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 자살골 (1)
“아빠, 오랜만에 외식인데 꼭 여기로 와야 해요?”
“요 녀석아. 그럼 우리 집 놔두고 왜 남의 집에 가냐?”
서울선도호텔.
평일 저녁, 오 회장은 오혜빈과 함께 장충동에 있는 선도호텔을 찾았다.
“에이~ 아빠. 회사 생각하는 마음은 알지만, 가끔은 경쟁사에서 서비스 받아 보는 것도 좋아요. 시장 조사 차원에서요.”
“그건 직원들 시키면 되고~ 난 내 회사에서 먹으련다~”
“호호. 아빠답다.”
오혜빈은 오 회장의 팔짱을 끼고 호텔 안으로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기다리고 있던 선도호텔 직원들은 로비에서 큰 소리로 인사했다.
“수고가 많아요.”
오 회장은 직원의 안내를 받아, 루프탑 레스토랑으로 향했고.
안내받은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솔직히 우리 레스토랑이 최고가 아니니? 딴 데는 별로야.”
“치. 무슨 그런 말씀을 하세요. 선도호텔 말고 다른 곳은 가지도 않으시면서.”
“요 녀석이!”
“호호.”
늦둥이 막내딸답게 오혜빈은 오 회장을 편하게 대했고.
오 회장도 오혜빈이 간혹 버릇없게 말해도 웃기만 했다.
두 사람이 한동안 재잘거리며 식사하고 있는데.
“회장님, 안녕하십니까.”
선도호텔 대표가 찾아왔다.
“네, 안녕하세요.”
오 회장은 가볍게 인사를 받았고.
대표는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선도호텔을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음식은 입에 맞으십니까?”
오 회장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 맛있네요.”
“불편한 건 없으시고요?”
이 물음엔 오혜빈이 대신 대답했다.
“없어요~”
대표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 그럼 편안한 시간 보내시고, 식사 맛있게······.”
“잠깐.”
인사하고 가려는데, 오 회장이 그를 막았다.
대표는 당황했다.
‘왜······ 그냥 딸이랑 조용히 드시지.’
“대표님 처음 보는 거 같은데?”
“석 달 전에 부임했습니다.”
“아~”
“회장님 뵙는 건 오늘이 처음입니다.”
“그렇군요.”
오 회장은 옆자리 의자를 뒤로 살짝 빼었고.
대표는 마음속으로 외쳤다.
‘하지 마······. 하지 마······.’
“식사 같이합시다.”
불길한 기분은 맞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금 시각은 오후 6시.
이 시간에 저녁 식사를 끝냈다고 말할 수는 없었고.
그룹 회장의 제안을 거절할 수도 없었다.
“혜빈아, 괜찮지?”
오 회장의 물음에 오혜빈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여부가 있겠사옵니까. 이러실 줄 알았어요. 호호.”
오 회장은 대표를 향해 말했다.
“뭐해? 앉으라니까.”
자연스럽게 말을 놓았고.
대표는 억지 미소를 지으며 오 회장 옆자리에 앉았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
이후로 식사 자리는 회사 이야기로 채워졌지만, 오혜빈은 개의치 않았다.
최근 회사에 관심을 갖고 어느 계열사에 일할지 고민하던 중이므로, 호텔 사업에 대해 알아볼 기회라고 생각했다.
주로, 오 회장이 질문하고 대표가 대답하는 분위기였는데.
대화 중 오 회장의 눈썹이 올라갔다.
“직원 수를 늘렸다고?”
“네.”
“인건비를 줄여서, 효율성을 올리는 건 요즘 추세인데. 그걸 자랑이라고 말하나?”
“네?”
대표는 당황하여 말했다.
“미래기획실 컨설팅받고 진행한 일입니다.”
“미래기획실?”
“네, 두 달 전쯤에 실차장님과 비서실장님 방문하셨었습니다.”
오 회장은 생각했다.
‘진원이랑 지혁이가?’
두 사람이 요즘 여기저기 다니며 왕성하게 활동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선도호텔까지 왔을 줄은 생각 못 했다.
오혜빈도 귀를 쫑긋 세웠다.
“엄밀히 말하면, 비서실장님 지침이라고 하는 게 맞겠네요.”
오 회장은 자리를 고쳐 앉고, 말했다.
“자세히 얘기해 보게.”
“아, 네.”
대표는 지혁이 방문했던 날을 기억하며 말했다.
