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사원이 능력을 숨김-177화 (177/301)

177. 화려한 등장

“잔인해도 된다고?”

오진원의 표정은 굳었고.

최 부회장 또한 우려 섞인 얼굴로 지혁에게 물었다.

“강전철 전무에게 했던 것처럼, 공개처형이라도 할 생각인가?”

지혁이 보여줬던 무시무시한 모습을 기억하기에, 그의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았다.

“아니요.”

지혁은 술 한 모금 마신 후 말했다.

“그렇게는 못 하죠. 회장님이 반감을 가지실테니.”

“······.”

“강 전무는 남이었고, 진양 형님은 회장님 친아들이자 장남이잖아요.”

지혁은 살짝 미소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찍어누르는 방식으로 진행했다간, 역효과가 더 클 거예요.”

좀 전에 ‘잔인해도 된다’라는 말했던 것과 일맥상통하지 않았고.

오진원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럼, 뭘 어쩌겠다는 거지.’

더 자세히 물어볼까 했는데.

그 전에 지혁이 이어서 말했다.

“업무에 있어서 압도적으로 탁월한 모습을 보여야겠죠.”

“······.”

“상대방이 비교당하고, 자존감이 땅바닥에 곤두박질만큼요.”

오진원은 가만히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고.

최 부회장은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

“좋은데······ 그게 먹힐까?”

“······.”

“회장님이 장자 후계에 대한 집념이 강하다는 거 자네도 알지 않나? 업무적으로 탁월한 사람은 밑에서 일을 해도 되는 건데······.”

지혁은 최 부회장의 눈을 보고 말했다.

“회장님은 바보가 아니십니다.”

“······.”

“후계에 대한 기류가 바뀌었다는 걸 인지하고 계실 거고요. 아마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 상황을 지켜보고 계실 거예요.”

최 부회장은 몸을 가까이하며 물었다.

“뭐, 들은 게 있어?”

“아니요. 짐작입니다.”

“······.”

“하지만, 합리적인 짐작이죠. 회장님이 어떤 분인지 아니까.”

지혁은 비서실장으로서 오 회장을 근거리에서 보좌한 지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래서 그를 잘 파악하고 있다.

오 회장은 겉으로 티는 안 내지만, 굉장히 용의주도한 사람이었으며.

경영일선에서 물러선 것처럼 보여도, 배후에서 실질적인 조종은 다 하고 있다.

“회장님은 회사의 안위를 가장 먼저 생각하실 겁니다.”

최 부회장과 오진원은 식사를 멈추고, 지혁의 얘기에 집중했다.

“그분에게 장자 트라우마가 있지만, 그게 회사의 안위가 흔들리는 상황을 앞서진 못할 겁니다.”

“······.”

“더욱이 모두가 인정하는 압도적인 대안이 있다면요.”

최 부회장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생각했다.

‘이럴 때 보면 정상인 같단 말이야. 하여간, 매력 있어.’

“전 그럴 거라고 믿어요.”

최 부회장과 오진원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고.

지혁은 웃으며 말했다.

“두 분도 그래서 저 선택한 거잖아요?”

“하하.”

최 부회장은 큰 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압도적으로 비교될 정도의 탁월한 능력을 보여서, 회장님의 변심을 가져온다라······.”

잔을 들며 말했다.

“아주 ‘뺏기의 정석’이구먼. 하하. 한잔하지.”

“하하. 그 말 마음에 드네요. 한잔하시죠.”

***

선도그룹 회장실.

똑똑.

[고승윤 차장입니다.]

“들어오게.”

덜컹.

문 여는 소리와 함께 빡세게 생긴 외모의 한 남자가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섰다.

고승윤 차장.

지혁라인 중 한 사람이며, 선도물산에서 개발팀장으로 있다가 지혁의 부름으로 선도본관 비서실로 왔다.

현재 비서실 지원팀에 있으며, 팀장 머리 꼭대기 위에서 근무 중이다.

“상황 보고드립니다.”

“그래.”

“저격글 관련해서, 비서실장이 블러인드에서 예고한 대로 1층 로비에서 이형주 차장을 만나 공식 사과했습니다.”

“흠······.”

