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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이 능력을 숨김-223화 (223/301)

223. 진가는 드러난다

선도전자 대표이사실.

오진원과 오 부회장은 저녁 식사하려고 나가려던 참이었다.

위이잉-

오진원은 진동 소리에, 책상 위의 핸드폰 화면을 본 후.

‘오지혁.’

얼굴색이 어두워졌다.

위이잉-

몰래 나쁜 짓 하다가 들킨 것처럼 안절부절못했다.

핸드폰 진동음이 계속 들렸으나 받지 않았고.

“진원아, 전화 안 받고 뭐 하냐?”

윙-

오 부회장은 오진원의 표정이 심상치 않아 보여서 가까이 왔는데.

그 또한 핸드폰에 뜬 이름을 보고 얼굴이 굳어졌다.

위이잉-

“하아······ 이 자식, 하여간 타이밍은.”

오 부회장은 입맛을 다셨고.

오진원은 망설이다가 결국 전화를 받았다.

딸깍.

“어, 지혁아.”

[형님~ 뭐예요. 왜 이렇게 전화를 늦게 받아요? 바빠요?]

“아~ 아니. 딴 거 하느라 전화 왔는지 몰랐어.”

[그러셨구나. 난 또 일부러 안 받으시는 줄~]

뜨끔.

오진원은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하하~ 설마~”

[농담이에요.]

“넌 농담하지 마.”

지혁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저 지금 넘어가는 중인데, 같이 저녁이나 하죠?]

“어? 갑자기?”

오진원은 당황하여 오 부회장을 바라봤다. 함께 저녁 식사하려고 오 부회장이 기다리고 있다.

“미안해서 어쩌지. 오늘 약속이 있는데.”

[그래요? 무슨 약속이요?]

오진원은 오 부회장과 저녁 먹는다는 말은······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누구 만나는지까지 얘기해줘야 해?’

머리를 빠르게 돌리고 있는데.

[하하. 그건 프라이버시인가요? 그럼 방금 질문은 못 들은 거로 하세요.]

“응? 어어. 고맙다.”

[근데, 좀 이상하다.]

“······.”

[오늘 형님 분위기가 평소와 좀 달라 보이는데.]

“내, 내가 뭘 어쨌다고 그래.”

지혁은 갑자기 의외의 말을 했다.

[형, 혹시······ 사무실 아니에요? 여행 갔어요?]

“어? 갑자기 여행이라니. 무슨 소리야.”

[근데 왜······ 거리감이 느껴지지······.]

뜨끔.

이 말을 듣는 순간 등에 식은땀이 났다.

꿀꺽.

‘어디서 지켜 보고 있는 거 아니야?’

별의별 생각을 다 하고 있는데.

[하하. 이번 농담도 재미없었어요?]

‘하아······ 진짜.’

“지혁아, 넌 농담하지 말라니까.”

[놀라는 거 봐봐. 하하. 이래서 더 농담하고 싶은데요.]

오진원은 한숨을 쉬었다.

‘농담도 아주 그냥······ 귀신같이 하네.’

통화도 몇 분 안 했는데, 급 피곤해졌다.

[그럼 식사 맛있게 하세요. 다음에 봬요.]

“어, 그래. 지혁아. 너도 식사 맛있게 해.”

[고마워요. 형님이 옆에 있어서 제가 항상 든든해 한다는 거 알죠?]

오늘따라 평소 잘 하지도 않던 말을 하고.

그럴수록 오진원의 가슴이 바늘로 콕콕 찔리는 것 같았다.

“나도 그래······.”

[끊을게요~]

“어, 어서 들어가.”

뚝.

“후유-“

전화를 끊자마자, 오진원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아우 머리 아파.’

오 부회장은 전화 몇 마디에 녹초가 된 오진원을 보며 혀를 찼다.

“너도 참······ 딱하다.”

“······.”

“왜 이러고 사니.”

***

“본부장님 안녕하십니까.”

“어, 황 팀장. 어서 와요. 내려갑시다.”

“네.”

오늘 시판품 조사 간담회를 가기 위해, 두 사람은 일찍 회사를 나섰다.

“멀리까지······ 번거롭게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황 팀장의 일만은 아니잖아요.”

부임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이런 사고가 터졌으니, 상품본부장은 속이 상했다.

