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 웃으며 말했다
세종시.
국가전력의 해외원전본부장 홍 부사장은 산업부(산업통상자원부)로 찾아왔다.
산업부는 국가전력의 주무 기관이다.
요르단 사카라 원전 수출산업은 국가적으로 관심 두는 사업이다. 규모도 규모지만, 정치적으로도 민감한 이슈이기 때문이다.
홍 부사장으로서는 뒤탈이 없으려면 출장 가기 전에 반드시 알려야 했다.
“요르단 사카라 원전 관련해서 논의 드리러 왔습니다.”
홍 부사장은 처음엔 실무자급을 만났는데, 앞 얘기만 듣고 그는 바로 윗선 미팅으로 넘겼다.
실무자 또한 홍 부사장 얘기 듣고 바로 감이 온 것이다.
‘큰일이군. 뒤탈이 없으려면 넘겨야 해.’
산업부 차관과의 미팅.
이 자리가 부담스러웠지만, 홍 부사장은 어쩔 수 없었다. 어느 정도 각오도 했던 일이기도 했고.
“차관님, 안녕하십니까.”
“네, 어서 와요.”
산업부 차관은 부드러운 미소로 홍 부사장을 맞았다.
“앉으세요.”
“네.”
차관은 웃으며 말했다.
“어쩐 일로 멀리서 이렇게 오셨어요?”
“그렇게 멀지 않습니다. 나주에서 세종까지는 금방 옵니다.”
“네~ 어쨌든 급하게 저 찾아오신 거 보면 보통 일은 아닌 거 같은데, 말씀해 보시죠.”
“네.”
홍 부사장은 어제 선도물산에게 들은 얘기를 알려주었다.
사카라 원전 정비사업계약 단독수주가 불발될 가능성이 있다는 건 차관도 인지하고 있었지만.
이런 확실한 첩보는 듣지 못했었다.
“흠······.”
듣는 내내 심각한 얼굴이었고.
얘기를 끝났을 때쯤에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하아······ 이거, 보통 일이 아니네요.”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부사장님이 죄송한 거 없죠.”
차관은 고민이 되었다.
‘할 수만 있다면 버텨보면 좋겠는데.’
홍 부사장이 준 정보가 사실이라면 오래 걸릴 일이 아니었다.
전 정권에서 임명된 차관이라, 임기가 얼마 남지 상태.
‘원전’ 관련 이슈라, 노출되면 언론에서 많은 관심을 가질 일이다.
그렇다고 숨기기에는······.
‘타이밍이 애매하다.’
임기 끝난 후에 터질 것 같으면, 고민할 것도 없이 버텼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시기가 애매하게 걸쳐있고, 아무 액션도 하지 않고 일 터지자마자 후임 차관에게 넘겨주면, 불명예로 남을 것 같았다.
한 번 더 확인했다.
“다른 국가와 계약 초읽기에 들어간 것 같다고 하셨죠? 확실한 거죠?”
“네, 맞습니다.”
차관은 결심하여, 벌떡 일어났다.
‘어쩔 수 없는 일이야.’
그는 근엄한 얼굴로 말했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일이란 말입니까.”
홍 부사장은 당황했다.
‘뭐야, 갑자기.’
좀 전까지 고개 숙이고 전전긍긍하던 태도가 싹 사라졌다.
“우리가 다 만든 원전인데, 유지보수를 다른 국가에 넘길 수는 없죠!”
“······.’
“우리나라의 첫 수출 원전이며, 국가적 사업이잖아요.”
“네······.”
차관은 부사장의 어깨를 짚고, 결의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 주십시오.”
“······.”
“대한민국의 명예가 걸린 일입니다.”
“아, 네······.”
‘왜 이렇게 슬퍼 보이지?’
부사장은 어쩐지 차관이 눈망울이 슬퍼 보인다고 생각했다.
“요르단 출장 갈 거라는 거죠? 선도물산과 같이?”
“네, 맞습니다.”
“그래요, 잘 다녀오십시오. 국위선양하고 오세요.”
“······.”
얘기는 다 끝났는데, 홍 부사장이 나가지 않고 서 있었다.
“혹시, 뭐 더 필요한 거 있습니까?”
차관의 물음에, 그제야 홍 부사장은 한 가지 얘기를 더 했다.
“요르단과의 주계약자는 국전인데, 선도물산이 자꾸 선을 넘으려고 합니다.”
“그래요?”
