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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이 능력을 숨김-214화 (214/301)

214. 서쪽으로 (1)

요르단의 수도 암만.

선도물산과 국전 직원들은 요르단의 퀸 알리아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 들어서며 다들 긴장했다.

“하아······ 하여간 처음 오는 게 아닌데도, 참 적응 안 돼.”

홍 부사장이 중얼거렸다.

공항 안을 오가는 터번과 히잡을 쓴 사람들.

한국 사람들은 뉴스 영향으로 아프간, IS 등 이슬람 문화권에 대해 선입견이 있다.

요르단을 와봤던 국전의 홍 부사장과 박 팀장도 이럴진대, 처음 온 선도물산 직원들은 오죽하겠는가.

윤 실장은 지혁의 옆에 바싹 붙어서 걸었다.

지혁은 이런 그를 보고 피식 웃었다.

“무서우세요?”

“그럼 안 무섭게 생겼어요? 난 딸린 처자식이 있는 사람이에요.”

“하하.”

지혁은 바싹 얼어있는 윤 실장의 모습이 재밌었다.

‘이 사람들 착한데.’

지혁은 요르단 사람을 경험해 본 적이 있다.

‘그 세계’

인종과 국가가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공동체라는 건 오로지 서로의 등을 지켜줄 팀원만 필요한 세상에서 말이다.

같은 팀에서 요르단 동료가 있었다.

TV 핸드폰도 없는 세상이라 여유 시간이 있을 때면, 그와 많은 얘기를 나눴었다.

“이슬람 문화권 국가들이 종교적인 이유로 권위주의가 심할 수가 있는데요. 요르단은 덜해요.”

지혁은 윤 실장을 포함해 일행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얘기를 계속했다.

“단적인 예로, 이슬람에서는 돼지고기와 술은 못 하게 되어 있잖아요? 상식적인 얘기니까 이 정도는 다들 아실 것 같은데.”

윤 실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요르단은 그게 허용되거든요. 그래서 인접 중동국가에 사는 외국 사람들이 휴가를 보낼 때 요르단에 오는 경우도 많고요······.”

그 외에도 요르단에 대해 지혁은 술술 얘기했고.

일행들은 그의 얘기를 들으며 생각했다.

‘뭐야? 왜 이렇게 잘 알아?’

‘준비성 장난 아닌데?’

그리고 가장 놀라운 얘기를 했다.

“그리고 여기서는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거든요?”

“진짜?! 이슬람 국가인데?”

지혁 또한 ‘그 세계’ 동료에게 이 얘기를 듣고, 똑같은 반응을 보였었고. 그게 떠올라서 피식 웃었다.

“안 믿기죠? 근데 걔가 기독교였거든요.”

그뿐만이 아니라, 부모와 조부 모두 같은 종교를 믿는 기독교 집안이라고 했었다.

숨이 끊긴 적의 손을 잡고 기도해 주던, 요르단 동료가 떠올라서 살짝 미소 지었다.

캡틴의 실수로 전 동료들을 죽음에 이르게 할 때까지 살아남았던, 용맹하며 전투기술도 뛰어났던 이슬람 전사.

“걔가 누구예요?”

“네?”

윤 실장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지혁을 보고 있었고, 다른 동료들도 비슷한 표정이었다.

“요르단에 아는 사람 있어요?”

“아······.”

이 이상은 설명할 수 없었다.

“뭐, 그랬겠죠?”

“대답이 좀 이상한데요?”

마침, 공항 앞 차량 대기 장소에 도착했고.

지혁은 대답 대신, 윤 실장에게 다른 걸 물었다.

“상사 직원이 마중 나온다고 하지 않았어요?”

***

공항임에도 희한하게 외국인은 잘 보이지 않았다. 특히, 아시아인은 잘 안 보였는데.

그래서일까. 지사 직원이면 쉽게 눈에 띌 만한데도, 이상하게 찾기가 어려웠다.

윤 실장이 말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장 실장과 함께 둘러보고 오겠습니다.”

회사 임원이지만, 여기서는 윤 실장과 장 실장이 막내급이다.

지혁은 미안한 기분이 들었지만, 국전이 함께 있는데 대표이사가 사람 찾으러 돌아다니는 건 아닌 것 같았고.

“네, 한번 둘러보고 오세요.”

미안한 얼굴로 지시했다.

윤 실장과 장 실장이 사라진 뒤.

홍 부사장이 지혁에게 다가왔다.

“국전 직원에게 나오라고 할 걸 그랬나요? 상사 직원분이 현지 사정을 잘 모르시나?”

