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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이 능력을 숨김-221화 (221/301)

221. 챙겨야 할 사람 (2)

“에이~ 또 이러신다.”

지혁은 웃으면서 황 팀장의 눈을 보았다.

황 팀장이 눈물샘이 약하다는 걸 잘 알고 있다.

황소처럼 서글서글한 눈망울에 이슬이 잘 맺힌다.

“아유, 죄송합니다. 아직 갱년기 올 나이는 아닌데. 왜 이러는지 정말.”

“하하. 삼십 대 중반에 갱년기는 아니죠.”

지혁은 활짝 웃었고, 황 팀장도 그제야 미소를 지었다.

“이제 죄송하다는 얘기는 그만하시고요.”

“네.”

“얘기 좀 들어볼게요. 어떻게 된 일인지.”

황 팀장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대표님께서 바쁜 일 많으실 텐데, 사소한 일로 신경 쓰이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말씀 안 해주시면 더 신경 쓰입니다.”

“······.”

“대표에게 일의 경중이 어딨습니까? 관심 가지면 다 중요한 일이죠.”

“······.”

“제가 상품기획자였지 않습니까. 개인적인 호기심도 있습니다. 어서 얘기해 보세요.”

황 팀장은 입술을 깨물고 잠시 망설이다가, 얘기를 시작했다.

“시판품 조사에서 문제 된 상품은 스타덕 키즈 니트 티셔츠입니다. 베트남 호찌민에서 생산했습니다.”

“네.”

“특히 니트 제품은 신경 써서 A급 공장만 쓰고 있습니다. 해당 제품 생산한 공장은 예전부터 잘해오던 곳인데, 올해 좀 이상하더라고요. 원단 수급에서부터 문제가 많았는데, 생산 초기에 원단 불량으로 재생산을 여러 번 하느라, 제품 납기도 늦어졌습니다.”

옷의 핵심은 원단이다.

원단에 문제가 생기면 제품을 생산해낼 수가 없다.

“어쨌든 2주 정도 딜레이 되었지만, 판매 시기는 놓치지 않게끔 꾸역꾸역 입고시켰는데······.”

황 팀장은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뭔가 계속 찜찜한 겁니다. 원단 문제가 많았는데도, 제품숏티지(입고수량부족)가 크지 않은 게 자꾸 걸리더라고요. 미심쩍어서 확인해보니, 품질 검사에서 리젝된 제품을 공장 자의적으로 입고물량에 껴 넣은 겁니다.”

“아······ 이런.”

아무리 검사를 해도 공장에서 마음먹고 일 저지르면 막을 수 없다.

간혹 앙심 품은 공장이 패딩 점퍼 안에 쪽가위나 바늘 집어넣어서, 소비자클레임으로 브랜드가 뒤집히는 일도 있을 정도니까.

“불량 제품 끼워 넣은 수량이 컸나요?”

“얼마 되지도 않습니다.”

“아니, 근데. 무슨 푼돈 벌자고 그런 위험한 짓을······.”

공장으로서는 입고 수량이 많아질수록 대금 결제를 많이 받는다.

하지만 의류가 단가가 높은 제품도 아니고, 수량이 크지 않다면 큰 의미 없다.

황 팀장은 흥분하여 말했다.

“제 말이 그 말입니다! 부랴부랴 전 매장 확인해서 불량 제품들 수거하라고 했는데······.”

“그중 하나가 시판품 조사에 걸린 거군요.”

“네······ 조사 기간이란 걸 알고 서두르긴 했으나, 한발 늦었습니다.”

“흠······.”

“고객에게 판매된 건 없고요?”

“네, 없습니다.”

얘기를 들어보니, 황 팀장이 잘못한 건 없었다.

도리어, 잘한 부분이 많았다.

의심 가는 부분을 점검했고, 불량 제품이 고객에게 판매되는 걸 막았다.

‘기업인은 결과로 말한다는 게······ 이럴 땐 참 잔인하네.’

아무리 조치를 잘했어도, 시판품 조사에서 걸렸다는 것.

그게 생산 1팀장인 황 팀장의 결과였다.

그나마 황 팀장에게 행운인 건.

이 상황과 그의 노력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상사가 있었다.

“팀장님이 하실 수 있는 건 다했네요.”

***

“곧 간담회라고 했죠?”

시판품 조사 결과에 대한 소명 기회.

기술표준원에서는 부적합한 제품을 생산한 회사들을 소집하여 간담회를 연다.

의무참석은 아니지만,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하는 기업 입장으로서는 안 가는 게 손해다.

