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사원이 능력을 숨김-182화 (182/301)

182. 건수 (1)

“좀 자세히 얘기해 주실래요.”

인사실장은 목소리를 좀 줄이고 얘기했다.

“방금 말씀드린 대로, 인사이드 갤러리에는 어그로 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지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인사실장이 꽤 잘 알고 있나 보네.’

“갤에 상주하며 지내는 고닉······.”

“전문용어는 풀어서 말씀해 주세요.”

“아, 네. 갤은 갤러리, 고닉은 고정닉의 준말인데, 갤에서 그나마 좀 신빙성 있는 닉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흠, 네.”

“한 고닉이 너튜브 영상 올라온 것과 동시에 삭제되었던 걸 캡처 떠서 올렸고······.”

지혁은 그의 말을 끊고 물었다.

“그런 걸 어떻게 캡처할 생각을 했을까요?”

“······.”

“회사에 또 다른 세력이 있나?”

인사실장은 지혁의 심각해진 표정을 보고, 피식 웃고는 말했다.

“비서실장님, 세상엔 생각보다 이상한 사람들 많습니다.”

“······.”

“제가 말씀드렸죠. ‘재벌 2세 마이너 갤러리’라고. 근데 이 갤러리에 재벌 2세는 없습니다.”

“······.”

“그들을 추종하거나, 혹은 씹는 맛으로 갤질 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죠.”

지혁은 사십 대 후반 매끈한 중년의 오 부회장을 떠올렸다.

“그럼, 부회장님을 언급하는 사람들 여자겠죠?”

“단언컨대, 99% 남자일 겁니다.”

“남자가 연예인도 아닌 남자의 뒤를 왜······.”

“말씀드렸죠. 이상한 사람들 많다고.”

“······.”

“이해하려 하지 마시고, 그냥 받아들이십시오.”

지혁은 살짝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알겠습니다. 설명 계속하시죠.”

“네, 고닉이 장작을 넣으니, 유동닉들이 아주 신이 났죠. 유동닉이란 닉네임을 주로 ‘ㅇㅇ’로 쓰면서 갤질 하는 사람들인데. 특히, 어그로에 환장하죠.”

지혁은 얘기를 듣는 와중에 의구심이 들었다.

이슈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건 알겠는데.

커뮤니티 갤러리에서 나오는 얘기가 오 부회장에게 타격을 줄 정도로 커질지. 그게 잘 가늠이 안 되었다.

“주딱이랑 파딱이 아직 제재를 안 하고 있는데.”

“전문용어는 풀어서 해달라니까요.”

“아, 주딱은 매니저, 파딱은 부매니저입니다. 그러니까, 이 갤러리를 관리하는 사람들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네.”

“제재를 안 하는 이유가 어쨌든 오 부회장 건은 사실에 입각한 것이며, 사회적으로도 이슈가 될 만한 일이기 때문이거든요.”

지혁은 여러 생각을 하며 잠자코 그의 얘기를 들었다.

“물론, 이 커뮤니티 안에서만 얘기가 오고 간다면 큰 여파가 없을 겁니다.”

지혁이 우려하는 부분을 인사실장이 말했다.

“이 장작이 크게 타오르도록, 누군가 활활 타오르게 해서 옆으로 번지게 된다면 어떨까요?”

“······.”

“연예인 혹은 일반인 가십거리들이 그런 식으로 퍼져서, 사회적 이슈가 되고, 기사에도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거든요.”

“아······.”

지혁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의미가 있네요.”

“네, 의미가 있습니다.”

“근데, 좀 잔인할 수 있겠는데요?”

“맞습니다. 그건 어느 정도 감안해야겠죠.”

“어떻게 진행할지 생각해 보신 거죠?”

“물론입니다.”

그는 웃으며 말했고.

지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부터 느꼈지만, 인사실장님이 참 일 잘한단 말이야.’

***

최 부회장실.

[톰쿡 회장은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피치사 앱 개발자들과 미팅을 가진 뒤, 인근 초등학교로 이동하여······.]

최 부회장과 오진원은 점심 식사 후에 함께 톰쿡에 관한 뉴스를 보고 있었다.

“외국 경영자들은 달라.”

최 부회장의 말에 오진원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니까요.”

“우리나라 경영자들은 출장 가면 딱 정해진 일만 하고 오는데.”

