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 적의 움직임 (1)
어머니 댁에서 오 부회장을 만난 지 일주일이 지났다.
똑똑.
[들어오세요.]
덜컹.
지원팀장인 장 이사가 비서실장실로 들어왔다.
지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소파를 가리키며 말했다.
“앉으세요.”
“네.”
“오랜만에 뵙네요. 출장은 잘 갔다 오셨어요?”
지원팀장은 지혁의 지시로 한 주간 선도전자에 있었다.
회장 비서실 소속이기에, 어느 계열사에 있든 출장 사유는 쉽게 만들 수 있다.
게다가, 지원팀장은 공식적으로는 오 부회장의 사람이기도 했고.
“네, 잘 갔다 왔습니다.”
“어떻던가요?”
지혁은 분명히 오 부회장이 일을 꾸밀 거로 생각했다.
뭔가 할 것 같은 뉘앙스를 어머니 댁에서 풍겼으며, 시기적으로 움직일 타이밍이라고 봤다.
“네······ 제 나름대로는 자세히 봤는데.”
“······.”
“특별한 게 없었습니다.”
“그래요?”
지원팀장은 눈에 힘을 주고 말했다.
아직도 지혁이 자신을 완전히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네, 오 부회장님 근처에 계속 있었고요. 다른 직원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것도 유심히 봤는데, 주시할 만한 것 없었습니다.”
지혁은 묵묵히 그의 얘기를 들었다.
“그리고 지난번 선도전자 공장 사건 이후로, 부회장님이 추 이사를 좀 편애하거든요.”
“아무래도 그렇겠죠.”
지혁도 영상을 봐서 알고 있었다.
다른 비서들 몸 사리는 와중에 추 이사는 오 부회장의 지시를 따랐고, 앞뒤 안 보고 시위자들에게 달려들었었다.
덕분에, 오 부회장 못지않게 추 이사도 꽤 홍역을 치렀었다.
“추 이사와 술도 한잔하면서 넌지시 떠보기도 했는데, 무슨 소리 하느냐는 듯 오히려 반문하더라고요. 오 부회장님이 그렇게 한가한 사람이냐며.”
“그럼 저는 한가한 사람인가요?”
지원팀장은 손사랫짓하며 말했다.
“아니죠! 죄송합니다. 그런 뜻으로 드린 말씀이 아닙니다.”
“농담한 거예요.”
“······네.”
지원팀장은 생각했다.
‘농담을 왜 이렇게 살 떨리게 하냐. 아니면, 내가 예민한 건가.’
지혁은 잠시 생각하다가 지원팀장에게 물었다.
“최근에 지원팀장님께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거나 하지는 않았나요?”
“누구 말씀이십니까?”
“오 부회장 이하 측근들이요.”
지원팀장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런 건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렇군요.”
지혁은 피식 웃고는 말했다.
“알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지원팀장이 물었다.
“그럼 저는 이제 어떡할까요. 이번 주도 선도전자로 출근할까요?”
“그러고 싶으세요?”
“네?!”
지원팀장은 또 손사랫짓하며 말했다.
“아, 아니요. 하하. 무슨 말씀을 저는 선도본관에서 비서실장님과 함께 일하는 게 좋습니다.”
지혁은 대꾸 없이 물끄러미 지원팀장을 보았고.
지원팀장은 멀뚱멀뚱 지혁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또 뭔 소리를 하려고 이러는 걸까.’
“지원팀장님.”
“네!”
“저, 지원팀장님 의심 안 합니다.”
“네! 네?!”
지원팀장이 당황하여 바라보자, 지혁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전 의심하는 사람과는 일 안 합니다.”
“······.”
“제가 일을 부탁하는 건, 신뢰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에 대해서 더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뭉클.
지원팀장은 생각지 못하게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뭐지? 왜 감동이 오지?’
“제 농담에 너무 민감하게 받아들이지 않으셔도 돼요.”
“워낙 무표정한 얼굴로 농담하시니까.”
“그게 제 스타일입니다.”
지혁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제 측근이신데, 적응하셔야죠.”
이 말에 지원팀장은 환하게 웃었다.
***
선도본관. 1층 로비 카페.
지혁과 지혁라인은 함께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지혁은 밀폐된 곳을 싫어한다.
지금 그의 위상을 생각했을 때, 공개적인 장소에서 커피 마시는 건 피해야 할 일이지만.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다른 사람 눈치 안 보고 이런 시간을 가졌다.