“대표이사가 선을 지킬 수 있도록, 차관님께서 힘 써주셨으면 합니다. 그래야 출장 가서도 불협화음 생기지 않고, 매끄럽게 일 처리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정도는 직접 얘기하셔도 되잖아요?”
국가전력이 협력기업에게 그 정도 말도 못 한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요르단에서 함께 일할 사이인데, 싫은 소리 했다가 괜히 불편해질까 봐 그렇습니다.”
지혁의 기세에 눌려서 말 못 하는 거지만, 다른 그럴듯한 핑계를 대었다.
차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건 제가 힘 좀 쓸게요.”
“감사합니다.”
턱.
차관은 다시 부사장의 어깨를 짚으며 말했다.
“부사장님은 그저 국위선양에만 힘써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부사장은 고개를 갸웃하며 차관실을 나갔다.
‘이상하게 낚이는 기분이야.’
***
선도본관 회장실.
오 회장은 한숨을 쉬었다.
“비서실장!”
“네.”
지혁의 후임으로 발령받은 한 전무는 오 회장 앞에 부동자세로 서 있었다.
“오지혁이 무슨 짓을 벌이길래, 그런 연락을 받냐고.”
“······.”
“정부 기관에서 경고성 연락을 받아본 게 얼마 만인지······.”
오 회장은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선도그룹은 항상 정부를 신경 쓴다. 모든 대기업이 다 그렇겠지만, 대한민국 1위 기업이기에 특히 더.
“오 대표에게 확인한 바로는 원전 미팅 때문인 것 같다는데······.”
“원전?”
“네, 자세한 건 만나서 보고드리고 싶답니다.”
“······.”
“좀 중요한 일인 것 같습니다.”
오 회장은 지혁을 만나는 게 껄끄러웠다.
잠시 고민하다가.
‘일 얘기잖아.’
“그래, 당장 오라 그래. 얼마나 걸린대?”
한 전무는 민망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10분 뒤면 도착할 것 같습니다. 오는 중입니다.”
“······.”
오 회장은 뭔가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하여간, 제멋대로야. 오라는 말도 안 했는데, 왜 출발해?’
결론적으로는 오라고 하긴 했으나, 또 지혁의 뜻대로 움직인 것 같아서, 썩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알았어. 나가 봐.”
“네.”
10분 뒤.
똑똑.
[회장님, 선도물산 대표입니다.]
“들어와.”
덜컹.
차가운 인상의 청년이 회장실 안으로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
오 회장은 앞에 선 지혁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건강히 지내셨습니까?”
지혁이 먼저 가볍게 인사를 건넸는데.
“산업부에서 연락받았다.”
오 회장은 지혁의 인사를 받지 않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지혁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쪽에서 연락이 갔군요.”
“나보고 선을 지키라더구나.”
“······.”
“직접 전화 받으신 겁니까?”
“비서실로 연락 왔다.”
지혁은 곧바로 홍 부사장을 떠올렸다.
‘나중에 보자.’
지혁이 말했다.
“우선 자초지종을 설명하겠습니다. 국가산업과 관련된 원전 사업을 선도물산과 국전이 함께······.”
하지만, 오 회장은 그런 얘기가 궁금하지 않았다.
“무슨 꿍꿍이냐?”
“네?”
오 회장의 질문이 무슨 의미인지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왜 정부를 건드려?”
“······.”
지혁은 오 회장의 눈을 가만히 보았는데.
‘적의’가 느껴졌다.
‘아······ 이걸, 또 이렇게 생각하시네.’
오 회장은 지혁이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외부 세력을 끌어들인다고 의심하고 있었다.
‘하하, 참나. 관계 회복하기 쉽지 않겠네.’
단순히 회사 일하는 건데도 오해받는 상황이 참 씁쓸했다.
‘어쩔 수 없지. 업보니까.’
지혁은 눈에 힘을 주고 말했다.
“오해십니다.”
“······.”
“전 원전 사업에 대해 우리 회사의 이익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국가도 없습니다.”
지혁은 진심을 담아서 말했고.
오 회장은 가만히 그를 보다가.
“흐음······.”
탄식 소리를 내었다.
“우리 회사 이익을 위해 일하는데.”
“······.”
“왜 산업부에서 연락이 오게 하는 건데? 그게 회사에 안 좋을 거라는 거 모르나?”
***
“죄송합니다.”
“······.”
“설득하는 과정에서 그쪽 책임자를 약간 압박했는데.”
오 회장은 안 봐도 눈에 선했다. 당해봤으니까. 분명히, ‘약간’의 압박이 아니었을 것이다.