지혁은 싱긋 웃기만 하고 대꾸하지 않았다.

국전에도 요르단에 파견된 직원이 있다.

하지만, 지혁은 모든 걸 선도물산 측에서 준비하겠다고 했었다.

주도권을 넘기기 싫은 것도 있었지만, 이상하게 국전에 믿음이 가지 않았다.

홍 부사장이 물었다.

“오늘 계획이 어떻게 됩니까?”

“계획이요?”

지혁은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찾아가야죠.”

“누구를요?”

“하하. 몰라서 물으세요? 왕자죠.”

“오늘 바로요?”

“오늘 만나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나요? 그러려고 온 건데?”

홍 부사장은 어이가 없었다.

‘15시간을 비행기 타고 왔는데, 바로 만난다고?’

“좀 쉬었다가 맑은 정신으로 만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촌각을 다투는 일이잖아요. 지금은 쉴 타이밍이 아닌 것 같은데요.”

“······.”

“지금 당장 만나러 가야 해요. 독일전력공사와 계약서 쓰고 있을지도 몰라요.”

질려 하는 홍 부사장의 얼굴을 보며 지혁은 생각했다.

‘주도권을 안 주길 잘했지. 이 와중에 쉴 생각을 하고 있어?’

홍 부사장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체념한 얼굴로 물었다.

“왕자와 약속은 잡고 온 거죠?”

“아니요.”

“······네?!”

“우리를 피하는 게 딱 봐도 보이는데, 약속을 잡아 주겠어요? 사전에 만나겠다고 하면 도리어 피하려 할 것 같은데.”

홍 부사장은 이 무슨 미친 소리인가 싶었다.

‘약속도 안 잡고 요르단까지 왔다고?!’

처음 국전 본사에서 만나서 대화했을 때, 범상치 않은 사람인 건 느꼈다.

특출난 건지, 아니면 그냥 또라이인지 헷갈렸었는데.

‘후자였던 건가?’

확실히 지금은 또라이에 가까워 보였다.

지혁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말했다.

“약속 잡고 매너있게 비즈니스 하는 게 좋지만, 때로는 들이밀어야 할 때가 있어요.”

“그러다가 안 만나주면요?”

“어떻게든 만나야죠.”

한 치의 걱정도 망설임도 없었다.

홍 부사장은 지혁과 대화할수록 신기했다.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지.’

“대표님! 안녕하십니까!”

지혁은 뒤를 돌아봤는데.

윤 실장 옆에 웬 한국말 하는 중동사람이 있었다.

머리에 터번까지 썼는데, 영락없는 현지인이었다.

“네 안녕하세요. 상사부문 직원이세요?”

“하하. 네. 이제 패션상사 부문이죠. 반갑습니다. 요르단 지사장 전동근이라고 합니다.”

지혁은 그와 악수하며 가까이에서 얼굴을 자세히 보았다.

‘완벽하게 현지화됐구나.’

자세히 보니 한국 사람이 맞았다.

외모까지 현지화가 되어 버린 것이다.

“죄송합니다. 차 사고 때문에 도로가 막혀서 좀 늦었습니다.”

“괜찮습니다. 오래 안 기다렸어요.”

전동근 지사장은 국전 직원들에게 인사한 후 안내했다.

“어서 차에 타시죠.”

***

차 안.

전동근 지사장은 격양된 얼굴로 말했다.

“대표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비서실장으로 계실 때 전직원간담회 영상 봤었거든요. 그때부터 아주 흠모하고 있었습니다.”

지혁은 고마워서 말했다.

“저도 영광입니다. 진짜배기를 만난 것 같아서요.”

모습만 봐도 안다.

외모까지 중동사람에 가까울 정도로 현지화됐을 정도면, 일 뿐만 아니라 삶 전체가 완전히 요르단에 녹아든 거다.

“네? 하하.”

“요르단에 오래 계셨죠?”

“입사 3년 차에 와서, 지금까지 있었으니까······ 한 10년 됐네요.”

“우와······.”

윤 실장이 탄성을 지르며 물었다.

“10년간 요르단에만 있었던 거예요?”

“네.”

“결혼은······.”

“아직 안 했습니다.”

윤 실장은 침을 삼키며 생각했다.

‘이렇게 회사생활 하는 사람도 있구나. 진짜 리스펙이다.’

사십 대 초반 정도밖에 안 보이는 사람이 지사장을 하고 있으니, 얼마나 열정적으로 회사생활 했을지 짐작이 되었다.

지혁은 그와 얘기하며, 느낌이 좋았다.

‘지사장 덕분에 일이 잘 풀릴 것 같은데.’