“그룹에서 인건비 줄이라는 말이 있어서, 최근에 저희 호텔에서도 셀프서비스를 늘리고, 직원 수를 줄이는 방향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
“근데, 비서실장님이 컨설팅하러 오셔서는 격노하시더니······.”
대표는 지혁 특유의 맹수를 닮은 눈동자를 떠올리고는 살짝 떨었다.
“고객들에 대한 서비스가 주인 산업에서 직원 수를 줄이면 어떡하냐고······ 셀프서비스가 서비스냐며 묻는 겁니다.”
“······.”
“그래서 제가 본사 지침이라고 말씀드렸더니.”
“대표가 시키는 대로만 하는 사람이냐며. 당신 생각에도 직원 수 줄이는 게 맞냐고 되물으시더라고요.”
“그래서?”
오 회장의 물음에 대표는 싱긋 웃고는 대답했다.
“아니라고 했죠. 제 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 직원 수 줄이는 게 능사가 아닙니다. 특히, 서비스 직군은요.”
“······.”
“그렇게 말씀드렸더니, 비서실장님이 고개를 끄덕이며, 한마디 하셨습니다.”
“······.”
“아는 대로 행동하라고. 상식을 따르라고요.”
대표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 이후로 직원 수 줄이는 건 관두고, 좋은 서비스를 연구하고, 방문한 고객이 다시 찾도록 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그래서······ 효과가 있던가?”
대표는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지난달 고객만족도 1위 했고요. 매출도 올랐습니다.”
“······.”
“비서실장님 정말 대단하시던데요. 소문만 들었지, 젊은 분이 생각하시는 게······.”
이후로 대표는 지혁의 칭찬을 계속했고.
오 회장은 미묘한 표정으로 그 얘기를 들었다.
***
대표는 먼저 자리를 비웠고.
테이블엔 오 회장과 오혜빈만 남았다.
대표가 왔다 간 뒤, 오 회장의 말수가 확연히 줄어들었다.
오혜빈은 오 회장의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빠.”
“응?”
“지혁이가 컨설팅도 해요?”
“······.”
“비서실장이 참 여러 가지 일하네요?”
오 회장은 칵테일을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
“내가 그러라고 시켰다.”
“아~ 그랬구나. 근데, 왜요?”
“······.”
아주 평범한 질문.
‘그러게, 내가 왜 그랬을까.’
문득 다시 생각해보았고, 답은 간단했다.
“일을 잘하니까.”
“······.”
“몇 가지 일 시켜보니까. 믿어도 되겠더라고.”
“그렇게 지혁이가 일을 잘해요? 미래기획실도 아닌데, 관계사 컨설팅도 시킬 정도로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사실은 사실이니까.
“어, 잘해.”
“······.”
“참 잘하더라.”
오혜빈은 살짝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입술에 칵테일 잔을 살짝 데고 말했다.
“그룹에서 지혁이 영향력이 참 대단하네요.”
“······.”
“호텔 대표님께서 이렇게 칭찬할 정도면. 호호. 저도 걔한테 일 좀 배워야겠는데요.”
이 말에 오 회장도 피식 웃었는데.
그다음 오혜빈의 이어진 말에 표정이 굳어졌다.
“진양 오빠한테 일 배우려고 했는데~ 지혁이가 낫겠어요.”
오혜빈은 갑자기 오 부회장과 지혁을 비교하는 말을 했는데.
표정은 여유로웠다.
가볍게 농담하는 듯한 얼굴.
“아빠 생각은 어떠세요? 진양 오빠한테 일 배우는 게 나을까요?”
“······.”
두 사람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오 부회장을 내리깎는 거였다.
그는 그룹 회장이 될 사람이니까.
오 회장은 최근에 지혁을 찬양하는 소리가 자꾸 들려서 신경 쓰였는데.
막내딸에게까지 이런 얘기를 들으니,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그만 가자.”
오 회장은 자리에서 일어났고.
오혜빈도 미소 지으며 따라 일어났다.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어가는데.
“혜빈아.”
“네, 아빠.”
“앞으로 그런 얘기는 하지 말거라.”
만약 오혜빈이 아닌, 다른 자식이었다면 혼났을 것이다.
“알겠어요.”
***
선도호텔 정문 앞.
오 회장은 대기 중인 승용차를 향해 걸어가는데.
- 시정하라! 시정하라!
- 또 하나의 가족? 또 하나의 희생!
- 진상규명위 구성하라!
시위자들이 정문 앞에 서서 피켓을 들고, 항의하고 있었다.
호텔에 들어설 때만 해도 없었는데.
