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사원이 능력을 숨김-169화 (169/301)

169. 어느새 (2)

뚜벅뚜벅.

오 부회장은 오 회장을 따라 회장실로 들어왔다.

“비서실에 얘기해서 문밖에서 떨어져 있으라고 하고, 문 꼭 닫고 들어와라.”

“네.”

오 부회장은 시키는 대로 한 후, 다시 방 안으로 들어왔다.

오 회장은 오 부회장이 소파에 앉자마자 물었다.

“너 상황 파악은 하고 있냐?”

둘밖에 없으니 부회장이라 호칭하지 않았다.

“무슨 상황 파악이요?”

“방금 중역 회의 하면서 못 느꼈어?”

“······.”

“이상하지 않냐? 선도전자 대표씩이나 되는 사람이 그 정도 낌새도 눈치 못 채나?”

쳇.

오 부회장은 콧바람 소리를 낸 후 말했다.

“왜 모르겠습니까. 오지혁이 뭔가 수를 쓰고 있는 거겠죠.”

“······.”

“그딴 녀석 신경 안 씁니다.”

오 부회장은 짓이기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건방진 자식이 회장님이 잘해주면 감사한 마음으로 숨죽이고 살아야지. 뭐 잘났다고 뻗대고 다니는지······.”

오 회장은 한숨을 쉬고 오 부회장에게 말했다.

“넌 지혁이를 어떻게 평가하냐?”

“평가요?”

오 부회장은 고민하지 않고 말했다.

“평가를 왜 합니까? 제 평가 대상에 없습니다.”

“걔가 한 일들을 생각해 봐라.”

“······.”

“너도 소문은 들어서 알 거 아니냐? 지혁이가 입사해서 지금까지 해온 굵직한 일들.”

“······.”

“네가 지혁이와 같은 선상에 있었으면 비교나 됐을 거 같아?”

“아버지!”

오 회장의 심한 말에 오 부회장은 격양되어 소리쳤다.

“말씀이 좀······.”

“현실을 직시하라고!”

오 회장은 그의 말을 끊고 소리쳤다.

“무시할 사람······아니, 무시해서는 절대로 안 되는 사람이야.”

오 부회장은 자존감이 강한 사람이었다.

오 회장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게 아니다. 그 또한 지혁이 신경 쓰였다.

정말 무시했다면 신경이 쓰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 자식 때문에 아버지와 이런 얘기까지 해야 하나.’

오 부회장은 처음부터 지혁에게 억하심정이 있던 건 아니다.

둘 사이 악연은 사실 지혁이 시작했다.

지혁이 먼저 오 부회장에게 적대감을 가졌고, 그의 일을 방해해왔다.

선도물산 대표이사를 쳐냈던 것을 시작으로 말이다.

“아버지.”

“그래.”

“차라리, 그냥 내치시지 그러세요?”

오 부회장은 주먹을 꽉 쥐고 말했다.

“그러면 편하지 않아요? 내쳐버리면 끝이잖아요?”

휴-

오 회장은 한숨을 쉬고 말했다.

“넌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냐?”

***

오 회장은 답답하다는 듯 오 부회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능하지 못할 게 뭡니까?”

“솔직히 말해서, 너한테 이런 모습 볼 때면 상당히 걱정된다. 다 큰 자식에게 이런 말까지는 안 하려 했는데.”

“······.”

“이 회사에서 네 위에 누가 있냐?”

뻔한 질문이었다.

명목상으로는 오 부회장 위에 오 회장이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아무도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아무도 없잖아. 그럼 아래를 볼 줄 알아야 하는데. 넌 그게 너무 없어.”

“그렇지 않습니다. 직원들과 정기적으로 간담회도 하고.”

“형식적인 거 말고!”

“······.”

“감사보다는 무시하는 마음이 뿌리 깊이 박혀있잖아.”

오 회장은 오 부회장을 잘 알고 있었다.

선민의식이 강하며, 다른 이들을 낮춰보는 태도.

“내가 누누이 강조하지 않냐. 네 아래 있는 직원들에게 항상 존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해.”

“······.”

“그 누구도 아니라, 너 자신을 위해서.”

“그렇게 하고 있어요.”

“근데, 내치라는 말이 그렇게 쉽게 나와?!”

“······.”

오 회장은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요즘은 사원도 쉽게 내칠 수 없는 거 모르나?”

“그거야 정규직이니 그런 거고요. 오지혁은 계약직이잖아요.”

