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 싫어서가 아니야 (1)
“가자고요.”
“······.”
“대표님?”
오진원은 계속 못 들은 척했지만.
“저기요?”
최 부회장은 오진원의 눈앞에 손을 휘저었다.
“아, 왜요~”
오진원이 신경질적으로 반응하자, 최 부회장은 껄껄 웃으며 말했다.
“무언은 긍정의 대답으로 알고, 대표님 참석자로 넣어서 스케줄 잡을게요.”
그제야 오진원이 소리쳤다.
“부회장님 왜 그러세요~ 눈치도 빠르신 분이~”
“하하.”
“지금 일부러 그러시는 거죠?”
“일부러 그러는 거죠.”
오진원은 당황해서 말했다.
“아니, 왜 그러세요? 저 이제 미래기획실도 아닌데?”
“미래기획실 아니어도 갈 수 있습니다. 선도전자의 대표이사님이시며, 미래기획실 실차장님이시니까요.”
“저 이제 실차장 아닌데요?”
“현재 공석이니까, 겸직으로 봐도 됩니다.”
“참나, 그런 억지가······.”
최 부회장은 빙그레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리고 오지혁 대표의 형님이시고, 한 편이잖아요. 못 갈 이유 없죠.”
“······.”
오진원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진심으로 가고 싶지 않았다.
지혁을 만나면 왠지 모르게 움츠러드는 마음도 그렇고······.
“그렇게 싫으세요?”
최 부회장이 진지한 얼굴로 묻자, 오진원은 살짝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지혁이가 싫어서가 아니라요.”
“······.”
“지금 좀 미안한 마음이 있어서 그래요.”
최 부회장이 그의 마음을 모르지 않는다. 오진원의 선도전자 대표이사 발령으로 모양새가 이상하게 되어버린 상황 때문일 것이다.
“아는데요. 피하면 더 이상해져요.”
“······.”
오진원은 선도전자 대표이사로 발령받았을 때, 지혁과의 통화를 기억했다.
‘찬바람이 쌩쌩······.’
“진짜 본의 아니게 낀 기분이에요.”
“······.”
최 부회장은 가만히 생각하다가 문득 물었다.
“이 발령······ 오 대표님 정말 몰랐던 일이죠?”
“네?”
“사전에 오 회장님과 아무런 얘기 없었죠?”
오진원은 묘한 눈길로 최 부회장을 바라봤다.
“왜 자꾸 물어보세요? 아니라고 했잖아요.”
“······.”
“전 오히려 최 부회장님이 몰랐다는 게 이해가 안 되는데.”
“알 리가 없죠. 그때 윤리경영위 이후로 저를 피하시는데.”
오진원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회장님이 멀리하는 건 저도 마찬가지예요.”
“그래도 대표님은 친자식이잖아요.”
이 말에 오진원의 턱 근육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최 부회장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여간, 회장님 참 고단수에요. 이렇게 발령을 내시다니.”
“······.”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럼 다음 주에 함께 가시는 거로 알게요. 오 대표님 일정 보고 저희가 시간 맞출 테니까요.”
오진원은 불편한 얼굴이지만, 더 말리지 못했다.
“서로 얼굴 본 지 꽤 됐잖아요. 그럼 다음 주에 봅시다.”
***
선도물산 현관 앞.
검은색 세단 5대가 일렬로 섰다.
최 부회장과 오진원은 한 차에 타고 있었는데.
오진원은 최 부회장의 굳은 얼굴을 보다가, 피식 웃고 말했다.
“선도전자 오셨을 때는 굉장히 편안해 보이셨는데.”
최 부회장은 오늘 지혁을 상대로 컨설팅해야 한다.
미래기획실에 몇십 년을 있으며 수백 번 컨설팅했지만, 이렇게 버거운 기분을 느낀 적은 없었다.
지혁을 옆에서 지켜봐서, 그를 잘 알기 때문이다.
‘오늘 최대한 간단하게 끝내야지.’
후유-
최 부회장은 크게 숨 한번 쉬고 나가려다가, 오진원을 보았는데.
“대표님은 왜 얼어 있어요? 오늘 옆에서 구경만 하실 건데.”
“아~ 몰라요. 지혁이는 왠지 어려워요.”
지혁을 만나기도 전에 쩔쩔매는 서로의 모습이 재밌어서, 두 사람은 피식 웃었다.
“나갑시다.”
“네.”
