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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이 능력을 숨김-199화 (199/301)

199. 관찰과 진단 (1)

양 부문장의 웃던 얼굴이 확 굳어졌다.

‘시한부.’

지혁은 직접적으로 그의 상황을 알려줬다.

그의 말에 농담처럼 받아친 거지만, 뼈가 있었고, 여기서 그걸 못 알아듣는 사람은 없었다.

“······.”

대표이사실 일행뿐만 아니라, 건설부문의 직원들도 입을 꾹 다물었고.

분위기는 싸늘해졌다.

“하하. 대표님, 말씀 참 무섭게 하시네요.”

양 부문장은 억지로 웃어보려 했지만, 입꼬리만 올라갈 뿐 눈꼬리까지 올라가지는 못했다.

기 싸움도 싸움의 한 종류다.

싸움에서 최우선 전략인 선빵.

첫 만남에서 지혁은 주도권을 확실히 잡기 위해 멈추지 않았다.

“회사생활에 큰 욕심 없으시면, 농담으로 들으셔도 됩니다.”

진담인 듯 농담 같은 이야기.

만난 지 2분여 만에 양 부문장의 등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회의실에 들어온 지 좀 지났어도, 여전히 서 있는 채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게 아니면, 뭔가를 보여주셔야 할 겁니다.”

양 부문장은 놀랐지만, 속으로는 좀 비웃었다.

‘하여간 부임하고 나면 경영자들 다 비슷해. 단기성과 요구하는 건 참······.’

“자잘한 거 말고, 압도적인 성과요.”

“······.”

“좀 걸려도 되지만, 보여주셔야 합니다.”

이제야 지혁은 악수를 청하며 말했다.

“그러라고 경영자 자리에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저 또한 마찬가지고요.”

“아, 네.”

양 부문장은 지혁에게 기에 완전히 눌렸고, 본능적으로 허리를 굽혔다.

‘확실히 보통 사람은 아니구나.’

지혁이 비서실장을 일 때 얘기는 소문을 들어 알고 있었다.

막상 부딪혀보니, 조심해야 할 사람이라는 걸 곧바로 깨달았다.

그래도 양 부문장은 자신의 체면을 지켜야 했다.

지혁 바로 뒤에 서 있는 윤 실장을 보았는데.

“이분은 누굽니까?”

“아, 인사하시죠. 전략실장입니다.”

“전략실장이요?”

윤 실장은 앞으로 나와서 양 부문장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윤현성 실장입니다.”

“그래, 반갑네.”

양 부문장은 대뜸 반말했다.

지혁은 고개를 갸웃하고는 말했다.

“윤 실장은 제 역할 대신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특히, 각 사업부 부문장님들을 주로 상대할 겁니다.”

“아~ 그렇군요. 잘 부탁하네.”

양 부문장은 자신의 위치를 보이기 위해, 일부러 말을 편하게 했고.

윤 실장은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네, 잘 부탁드립니다. 바로 경영 보고 받으면 되죠?”

“음?”

“사전에 준비해 놓으라고 말씀드렸는데요.”

양 부문장은 건설부문 전략팀장을 바라봤다.

“이봐, 준비돼있어?”

“네.”

이번엔 윤 실장을 바라봤다.

“들었나? 지금 시작할까?”

윤 실장의 표정이 좋지 않은 걸 보고, 양 부문장은 웃으며 말했다.

“말 편하게 해서 기분 나쁜가? 건설에서는 아랫사람한테 존대 안 하는데. 하하.”

그때, 양 부문장 앞에 앉은 지혁이 다 들리게 중얼거렸다.

“그럼 나도 부문장님한테 반말할까······.”

***

혼잣말이었지만, 양 부문장은 분명히 들었고.

어디선가 웃음 참는 소리도 낫다.

서른이 갓 넘은 지혁과 육십을 바라보는 양 부문장.

서로 반대되는 직급에 있는 것 같아서 이질적으로 보이는데, 거기에 지혁이 하대까지 한다면······.

“흠! 불편했다면 존대할게요.”

양 부문장은 윤 실장에게 바로 말투를 바꿨다.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이라 그런지, 확실히 눈치는 빨랐다.

“경영 보고 시작하겠습니다.”

건설부문 전략팀장이 앞으로 나와서 화면을 띄었는데.

“잠시만요.”

윤 실장이 말했다.

“경영 보고는 양 부문장님이 직접 해 주십시오.”

“뭐? 아니. 네?”

