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사원이 능력을 숨김-196화 (196/301)

196. 조직개편 (1)

취임사를 10분 만에 마무리하는 바람에, 1시간으로 예정되었던 취임식은 30분 만에 끝나려 했다.

사회자도 당황스러웠다.

혹시, 지혁이 좀 더 말할 게 있지 않을까, 몇 번을 더 바라봤는데. 그걸로 정말 끝이었다.

[그럼, 마지막 순서로 기념 촬영이 있겠습니다. 임원분들 먼저 앞으로 나와 주시기 바랍니다.]

사회자의 안내에 따라 임원들이 단상 앞으로 올라왔다.

지혁을 중심으로 임원들이 쭉 둘러섰는데.

대부분 표정이 좋지 않았다.

이 기념 촬영이 회사생활의 마지막 사진이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영정사진인가.

-왜 재수 없게 그런 소리를 해.

-맞잖아. 회사생활 영정사진이지.

선도물산이 최악의 실적을 보이는데, 일조한 인물들.

물론 이 모든 게 그들만의 문제라고 볼 수는 없다. 경기가 안 좋았던 외부 환경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문제가 있는 걸 알았음에도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았으며, 자리 지키기에 집중했다.

전년 대비 매출액 30% 하락, 영업이익률 20% 하락.

그게 현재 스코어다.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바로 경영자다.

-아직 모르잖아요.

-헛된 기대 갖지 마세요.

더군다나 칼자루를 쥔 대표가 임원 쳐내기로 유명한 그룹 비서실장이었으니.

그들의 운명은 불 보듯 뻔했다.

[모두 여기 보세요~]

사진기사가 앞에서 말했다.

[웃으세요~ 활짝~ 상사부문장님! 집에 뭐 안 좋은 일 있으세요? 하하. 웃으세요~]

사진기사는 어떻게든 좋은 포즈를 만들기 위해 애를 썼지만, 부문장들은 지금 웃는 게 너무 힘들었다.

웃으라고 할 때마다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영정사진에 웃으라니. 젠장.’

‘원래, 영정사진은 웃는 거야.’

‘적당히 좀 해라.’

‘어휴, 쟤가 뭘 알겠어.’

[패션부문장님~ 입만 웃지 마시고~ 눈도 좀 활짝~ 하하.]

지혁은 뒤에 선 임원들을 힐끔 본 후, 한마디 뱉었다.

“빨리빨리 합시다.”

부들. 부들.

부문장들은 있는 힘껏 웃었다. 억지로 웃느라 눈두덩이 떨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찰칵!

촬영이 끝난 후, 임원들은 차례대로 앞으로 나와 지혁과 악수 후에 자리로 들어갔다.

그들 중.

지혁의 오랜 상사이자 지금은 지혁라인을 타고 있는, 상품본부장 유남혁 상무.

홍썬라인 런칭할 때 영업팀장으로서 큰 도움을 줬던, 영업본부장 김종식 이사.

전 비서실장인 강정철 전무를 보내기 위해, 패널로 나와서 용기 내 발언해 준 디자인실장 정민경 이사.

이 사람들과 악수할 때, 지혁은 그들만 들릴 정도로 은밀히 말했다.

“이따 대표이사실에서 뵐게요.”

[대표이사님! 다음은 직원들과 사진 촬영하겠습니다. 객석을 등지고 정면 봐주십시오!]

지혁은 직원들을 사이로 들어갔다.

-대표님! 영광입니다!

-비켜! 비켜!

-아, 밀지 마!

직원들은 서로 지혁의 옆자리에 서려 했다.

임원들과 사진 찍을 때와는 아주 상반된 분위기였다.

[자~ 찍겠습니다!]

이번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사진기사는 신나서 소리쳤다.

[하나~ 둘~ 셋!]

찰칵!

***

현재 비서실장 자리가 공석이라, 인사실장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대표님, 다음 순서로 가시죠.”

“네? 다음 순서요? 다 끝난 거 아니에요?”

지혁은 집무실로 향하려다가, 갸우뚱한 얼굴로 물었다.

“직원들 다 못 보셨잖아요.”

대강당의 자리는 한정되어 있기에, 취임식에 전 직원이 참석할 수 없었다.

“첫 시작인데, 얼굴 한번 보셔야죠.”

“뭘, 굳이······.”

인사실장은 웃으며 말했다.

“전 직원 업무 멈추고, 자리에서 대기 중입니다.”

“······.”

이러면 안 갈 수가 없다.

“가시죠. 대표님.”