“네, 맞습니다. 다음 주 월요일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그래요. 누구랑 가나요?”

“상품본부장님과 함께 갈 것 같습니다.’

“네······.”

지혁은 생각했다.

‘그룹에는 미리 보고해두는 게 낫겠다. 어차피 언론에 나올 일이니까.’

황 팀장이 결연한 얼굴로 말했다

“어떻게 해서든 회사에 누 끼치지 않도록 소명하고 오겠습니다.”

지혁은 피식 웃고는 가볍게 말했다.

“황 팀장님, 지키기 어려운 약속은 하는 거 아니에요.”

“······.”

“제가 시판품 조사를 모릅니까? 간담회는 형식적인 거잖아요.”

틀린 말이 아니기에, 황 팀장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상품본부장님이나, 부문장님께도 그렇게 말씀드리진 마세요. 해낼 것처럼 얘기했다가 잘 안 되면 더 안 좋으니까요.”

시판품 조사에 걸린 제품이 간담회에서 번복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왕 벌어진 일, 재수 없었다고 생각하세요. 저도 인지하고 있는 일이니까, 더 걱정하지 마시고요.”

“······.”

“가서 잘하고 오세요.”

황 팀장은 또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하려다가, 멈추었다.

후유-

한숨을 한번 쉬고는, 고개를 푹 숙이고 말했다.

“네, 대표님. 알겠습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

인사하고 뒤돌아섰다.

축 늘어진 어깨.

대표이사실 출입문을 향해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다가, 지혁은 안 되겠다 싶어서 다시 불렀다.

“황 팀장님.”

“네?”

황 팀장이 돌아보자, 지혁은 목소리에 힘을 줘서 말했다.

“기죽지 마세요.”

“······.”

“전 황 팀장님께 기대하는 바가 큽니다.”

지혁은 황 팀장 가까이 다가와서 바로 앞에 섰다.

“처음 팀장 해보시는 거라, 책임감을 많이 느끼시는 것 같은데. 이까짓 일 아무것도 아닙니다.”

“······.”

“시판품 조사 걸려서 회사 이미지 깎이는 거? 그게 뭐 어떻습니까? 항상 승승장구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잃은 만큼 추후에 만회하면 되는 거죠.”

“······.”

“저는 황 팀장님이 완벽해지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사람 볼 줄 압니다.”

지혁은 사람의 ‘색’을 볼 수 있다.

먼 훗날 황 팀장에게 기대하는 게 있었다.

“노력도 중요하지만, 타고난 기질이라는 게 있거든요. 황 팀장님은 아주 대단해지실 분이십니다.”

“감사합니다······.”

기 세워주려고 하는 말이라 생각하여, 황 팀장은 가볍게 대답했는데.

지혁은 정색한 얼굴로 말했다.

“그냥 하는 말 아니에요.”

“······.”

“성장을 위한 값 지불. 지극히 정상적인 과정이죠. 그날을 위한.”

황 팀장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날?’

격려인 것 같으면서도 그의 말이 좀 묘했다.

지혁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이 회사 대표가 누굽니까? 하하. 값 지불은 얼마든지 가능하니까. 절대 기죽지 마시고, 좋은 리더로 계속 성장해 주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지혁은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들기며 말했다.

“끝까지 제 옆에 있어주셔야 합니다.”

***

선도 SDS 대표이사실.

오 부회장은 막 출근하여 사무실로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그래.”

비서실장의 인사를 받으며 자리에 앉았는데.

‘음?’

여느 때처럼 책상 위에, 여러 언론사의 조간신문이 놓여 있다.

그중 하나가 눈에 거슬렸는데.

‘선도물산, 요르단 원전 단독수주.’

유독 원전을 집중적으로 잘 다루는 보수 언론사의 1면의 대제목이었다.

그 아래에 굵은 글씨의 소제목도 눈에 띄었는데.

‘오지혁 대표이사의 요르단 담판 작전.’

꿈틀.

오 부회장의 미간이 접혔고.

비서실장은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재빨리 신문을 거두며 자연스럽게 말을 했다.

“비서실 직원들 다시 교육 시키겠습니다. 언론사도 잘 선별해서 두라고 했었는데······.”

“갖고 와.”

오 부회장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고려일보 신문 가지고 오라고.”

“······네.”

SDS 비서실장은 오 부회장과 지혁의 관계를 모르지 않는다.

아니, 선도그룹에서 웬만한 위치에 있는 직원 중에, 두 사람이 어떤 관계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다.