양 부문장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대표님께 하는 첫 경영보고입니다. 부문장님이 직접 해주시는 게 맞습니다. 다른 부문장님도 그렇게 하셨습니다.”

“다른 부문장님도요?”

“네.”

지혁은 이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다른 부문장들 다 그렇게 한 건 아닌데.’

패션상사 부문장은 중요한 부분만 직접 보고했고, 리조트 부문장은 아직 모르는 게 많아서, 전략팀장이 보고했다.

‘우리 윤 실장이 기분이 꽤 나빴나 보네.’

속으로 웃으며, 어쩔 줄 몰라 하는 양 부문장을 보고 있는데.

“아, 그렇다면······ 뭐.”

양 부문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앞으로 나갔고, 전략팀장에게 포인터를 받았다.

“자~ 그럼. 건설부문 경영 보고드리겠습니다.”

양 부문장은 시작하려다가, 지혁에게 물었다.

“대표님 건설 좀 아십니까?”

“잘 몰라요.”

“그럼 좀 상세하게 설명해 드리면서 할까요?”

“그래 주시면 감사하죠.”

“네.”

양 부문장은 경영보고를 시작했다.

“건설부문은 크게 빌딩, 토목, 플랜트 사업부로 나뉩니다. 여기서 빌딩은 빌딩, 주택 등 사람이 거주하는 사업을 말하는 거고요. 토목은 도로, 교량, 터널, 철도 및 항만, 공항, 댐 등 국가의 기반이 되는 기간시설에 대한 사업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지혁뿐만 아니라 패션 출신들로 구성된 전략실은 집중해서 양 부문장의 보고를 들었다.

“마지막으로 플랜트는 에너지 인프라를 건설하는 고급기술이 집약된, 경제적 파급력이 큰 고부가 가치의 사업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화력과 원자력 발전소가 이 사업에 속합니다.”

경영 보고를 이어갈수록 양 부문장의 목소리가 커졌다.

“최근 원전 사업이 커질 조짐이 보여서, 예의 주시하고 있습니다. 저희 건설부문은 전년에 매출 12조 3천······.”

지혁은 건설부문 경영보고를 받기 위해 참석했지만, 양 부문장을 보기 위한 목적이 더 컸다.

말투, 표정, 눈빛, 지식.

양 부문장이 발표하는 동안 그의 모든 걸 살폈다.

그리고······이마의 색.

‘흰색.’

지혁이 가장 아끼는 황 차장과 같은 색인 ‘흰색’을 띄고 있었다.

아주 새하얀 색은 아니지만, 이 정도면 꽤 원색에 가까운 흰색이었다.

‘의왼데?’

처음 기선 제압하려고 머리 쓰는 걸 보면서, 회색이나 청록색 사람은 아닐까 생각했었다.

‘그냥, 자기감정에 솔직한 사람이구나.’

“현재 수주잔고는 15조 원이며, 전년보다 1조 원 줄어들었으나 올해 대형 프로젝트가 계획되어 있어서 전년 대비 영업이익 증대가······.”

게다가 꽤 전문적이었다.

시작하기 전에 지혁에게 자세한 보고를 원하냐고 물어봤던 건,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발표를 준비한 건 아닌 듯한데도, 막힘이 없었다.

‘빠꾸미.’

관리, 감독 형이 아니라, 기술 지식이 빠삭한 현장경험이 충분한 경영자 같았다.

자세하게 설명하며 발표하다 보니, 시간은 꽤 길어졌고.

1시간 정도 지났을 무렵.

“이상 경영 보고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양 부문장은 이마의 땀을 훔쳤다.

***

짝짝짝.

보고를 마친 뒤, 회의실에 모인 사람들은 일제히 박수를 보냈고.

윤 실장이 박수를 치면서, 지혁에게 귓속말로 말했다.

“괜찮은데요?”

“실장님도 그렇게 느꼈어요?”

“네.”

지혁은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압박 좀 해봐요.”

“무슨 압박이요? 이렇게 자세히 발표하셨는데.”

“억지를 쓰든 뭘 하든 압박 좀 해보세요.”

“아니, 그걸 왜 저한테······ 대표님이 하시지.”

지혁은 윤 실장을 향해 눈을 흘기며 말했다.

“전략 실장님······.”

“알겠습니다.”

윤 실장은 잠시 생각한 후 손을 들었다.

“부문장님, 질문 있습니다.”

“네, 말씀하세요.”

“원전 사업이 커질 조짐이 보인다고 하셨는데, 근거가 궁금합니다.”

