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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이 능력을 숨김-192화 (192/301)

192. 거부할 수 없는 제안 (2)

너무 놀란 나머지 정적이 흘렀다.

짝짝.

윤 팀장이 박수를 치기 시작했고.

짝짝짝.

곧이어 다 함께 큰 소리로 박수 치며 웃었다.

-으하하.

-대표님! 축하드립니다!

-와~ 하하! 선도물산이라니!

다들 큰 소리로 웃으며 좋아했다.

특히, 지혁을 따라서 선도본관으로 온 선도물산 출신의 비서들.

윤 팀장, 황 차장, 고 차장은 뛸 듯이 기뻐했다.

“하아~ 씨발, 옷 팔던 사람한테 남의 뒤치다꺼리하라고 해서 진짜 불편했거든!”

윤 팀장은 족쇄에서 풀려난 기분이었고, 거친 말이 절로 나왔다.

“하아······ 생산하고 싶었어요. 옷 만들고 싶었어요!”

황 차장은 감정에 북받쳐 큰 소리로 말했다.

“우리 팀원들이 나돌아가면 참 좋아하겠네~ 하하.”

그리고 고 차장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고.

인사실장은 웃으며 말했다.

“대표님, 참 잘 됐습니다. 우리 오 대표님 선도물산에 오시면 진짜······.”

지혁은 손사랫짓하며 말했다.

“하여간 인사실장님은 항상 앞서가셔. 아직, 발령 난 것도 아닌데, 대표라뇨. 하하.”

“에이~ 대표님께서 선도물산에 오실 거라고 했으면 이미 대표님인 거죠.”

생산팀장도 좋아했지만, 염려스러운 말을 했다.

“잘된 일이고, 저도 진심으로 환영하지만. 지금 너무 안 좋은 상황이라······.”

최근 선도물산은 경영난을 겪고 있었다.

크게 건설, 레저, 패션 사업 부문으로 구성되어 있고, 비즈니스 특성상 오프라인 매출이 큰 비중을 차지할 수밖에 없는데.

팬데믹으로 큰 타격을 받은 데다가, 지주회사로서 오 부회장과 지혁과의 다툼에 끼어 정치에 휘둘렸다.

“상황이 안 좋을 때라서, 전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지혁은 이틀 전, 오 회장과의 담판을 얘기해주었다.

그룹 총수 후보자로 인정받았으며, 경영 능력을 평가받을 거라는 것.

“낮을수록, 올라갈 여지가 많다고 보거든요.”

지혁의 말에 윤 팀장이 대꾸했다.

“맞는 말씀이지만. 그만큼 쉽지 않을 것이며, 리스크도 크겠죠.”

지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요. 그래도 가야죠.”

“······.”

“이게 최선이며, 유일한 길이에요.”

지혁은 둘러보며 말했다.

“제가 선도본관으로 모시고 온 분들과 함께 가고 싶거든요. 혹시 싫은 분 계세요?”

세 남자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말할 필요도 없이, 선도물산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선도본관에는 지혁이 불러서 왔을 뿐, 이번 생에 비서라는 걸 해볼 줄은 상상도 안 해본 사람들이다.

“고 차장님, 괜찮으시겠어요?”

“네?”

“회장님이랑 친하잖아요.”

흠칫.

고 차장 얼굴에 핏기가 사라졌다.

“제 일을 했을 뿐입니다.”

“알고 있어요. 그냥 물어본 거예요.”

고 차장은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전 선도물산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그렇군요. 다행이네요.”

“······.”

“선도 물산에서는 저한테만 집중하시면 됩니다.”

“네.”

다른 사람들은 지혁과 고 차장이 갑자기 무슨 얘기를 하는지 어리둥절했지만.

고 차장은 등에 식은땀이 났다.

“얼추 할 얘기는 다 했는데.”

만난 지 15분 지났다.

“모두 아시겠지만, 전 지금 모든 걸 걸었습니다.”

“······.”

“제가 잘 돼야 여러분도 삽니다. 우리, 운명공동체잖아요.”

이제, 그룹에서 ‘지혁라인’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선도물산에서 죽을힘을 다해 일해주시기 바랍니다. 이제 얼마 안 남았어요.”

“네!”

다섯 남자는 큰 소리로 대답했다.

***

똑똑.

[비서실장입니다.]

오 회장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들어와.”

덜컹.

지혁이 들어왔다.

