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사원이 능력을 숨김-206화 (206/301)

206. 어색한 재회 (1)

“와~ 어머니 너무 고와요~”

“호호. 민망하네.”

“왜요~ 새색시 같으신데요~ 호호.”

어머니와 수아는 한복 입은 서로를 향해 이쁘다며 난리였다.

추석. 오 회장댁 가는 날.

지혁의 가족은 모두 한복으로 맞춰 입었다.

한복은 전혀 생각 안 했었는데.

‘명절엔 가족들 모두 한복을 입어.’

오진원이 준 팁이었다.

손님이 아니며, 가족으로 명절 인사드리러 가는 자리다.

그래서 부랴부랴 한복을 맞췄다.

“아유~ 불편하게 뭔 한복을 입으라고.”

불편하다면서 어머니의 얼굴은 한껏 상기되어 있었다.

곱게 한복을 차려입고 가족 모임을 하는 재벌가의 모습. TV 뉴스나 연예가 소식에서나 봤던 걸 오늘 실제로 하는 것이다.

“결혼식 때도 못 입어봤는데. 호호.”

수아도 한껏 신났다.

지혁은 이런 모습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이제 맵시는 그만 봐도 될 것 같은데. 가실까요?”

청색 두루마기를 입은 지혁이 말하자, 어머니는 가자미눈을 뜨고 봤다.

“우리 아들······ 한복도 잘 어울리네. 귀태가 나 귀태가.”

수아가 웃으며 말했다.

“뭔들 어머니 눈엔 안 멋지겠어요~”

“어머. 얘 좀 봐? 네가 보기엔 안 멋지니?”

“저야 뭐······.”

수아는 지혁에 눈을 흘기며 볼이 빨개졌다.

지혁 또한 수아가 한복을 입고 수줍은 미소를 짓는 게 귀여워 보였다.

‘오늘 밤엔 한복을 입고······.’

지혁의 입꼬리가 실룩이는데.

수아는 그의 속마음을 알아채고, 살짝 꼬집으며 밀쳤다.

“이상한 상상 하지 마시고요. 어서 가시죠? 지아비님.”

“하하. 그럽시다. 부인.”

두 사람은 팔짱 끼며 집을 나섰고.

어머니는 고개를 저으며 두 사람의 뒤를 따랐다.

걸어가던 중, 어머니가 지혁의 소매를 살짝 끌어당겼다.

“아들, 혹시 큰집이랑 무슨 일 있었냐?”

“네?”

어머니가 큰집에 연락한 이후, 별말이 없어서 얘기가 잘 된 걸로만 생각했었다.

“왜요? 혹시 큰 어머니께서 뭐라 하세요?”

“그 정도까지는 아니고.”

“······.”

“명절 때 간다고 하니까, 난감해하시던데?”

“아······.”

‘당연히 난감해하시겠지.’

큰어머니가 윤리경영위 일을 모르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 회사 경영에 완전히 손 떼지는 않았으니까.

지혁은 잠시 생각한 후 말했다.

“별거 아니고요. 그냥 회사 일이 좀 있었어요.”

“또 진양이야?”

“······.”

지혁은 대꾸하지 않았고, 어머니는 대답을 듣지 않아도 알겠다는 듯 고개를 젓다가 말했다.

“가서 엄마랑 네 아내가 조심해야 할 거 있어?”

“······.”

“가려서 해야 할 말이라든지.”

이제 수아도 아는 척은 안 했지만, 옆에서 듣고 있었다.

“그런 거 없어요. 평소대로 하시면 돼요.”

“알았다.”

차에 타려다가.

찰싹!

어머니는 지혁의 어깨를 살짝 때리며 말했다.

“같은 편끼리 공유 좀 하자. 응? 꼭 엄마가 물어봐야 말해주니?”

“같은 편이요? 하하. 네, 알겠어요.”

***

차는 성북동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거대한 저택들 사이를 뚫고 가던 중.

위이잉-

오진원에게 메시지가 왔다.

‘작은아버지들 다 와 계셔. 정말 오늘 꼭 와야 하니?’

지혁은 여전히 서로의 한복을 만지며 한껏 들뜬 두 여자를 본 후.

오진원에게 답장을 보냈다.

‘이미 거의 다 왔어요. 집에서 봬요.’

“오 대표님. 우리도 이런 저택에 살아볼까?”

선도물산 대표로 발령 난 이후, 수아는 지혁에게 종종 대표라며 장난스럽게 부른다.

“회사 대표면 이 정도 되는 집에 살아야 하는 거 아니야?”

지혁은 피식 웃고는 말했다.

“저택은 답답해서 싫다며?”

“헤헤. 그냥 해본 소리야. 난 지금 사는 곳이 딱 좋아. 한강뷰~”

어머니가 살짝 밀치며 말했다.