“그 정도면 양반이죠. 저녁 술자리에, 2차, 3차······.”

오진원은 진저리가 나는 듯한 얼굴로 말했고.

최 부회장은 의외라는 듯 말했다.

“실차장님이 웬일이에요? 부정적인 얘기를 다 하고.”

“겪어봐서 그래요. 겪어봐서.”

“······.”

“제가 동남아 쪽에서 봉사활동 좀 했었다는 말 기억하세요?”

“네.”

“한국 교민들조차도 한국 출장자들은 꺼릴 정도니까. 요즘은 좀 달라졌으려나.”

“일부가 그런 거겠죠. 적어도 우리 회사는 안 그러잖아요.”

[톰쿡 대표는 이후에 성당으로 이동하여 미사를 드리고, 지역 주민들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기업 총수가 옆집 아저씨 같은 친근한 행보를 하여 지켜보는 이로 하여금······.]

오진원은 턱으로 화면 속의 톰쿡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정도는 되어야죠. 진심인지 가면일지는 몰라도. 적어도 대중들은 톰쿡을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저런 행동 덕분에 피치사 제품까지 좋아 보이는데.”

최 부회장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톰쿡이 진짜 영리한 거죠.”

오진원은 문득 먼 곳을 보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지혁이도······ 잘하겠죠?”

“적어도 비서실장은 여자한테 관심은 없어 보이고, 회식도 안 좋아하니까요.”

오진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죠. 다만, 조금만 더 둥글둥글하면 참 좋을 텐데요.”

최 부회장은 오진원을 힐끔 보고 말했다.

“톰쿡처럼 대중에게 친근함을 보이기엔 실차장님이 딱인데.”

오진원은 눈이 동그래져서, 주변을 살피고서는 목소리를 죽이고 말했다.

“그런 말씀 마세요. 큰일 납니다.”

“하하. 비서실장이 들을까 봐요?”

“농담 아니에요. 경쟁자로서의 낌새를 조금만 보여도 엄청 까칠해요. 회장 안 하겠다고 난리 치던 녀석이 맞나 싶어요.”

“······.”

“저번에 회식 자리에서 계열사 대표한테 칭찬 몇 마디 들었다가, 피 말리는 줄······.”

최 부회장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민하네요.”

최 부회장은 지혁이 자리에 없는데도, 그의 눈치를 살피는 오진원이 안쓰러웠다.

‘어쩌겠어. 본인이 택한 걸······.’

오진원이 말했다.

“예민? 그보다는 철저한 거죠.”

“······.”

“지혁이 보면 꼭 전투에 돌입한 군인 같지 않아요? 승리만을 생각하는. 난 그래서 참 든든한데.”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다만, 폭주하지 않기를······ 그리고 전투가 다 끝났을 때, 지금 분위기와는 좀 달라졌으면 하는 바람은 있습니다.”

똑똑.

문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덜컹.

지혁이 들어왔다.

“두 분 함께 계셨군요.”

그의 등장과 동시에 최 부회장과 오진원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혁은 회장직에 대한 뜻을 밝히기 전까지는 허례허식을 싫어했지만.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차이를 인식하게 하는 방식이기에, 지금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앉으세요.”

평소와 달리 지혁의 얼굴이 살짝 격양되어 보였고.

최 부회장과 오진원은 무슨 일이 있나 싶어서 지혁을 바라봤다.

“건수를 잡았습니다.”

***

지혁은 ‘인사이드 갤러리’ 얘기를 해주었고, 최 부회장과 오진원은 듣는 내내 갸우뚱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뭐 어쨌다는 거지?’

한편으로는 지혁의 지금 반응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너튜브에 오 부회장 영상이 올라올 왔을 때 지혁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었으며.

언론을 이용한 공격은 그의 취향이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최 부회장이 물었다.

“그러니까, 그 갤인지 뭔지 하는 커뮤니티 통해서 오 부회장에게 한 방 날리겠다는 거잖아.”

“맞아요.”

“그게 의미 있는 공격이 될까?”

“······.”

“어설픈 공격은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걸 자네도 잘 알고 있잖아. 그래서 얼마 전에 당했을 때도 사과하고 끝낸 거 아니야?”

블러인드 공격 건을 얘기한 거였고.

지혁은 살짝 미소 지으며 말했다.