양 부문장은 곧바로 대답했다.

“간단합니다. 유가가 오르고 있고, 친환경 에너지는 유지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원전 기술력이 상당히 좋아져서, 웬만한 자연재해에도 사고가 날 가능성은 아주 적다는 인식도 퍼지고 있어서요. 최근 문의가 많이 오고 있습니다.”

“······.”

“물론 만에 하나는 모르기에, 원전을 안 쓸 수 있다면 안 쓰는 게 좋겠죠. 하지만, 앞서 말씀드린 국제 환경 때문에 각 국가가 이상보다는 현실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원전 사업에 집중하면 여론이 안 좋아지지 않을까요? 환경 단체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요.”

윤 실장은 일부러 억지스러운 질문을 해봤는데.

“우리는 이윤을 추구하는 집단입니다. 물론 ESG(사회책임투자)도 고려해야겠지만, 잘못된 상식이 득세하는 상황이 두려워서 저희가 가야 할 길을 못 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

“수준 높은 기술력으로 안전하게 하면 됩니다. 물론, 돈도 많이 벌고요.”

윤 실장은 고개를 끄덕인 후 주제를 바꾸었다.

“아까 수주잔고가 전년 대비 줄었다고 하셨는데요.”

“네.”

“그건 좀 문제가 있지 않나요? 수주잔고라는 게 곧 미래를 위한 보험이 아닐까 싶어서요. 이전에 받아 놓은 일거리만 계속 까먹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양 본부장은 웃으며 말했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어폐가 있습니다. 수주잔고에 있는 프로젝트의 성격을 보셔야 합니다. 수익성을 우선적으로 보고 프로젝트를 선별하여 받아들이고 있거든요.”

“······.”

“그러니까, 돈이 많이 되는 수주만 받아 놓은 겁니다.”

“만약 수주잔고가 부족한 상태에서 좋지 않은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면요? 장비와 인력을 놀리게 될 텐데요.”

양 본부장은 고개를 저었다.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게 해야죠.”

“그걸 어떻게 자신하십니까? 유럽에서 생각지도 못한 전쟁도 벌어지고 있는 판국에.”

“그렇다고 아무 수주나 막 받습니까?”

두 사람의 문답을 치열했고.

회의실에 모인 사람들은 긴장했지만.

지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네.’

양 부문장에 대한 관찰은 끝났다.

이제 다른 걸 할 차례다.

***

“두 분 무슨 말씀 하시는 줄 잘 알겠고요.”

공방이 이어지던 가운데, 지혁이 끼어들었다.

“이런 거 아주 좋습니다. 두 분 대화 가운데, 배우는 게 있거든요.”

지혁은 ‘수주잔고’에 집중했다.

“부문장님, 수주잔고 15조 원이면 너무 부족한 거 아닙니까? 연간 매출이 12조 정도 하잖아요.”

“부족하지 않습니다.”

“매출이 매년 줄어들고 있는 것 같던데요.”

“영업이익은 늘고 있습니다.”

지혁은 고개를 저었다.

“전 규모를 얘기하고 있습니다. 체질이 아니라요.”

“······.”

“보아하니, 수익성 좋은 프로젝트만 수주받는 기조를 몇 년간 이어오신 거 같은데. 그 정도면 체질 개선은 되었다고 보거든요?”

지혁은 안광을 쏟아내었다.

“언제까지 안정적으로만 할 수 없잖아요. 규모를 키워야죠.”

“흠! 하지만, 오 부회장님께서······.”

순간, 지혁은 자기 귀를 의심했다.

“잠깐, 누구요?”

“오진양 부회장님입니다.”

윤 실장도 놀랐다.

‘갑자기 그 사람 얘기가 왜 나와?’

지혁은 놀라서 양 부문장을 바라봤지만.

그는 순진한 얼굴로 지혁을 바라봤다.

‘다른 의도는 없는 것 같은데.’

“네, 계속 얘기하시죠.”

“4년 전부터 오 부회장님이 영업 축소를 지시하셨거든요. 질을 높여야 한다고.”

그는 선도전자 대표이자, 실질적인 기업 총수나 마찬가지였으며.

다른 관계사의 경영에도 관여했었다.

“지시에 따라서 영업사업부를 축소했다가, 3년 전에 ‘사업부’에서 ‘팀’으로 내렸습니다.”

“······.”

지혁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당장 뭐부터 해야 할지 나왔네요.”

“······.”

“건설부문 영업본부부터 부활시킵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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