“어휴~ 좋은 데 산다고 자랑하는 거 봐.”

“진짜 좋아요~ 어머니~ 우리 아파트로 이사 오세요~”

“내가 돈이 어딨냐?”

“대표님이 해주실걸요?”

어머니는 수아의 얼굴을 본 후 웃으며 말했다.

“그래~ 말이라도 고맙다. 근데 고부간에 가까운데 사는 거 아니야.”

“어머, 어머니. 무슨 소리세요~ 전 어머니 자주 뵙고 싶은데.”

지혁은 두 여자를 보며 생각했다.

‘이것도 가장의 무게겠지.’

지금 적의 아가리로 들어가고 있고, 머릿속이 복잡한데.

두 여자는 여름휴가 가는 분위기다.

그렇다고 불안함을 보일 수는 없었다.

“도착했네요.”

거대한 주택 앞에 섰다.

위이잉-

차고 문이 열렸고, 미끄러지듯 거대한 성 같은 저택으로 들어갔다.

차에서 내려서, 돌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

오 회장의 모습이 지혁의 눈에 가장 먼저 보였다.

윤리경영위 이후 처음 만난다.

그게 벌써 2달 전이다.

“회장님, 안녕하십니까.”

“호칭이 잘못된 거 아니냐? 오늘 가족 모임으로 온 거잖아.”

지혁은 재빨리 다시 인사했다.

“네, 큰아버지. 오랜만에 뵙습니다. 건강하셨죠?”

“건강이라······ 뭐 아픈 데는 없다.”

대답은 받아주지만, 차가운 분위기는 어쩔 수 없었다.

“제수씨, 어서 오세요.”

오 회장의 인사에 어머니는 깍듯이 인사했다.

“아주버님, 인사드리러 왔습니다.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족끼리 무슨 그런 말씀을 하세요. 어서 들어오세요.”

현관 앞에서 큰어머니, 형제들과 인사한 후.

안으로 들어가니, 고령의 어르신들이 보였다.

“어이쿠~ 어서 오세요. 소식 듣고 기다리고 있었어요.”

대머리에 은테안경을 쓴 노인.

제원그룹 명예회장 오종휘.

제원그룹은 식자재부터 방송 미디어까지, 광범위한 사업영역을 가진 거대 그룹이다.

실제로 그를 만난 건 처음이지만, 언론에 종종 모습을 보였기에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제수씨, 저 기억하세요?”

“그럼요. 아주버님. 너무 오랜만에 뵙습니다.”

“종원이 소식은 형님한테 들었습니다.”

“그러셨어요.”

어머니는 오종건 회장을 처음 만났을 때처럼, 남편 얘기에 살짝 눈가를 훔쳤다.

제원그룹 회장 뒤의 키가 큰 노인.

세계그룹 명예회장 오종민.

세계그룹은 대한민국 유통업계의 1위다.

“혼자서 고생이 많으셨겠어요.”

“안녕하세요. 별말씀을요.”

어머니는 세계그룹 회장의 인사에 화답했다.

세 사람은 한동안 선 채로 안부를 주고받다가.

제원그룹 회장이 지혁을 보았다.

“네가 지혁이구나?”

세계그룹 회장도 웃으며 말했다.

“선도그룹의 실세라고 불리는 오 비서실장? 하하.”

지혁은 깍듯이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오지혁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지금은 비서실장이 아닌, 선도물산 대표직을 맡고 있습니다.”

“아~ 그래? 반갑다.”

제원그룹 회장은 지혁에게 악수하며 말했다.

“종원이랑 똑 닮았네.”

***

지혁은 두 회장의 인상을 살폈다.

‘확실히 범상치 않군.’

제원그룹 회장은 ‘붉은색’, 세계그룹 회장은 ‘검은색’을 이마에서 보이고 있었는데.

둘 다 영롱한 원색에 가까웠다.

“형님, 자식들도 똑똑하고, 이런 좋은 인재가 선도그룹에 있는데. 왜 아직도 회장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거예요?”

제원그룹 회장은 오 회장을 돌아보며 말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오 회장만 현직이며, 두 동생은 은퇴하여 명예회장으로 있다.

세계그룹 회장도 볼멘소리로 거들었다.

“일 욕심이 많으신 거죠. 적당히 놓을 줄도 아셔야 하는데.”

오 회장은 입술을 꾹 다물고 대답하지 않았다.

‘이것들이 속도 모르면서.’

처음엔 장남이 미덥지 않아서 자리에서 내려가지 못했었고.

지금은 웬 뻐꾸기가 둥지 위로 올라와서 자리를 뺏으려 하니, 더 내려가지 못했다.

이런 자세한 사정까지 동생들에게 말할 수는 없었다.

미묘한 분위기 속에 지혁이 뻘쭘하게 서 있는데.