덜컹.
문을 열고 나가니.
“어서 오십시오~”
지혁이 현관에서 나와서 두 팔을 벌리며, 환하게 웃고 있었고.
짝짝짝.
도열한 선도물산의 임원들이 일제히 박수를 보냈다.
생각보다 큰 환대에 최 부회장은 당황했다.
‘뭐야, 부담스럽게.’
최 부회장과 오진원.
두 사람 모두 선도그룹에서 존경받는 사람이기에, 직원들의 박수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최 부회장이 지혁에게 다가가 악수했다.
“오 대표. 잘 지냈나?”
“네, 부회장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왜 이렇게 늦게 오셨어요? 저 부임한 지가 언젠데.”
“고수를 상대하려니, 긴장돼서 말이야.”
“하하. 별말씀을. 많이 가르쳐 주십시오.”
그리고 지혁은 최 부회장 바로 뒤에 있는 오진원을 바라봤다.
“대표님!”
“어, 오 대표.”
지혁은 오진원에게 다가갔고, 그에겐 악수 대신 포옹을 했다.
와락.
오진원은 살짝 당황했다.
“잘 지냈어요?”
“응? 어, 어.”
지혁은 오진원을 향해 활짝 웃었는데.
다른 의도는 보이지 않았다.
간혹 필요 때문에 강하게 대할 뿐, 지혁은 오진원을 좋아한다.
“와줘서 고마워요. 대표님도 부임한 지 얼마 안 돼서 바쁘실 텐데.”
“어, 아니야. 초대해줘서 내가 고맙지.”
“좀 늦었지만, 축하드려요. 하하. 선도전자 대표이사라니.”
그룹 총수 못지않은, 세계가 주목하는 거대한 자리다.
“어······ 고마워. 근데, 사실 난 그다지 좋진 않아.”
지혁의 친근함에 오진원은 긴장이 풀렸고, 장난스럽게 말했다.
“하하. 형님도 참.”
지혁은 자연스럽게 형님 소리가 나왔다.
“두 분 이쪽으로 오시죠.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이쪽부터 우리 회사 부문장님들입니다.”
지혁은 세 명의 부문장을 소개했다.
“안녕하십니까. 건설 부문장 양은철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패션상사 부문장 유남혁입니다.”
“처음 인사드립니다. 리조트 부문장 김종식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최 부회장은 고개를 갸웃했다.
“음? 리조트 부문장이요?”
그가 알기로 선도물산에 ‘리조트 부문’은 없었다.
“최근에 조직개편을 했습니다.”
“아~ 리조트를 분리한 거구나. 왜 그렇게 했지?”
지혁은 자연스럽게 리드했다.
“그건 경영 보고드리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흠. 그래.”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평소 최 부회장은 컨설팅에 오면 초반부터 강한 카리스마로 휘어잡는데.
오늘은 분위기가 좀 달랐다.
지혁이 특별히 뭔가를 한 건 없지만.
선도물산 측에서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었다.
***
선도물산 대회의실.
최 부회장과 오진원이 가운데 자리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각자 인사는 나누신 거 같은데요.”
앞에는 지혁이 서 있었다.
“그럼 경영보고 드리겠습니다.”
“잠깐.”
최 부회장이 말렸다.
“오 대표가 직접 하려고?”
“네.”
“그럴 필요 없네. 나중에 회장님 오시게 되면 그때나 직접 보고하고. 난 그룹 전략실에서 온 거나 마찬가지니, 전략실장이 발표해도 돼.”
“······.”
“어차피 그 사람이 준비했을 거 아닌가?”
지혁은 싱긋 웃고는 말했다.
“제가 준비했습니다.”
“음?”
최 부회장은 놀라서 지혁을 바라봤다.
‘보고서를 대표이사가 직접 만들었다고?’
“우리 전략실장은 안 살림 챙기느라 정신이 없어서요.”
윤 실장은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그 또한 그룹 비서실에 있었기에 최 부회장과 안면이 있다.
“VIP를 모시는 자리기도 해서, 제가 직접 경영보고 준비했습니다.”
“······.”
최 부회장은 마른침을 삼켰다.
‘시작부터 부담스러운데. 제대로 지적이나 할 수 있을까.’
그룹 컨설팅.
의구심이 있으면 가감 없이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책을 혹은 과제를 던져줘야 하는데.
과연 그럴 수 있을지 염려가 되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많은 가르침 부탁드립니다.”
