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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이 능력을 숨김-212화 (212/301)

212. 불편한 첩보

윤 실장의 한마디에 국가전력 측은 술렁였다.

-갑자기 무슨 소리야?

-독일전력공사?

-거기 처음 사카라 원전 수주 때 참여했었잖아?

-진짜라고?

-에이 설마······.

불안하긴 했으나, 설마 요르단이 다른 사업자를 찾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었다.

국전 측의 술렁임 때문에 말이 끊겼었는데.

윤 실장은 잠깐 기다렸다가 입을 열었다.

“계속 말씀드려도 될까요?”

좀 전까지만 해도 느긋한 표정이던 해외원전본부장 홍 부사장은 빠르게 대답했다.

“어서 얘기하세요.”

“네, 방금 말씀드렸던 대로 협의 중이고요. 지금 실무자급이 만나서 계약사항을 두 차례 정도 논의 했다고 합니다.”

“······.”

“계약이 체결되기 전이지만, 중요한 얘기는 끝났고 지금 세부 사항 조율 중이라······.”

꿀꺽.

회의실에 모인 모든 사람은 윤 실장의 입만 바라봤다.

“계약이 초읽기에 들어간 걸로 봐도 될 것 같습니다.”

건설부문 직원들도 처음 듣는 얘기였다.

‘이래서 대표님이 서두르신 거구나. 근데, 왜 얘기를 안 해주셨을까.’

미팅하기 전까지 첩보 내용이 국전 측에 흘러 들어가지 않게 하려고, 건설 부문에도 내용을 공유해주지 않았다.

만에 하나 때문이다.

‘내부에 쥐새끼가 있을지 몰라.’

이런 상황 속에서도 국전이 느긋한 태도를 보이는 게 이해하기 어려웠다.

‘아무리 일거리 만들기 싫은 게 회사원 마인드라지만. 이건 좀 아니잖아.’

상식적이지 않은 현상은 의심해 봐야 한다.

국전 내부에 독일전력공사를 돕고 있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

회의실 내부에 싸늘한 정적이 흘렀다.

그 누구도 쉽게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게 만약 사실이라면 상당히 충격적인데요.”

홍 부사장이 입을 열었는데, ‘만약’이라는 단서를 붙였다.

그들로서는 충분히 그럴 만했다.

정부 기관과 연관된 국전에서도 모르는 정보를 선도물산이 알고 있다는 게, 쉽게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다.

“믿어도 되는 정보입니까?”

대놓고 물었고, 윤 실장은 예상한 질문이라는 듯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선도물산에는 전 세계에 뻗친 네트워크가 있습니다.”

“네트워크요?”

“네. 상사 네트워크죠.”

“상사······.”

지금은 패션상사 부문으로 명칭이 바뀌었지만.

선도물산은 상사로 시작한 회사다.

전 세계 곳곳에 오랜 기간 구축한 상사 네트워크가 있다.

“상사는 업종 특성상 박리다매 전략인 경우가 많아서, 단돈 몇 센트에도 수백만 달러의 매출 규모가 왔다 갔다 하죠.”

“······.”

“그래서 현지화 전략이 매우 중요하고, 정보력이 곧 경쟁력입니다. 국가 간 분쟁이 나서, 정부가 해결 못 하는 걸 국제 상사들이 뚫어낸 사례가 몇 번 있었죠.”

윤 실장은 그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설명을 길게 했다.

“이란-이라크 전쟁 초기, 해상 경로가 막혀서 무역에 어려움을 겪었을 때, 상사맨들이 인맥으로 육로를 뚫어냈던 건 유명한 일화죠.”

이제야 홍 부사장은 이제야 고개를 끄덕였고, 윤 실장이 말했다.

“선도물산 상사맨들의 정보력은 의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

홍 부사장은 원전 전략실장과 귓속말을 주고받은 후, 윤 실장에게 물었다.

“상사분들이 어떤 경로를 통해 정보를 얻으신 건지. 들어볼 수 있을까요?”

“······.”

“못 믿어서라기보다는 신중히 처리하기 위함입니다. 중요한 일이니까요.”

윤 실장은 더 자세히 설명해도 되는지, 허락을 구하기 위해 지혁을 바라보았고.

그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얘기해주세요. 아무래도 설명이 필요한 일이니까.”