“주변에 직원들이 많았고요. 다들 비서실장을 흠모하는 분위기였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그랬던 건 아닙니다. 이 모습을 쇼로 보는 시각도 없진 않았습니다.”

오 회장은 잠자코 그의 얘기를 들었다.

“비서실장이 잘 대처하긴 했지만, 이 일로 이미지에 타격을 받은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다가 오 회장이 물었다.

“이형주 차장은 오 부회장 사람이 맞나?”

“그건 아직 확실하게 파악이 어렵습니다만······ 그렇게 보입니다.”

“그래.”

최근, 고 차장은 오 회장의 지시로 지혁과 오 부회장 관련된 일을 보고 하고 있다.

그는 지혁의 사람이면서도, 회장 비서실 소속이다. 오 회장의 지시를 따라야 할 의무가 있었다.

그리고 오 회장이 여러 비서 중에 고 차장을 선택한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어쨌든 일단락된 거군. 자네는 이 일을 어떻게 보는가?”

“간단하게 말씀드리자면, 오 부회장의 무모함과 비서실장의 자만이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무승부처럼 보이지만, 엄밀히 따지면 부회장의 근소한 차이의 판정승입니다. 왜냐면, 부회장님은 아무런 타격을 안 받으셨으니까요. 이번 일에 대해서 만큼은요.”

고 차장은 워낙 올곧은 성격이라, 말하는데 거침이 없고 솔직했다.

아무리 지혁라인이라 해도, 편향되어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 부회장은 이 일로 큰 여지를 남겼고요. 비서실장 성향으로 봤을 때, 제대로 반격할 겁니다.”

“······.”

“회장님께서도 비서실장을 잘 아시니까······ 여기까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어쨌든 그는 지혁의 사람이기에.

오 회장을 통해 오 부회장에게 얘기가 전해질 걸 생각하여, 불리한 얘기는 수위를 조절했다.

“수고했네.”

“회장님 비서로서 제 일을 한 겁니다.”

“자네가 나와 이런 얘기하는 거. 비서실장도 알고 있나?”

“모릅니다. 말하지 않았습니다.”

“왜지?”

“아무리 제 직속 상사지만, 모든 업무를 다 말할 이유는 없습니다. 서로 그럴 시간도 없고요.”

“······.”

“그건 회장님께도 마찬가지입니다.”

고 차장은 츤데레 스타일이었고.

오 회장의 불편해할 걸 알고, 일부러 이렇게 얘기한 거였다.

빡세고 올곧은 사람들이 상대하긴 어렵지만.

이런 매력이 있다.

“고맙네. 앞으로도 잘 부탁하네.”

“회장 비서실 소속으로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고 차장은 인사를 하고 나가려는데.

“아, 고 차장.”

“네, 회장님.”

“톰 쿡 내일 오는 거 맞지? 보고를 들었던 거 같은데, 헷갈려서.”

“네, 내일 맞습니다.”

“······.”

“예정대로 비서실장이 나갈 거고요. 미래기획실과 함께 준비 중입니다.”

오 회장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그래, 알겠네. 수고하게.”

***

뚜벅. 뚜벅.

미래기획실.

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약속이라도 한듯 모두 하던 일을 멈추고 숨소리마저 죽였다.

발걸음 소리 하나에도 위압감이 대단해서, 미래기획실 직원 전체가 좌불안석이었다.

‘전략팀’

목적지에 도착한 그는 문을 가볍게 두드렸다.

똑똑.

[누구세요?]

“비서실장입니다.”

후다닥.

갑자기 빠르게 치우는 소리가 들렸다.

미래기획실 내에서 전략팀은 핵심 조직이며, 사무실도 따로 구분되어 있다.

덜컹.

문이 열리고, 은테 안경을 쓴 남자가 큰 소리로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미래기획실 전략팀장 장재욱 전무.

미래기획실 선임 팀장이며, 서열로는 실차장 바로 다음이다.

즉, 미래기획실의 No. 3.

귀밑머리가 희끗희끗한 50대의 전략팀장은 지혁을 향해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지혁은 가만히 바라보다가, 웃으며 말했다.

“저 언제까지 인사받아야 합니까? 허리 아픈데.”

지혁도 똑같이 허리를 숙이고 있었다.

비서실장과 전략팀장은 동급이며, 두 사람 직위도 전무로 같다.