픽!
앞 스크린에 화면이 떴다.
“보시는 화면은 배포해 드린 서면 보고서와 같습니다. 자세한 건 보고서 봐주시면 되고요. 중요 부분만 설명해 드리면서 진행하겠습니다. 질문은 다 끝난 후에 받겠습니다.”
지혁은 조직개편에 대해서 먼저 설명했다.
“부임하면서 조직개편을 했는데, 시너지를 내기 위해 패션과 상사를 합쳤고요. 성격이 독립적인 리조트는 분리했습니다.”
그 이후, 부문별 집중 전략에 대해 보고했다.
‘건설 부문 : 수주잔고 확보.’
‘패션상사 부문 : 업무역량 시너지 및 제품 퀄리티 집중.’
‘리조트 부문 : 사업 확장.’
아주 세부적인 보고는 아니었으나 깔끔하며 적절했다. 핵심만 짚어서 보고하여, 경영보고는 빠르게 진행되었고.
어느덧 마지막 페이지에 다다랐다.
짧고 굵게 하니, 보는 사람들은 지루할 틈이 없었다.
최 부회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오 대표가 준비 많이 했구나.’
보고를 많이 받아본 사람은 안다.
내용을 요약하여 압축하는 게 훨씬 더 어렵다는 걸.
“이상, 선도물산 경영보고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짝짝짝.
‘약 15분.’
깔끔하게 끝냈다.
***
“대표님, 보고 잘 들었습니다. 이제 질문드려도 되죠?”
경영보고 자리라서, 최 부회장 격식을 갖추어 말했다.
“네.”
“아까 했던 얘기 좀 해봅시다.”
“······.”
“리조트는 왜 분리한 건가요?”
지혁은 정중히 대답했다.
“보고드린 내용 그대로입니다. 확장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 부회장의 눈이 빛났다.
“제가 알기로는 리조트 부문의 주력은 네버랜드고, 그게 다인 걸로 알고 있거든요?”
“······.”
“게다가 계속 적자를 면하지 못하다가, 올해 첫 흑자를 기록했다고 들었습니다.”
지혁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사업 확장을 한다고 해도, 리조트만 분리할 정도까지의 규모는 아니라고 보는데.”
“······.”
“낭비 아닙니까?”
아무래도 합치는 것보다는 분리하는 게 판관비가 더 많이 든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냐는 질문이었는데.
지혁은 술술 대답했다.
“규모는 작습니다만, 체질이 완전 다릅니다. 기존에 리조트는 상사 부문 안에 있었죠. 어울린다고 보십니까? 상사 말고도 패션, 건설 등 어느 부문으로 들어가도 어울리지 않습니다.”
“······.”
“그리고 네버랜드는 이익 추구보다는 브랜딩이 주력이라서, 비즈니스 성격이 완전히 다릅니다.”
최 부회장은 자세를 고쳐잡았다.
“흥미롭네요. 그 얘기 좀 자세히 들어봅시다. 이익 추구보다는 브랜딩이라······.”
리조트 부문에 관심이 집중되기 시작하면서, 김종식 부문장은 점점 사색이 되어 가고 있었다.
‘난 아직 준비가 덜 되었는데······.’
어쨌든 부문장이기에, 세부적인 설명은 본인이 해야 한다.
어떻게 얘기해야 할지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데.
“김 부문장님.”
“네? 네!”
지혁의 부름에 김 부문장은 깜짝 놀라서 대답했다.
“지금 리조트에서 준비하고 있는 거 있죠?”
“이, 있습니다.”
“그거 자료 준비 좀 해주실래요?”
“네?”
지혁은 눈짓을 살짝 했다.
‘시간을 벌어주려는 건가?’
“궁금해하시니까, 제대로 보고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15분 정도면 될까요?”
김 부문장은 내심 고마웠다.
“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그래요. 부회장님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그동안은 다른 얘기 나누죠.”
“그럽시다.”
김 부문장이 일어났고, 지혁이 말했다.
“리조트 관련해서 사업부에서 준비하는 것 외에 대표이사실에서도 큰 그림을 그리고 있거든요.”
“그래요?”
“네, 이 또한 사업 확장에 관한 건데요.”
김 부문장은 전략실장에게 연락하며, 회의실 밖으로 나가려다가.
지혁의 말에 자기 귀를 의심했다.
“네버랜드의 해외 진출을 생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