오 회장은 속에 열불이 나는 것 같았다.

‘얘는 도대체가 생각이 어떻게 박힌 거지.’

“걔가 시급 받고 일하는 계약직이냐?”

“······.”

“임원이라서 계약직이잖아.”

“어쨌든, 계약직입니다.”

“······.”

“계약 기간 끝난 후, 재계약 안 하면 그만이에요.”

도리어 오 부회장은 오 회장을 설득했다.

“예전에 작은아버지 일 때문에 지혁이를 좀 특별하게 생각하시는 거······ 저도 이해는 하는데요.”

이 말에 오 회장은 움찔했다.

“때론, 과감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겠습니까. 작은아버지와 진원이에게 하셨던 것처럼요.”

꿈틀.

오 회장의 이마에 힘줄이 솟았다.

‘이 자식이······.’

“아버지께서 못 하시겠으면, 저한테 일임해주세요. 그러면 제가 알아서······.”

“진양아.”

흠칫!

오 부회장은 오 회장의 달라진 눈빛에 놀랐다.

“다시는 그 얘기 꺼내지 마라.”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았지만, 오 부회장은 오 회장이 무슨 얘기 하는지 알고 있었다.

작은아버지와 오진원이 회사에서 떠났던 이야기는 오 회장 앞에서는 금기였으니까.

“······.”

“대답해.”

꿀꺽.

오 부회장은 침을 삼키고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

둘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

오 회장은 한숨을 쉰 후, 입을 열었다.

“지혁이는 나한테 필요하기도 하다. 지금 선도그룹에 없어서는 안 될 인재니까.”

쳇.

오 부회장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게 본심이지 않으세요?”

“뭐?”

“솔직히 말씀해보세요. 아버지도 저와 지혁이 비교 중인 거 아니시냐고요.”

“······.”

“항상 회사가 우선이셨잖아요. 제가 미덥지 않고, 주변 여론도 그렇게 흘러가니까. 흔들리시는 거잖아요.”

오 부회장은 속 깊은 얘기를 했다.

예전부터 생각은 했지만,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했던 말.

후유-

오 회장은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진양아.”

“······.”

“넌 내 아들이다.”

“······.”

“내 첫아들. 장남이라고.”

오 회장은 천천히 말했다.

“난 단 한 번도 흔들린 적 없다.”

“······.”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 상황에 널 이렇게 독대하지도 않았을 거야.”

***

오 부회장의 눈빛이 흔들렸다.

오 회장으로부터 이런 얘기를 직접적으로 듣는 건 처음이었다.

진심이 느껴졌고.

오 회장에게 잠시 서운한 마음을 가졌던 게 풀리는 기분이었다.

“그러니까, 정신 똑바로 차려라.”

오 회장은 본래의 모습으로 바로 돌아왔다.

다시 차가워진 목소리에 오 부회장은 긴장했다.

“헛짓거리하지 말고, 네 거 잘 지키라고.”

“······네.”

“너튜브에 올라온 영상은 잘 정리한 거냐?”

“네?”

전혀 예상 못 했던 얘기가 나오자, 오 부회장은 당황했다.

“여직원 내팽개치는 영상 말이야.”

“아, 아버지. 그 사람은 직원이 아니고요. 직원의 어머니 되는 사람인데.”

“조용.”

오 부회장은 말을 멈추었다.

“사실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걸 보는 사람들이 어떻게 믿느냐가 중요해.”

“······.”

“전후 사정이야 어쨌든, 선도그룹의 차기 회장이란 사람이 웬 노약자를 내팽개쳤고, 영상을 본 사람들에게 그렇게 인식되었겠지. 그 사실이 중요한 거야.”

“흠······.”

오 부회장은 짧은 신음을 내었고.

오 회장은 못마땅한 듯 그를 보며 말을 이어갔다.

“그러니까 영상을 없애는 게 능사가 아니다. 이미 본 사람들이 있으니까.”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시선을 돌릴 방법을 찾아야지. 반박 영상을 만들던가. 아니면······.”

오 회장의 눈빛이 차갑게 빛났다.

“그 일을 덮을 만한 더 큰 일을 찾거나.”

“그럴 만한 일이 있을까요?”

오 회장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일이야 만들면 되지. 내가 좀 전에 얘기하지 않았느냐. 사람들이 믿는 게 사실이 된다고.”

“······.”