지혁은 웃으며 고개를 젓고는, 인사실장을 따라갔다.

선도 빌리지 A동 전체와 건설부문 일부가 있는 B동까지.

선도물산의 직원들이 근무하는 전 구역을 돌았는데.

사무공간으로 들어선 후, 지혁은 놀라서 중얼거렸다.

“와······ 뭐 군대도 아니고.”

직원들이 업무를 멈추고 기다리는 정도가 아니라, 일렬로 도열해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대표님! 잘 부탁드립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잘하겠습니다!

“아, 네. 잘 부탁드립니다.”

지혁은 직원들과 한 명씩 눈을 마주치며 악수했다.

인사만 살짝 하고 빨리 마칠 생각이었는데.

다들 이러고 있으니, 간단하게 지나칠 수가 없었다.

고맙기도 하지만, 업무 시간에 이게 뭐 하는 건가 싶기도 했다.

그다음 층으로 이동 중에, 지혁이 말했다.

“인사실장님.”

“네!”

“다음부턴 이런 거 하지 마세요.”

“하하. 알겠습니다~”

지혁은 매섭게 바라보며, 한 번 더 얘기했다.

“그냥 하는 소리 아닙니다.”

“네······.”

인사실장은 식겁해서 목을 움츠리며 대답했다.

건설부문, 상사부문을 먼저 돌았고.

패션부문에 마지막으로 왔다.

-우와~!

-오지혁! 오지혁!

-대표님! 잘 생겼다.

직원들 반응이 확실히 달랐다.

이곳이 지혁의 진짜 뿌리니까.

‘아, 진짜. 미치겠네.’

지혁은 얼굴이 꽤 두꺼운 편이지만, 오늘은 좀 부끄러웠다.

얼굴이 벌게져서 패션부문을 돌며 인사했다.

하필, 첫 방문이 영업부였는데.

-왔다! 그가 왔다!

-선도물산의 구세주가 왔다!

-옷 팔고 싶어요! 매출 올리고 싶어요!

-대표님은 사랑입니다!

팀장 시절, 지혁은 영업부와 함께 일해본 경험이 있으며, 그들이 얼마나 열정적인지 기억한다.

“대표님! 영업부 전체 인사드리겠습니다!”

김종식 영업본부장이 앞에서 크게 선창했고.

“대표님의 건승을!”

영업부 전 직원이 일제히 외쳤다.

“확신합니다! 우와~!”

귀청 떨어지는 줄 알았다.

‘텐션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구나.’

지혁은 웃으며 말했다.

“네, 확신하셔도 됩니다.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영업부 직원들과 인사를 나눈 뒤.

‘개발팀.’

이 안내판을 보니, 지혁은 한 남자가 바로 떠올랐다.

‘심원석 부장.’

지혁이 입사하여 처음 모셨던 상사이자, 처음으로 보내버린 사무실 빌런.

일하는 방식 바꾸기 프로젝트로 개발팀을 방문했을 때, 고 차장 밑에서 쭈글이로 있던 모습을 본 게 마지막이었다.

‘지금도 계시려나.’

그 후로 1년이 더 지났고, 심 부장은 오십이 넘은 나이이기에, 자리에 없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엇?”

개발팀에 들어선 후, 지혁은 놀랐다.

심 부장은 사무실에 있었으며, 그것도 가장 안쪽 가로본능 책상 뒤에 서 있었다.

‘뭐야? 팀장인 거야? 직급은 높아도 경력으로 치면 개발팀 막내일 텐데.’

심 부장이 지혁에게 먼저 다가왔다.

“안녕하십니까. 대표님.”

“······.”

“개발팀 인사드립니다. 팀장 심원석 부장입니다.”

심 부장은 정수리가 보일 정도로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이젠 머뭇거릴 거리도 없었다.

지혁은 선도물산의 가장 꼭대기. 대표이사니까.

“와······.”

그는 심 팀장을 멍하니 바라봤다.

“심 팀장님. 대단하신데요?”

비꼬는 게 아니었다. 진심으로 하는 말이었다.

좌천되어 회사생활의 끝을 달리고 있던 사람이 다시 일어선 것이다.

“하하. 다시 내치시려고 그런 말씀 하시는 건 아니죠?”

가볍게 농담처럼 말했지만, 태도는 시종일관 깍듯했다.

지혁은 큰 소리로 웃으며 악수를 청했다.

“하하. 그럴 리가요! 정말 축하드립니다.”

심 팀장이 예전과 달라졌다는 걸 느꼈다.

‘색이 바뀌었어.’

그의 이마에서 보이던 색상이 바뀌어 있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지만.