“알겠습니다.”

윤 실장은 국전 측을 향해 말했다.

“회사 대외비라 말씀드리기 조심스러운 부분만 제외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얘기는 절대로 다른 곳에서 하지 말아 주십시오.”

홍 부사장이 대표로 대답했다.

“네, 그렇게 할게요.”

윤 실장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도물산 상사 사업부는 독일에서 광물 자원 사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품목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네.”

“독일지사에서 취급하는 광물은 화력과 수소 발전의 주원료로 사용되는데, 저희 상사는 중개상 역할을 하고 있어서 서플라이어 및 바이어와의 관계가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항상 그들의 정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고요.”

홍 부사장과 국전 직원들은 윤 실장의 얘기에 집중했다.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지금 독일에서 벌이는 광물 사업은 원자력과는 아무 상관이 없지만, 그래서 원자력에 더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국전 전략실장이 물었다.

“대체재로서 수요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겠죠?”

“네, 맞습니다. 독일은 올해 원자력 가동 중단을 목표로 움직였는데, 최근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서 가동 시한 연장을 논의하는 중이죠.”

“······.”

“지금 상사 사업부에서도 매우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정보를 수집하고 있는데······.”

국전 전략실장이 말을 끊었다.

“수단과 방법이 뭡니까?”

“그건 대외비입니다.”

“아, 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다.

정부 기관에서는 할 수 없는 로비를 한다는 것.

기업은 전 세계 시장에서 총탄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으며, 수단과 방법을 가릴 여유는 없다. 물론, 법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말이다.

“최근 요르단 왕자가 원전 사업에 새로운 책임자가 되었으며, 그의 의지로 독일전력공사와 계약체결 협의 중이라는 첩보를 입수했습니다.”

이 정도까지 말하니 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홍 부사장은 그래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신뢰도를 따진다면 어느 정도로 보면 됩니까?”

지혁이 대신 대답했다.

“백 퍼센트죠.”

“······.”

“선도물산 빡셉니다.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대표이사실까지 올리지 않아요.”

자신 있는 대답에 고민이 깊어졌다.

이제야, 진심으로 일이 커졌다는 걸 받아들이고 있었다.

‘사장님, 아시면 난리 나실 텐데.’

‘젠장. 곧 있으면 인사철인데. 조금만 더 있다가 터지지.’

‘지금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어차피 없잖아? 뭘 할 수 있겠어?’

‘저 젊은 사장 말이 맞아. 지금 가만히 있을 때가 아니야.’

국전 직원들은 제각각 머릿속이 복잡했다.

지혁은 국전이 우왕좌왕하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왜 이렇게들 어영부영하세요? 예상했던 문제 아니에요? 플랜B는 구상해 놓은 거죠?”

“······.”

홍 부사장은 신음을 내다가.

“오 대표님.”

“네.”

“일단, 지금 얘기는 우리만 아는 거로 합시다.”

지혁은 눈을 부릅떴다.

‘이게 뭔 개소리야.’

이 말이 바로 입 앞까지 나왔지만, 간신히 참고 순화해서 말했다.

“지금 무슨 소리 하시는 겁니까?”

***

‘우리만 알고 있자’라는 말은 액션을 취하지 말고 있어 보자는 의미였고.

지혁은 답답했다.

“아직도 우리가 말한 정보 못 믿으세요?”

“못 믿는 건 아닙니다. 그런 낌새를 전혀 못 느꼈던 것도 아니고.”

언성이 올라갔다.

“근데, 두고 보자고요?!”

“······.”

“당장 요르단 달려가서 바짓가랑이 잡고 사정하든, 협박을 하든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

“신앙심이 두터우신 분인가? 가만 있으면 하늘이 도울 거로 생각하는 거예요?”

“대표님······.”

지혁의 말끝이 날카로워지고 있어서, 윤 실장이 옆에서 재빨리 말렸다.

여긴 선도물산도 아니며,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국가전력 본사니까.

후유-

지혁은 심호흡한 후, 말했다.

“제가 부사장님 처지를 이해 못 하는 건 아닌데요”

이 말에 부사장의 눈썹이 꿈틀했다.

“원전 사업에 적극적으로 행동해도 눈치 볼 분위기는 아니잖아요? 아, 제가 특정 정권 편들려고 하는 소리는 아니고요. 전 그냥 문제없이 돈만 벌면 돼요. 기업이 그러라고 있는 거니까.”