“여기 있습니다.”

비서실장은 신문을 건넨 뒤.

긴장한 눈빛으로 오 부회장을 관찰했다.

신문을 잡은 손이 떨리지 않았고.

눈빛도 침착했다.

급발진할 것 같지는 않았다.

‘눈빛이······.’

비서실장은 오 부회장을 자세히 관찰할수록 이상해 보였다.

‘감정이 없어.’

심지어 불편함도 없어 보였다.

오 부회장은 다혈질이며, 급진적인 사람이다.

지혁의 소식을 듣고는 격정적으로 반응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는데.

감정이 없었다.

생명력이 없어 보인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지 모르겠다.

“뭘 그렇게 서 있나? 가서 일 봐.”

“네? 아, 네.”

비서실장이 대표이사실을 나가려는데.

윙-

등 뒤에서 핸드폰 진동음이 들렸다.

“네, 전화 받았습니다.”

비서실장은 걸음을 천천히 했다.

“오랜만이네요. 제가 자리를 이동했습니다. 네? 시판품 조사요? 저희 제품이 있다고요? 뭔데요?”

오 부회장의 목소리가 커졌다.

시판품 조사는 회사 이미지와 관련 있기에 경영자라면 민감할 수밖에 없고.

선도전자 대표이사를 할 때, 표준기술원에 금전의 힘으로 연을 만들어 놨었다.

전자 제품 중에도 시판품 조사 품목에 들어가는 게 많기 때문이다.

“선도물산?!”

오 부회장의 목소리가 커졌고

그때부터 갑자기.

얼굴에 핏기가 돌기 시작하면서.

눈에 초점이 또렷해졌다.

비서실장은 신기해서 오 부회장을 바라봤다.

‘다 죽어가는 뱀파이어가 수혈받은 것처럼······.’

갑자기 화색이 도는 오 부회장.

회사 수장이 기운을 차리면 좋아해야 할 일인데.

비서실장은 불안했다.

***

선도전자 대표이실.

“우리 다 함께 박수 한 번 칩시다! 하하하.”

오진원은 조간신문을 들고 큰 소리로 웃으며 박수 쳤고.

전략실장과 비서실장은 무표정한 얼굴로 오진원이 시키는 대로 박수를 쳤다.

“와~ 하여간 난 사람이라니까. 이거 진짜 쉽지 않았을 텐데.”

오진원은 ‘선도물산, 요르단 원전 단독수주.’ 기사가 쓰인 조간신문을 들고 있었다.

“오지혁 대표 정말 대단하지 않아요? 하하.”

잔뜩 격양된 얼굴로, 오진원은 연신 웃었고.

전략실장은 못마땅한 얼굴로 오진원에게 말했다.

“좋기만 하세요?”

“아, 그럼 좋지. 그룹에 좋은 일이잖아요? 그리고 저 선도물산에 주식도 꽤 있거든요? 하하.”

선도물산은 지주회사이기에, 오너일가의 주식 비중이 꽤 높다.

지혁은 큰집에 좋은 일 만들어준 셈이다.

“하하. 농담이에요. 돈 때문에 그러는 건 아니고요. 전 그냥 지혁이······ 아니지. 오 대표가 하는 일 보면 너무 멋져 보여요. 가슴이 뛴다고 할까?”

“부럽진 않으시고요?”

“재능은 부럽죠. 근데 어차피 우리 회사 잘되는 건데, 배 아픈 건 없어요.”

전략실장은 여전히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그렇게 좋으시면, 전화하셔서 축하라도 해주시죠.”

“아, 그럴까요?”

오진원은 전화기를 들었다가, 곧바로 다시 내려놨다.

‘목소리 들을 생각을 하니······.’

지혁을 좋아하지만 어려웠다.

“축하는 직접 만나서 해줘야죠. 하하. 다 함께 박수~ 하하.”

오진원은 다시 박수를 쳤고.

비서실장과 전략실장은 마지못해 따라 쳤다.

덜컹!

그때 대표이사실 문이 열렸고.

“좋냐?”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을 보고.

오진원은 잘못 봤나 싶어서 눈을 비볐다.

“형님?”

선도전자 대표이사실에 나타난 사람은 오 부회장이었다.

전략실장과 비서실장은 전임 대표를 보고 깜짝 놀라서 어쩔 줄 몰라 했고.

오 부회장은 웃으며 말했다.

“진원아, 그렇게 좋냐고.”

오진원은 얼떨떨한 얼굴로 대답했다.

“좋기는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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