-비서실장님이다.
-아, 오늘 카페 오시는 날이구나.
-같이 사진 찍어도 되냐고 여쭤볼까?
-야, 여기 회사야.
윤 부장은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며, 투덜거렸다.
“이거야 원, 부담스러워서 커피를 마실 수가 있어야지.”
지혁은 이런 반응을 개의치 않았지만.
눈칫밥 먹는 건 함께 있는 사람 몫이었다.
이렇게 공개된 곳에서 커피를 마실 때면, 지혁과 함께 있는 사람들은 자연히 함께 시선을 받았다.
“비서실장님, 꼭 여기서 커피를 마셔야 해요?”
윤 부장이 지혁에게 물었다.
평소엔 반말하는 사이지만, 회사 내 사람들 많은 곳에서는 존대한다.
“제 자유시간입니다. 뺏지 마세요.”
“아니, 그럼 혼자 마셔······요! 왜 다 데리고 와서 자유시간을 갖는 거예요?”
“혼자 마시기는 부끄럽거든요. 하도 보는 사람이 많아서.”
“하~ 나. 어이가 없네.”
윤 부장은 고개를 저었고.
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황 차장과 고 차장은 웃었다.
윤 부장이 황 차장에게 물었다.
“황 차장, 2세 소식은 없어?”
“아~ 아직요. 신혼을 좀 더 즐기고 싶어서요.”
황 차장은 웃으며 말했다.
“저보단 결혼 선배인 비서실장님이 먼저 가지셔야죠. 아! 비슷한 시기에 갖는 것도 괜찮겠네요. 둘이 친구 하게요.”
윤 부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 그게 좋아. 요즘은 애를 적게 낳잖아. 가까운 친구가 형제지 뭐.”
황 차장은 웃으며 지혁에게 물었다.
“비서실장님 어때요? 내년쯤 콜?”
“······.”
지혁은 어색하게 웃었다.
평소 농담을 받을 때의 지혁의 모습과 달랐다.
“흠······.”
지혁을 너무 잘 아는 황 차장은 바로 입을 닫았고.
윤 부장과 고 차장도 아이 얘기는 더 꺼내지 않았다.
지혁이 굳이 싫다고 말하지 않아도, 가까이 있은 지 오래돼서 표정만 봐도 안다.
윤 부장은 눈치를 보다가 말했다.
“이제 슬슬 일어나죠? 이 정도면 시선도 많이 받고 커피도 다 마신 것 같은데?”
지혁은 고개를 살짝 끄덕인 후, 일어나려는데.
“안녕하십니까!”
갑자기 한 남자가 다가와 큰 소리로 인사했다.
***
지혁뿐만 아니라, 함께 있던 일행 모두 놀라서 그 남자를 바라봤다.
주변에서 수군대기만 할 뿐, 이렇게 감히 지혁에게 다가와서 말 거는 직원은 없었기 때문이다.
“누구시죠?”
지혁을 대신해 황 차장이 물었다.
“안녕하십니까. 오늘 미래기획실로 발령받은 이형주 차장이라고 합니다.”
“······.”
“선도본관에 근무하게 되면 비서실장께 가장 먼저 인사드리고 싶었는데, 마침 오자마자 1층에서 뵙게 되네요. 하하.”
이형주는 큰 소리로 웃었다.
지혁은 그를 보지 않고, 말했다.
“네, 발령받은 거 축하드리고요. 건승을 기원하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며 지혁라인을 보고 말했다.
“가실까요?”
“네.”
이형주는 황급히 지혁을 막았다.
“잠깐만요. 비서실장님.”
“······.”
그제야 지혁은 이형주를 보았다.
그의 이마도.
그리고 바로 지혁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비서실장님의 손발이 되고 싶습니다. 저에게 기회를 주시면 좋겠습니다.”
못해도 삼십 대 후반 정도는 되어 보이는 남자였는데, 아무리 비서실장의 위세가 대단해도 행동이 좀 과했다.
“뜬금없다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흠모해왔습니다. 언제 또 마주칠 기회가 있을지 모르니, 용기 내 말씀드립니다.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요? 난 이형주 차장님이 어떤 분인지 모르는데?”
비서실장은 그의 이름을 말했고.
이형주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이름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어떤 사람인지는 윤 부장이 아십니다. 그렇죠? 윤 부장님?”
“응? 어어.”
윤 부장은 난감한 표정으로 대답했고.
이제야 지혁이 관심 가졌다.