“갤질이라는 게 신분을 숨기기 좋겠더라고요.”

“······.”

“그리고 굉장히 불특정 다수인 곳인 데다가, 어그로에 환장한 사람들이 많은 곳이랍니다. 즉, 이슈 만들기가 좋다는 거죠.”

“······.”

“분명 유의미한 공격이 될 겁니다.”

‘재벌 2세 마이너 갤러리’를 어떻게 이용할지, 지혁은 설명했고.

최 부회장과 오진원은 그의 얘기를 들으며, 동시에 생각이 한 곳에 이르렀는데.

오진원은 미간을 찌푸리고 말했다.

“그러니까······ 지혁아.”

“······.”

“너, 진양 형님을 사회적으로 매장하겠다는 거야?”

지혁은 굳은 표정으로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오진원은 지혁의 의도대로 풀린다면, 몇 년 전의 땅콩 회항 사건 같은 이슈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오 부회장의 자리를 뺏는 수준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매장해버리고, 오 회장 일가 전체도 큰 타격을 받게 된다.

“이건 좀 아니잖아.”

“다른 좋은 방법 있으면 말씀해 보세요.”

오진원이 멈칫하자, 최 부회장도 당황하여 말했다.

“얼마 전에는 업무적으로 탁월한 능력을 보여서, 회장님의 변심을 기대한다며.”

“계획이 변경되었습니다.”

지혁의 안광이 빛났다.

“적이 진흙탕 싸움을 벌이려고 하는데, 저만 신사적으로 갈 수는 없죠.”

지혁은 톰쿡과 함께 선도전자를 방문했을 때, 자사의 특정 공정까지 보여가며 시선을 끌려던 오 부회장을 떠올렸다.

“지혁아, 다시 한번 생각을······.”

오진원은 말하려다가, 지혁의 매서운 눈빛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난 앞에서 싸우는 사람이고, 두 분은 뒤에서 구경하고 있죠.”

최 부회장은 얼굴이 뻘게져서 언성이 올라갔는데.

“비서실장, 무슨 말을 그렇게!”

“말 끊지 마세요!”

지혁의 일갈에 최 부회장은 입을 다물어 버렸다.

“난 얼굴 다 드러내고, 목숨 걸고 싸우는 중인데. 물불 가리게 생겼습니까?”

“······.”

“방향은 정해졌습니다. 따르세요.”

‘전면전’

전쟁 수단에 있어서 무제한적인 전쟁 방식을 뜻한다.

지혁은 지금 오 부회장과의 경쟁이 전면전에 돌입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오 부회장님이 시작했어요.”

“······.”

“전 그것에 맞게 상응하는 거고요.”

지혁은 잔인한 눈빛으로 허공을 보며 말했다.

“자기 자신을 탓해야 할 겁니다.”

***

어느 카페.

인사실장은 짙은 선글라스를 쓰고 창가 쪽에 앉아 있었고.

지혁 또한 선글라스를 끼고,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인사실장 쪽을 보고 있었다.

‘오후 2시 45분.’

약속 시간 2시 30분보다 15분이 더 지났다.

인사실장은 초조한 듯 손목시계를 보았고.

지혁은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고자, 인사실장뿐만이 아니라 카페 안에 모든 사람의 인상을 살폈다.

‘뒤를 쫓는 사람은 없어.’

몇 번을 더 확인했는데, 괜찮아 보였다.

잠시 후.

커다란 줄무늬 티셔츠에 앙상한 다리를 덮고 있는 펑퍼짐한 반바지. 그에 어울리지 않은 가죽 샌들을 신은 남자가 카페로 들어섰다.

비쩍 마른 체형에 은색 안경을 쓰고 있었는데.

한눈에 봐도 키보드 워리어다웠다.

인사실장은 범상치 않은 그의 모습을 알아보고, 살짝 손을 들었고.

사마귀를 닮은 듯한 남자는 인사실장 앞에 서서 물었다.

“영맨 님이신가요?”

“네, 카코야끼 님 맞으시죠?”

카코야끼라고 불린 남자는 자리에 앉았다.

지혁은 멀찍이서 그 남자를 유심히 살폈는데, 펑퍼짐한 헤어 스타일이 이마를 가리고 있어서 색깔은 확인할 수 없었다.

카코야끼는 인사실장을 향해 말했다.

“뭐 제보할 게 있으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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