이제야 오 부회장은 이해한 듯,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오 회장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자살골은 넣지 마라.”

“······.”

“자살골만 안 넣어도 문제없다. 그 누가 흔들려고 하든.”

“네.”

“그리고 네 어미와 형제들 단속 잘하거라.”

오 회장은 앉은 자리에서도, 지혁이 무슨 일을 벌이는지 훤히 꿰고 있었다.

“인간의 욕심은 혈연을 뛰어넘기도 하지만, 어쨌든 피는 물보다 진하다.”

“······.”

오 부회장은 이 말을 천천히 곱씹고서는 대답했다.

“네, 한번 조용히 만나봐야겠네요.”

오 회장은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했다.

“난 네 아버지이자, 선도그룹의 총수다.”

“······.”

“널 지혁이와 비교하는 일은 생기지 않도록 해다오.”

“······.”

“이건, 네 아비로서 부탁하는 거다.”

오 부회장은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동족포식’

가장 냉정하고 엽기적 방식의 ‘인수 합병’이라고 한다.

바다악어.

수컷 성체의 길이 6~7미터 정도 되는 지구상의 가장 거대한 파충류이며, 종종 ‘동족포식’을 하는 개체다.

내 형제와 동족을 살해하여 먹는다는 것.

그 내용 자체만 봤을 때는 끔찍하고 비인륜적이지만.

동족포식은 개체 수를 조절하여, 더욱 강한 유전자가 살아남아, 종 자체의 생존력을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

즉, 동족포식은 동족을 강하게 한다.

‘그 세계’에서 인간들은 그런 과정을 거쳤었다.

‘포식’까지는 아니지만, 동족 간의 전투를 통해 강한 자들만 살아남았다.

지혁은 그걸 경험했으며, 중요한 과정으로 생각했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응당 해야 하는 과정으로 말이다.

‘형제들을 그대로 둘 수는 없어.’

지혁은 형제들을 포섭하면서, 그들의 힘을 빼기 위해 노력했다.

그들이 가진 지분에 대한 서약서를 받았으며.

형제들의 최측근들은 모두 떨어지게 했다.

일거수일투족을 자신에게 보고하게 했으며, 끊임없이 어르고 달래며 심리적인 지배를 해나갔다.

형제들. 특히 선도그룹 안에 있는 오혜진과 오진원은 식물처럼 만들어 버리려 했다.

다른 직원들에게 대하는 것과는 달랐다.

형제들에게만큼은 가차 없이 몰아붙였고.

‘지혁라인’과 최 부회장이 우려할 정도였다.

-좀 심한 거 아니야?

-비서실장님 성향을 생각했을 때,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지만.

-정도가 좀 심하긴 해.

지혁은 나름대로 생각이 있었다.

‘오 부회장이 움직일 거야. 중역 회의 때 뭔가를 느꼈을 테니.’

오 회장과 오 부회장의 눈빛을 읽었고.

형제들은 반드시 꽉 잡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비서실장님, 바로 회식 자리로 가실 거죠?”

황 차장이 문을 두들긴 후 비서실장실로 들어왔다.

그는 비서실장을 위한 비서 역할을 하고 있었고.

비서실 팀장들은 모두 지혁의 사람들이었기에, 그걸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네, 가시죠.”

선도본관 정문에 뒷문이 열린 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지혁이 탑승 후, 황 차장은 문을 닫아주려 했다.

“잠깐만요. 황 차장님.”

“네?”

“옆에 타시죠. 가면서 대화나 하게.”

두 사람은 요즘에 담배와 커피를 마시던 아지트에서 만나지 못했다.

이제······ 지혁은 그럴 수 있는 급이 아니었으므로.

“아닙니다. 제가 감히 어떻게.”

“어서요. 얘기 나눌 게 있어서 그래요.”

황 차장은 잠시 생각하고는, 운전기사를 불렀다.

“김 대리.”

“네.”

“운전 내가 할 테니까, 자네는 앞차 타고 가게.”

“네? 차장님이 운전하신다고요?”

혹시 말이 새어나갈까 봐, 신경 쓰는 거였고.

지혁은 이 모습을 보며 빙그레 미소 지었다.

‘하여간······ 성준이 형, 은근히 꼼꼼해.’

“어서.”

“아, 네. 알겠습니다.”

붕-

곧 황 차장은 운전대를 잡고 출발했고.

백미러로 지혁을 바라보며 말했다.

“비서실장님, 이제 말씀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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