“어이쿠, 죄송합니다.”

하지만, 지금의 지혁은 표면상의 직급의 중요하지 않다.

그룹이 주시하고 있는 넥스트 제너레이션의 선두주자이며, 차기 회장 후보로 급부상 중인 오 회장의 조카다.

전략팀장은 한층 더 허리를 숙였다.

“하하. 그만하시라니까요.”

결국 지혁이 손으로 그를 잡아 일으켰고.

전략팀장은 시선을 내리깔고, 지혁을 굉장히 어려워했다.

“갈 준비가 되었는데, 소식이 없으셔서. 제가 왔습니다.”

“죄송합니다. 아직 시간도 남았고,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에.”

톰쿡의 선도그룹 방문은 미래기획실 전략팀에서 준비하고 있다.

“안 그래도 바쁜 일 많으실 텐데, 고생 이시네요.”

지혁의 덕담에 전략팀장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닙니다. 그룹을 대표하는 일이니 응당 저희가 해야 할 일이죠. 비서실장님과 함께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지혁은 살며시 미소 짓고는 물었다.

“일정은 어제 저한테 메일 주신 것과 동일한가요?”

“네, 바뀐 거 없습니다.”

“······.”

“일정은 오늘 단 하루입니다.”

원래 피치사에서는 이틀 일정을 원했는데, 전략팀에서 하루로 바꿨다.

물론, 하루여도 그들이 원하는 일정은 압축해서 모두 담았다.

“아무리 피치사가 대단해도, 선도그룹 대표가 이틀씩이나 시간 할애하는 건 가당치 않습니다.”

“······.”

“하루 동안 최선을 다하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지혁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전략팀장님 일 하시는 게, 참 마음에 드네요.”

지혁의 말에, 그는 감격한 표정으로 고개를 깊숙이 숙이며 큰 소리로 말했다.

“대표님! 감사합니다!”

“하하. 대표님이요?”

“오늘은 선도그룹 대표시죠.”

전략팀장은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말했다.

“비서실장님이 대표셔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전략팀 안에 있는 직원들도 동감한다는 듯 기분 좋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선도그룹의 수재들만 모여 있는 곳이라 그럴까.

다들 사람 볼 줄 알았다.

상황 파악도 잘하고.

***

인천국제공항.

VIP 게이트.

피치사 일행은 전용기로 도착한다.

게이트 주변은 각종 언론사 모여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피치사의 수장이 한국을 방문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기업 중 하나인 피치사의 수장.

국가 원수의 방문 못지않을 정도로 관심이 대단했다.

-잠깐만요.

-실례하겠습니다.

검은 정장의 사람들이 기자들을 해치며 게이트로 다가왔고, 그 뒤로 매끈한 체격에 젊고 날카로운 인상을 한 젊은이가 뒤따르고 있었다.

빛이 나는 검은 오라를 뿜어내는 듯한 압도적인 카리스마.

그의 등장만으로 주변 분위기는 확 달라지고 있었다.

-오지혁이다.

-선도그룹 비서실장.

-비서실장이 대표로 나온 거야?

지혁을 알아본 기자들이 수군거렸고.

찰칵! 찰칵!

연신 플래시가 터졌다.

-대박이다.

-요즘 잘 나간다더니.

-오 부회장은 뭐하고?

-심상치 않은데······.

찰칵! 찰칵!

톰쿡은 아직 도착도 안했는데.

지혁의 등장만으로 공항 일대는 난리가 났다.

기자들은 일제히 지혁 주변으로 몰려들었고, 마구 질문을 던져댔다.

-비서실장님! 오늘 계획이 어떻게 됩니까?

-톰쿡과는 아는 사인가요?

-미팅 계획이 어떻게 됩니까?

-의제가 뭡니까?

선도그룹의 대표로 선 자리.

수 많은 경호원들이 지혁을 둘러싸며 기자들을 막았고.

지혁은 주변의 혼잡한 분위기는 개의치 않고, 게이트만 주시했다.

딩동!

벨 소리와 함께 게이트 문이 열렸다.

평범한 인상이지만, 시선을 끄는 아우라.

새하얀 머리의 단정한 신사가 앞서서 게이트를 통과했고.

지혁과 톰쿡.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향해 가볍게 눈인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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