 하하.”
오진원은 대꾸 없이 웃으며 최 부회장을 보다가.
꿀꺽. 꿀꺽.
커다란 잔에 담긴 맥주를 남김없이 비웠다.
“······.”
최 부회장은 그 모습이 이상해서 바라보았다.
‘갑자기 웬 원샷이야? 겉으로만 웃었지, 진 게 속이 상했나?’
위로의 말이라도 한마디 건넬까 고민하던 중이었는데.
“부회장님.”
“네?”
“저 복직한 지 3개월 됐습니다.”
“네······ 벌써 그렇게 됐네요.”
오진원은 피식 웃고는 말했다.
“볼 만큼 봤고요, 이제 생각을 정리했네요.”
최 부회장은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것 같았지만, 갑작스러워서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뭘······요?”
“저에게 권력 의지가 없다는 건 알고 있으시죠?”
“······.”
오진원은 최 부회장을 향해 빈 잔을 내밀며 말했다.
“어느 쪽에 서야 할지. 결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