“왔냐?”

오진원이 지혁의 어깨를 툭 치며 다가왔다.

“와, 형님. 여기서 보니 엄청 반갑네요?”

“하하.”

오진원은 웃으며 말했다.

“어색해?”

“······.”

“그러지 마~ 너랑 안 어울려.”

어르신들끼리 대화 나누었고, 지혁은 오진원과 함께 거실 한쪽으로 왔는데.

신경 쓰이는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큰형님은요?”

“집에 없어.”

“명절인데, 장남이 집에 없어요?”

“그날 이후로 집에 잘 안 와.”

그날은 윤리경영위를 말하는 거였다.

“뭐, 일 있어서 좀 늦는다고. 밥 먹을 시간에 맞춰온다고 했는데.”

“······.”

“모르지 뭐. 어쨌든 오긴 하겠지.”

지혁은 고개를 끄덕인 후, 현관에서 인사하느라 잠깐 마주쳤던 오혜빈을 떠올렸다.

“혜빈 누나는 방으로 올라간 거죠?”

“응.”

“오늘 보니까, 수신 제한인 것 같네요. 전화 거절 메시지가 아니라.”

그녀가 지혁을 마주할 때 찬 바람이 쌩쌩 불었었다.

오진원은 지혁의 어깨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우리 지혁이 참 오래 살겠어~ 욕 많이 먹어서.”

“오래 살아요?”

지혁은 혼잣말로 중얼거린 후, 표정이 굳어졌다.

‘오래 산다고 좋은 게 아닌데.’

‘그 세계’의 사람들이 종종 하는 말이 있다. 차라리 ‘D-DAY’ 때 죽는 게 나을 뻔했다고.

“야, 농담 한마디 했는데, 왜 이렇게 심각해져?”

삶과 죽음에 관한 얘기만 나오면, 조건 반사적으로 이렇게 된다.

지혁은 억지로 웃으며 얼굴 근육을 푸는데, 부엌에서 소리가 들렸다.

[식사하러 오세요.]

***

‘이래서 큰 식탁을 들여놓은 거였구나.’

인원이 꽤 많았는데도, 앉을 자리는 부족하지 않았다.

“회장님, 이쪽으로 앉으십시오.”

지혁은 오 회장이 식탁 가까이 오자, 의자까지 빼주며 극진히 모셨다.

“흠.”

오 회장은 어색한 표정으로 지혁이 빼준 의자에 앉았다.

제원그룹 회장은 이 모습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확실히 비서실장이라 다르네.”

“그러게요. 회장님 모시는 게 아주 능숙한데요?”

세계그룹 회장도 웃으며 맞장구쳤다.

그렇게 저녁 식사는 시작되었고.

오 회장을 중심으로 웃어른들은 식탁 오른쪽 끝에 모여 앉았는데.

지혁과 오진원도 그쪽에 함께 자리했다.

“지혁아, 네가 그렇게 일을 잘한다며?”

세계그룹 회장의 물음에.

“아······.”

지혁은 겸양을 떨까 하다가, 본인 스타일대로 갔다.

“좀 합니다.”

두 명예회장은 멍하니 있다가, 큰 소리로 웃었다.

“하하. 패기 보소.”

“확실히 물건이네.”

제원그룹 회장이 말했다.

“내가 명예회장이긴 하지만, 경영일선에서 완전히 떠난 건 아니라 좀 듣는 게 있거든? 네가 선도그룹에서 아주 뜨거운 감자라며?”

지혁은 부인하지 않았다.

“네, 어쩌다 보니.”

“왜 그런 거 같아?”

“필요한 일은 피하지 않다 보니, 그렇게 된 거 같습니다.”

이 대답에 오 회장의 표정이 굳어졌다.

하지만 미묘한 변화라서, 지혁 외에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하하!”

제원그룹 회장은 지혁의 대답이 재밌어서 웃었다.

“네 아버지와는 내가 가장 친했는데. 왜 선도그룹으로 입사한 거야? 제원그룹으로 오지. 몇 마디만 나눠봐도 알겠어. 아주 탐나는 인재네.”

이 말에 오 회장의 표정이 불편해졌다.

제원그룹 회장은 오 회장의 눈치를 슬쩍 본 후 지혁에게 말했다.

“선도그룹에서 일하기 힘들면, 작은아버지한테 연락해. 받아줄 테니까.”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는 대답이라, 지혁은 살짝 미소 짓기만 했다.

딩동!

벨 소리가 들렸다.

“진양이 왔나 보네.”

연일 오 씨 ‘진’자 돌림의 장남.

작은아버지들과 오 회장은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오 부회장을 맞이하기 위해 모두 현관으로 나갔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들어오자마자, 오 부회장과 지혁의 눈이 마주쳤고.

스파크가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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