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9. 고맙고 축하할 일
“네?”
[정말 대단한 일 하셨다고요! 감사하고~ 축하드립니다!]
갑자기 장관실에서 전화 받은 것도 놀라운데, 다짜고짜 칭찬까지 받으니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무슨 일 때문에 이신지······.”
[요르단 원전 사업 건 말입니다. 어쩌면 이렇게 좋은 타이밍에 아주 훌륭한 일을 터트리셨습니까?!]
“······.”
[이건, 뭐 시작도 하기 전에 성과 낸 격이니! 하하.]
이쯤 되니 오 회장도 알 것 같았다.
선도물산이 요르단 대형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라는 건, 그룹 주요 안건으로 보고 받았었다.
‘단독수주가 부분 수준으로 바뀔 가능성이 크다고 들었는데. 일이 잘 풀린 모양이군.’
아직 자세한 소식을 접하진 못했다.
‘국전이 함께 갔으니, 더 빠를 수 있지. 생색내는 건 정부가 빠르니까.’
[선도물산 대표님은 도대체 어떤 분인가요? 대뜸 국가전력 본사 찾아와서 밀어붙였던 게 다 이유가 있던 거네요! 하하!]
분명 얼마 전에는 산업부 차관으로부터 ‘선 넘지 말라’는 경고성 연락이 왔었다.
선을 넘어서 진행한 일이 결과가 좋았을 때는 압도적인 성과를 가져온다.
위험을 감수한 공격적인 배팅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즉, 잘못되면 독박이지만, 잘 되면 독식이다.
[언제 따로 한번 뵙고 싶은데요?]
위험을 감수하고 튄 행동이었기에 모두가 알고 있다. 국가전력이 아무리 먼저 보고해도, 지혁의 성과를 가져갈 수 없다.
[하하. 국가를 위해서도 좋은 일 하셨고요. 저 개인적으로도 아주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아······ 네. 그렇다니 다행입니다.”
산업부 장관은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새 정부 기조에 맞춰 성과를 만들어가야 하는 상황에서, 지혁은 그에게 큰 선물을 안겨 준 것이다.
[저 그냥 말씀드리는 거 아니고요. 시간과 건강이 허락하실 때, 선도물산 대표님과 함께 방문해 주십시오. 직접 감사 인사드리고 싶습니다. 아니면, 제가 가서 인사를······.]
“알겠습니다. 일정 잡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오 회장은 재빨리 장관의 말을 막았다.
정부 고위 관리자가 회사에 오는 건, 여러모로 신경이 쓰인다.
[하하. 네. 다시 한번 감사 말씀드리고요. 이만 끊겠습니다.]
“네, 장관님도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산업부 장관은 전화를 끊기 전.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저 말로만 감사 인사하는 사람 아닙니다. 어떤 식으로든 보상할 테니, 기대하십시오. 하하.]
***
전화를 끊은 뒤, 오 회장은 얼떨떨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산업부 장관에게 축하 전화를 받아본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은하수 폰이 첫 세계판매 1위 했을 때가 마지막이었던 거 같은데.’
정비사업계약 단독수주는 틀어질 가능성이 컸다. 국가전력이 명절 전에 기업 관계자들 불러서 사전 통보까지 했었다.
오 회장은 이 일을 개괄적으로는 알고 있었다. 정부를 신경 쓰기에 특히 원전과 관련된 일은 더 신경 써서 봤다.
‘오지혁이 나서서 이 상황을 한 번에 뒤집었다는 거잖아?’
오 회장은 한 전무에게 물었다.
“오 대표 지금 어딨나?”
“요르단에서 오는 중입니다.”
오 회장은 잠시 생각한 후, 정확히 확인하고자 물었다.
“얼마 전에 차관이 전화했던 일이 잘 풀린 거지?”
“네, 그런 것 같습니다.”
“근데, 우리는 왜 이렇게 소식이 늦나?”
“안 그래도 통화 중이실 때, 확인해 봤는데.”
한 전무는 선도물산 전략실과 직통 연결을 해봤다.
“계약 성사 연락을 선도물산 본사에서도 좀 전에 받은 것 같습니다.”
한 전무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 대표가 정신없었나 봅니다. 연락이 좀 늦었던 걸 보면요.”
“아니야, 굳이 서두를 필요가 없었겠지.”
“네?”
‘누구도 가져갈 수 없는 명백한 선도물산의 성과니까.’
국가전력이 급하게 움직인 건, 그만큼 본인들이 했던 역할에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기업가는 결과로 말하는 사람이라고 배웠습니다.’