전 정권에서는 원전 외에 다른 거 하면 되고, 지금 정권에서는 경쟁자가 적어진 원전 사업하면 되는 것이다.

지혁은 비즈니스를 단순하게 생각한다.

“요르단에서 감정적인 문제로 이렇게 나온다는 건 짐작하실 거 아니에요?”

국전 측이 그걸 모를 리 없었다.

요르단에서 비공식적 루트로도 불만을 표시해 왔으니까.

“감정을 푸는 데는 충분한 시간이 두거나, 얼굴 보고 담판 짓는 것. 두 가지 방법만 있다고 생각합니다.”

“······.”

“지금 우리에게 시간은 없으니, 방법은 하나뿐이에요.”

양 부문장은 지혁의 이런 모습을 지켜보는 게, 불안하면서도 시원했다.

‘왜 이렇게 속이 시원하냐.’

협력 기업이 주계약자인 국전을 상대로 이 정도로 강하게 밀어붙이는 건 어려운 일이다.

홍 부사장은 핏기가 사라진 얼굴로 한동안 고심하다가, 입을 열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만, 우리도 절차가 있습니다.”

공기업이니 사기업보다 절차가 더 까다로울 것이다.

그러나, 지금 지혁에게 그런 사정 봐줄 여유는 없었다.

부사장에게 최후통첩을 날렸다.

“오늘 저녁 6시까지입니다. 그때까지만 기다릴게요. 당장 긴급 소집하시든지 해서, 의사결정 하시고 알려주세요.”

“······.”

“연락 없으면 선도물산 독단적으로 움직입니다.”

한차례 폭풍이 몰아친 후.

지혁은 일어나며 말했다.

“지금부터 할 일이 많으실 테니,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아니, 식사라도······.”

지혁의 눈이 매섭게 빛났다.

“지금 전 밥이 안 넘어갈 것 같은데요.”

지혁은 선도물산 직원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모두 일어나시죠.”

***

올 때와는 달랐다.

지혁이 국전 본사를 나갈 때는 부사장 이하 회의에 참석한 전 인원들이 차 앞까지 따라 나왔다.

-뭐야? 무슨 일 있나?

-윗분들이 웬일로 이렇게 단체로?

본부장급 임원 여러 명이 한꺼번에 나오니, 로비에 있던 직원들이 술렁였다.

지혁은 차에 타며 말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네, 조심히 올라가십시오.”

부우웅-

차는 곧바로 출발했고.

조수석에 윤 실장. 뒷자리에 양 부문장과 지혁이 앉았다.

양 부문장은 백미러로 멀어지는 국전 임원들을 봤는데. 아직도 자리를 지키고 배웅 중이었다.

‘이런 광경은 처음 보네. 저 뻣뻣한 분들이······.’

앞자리에 앉은 윤 실장이 말했다.

“대표님, 저분들이 과연 요르단을 간다고 할까요?”

“그야 두고 봐야겠죠. 공은 넘겼으니, 이제 좀 쉽시다. 다들 수고 많으셨어요.”

지혁은 눈을 감았고.

양 부문장은 옆 눈으로 힐끔 그 모습을 보고는 생각했다.

‘참······ 사람이 단단하네. 연세 많은 경력자도 이러기 쉽지 않은데.’

확고한 신념 위에 흔들리지 않는 단단함.

이런 사람이 내 편이라면, 든든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약 4시간 뒤.

서울 톨게이트에 진입했고.

지혁은 눈을 떴다.

시계를 보니.

‘저녁 6시 30분.’

최후통첩 기한은 지났다.

지금까지 아무 연락이 없는 거로 봤을 때, 국전에서 최후통첩을 무시한 것이다.

“윤 실장님, 출장 스케줄 알아봐 주세요. 우리끼리라도 갑니다.”

“아, 일어나셨어요?”

조수석에 앉은 윤 실장이 고개를 돌려 지혁을 바라봤다.

“주무시고 계셔서 말씀 안 드렸는데.”

“자고 있던 거 아닌데요.”

“아, 어쨌든요.”

그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1시간 전에 메시지로 연락이 왔습니다.”

“······.”

“국전도 요르단 함께 가겠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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