싸늘한 정적이 흘렀다.

둘 사이의 분위기는 이전과는 완전 달랐다.

오 회장은 더 이상 지혁을 보며 웃지 않았으며, 예전의 따뜻했던 눈빛도 모두 사라졌다.

‘어쩔 수 없어.’

지혁은 내심 안타까웠지만.

회장이 되기로 마음먹은 이상,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 여겼다.

“진양이 일은 잘 해결했냐?”

“보여드리겠습니다.”

지혁은 회장실 한쪽에 있는 모니터 전원을 켜서, ‘재벌 2세 마이너 갤러리’ 현재 상황을 보여줬다.

“보시다시피, 오 부회장 얘기는 많이 사라졌습니다.”

“흠······.”

오 회장은 꼼꼼히 화면을 보았다.

“아직 좀 보이는데?”

“바로 완전히 사라질 수는 없습니다. 잠잠해지는 중이죠.”

“······.”

“이 말인즉슨 언제든 다시 불탈 수 있습니다.”

뿌드득.

오 회장은 어금니를 씹었다.

‘이 녀석이 날 또 협박하네.’

“하지만,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전 약속은 반드시 지킵니까요. 아, 물론 상대방이 약속을 어긴다면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요.”

오 회장은 못마땅한 얼굴로 지혁을 바라보았고, 지혁은 그의 눈을 마주 보며 생각했다.

‘지금은 어쩔 수 없어. 나중에 만회하면 돼.’

오 회장에 밉보여서 지혁에게 좋을 건 없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많은 걸 감수하더라도, 지금 필요한 것은 반드시 얻어야 하기에.

“어디로 갈지 생각은 정했나?”

“네.”

지혁은 곧바로 대답했다.

“선도물산입니다.”

“선도물산?”

예상했던 답변이었다.

경영 능력을 보여줘야 할 상황에서 가장 잘 아는 곳에 가는 게 좋을 테니까.

하지만, 지금 선도물산은 실적이 너무 안 좋은 데다가······.

“지금 대표가 부임한 지 1년도 안 되었는데?”

“네, 알고 있습니다.”

“1년도 안 된 사람을 내리고, 그 자리로 들어가는 건 좀 그렇지 않냐?”

지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분이 잘하고 있거나, 아니 보통만 하고 계셔도 명분이 없을 텐데요.”

“······.”

“지금 죽 쑤고 있던데요? 선도전자 연구원 출신을 물산 대표로 발탁하셨으니······ 예상된 일이죠. 도대체 누가 이런 인사를 한 건지······.”

지금의 선도물산 대표이사를 선임할 때, 오 부회장의 입김이 작용했었다.

지혁은 그 부분을 꼬집은 거였고.

오 회장 또한 그 사실을 모르지 않기에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명분도 사유도 충분할 거라고 봅니다. 게다가 전 물산 출신이니까요.”

“참나, 물산 출신이든 뭐든 경력 3년 된 사람을 대표로 세우는 게 참 명분 있겠다.”

오 회장이 씹듯이 말했지만, 지혁은 개의치 않고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저는 오너일가 출신 아닙니까. 경력 부족을 만회하기엔 태생부터 충분한 명분이 있죠.”

“······.”

대화할수록 말리는 기분.

모든 걸 예측하기라도 한 듯, 오 회장이 아무리 잽을 날려도 지혁은 이리저리 잘 피하기만 했다.

“넌 지금 선도물산 대표가 불쌍하지도 않냐?”

“선도그룹은 큰 회사고, 갈 자리야 많습니다. 그분에게 측은지심을 느끼신다면, 회장님께서 좋은 자리 마련해 주시면 될 거라고 봅니다.”

오 회장은 지혁이 선도물산으로 가는 게 달갑지 않았다.

지주회사니까.

대놓고 반대는 못 하겠고, 이유를 들어서 저지해 보려 했으나.

대화할수록 지혁이 선도물산 대표로 못 갈 이유는 없어 보였다.

***

“그래, 네가 정 원한다면, 그렇게 하기로 하고.”

“감사합니다.”

결국, 오 회장은 지혁의 선도물산 대표직을 수락했다. 장남의 생사가 달려 있기에, 요구를 들어주는 거 외에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뭐, 더 할 얘기 있냐?”

지혁은 곧바로 그다음 요구사항을 말했다.

“선도본관에서 제가 필요한 사람들을 데려갔으면 합니다.”