전동근 지사장이 지혁에게 물었다.

“대표님, 어디로 모실까요? 식사는 하셨습니까?”

“대충 기내식 먹었습니다. 지금 사안이 급해서, 우선 왕자부터 만났으면 해서요. 위치 확인하셨죠?”

“네, 지금은 산업부에서 근무하는 시간입니다.”

하섬 왕자.

압둘라 4세 국왕의 둘째 아들이며, 요르단 서열 3위다.

그는 산업부 장관과 요르단전력공사 사장을 겸하고 있다.

“그럼 관공서를 들어가야겠네요. 출입하는데 까다롭지는 않을까요?”

전동근 지사장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까다롭긴 하지만, 들어갈 수는 있습니다.”

“······.”

“잘 얘기하면 되는 거죠. 한두 번 가본 곳도 아닌데요. 하하.”

그리고 전동근 지사장은 사람들을 안심시켜주려고, 몇 마디 덧붙였다.

“최소한의 손님 접대는 하는 나라에요. 적어도 문전박대는 안 할 겁니다.”

지혁은 자신감 넘치는 그의 태도가 좋았다.

“그래요. 그럼 바로 산업부로 갑시다.”

“네.”

지사장은 곧바로 운전사에게 능숙한 아랍어로 말했다.

잠깐 침묵이 이어지던 가운데, 지혁이 말했다.

“지사장님, 현지에서 조심해야 할 게 있으면 알려주시죠. 요르단 처음이신 분들도 있으니까요.”

지사장은 몇 가지 얘기해주었는데, 공항에서 지혁이 해줬던 것과 대부분 일치했다.

그 외에 다른 게 있다면.

“여긴 아시아인이 잘 없거든요? 다니다 보면 관심을 많이 보일 텐데, 당황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냥 관심이니까요. 그리고 물은 꼭 생수 사서 드시고요. 현지 물은 드시지 마세요.”

***

관공서 도착.

입구에서부터 지사장은 존재감을 보였는데.

그의 얼굴이 그냥 프리패스였다.

잔뜩 긴장하고 있던 일행들은 이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뭐야? 왜 이렇게 쉬워?’

‘관공서라면서 너무 방비가 허술한 거 아니야?’

요르단은 적대 국가인 이스라엘과 강성 이슬람 국가들을 인접하고 있다.

경비가 허술할 수 없었다.

‘인적네트워크.’

전동근 지사장이 10년간 쌓아온 관계성으로 이런 프리패스가 가능한 것이다.

관공서 안에서도 마주치는 대부분의 요르단인들과 반갑게 인사했다. 거의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일행이 대단하다는 듯 바라보자.

그는 계면쩍은 얼굴로 말했다.

“상사 직원들은 다 이 정도 합니다. 별거 아닙니다.”

홍 부사장은 새삼 사기업의 영향력에 놀랐다.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구나.’

하섬 왕자가 있는 장관실에 갈 때까지, 몇 차례 가로막히긴 했으나.

전동근 지사장이 몇 마디 말하면 결국엔 통과였고, 끝내 장관실 앞에까지 왔다.

‘장관실.’

문 앞에 서서, 전동근 지사장이 말했다.

“한국에서 원전 건설 주계약자가 왔다니까, 그래도 시간을 내주네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전동근 지사장은 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는 여기까지입니다. 안에는 들어가지 않겠습니다.”

여기까지 오는데 이미 꽤 무리했다.

오늘 지혁 일행은 상사와 관련 없는 일을 협의하러 온 것이며,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주제라는 걸 지사장도 알고 있다.

회의가 어떻게 끝날지 모르기에, 그는 여기서 선을 긋고 싶었다.

‘지혜롭네. 쓸데없는 출혈은 할 필요가 없지.’

“그래요. 그렇게 하세요.”

“통역사는 붙여 드리겠습니다.”

지혁은 대꾸 없이 성큼성큼 입구에서 지키고 있는 비서에게 다가갔다.

통역사가 따라왔으나, 지혁은 대뜸 그만의 방식으로 용건을 말했다.

“장관님 뵙고 싶습니다. 선도물산 대표가 왔다고 전해주십시오.”

한국말로 하며 손짓·발짓했는데.

비서는 신기하게도 다 알아들었다.

‘풀바디랭귀지’

전동근 지사장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윤 실장에게 물었다.

“저, 저게 뭡니까?”

“하아······ 격 떨어지게.”

약간은 우스꽝스러운 지혁의 몸짓을 보며, 윤 실장은 혼잣말했다.

“이번 출장에서는 쓰지 말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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