오 회장은 지혁이 했던 말이 떠올랐고.
입꼬리가 올라가며 생각했다.
‘네가 하는 일을 이런 식으로 알리겠다는 거지?’
오 회장은 지혁을 떠올리다가 입꼬리가 올라갔다는 걸 뒤늦게 자각하고, 재빨리 표정을 정돈했다.
“요르단 원전 정비사업계약이라고 했나?”
“네, 맞습니다.”
“자세히 설명해 봐. 시간 좀 걸려도 되니까.”
“네.”
오 회장은 의자에서 등을 떼고 앉았고.
한 전무는 정식으로 보고했다.
“정식 명칭은 요르단 사카라 원전입니다. 우리나라 최초 원전 수출사업으로 총 5기를 수주받아, 현재 1기는 완성되어 상업 운전까지 성공했습니다. 정비사업계약은 해당 원전의 유지보수에 관한 건으로······.”
개괄적으로 알고 있던 일을 자세히 들어보니······.
‘보통 일이 아니네?’
더군다나 국내 협력기업들은 예전 탈원전 기조가 한창일 때 대부분 손을 떼었다.
‘우리나라 단독수주. 게다가, 주계약자 국전 외에 협력기업은 선도물산 단독이라는 거잖아?’
단순히 매출 규모만의 문제가 아니다.
상징성이 있었으며.
지금 정부가 원하는 일이다.
‘이 녀석, 설마 이걸 다 계산하고 일을 진행한 건 아니겠지?’
선도물산뿐만이 아니라, 그룹이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일.
그것도 아주 좋은 쪽으로 말이다.
국내 최대기업의 총수인데, 몇 마디면 상황 파악하는데 충분했다.
‘주가 좀 오르겠는데?’
선도그룹의 지주회사인 선도물산의 시가총액이 늘어날 건 불 보듯 뻔했다.
이건, 오 회장에게도 직접적으로 영향이 가는 일이다.
‘이 자식이?’
애써 참았지만.
오 회장의 입술이 실룩거렸다.
***
인천공항.
“아우, 피곤해.”
윤 실장은 입국장을 향해 걸으며 하품했다.
그에 반해 지혁은 쌩쌩했다.
“대표님 뭐 좋은 거 드세요?”
“네?”
“혹시, 평소에 뱀술 같은 거 먹는 거 아니죠?”
“하하. 뱀술은 안 먹지만, 구워서는 먹어봤죠. 탕으로도 먹어봤고.”
“······.”
‘그 세계’에서 못 먹는 건 없다.
배로 들어가서, 탈 나지만 않으면 다 먹는다.
“농담이죠?”
지혁의 체력이 좋은 걸 보며, 농담 한마디 한 거였는데.
그의 심상치 않은 대답에, 윤 실장은 식겁했다.
“닭고기 맛이랑 비슷하고, 껍질 부위는 또 얼마나 쫄깃쫄깃하고 맛있게요? 생각하니까, 군침 도네.”
“하지 마······.”
‘농담인지, 진담인지.’
윤 실장은 더 피곤해진 얼굴로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리고 지혁을 따라가며 중얼거렸다.
“어휴······ 이제 또 회사로 가겠지······.”
지혁의 스타일을 고려했을 때, 뻔했다.
쉴 수 있을 거라고는 기대조차 하지 않는다.
어느덧 입국장에 도착.
찰칵! 찰칵!
대낮인데도 플래시 때문에 눈이 부셔서 절로 인상이 찡그려졌다.
-오 대표님! 축하드립니다!
-국내 첫 원전 수출사업을 유지보수까지 우리나라가 맡는 거로 마무리하셨는데요.
-요르단 정부에서 계속 불쾌함을 표시했었는데, 어떻게 해결하신 건가요?
-국내외 전문가들이 단독수주는 어려울 거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소감이 궁금합니다!
-오 대표님! 여기 좀 봐주십시오!
-대한민국 파이팅!
입국장 앞에는 기자와 시민들이 모여서 아수라장이었다.
국가전력과 선도물산 직원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정말 축하드려요!
-자랑스럽습니다! 하하.
생판 처음 보는 사람들이 악수하자고 덤벼들었고, 멍한 얼굴로 응할 뿐이었다.
찰칵! 찰칵!
기자들이 지혁의 주변을 둘러쌌다.
“저보다는 주계약자인 국가전력에······.”
공을 넘기려 했으나, 기자들은 마이크를 지혁에게 들이대었다.
주계약자인 국가전력 홍 부사장은 꿔다놓은 보릿자루였다. 아무도 관심 두지 않았다.