정신이 나갈 정도로 큰 충격을 받으면, 간혹 변하기도 한다.

***

상품기획 1팀.

“와~ 예전하고 똑같네~”

지혁은 사무실로 들어오며 너스레를 떨었다.

“······.”

열렬히 환호하던 다른 팀과는 다르게, 지혁의 등장과 함께 상품기획 1팀은 정적에 휩싸였다.

“뭐야? 왜 이래요? 안 반가워요?”

대표이사가 되어 돌아온 지혁.

그의 뒤에는 인사실장을 비롯한 수행원들이 따르고 있었다.

“하아······.”

정 팀장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문규태 과장, 손정진 대리.

지혁과 함께 상품기획 1팀에서 근무했던 사람들은 눈시울이 살짝 붉어졌다.

반가움과 안도감이 섞인 눈빛.

지혁은 곧 그들의 심정을 알아챘다.

“꽤 힘들었나 보네?”

이 말이 신호가 된 듯, 세 사람은 지혁에게 다가왔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네 사람은 서로 동그랗게 둘러싸고 포옹했다.

손정진이 말했다.

“대표님, 왜 이렇게 늦으셨어요. 기다렸는데.”

“너 대리라며? 이제 밥값 제대로 하는 거야?”

손정진의 꼬꼬마 시절을 기억하고, 지혁은 웃으며 물었다.

정 팀장이 대신 대답했다.

“우리 팀 에이스입니다. 밥값 제대로 하고 있습니다.”

지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손정진의 어깨를 두드렸다.

“내가 뭐랬어. 너 잘할 거라고 했잖아.”

“대표님······.”

손정진은 왠지 가슴이 복받쳐서 한숨만 쉬었다.

“문 과장님도 늦었지만 축하드려요.”

지혁이 부름으로 물류에서 상품기획으로 왔던 문규태 대리. 지금은 과장이 되어 있었다.

“감사합니다. 다시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문 과장은 지혁을 하늘처럼 대했다.

“······.”

다들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보는 눈도 많고, 지혁의 위치가 예전과는 완전히 달라졌기에.

“오늘은 좀 그렇고.”

지혁은 웃으며 말했다.

“조만간 저녁에 시간 한번 갖죠. 상품기획 1팀만 해서. 어떻습니까?”

이 말에 세 사람은 활짝 웃으며, 일제히 대답했다.

“네! 좋습니다!”

지혁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정 팀장의 손을 잡고는 작은 소리로 말했다.

“선배님, 조만간 연락드릴게요.”

“네?!”

정 팀장은 화들짝 놀랐다가, 다시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네, 언제든 연락해 주십시오. 대표님.”

***

취임식 날 오후.

기습적인 인사발표가 났다.

[인사발령]

1) 황성준 차장 : 생산 1팀장 겸 전략실 팀원

2) 윤현성 부장 : 전략실장

3) 하재웅 이사 : 생산 1팀장 -> 생산본부장

4) 고승윤 부장 : 전략실차장

5) 장남일 이사 : 비서실장

고승윤 차장과 하재웅 생산팀장은 승진했다.

지혁의 최측근 중에 인사실장만 그대로고, 나머지는 모두 차상위 보직으로 배치받았다.

그리고 그룹 지원팀장이었던 장남일 이사는 선도물산 비서실장이 되었다.

[인사발령]

6) 배진수 대리 : 인사 팀원 -> 인사 팀장

7) 이승주 과장 : 스타덕 디자인실 팀원 -> 스타덕 디자인실 팀장

지혁과 인연이 있었던 사람들에게도 좋은 소식이 있었다.

지혁의 눈으로 검증된 인사를 선발한 거였지만, 주변에서 보기엔 오해하기 딱 좋았다.

그리고······ 이번 인사의 핵심.

부문장과 상품본부장 인사발령이 이어졌다.

[인사발령]

8) 유남혁 전무 : 상품본부장 -> 패션상사 부문장

9) 김종식 상무 : 영업본부장 -> 리조트 부문장

10) 정민경 상무 : 디자인실장 -> 상품본부장

취임식에서 나중에 보자며 예고했던 임원들.

세 사람 모두 특진과 함께 획기적인 인사발령을 받았다.

지혁은 인사발령 직후에 그들을 대표이사실로 호출했고.

“어서 오십시오.”

환한 얼굴을 그들을 맞이했다.

지혁을 마주한 그들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눈만 깜빡였다.

‘이게 웬 날벼락이야.’

‘좋은 일 같긴 한데, 왜 불안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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