오 회장의 동선을 귀신같이 알아채고, 나갈 때 마주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회장님, 어서 타시죠.”
지원팀장이 차 문을 열고 기다리고 있었고.
오 회장은 시위하는 사람들에게 시선 한번 돌리지 않고, 차 문을 향해 걸어갔다.
이건, 그에게 너무 익숙한 일이니까.
- 오 부회장! 사퇴하라!
- 선도전자 대표이사 교체하라!
- 오진양은 아니다! 직원들을 생각하라!
오 회장은 걸음을 멈추었다.
시위 중에 이렇게 특정인의 이름이 불리는 건 드문 일이었고.
더군다나, 오늘 식사 자리에서 계속 신경 쓰였던 큰아들의 이름이라 무시하기 어려웠다.
- 진상을 밝히는 데 힘을 쓰기는커녕, 직원들을 무시하냐!
- 직원들은 부속품이 아니다! 절대로 가만 있을 수 없다!
- 오 부회장은 사죄하라! 사퇴하라!
시위자들은 눈치가 빨랐다.
오 부회장의 얘기에 오 회장의 움직임이 달라진 걸 파악했고, 집중하여 공략했다.
오 회장은 가만히 서서 시위자들의 얘기를 듣고 있었고.
보다 못한 지원팀장이 다가갔다.
“회장님, 어서 차에 타시죠.”
“흠······ 그래.”
- 진상을 규명하라!
- 사퇴하라! 사퇴하라!
***
차 안.
오 회장은 촉을 느꼈다.
‘뭔가 있는 거 같은데.’
평소 시위자들의 말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으나, 이번엔 패턴이 달랐다.
“지원팀장.”
“네, 회장님.”
조수석에 앉은 지원팀장이 대답했다.
“좀 전에 시위자들 주장하는 거 말이야. 비서실장에게 얘기해서······.”
오 회장은 비서실장을 통해 알아볼 생각을 했다가.
‘아니야. 지혁이 보다는.’
모르긴 몰라도 좋은 일이 아니라는 건 느껴졌다.
이 일을 지혁에게 시키면, 오 부회장의 치부를 알게 될 것이고······ 그게 꺼려졌다.
은연중에 오 회장은 지혁을 신경 쓰고 있었다.
일 잘하고 필요한 사람이지만.
최근에 계속 좋은 소리만 들리고, 오 부회장과 비교되어 거론되고 있으니까.
“자네가 좀 알아보겠나?”
“비서실장님께 보고하지 말고 제가 직접 말씀이십니까?”
‘보고하지 말고······.’
오 회장은 그 말을 잠깐 생각하고는 말했다.
“그래, 보고할 필요는 없어. 자네가 알아보고 회장실로 직접 보고하게.”
“알겠습니다.”
지원팀장은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생각했다.
‘물었군. 비서실장님께 바로 보고드려야겠네.’
***
다음 날 아침.
똑똑.
[지원팀장입니다.]
“들어오게.”
지원팀장은 회장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정중히 묵례한 후 말했다.
“어제 지시하셨던 것 알아봤습니다.”
“벌써 알아봤나?”
어젯밤에 지시한 일이었는데, 다음 날 아침에 보고하러 왔다.
“그게 사실······.”
지원팀장은 바로 말 못 하고, 우물쭈물했다.
오 회장은 그 모습이 불안하게 느껴졌다.
“뭔데 그러나? 괜찮으니 얘기해 보게.”
“알아보려 했던 관련 영상이 너튜브에 돌고 있습니다. 가까이 있던 직원이 촬영한 것 같은데······.”
“······.”
“그걸 보시면 어떤 일인지 곧바로 파악되실 것 같아서 가져왔습니다.”
오 회장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현장 직원이 촬영했다고?’
영상을 보기도 전에 불안해졌다.
“어서 틀어 봐.”
“네.”
위이잉-
천장에서 스크린이 내려왔고.
지원팀장은 빔프로젝터를 켜며 말했다.
“아직 크게 이슈되지는 않았습니다. 조회수가 5만도 채 안 되거든요.”
“······.”
오 회장은 대꾸도 하지 않고, 빈 스크린에 집중하고 있었다.
“지금 플레이하겠습니다.”
영상이 시작되었고.
1분쯤 지났을 때, 오 회장의 꽉 쥔 주먹이 떨렸고.
2분이 지났을 때, 이마에 식은땀이 흘렀다.
3분이 지났을 때쯤.
“끄게······.”
작은 목소리에, 지원팀장이 듣지 못하자.
“당장 끄라고!”
오 회장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