“최종적으로는 저희 계획에 동의했기에 괜찮을 거로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뒤끝 있게 행동할 줄은 몰랐습니다.”
“······.”
오 회장은 잠시 생각한 후 말했다.
“정말 다른 생각은 없는 거지?”
“네, 없습니다.”
오 회장이 말했다.
“난 네가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녀석이라는 거 알고 있다.”
“네, 저 그런 사람입니다. 하지만, 이번 일은 아닙니다.”
지혁이 너무 쿨하게 인정하며 대답하니, 오 회장은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오 회장은 약간 뜸을 들였다가 말했다.
“그리고 기업은 정부와의 관계가 매우 중요하다.”
“······.”
“정부가 만든 룰 위에서, 움직여야 하므로 그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어.”
“······.”
“정부 관계자들이 모래알 같아 보여도, 필요할 때는 똘똘 뭉치는 사람들이야. 괜한 짓을 해서 선도그룹을 위협에 놓이게 하지 마라.”
지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명심하겠습니다. 기업가는 결과로 말하는 사람이라고 배웠습니다.”
비서실장으로서 오 회장과 가까이 있을 때, 그에게 자주 듣던 말 중의 하나였다.
“산업부에서 연락이 오지 않도록 하겠으나, 만약 오더라도 신경 쓰지 마십시오.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
“그리고 그룹의 안위는 걱정 않으셔도 됩니다.”
“······.”
“전 선도물산만을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니까요.”
지혁은 은연중에 자신의 포부를 알렸고.
오 회장은 달갑지 않은 얼굴로 말했다.
“이제, 가봐라.”
지혁은 묵례한 후 나왔다.
덜컹.
회장실 앞.
한 전무가 대기 중이었는데, 지혁이 그에게 다가가 친근하게 말을 걸었다.
“할 만하십니까?”
“하하. 네. 대표님도 잘 지내셨죠?”
“네, 전 잘 지내고 있습니다.”
지혁은 그의 귀 가까이 다가가서 말했다.
“근데······ 회장님 살이 좀 빠지신 거 같던데요? 제대로 하고 계신 거 맞아요?”
“······.”
“회장님 잘 모시라는 거, 괜히 드린 말씀 아닙니다.”
한 전무는 굳은 얼굴로 대답했다.
“네, 더 신경 쓰겠습니다.”
***
이틀 뒤. 인천공항.
선도물산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윤 실장은 지혁의 눈치를 살폈다.
“조용히 넘어가실 거죠?”
그 또한 산업부 얘기를 들었다.
지혁의 성격에 뭔가 할 것 같아서, 노파심에 한 말이었다.
“글쎄요. 어떻게 해줄까요?”
“이번엔 그냥 넘어가세요. 또 회장실에 말 들어가면 어떡해요.”
지혁은 대답 대신 싱긋 웃었다.
잠시 후, 국전이 모습을 드러내었는데.
부사장이 앞장서서 걸어오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하하. 덕분에 오랜만에 해외 출장을 가네요.”
홍 부사장이 밝은 목소리로 인사했다.
지혁도 활짝 웃으며 말했다.
“네~ 안녕하세요.”
서로 악수하며 가볍게 인사했다.
각자 인사가 끝나자, 지혁이 지나가는 말투로 얘기했다.
“부사장님~ 근데 왜 뒤통수를 치셨어요~”
지혁의 밝은 목소리.
윤 실장은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저었고.
홍 부사장은 놀라서 눈을 끔뻑거렸다.
“불편하면 가지 말지. 왜 다 얘기 끝난 걸로 사람 뒤통수를 치고 그러세요. 하하.”
지혁은 웃으며 얘기했지만.
내용은 심각했다.
‘아니, 직원들 다 있는 앞에서.’
홍 부사장은 민망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또 이르실 거 아니죠?”
‘일러?’
지혁의 단어 선택에 홍 부사장 이마에 핏대가 솟구쳤으나.
뭐라 대꾸하지는 못했다.
없는 얘기 하는 게 아니니까.
지혁은 여전히 농담 같은 투로 말했다.
“다음에 또 그러시면~ 말로 안 끝납니다~ 하하.”
꿀꺽.
홍 부사장은 마른침을 삼키고, 자신도 모르게 지혁의 주먹을 바라봤다.
지혁은 밝은 얼굴로 앞서 걸어간 뒤, 옆의 윤 실장에게 물었다.
“이 정도면 괜찮았죠? 자연스러웠죠?”
윤 실장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앞으로는 절대로 뒤통수를 못 치시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