어차피, 지금은 오 회장이 가부를 결정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오 회장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누구를?”

“의전팀장 윤현성 부장, 의전팀 황성준 차장, 지원팀 고승윤 차장.”

오 회장도 지혁라인을 모르지 않는다. 예상했다는 듯 잠자코 들었다.

“그리고······ 지원팀장 장남일 이사입니다.”

“뭐? 지원팀장까지?”

“네.”

오 회장은 당황하여 말했다.

“지원팀장은 왜 데려가? 그렇게 되면 너 포함해서 비서실 5명이 빠지는 건데······ 그건 좀 심하잖아?”

“그룹에 비서실 오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하······ 참나.”

“인수인계는 확실히 해놓고 가겠습니다.”

‘하여간 항상 예상을 벗어나.’

오 회장은 아무래도 불안했다.

이 수준이면, 그룹의 비서실 전원이 다 바뀌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고 차장이라도 두면 안 되겠나?”

오 회장은 지혁에게 도리어 부탁했지만.

“죄송합니다.”

확실하게 거절했다.

고 차장은 지혁에게도 꼭 필요한 사람이었으니까.

“비서실장 가고, 팀장 둘 다 가고······ 이거야 원.”

오 회장이 난감하여 턱을 쓰다듬고 있는데.

“회장님께서 불안해하실까 봐, 제가 준비한 게 있는데.”

“뭘 준비해. 인제 그만 좀 해라.”

지혁은 자기 할 말만 했다.

“제 후임을 추천하려고 합니다.”

“후임? 비서실장을 네가 추천한다고?”

“네.”

오 회장은 미간을 찌푸리고 지혁을 바라보았다.

‘뭐, 이런 게 다 있지. 간, 쓸개 다 빼가고, 머리털까지 뽑아갈 놈이네.’

“비서실 경험이 있고요. 그룹에서 명망도 높은 분입니다. 직위도 전무라서 딱 맞고요.”

아무리 적당한 인물이라고 해도, 지혁이 추천한 인사다. 저의는 뻔히 보였다.

회장실을 주무르겠다는 거였다.

하지만······ 지금 오 회장은 지혁의 뜻을 거부할 수 없었다.

“알았다. 딱 거기까지야. 더는 안 돼.”

“알겠습니다.”

***

하루 전.

선도생명 대표이사실.

퇴근 시간이 막 지난 무렵.

똑똑!

문 두드리는 소리가 다급하게 들렸다.

[한 전무입니다!]

“네, 들어······.”

오혜진의 들어오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한 전무는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헉헉. 사장님.”

한 전무는 얼마나 급히 왔는지,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무슨 일이세요?”

오혜진은 놀라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죄송합니다. 집에 가던 길에 전화 받고 너무 놀라서······.”

“갑자기 오신다고 해서 기다리기는 했는데, 전화로 말씀하셔도 될걸.”

한 전무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전화로 할 얘기가 아닙니다.”

방 안에 둘밖에 없지만, 한 전무는 목소리를 죽이고 말했다.

“비서실장에게 전화 왔었습니다.”

“지혁이가요?”

지혁이 전화했다는 말에 오혜진은 곧바로 얼굴이 굳었다.

요즘 가장 껄끄러우며 피하고 싶은 사람이니까.

“걔가 왜요?”

“선도물산으로 복귀할 거랍니다.”

“아······.”

이 말에 오혜진는 아주 놀라진 않았다.

어제 윤리경영위에 그녀도 참석했었고.

흘러가는 분위기를 보며, 지혁의 보직이 변경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기 때문이다.

“대표로 가는 거겠죠?”

“네.”

오혜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차선으로 가는군요. 어제 회의에서 추 이사가 워낙 방어를 잘해서, 쉽지 않을 거로 생각했어요.”

“······.”

“어쨌든, 지혁이는 기회를 잡았네요. 선도물산 대표로 가서 어떤 퍼포먼스를 보일지가 관건이겠어요.”

오혜진은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흠······ 지금까지 특출난 모습을 보여왔지만, 경영자로서는 어떨지······.”

한 전무의 소식이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별거 아닌 거라서, 오혜진은 안도하고 있었는데.

“사장님, 그게 다가 아닙니다.”

“또 있어요?”

“저 보고······.”

한 전무는 흔들리는 눈빛으로 말했다.

“비서실장 하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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