“둘이 아는 사이에요?”
“예전에 같은 팀에 잠깐 있었어요.”
윤 부장의 말에, 이형주는 싱긋 웃으며 덧붙였다.
“저도 물산 출신입니다.”
“아, 예.”
지혁은 윤 부장을 향해 물었다.
“잘 아는 사이라는 거죠?”
“뭐 알기야 하는데. 워낙 오래전이라······.”
윤 부장은 어색하게 인사했다.
“이 차장, 오랜만이야.”
“네. 오랜만에 인사드리네요.”
지혁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연락하며 지내는 사이는 아닌가 보네요.”
윤 부장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고.
이형주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지혁을 바라봤다.
지혁이 말했다.
“손발이 되어 뭐든지 하고 싶다고요?”
“네! 비서실장님.”
지혁은 선 채로 이형주를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한 가지 요청하고 싶은 게 있는데.”
“네! 말씀만 하십시오!”
***
“가까이 좀 올래요? 사람들 보니까.”
“네? 아, 네! 알겠습니다.”
이형주는 설레는 얼굴로 지혁에게 다가갔고.
지혁은 이형주와 지혁라인에만 들릴 소리로 말했다.
“오 부회장이 하려는 게 뭔지 좀 알려 줄래요?”
“네?!”
순간, 이형주의 동공이 흔들렸다.
“저에 대해서 어떤 계획을 세웠는지.”
“······.”
“잘 아실 거 같은데?”
옆에 있던 고 차장은 피식 웃었고.
윤 부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오지혁이 답다. 이런 식으로 받아치네.’
이형주는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 제가 어떻게 그걸 압니까?”
“왜, 몰라요? 오 부회장이 보낸 사람인데, 당연히 잘 알아야죠.”
돌직구를 던졌고, 이형주의 표정은 순간 굳어졌다.
지혁은 이형주의 이마에서 본 색을 떠올렸다.
‘검은색에 가려진 분홍색이었어. 오 부회장······ 뭔가 할 줄은 알았지만······.’
의도를 갖고 자신을 숨기는 사람은 본연의 색 위에 검은색이 섞여 보인다.
굳이 색을 보지 않아도, 이형주가 뭔가를 숨기고 의도적으로 접근한다는 걸 눈치챘지만.
때가 때인 만큼 확실하게 하려고 그의 이마를 살폈고, 짐작은 정확하게 맞았다.
“오 부회장이 신뢰하는 사람이라서, 제게 보내진 거 아니에요? 아니면 뭐, 약점이라도 잡혔나?”
“무, 무슨 말씀 하시는 줄 모르겠습니다.”
지혁의 안광이 빛났다.
“왜 몰라요. 나 지금 한국말 하는데.”
키득.
옆에서 웃음소리가 들렸고.
이형주의 얼굴이 벌게졌다.
“지금 제가 엉뚱한 소리 하고 있나요?”
“······.”
“제가 짐작한 게 아니면 아니라고 명확하게 말해보세요. 여기서 거짓말하면 다음에 저 만날 때 각오하셔야 할 거예요.”
이형주는 난감한 얼굴로 가만히 있다가.
뒷짐 지고,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음?’
구경하고 있던 윤 부장은 방금 이형주의 태도가 좀 이상해 보였다.
‘뒷짐까지 져? 저 친구 굉장히 자존심이 강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윤 부장이 기억하는 이형주는 자존심이 강해서, 상사와 여러 번 트러블을 일으킬 정도였다.
“그런 소리 듣고 싶은 건 아니고요.”
지혁은 여전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부회장님한테 잘 좀 해보시라고 전해주세요. 이렇게 일차원적인 건 재미없다고.”
“······.”
“아시겠죠?”
이형주는 갑자기 큰 소리 내어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지혁의 눈이 순간 커졌다.
“죄송합니다! 비서실장님!”
90도 각도로 허리를 숙이며 큰 소리로 사과했고.
그 자세를 그대로 유지했다.
윤 부장은 재빨리 이형주가 똑바로 서도록 일으켜 세웠다.
“자네, 지금 뭐 하는 거야?”
“죄송합니다!”
좀 전보다 더 깊숙이 허리를 숙이며 사과했고.
윤 부장은 이형주를 잡아끌며, 황 차장에게 말했다.
“황 차장!”
“네.”
“비서실장님 빨리 모셔. 사람들 쳐다본다.”
1층 로비에 있던 직원들.
갑작스러운 사과 소리에 이쪽을 모두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