-국민이 궁금해합니다!
-한 말씀 하시죠!
지혁은 당황스러웠으나.
뭐라도 하지 않으면 공항을 빠져나가기 힘들 것 같아서, 마이크 앞에 섰다.
십여 명의 기자들이 마이크를 들고, 지혁의 얼굴을 가리지 않기 위해 그의 앞에 쪼그려 앉았다.
“아······ 축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도물산 대표이사 오지혁입니다.”
지혁은 꾸벅 인사했다.
-간단한 배경 설명 좀 부탁드립니다!
“요르단 사카라 원전은 대한민국의 원전 기술을 집대성한 최초 원전 수출사업입니다······.”
지혁은 간단하게 매출 규모와 일자리 창출, 요르단과의 관계성 향상 등 파급효과에 관해 설명했다.
-단독수주는 어려울 거라는 예상이 컸는데요. 비결이 궁금합니다.
“비결이요?”
지혁은 싱긋 웃고는 간단하게 말했다.
“저는 한 번도 어려울 거라는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요르단이 수락할 수밖에 없는 방안을 마련했고요. 성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기자들은 뻑이 간 얼굴로 지혁을 바라보았다.
“주변 얘기가 뭐가 중요합니까. 결과가 진짜죠.”
-와······ 역시 남다르신 것 같습니다. 하섬 왕자가 대표님을 극찬하셨다는 후문이 있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지혁은 고개를 갸웃했다.
‘극찬을 어떻게 생각하냐니······.’
이 질문엔 짧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고맙네요.”
-······.
기자는 더 할 말이 있을 줄 알고 기다리다가, 말이 없자 어색하게 웃으며 마무리했다.
-하하. 국민 기대가 큽니다. 앞으로도 멋진 행보 부탁드립니다.
“네, 감사합니다.”
지혁은 꾸벅 인사했고.
뒤에 선 국가전력과 선도물산 직원들도 정중히 인사했다.
***
공항을 빠져나왔다.
오전 10시.
지혁은 시계를 본 후 직원들에게 말했다.
“모두 회사로 가지 마시고, 바로 집으로 가세요.”
“······!”
“집 말고 딴 데 가셔도 안 됩니다. 전투력 보존을 위해 쉬라고 하는 거니까요.”
직원들은 방금 들은 얘기가 맞는지, 실감이 안 가서 섣불리 좋아하지 못했다.
“내일까지 푹 쉬시고, 회사에는 모레 출근하세요.”
-우와~!
-대표님, 감사합니다!
이제야 환호성을 질렀고.
윤 실장은 엄지를 치켜세우며 지혁에게 말했다.
“대표님, 최고!”
“전투력 보존을 위해서라니까요? 이틀 뒤에 만났을 때 피곤해 보이면 다들 각오하십시오.”
지혁은 눈에 힘을 주어 말했고.
직원들이 식겁한 표정을 짓자.
이내 웃으며 말했다.
“농담입니다. 농담.”
아무도 웃지 않았다. 완전히 농담은 아니란 걸 아니까.
“그럼~ 저 먼저 갑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선도물산 직원들은 큰 소리로 인사했고.
국가전력 직원들도 정중하게 묵례했다.
집으로 가는 길.
한창 일할 시간인 대낮에 집으로 향하는 게 어색했다.
중요한 일을 잘 끝마쳤고, 오랜만에 긴장을 풀었다. 묘하게 가슴 속이 허전하다.
‘파티를 끝낸 뒤의 쓸쓸함.’
심지어 외롭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 세계’에서 치열한 전투를 끝낸 뒤에, 살아남았을 때 느꼈던 기분과 비슷하다.
‘이런 시간도 필요하지.’
지혁은 외로운 걸 싫어하지만.
오랜만에 혼자가 되어서일까, 이 쓸쓸한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집에 도착하여,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니.
“어서 와~”
“어?”
수아가 환한 얼굴로 지혁을 맞았다.
“웬일이야? 이 시간에?”
“웬일은 자기 맞으려고, 연차 썼지.”
“하하.”
생각지 못한 만남이라서일까.
맨날 얼굴 보고 사는 사람인데도 참 반가웠다.
“우쭈쭈. 고생했어. 이리 와.”
수아는 장난스럽게 지혁을 안아주었고.
지혁은 그녀의 품속에서 포근한 향을 느끼며 생각했다.
‘여기선 혼자가 아니지.’
가슴에 안긴 수아의 등을 토닥이며 웃었다.
‘항상 옆에 있는 내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