마음 같아선 심한 말도 하고, 짜증도 부리고 싶은데······.

‘대표이사님 사람이잖아······.’

황 팀장에게 그럴 순 없었다.

유 부문장이라도 황 팀장에게 함부로 할 수 없을 것이다.

대표이사의 최측근 중의 최측근.

팀장 시절 때부터 대놓고 챙겼으며, 어딜 가나 그림자처럼 따라붙는다.

‘대표이사의 분신이라는 말까지 들릴 정도니······.’

절대로 황 팀장은 함부로 대할 수 없었으며, 함께 있는 게 어려울 정도였다.

상품본부장이 차 앞에 섰다.

“본부장님, 운전은 제가 하겠습니다. 키 주시면······.”

“아니에요. 괜찮아요.”

표준기술원이 있는 충북 음성까지 상품본부장의 차로 간다.

처음엔 황 팀장의 차로 가려 했는데, 경차를 끌고 다닌다는 얘기를 듣고 상품본부장은 자기 차로 가자고 했다.

약 1시간 30분 뒤. 표준기술원이 있는 충분 음성에 도착했다.

황 팀장은 차에서 내린 뒤, 호흡을 크게 한 번 하며 말했다.

“이야~ 공기 좋네요.”

“국가기관이 뭐 이렇게 외진 곳에 있어요?”

“원래는 과천에 있었는데, 정부 정책 때문에 이전한 거예요.”

“아······ 혁신도시.”

상품본부장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바로 간담회에 참석했다.

영세업자부터 대기업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데.

다들 표정은 어두웠다. 좋은 일로 온 게 아니니까.

[안녕하세요. 멀리까지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표준기술원 담당자가 앞에 나와서 진행했으며, 상품본부장은 간담회를 듣는 내내 드는 생각이······.

‘왜 오라고 한 거야?’

별 내용 없었다.

주의사항에 관한 내용이 대부분이었고, 소명과 관련된 자료를 제출하라는 안내만 했다.

소명 기회 때문에 온 건데, 서류 제출로 할 거면 왜 오라고 한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담당자 만나서 소명하는 게 아닌가 보네요?”

“그런 것 같습니다. 저도 처음이라.”

또한 담당자의 설명을 들으며, 부적합 판정이 번복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게 느껴졌다.

‘결정은 되었으니, 받아들여라.’

이런 뉘앙스를 팍팍 풍기고 있었다.

‘역시······ 시간 낭비했네.’

상품본부장은 큰 기대 안 하고 왔다.

그러다 보니, 크게 실망할 것도 없었다.

“차 막히기 전에 어서 갑시다.”

모든 게 다 끝난듯한 상황에서······ 황 팀장은 매의 눈으로 계속 두리번거렸는데.

상품본부장이 가만히 지켜보니, 누군가를 찾고 있는 것 같았다.

참석자들이 어느 정도 빠져나가고, 주변에 사람이 적어지자.

황 팀장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본부장님 가시죠.”

“네, 가요.”

본부장은 간담회장 밖으로 나가자는 말인 줄 알고 대답한 거였는데.

황 팀장은 강단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뭐야?!’

그의 돌발 행동에 상품본부장은 멈칫했지만, 쭈뼛쭈뼛 그를 따라갔다.

“아이고~ 수고가 많으십니다~”

황 팀장은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한 책임자에게 말을 걸었다.

“네.”

책임자는 퉁명스럽게 응대했다.

간담회 끝나고 황 팀장처럼 찾아오는 사람이 종종 있었다.

“선도물산 패션에서 나왔습니다.”

“큰 기업에서 뭐 이런 안 좋은 일로 오셨어요.”

“그러게 말입니다. 하하.”

황 팀장은 등 뒤에서 음료수를 하나 꺼내었다.

“목 타실 텐데, 이것 좀 드시면서 하시죠.”

“······.”

책임자는 그제야 황 팀장의 얼굴을 힐끗 봤다.

“고맙습니다.”

“음성이 참 공기가 좋네요~ 그래도 주변에 뭐가 없으니 답답하시겠어요.”

“그렇죠. 뭐.”

황 팀장은 웃으며 말했다.

“잠깐 대화 좀 어떻습니까? 맨날 보는 사람들 말고, 뉴페이스와 오랜만에 좋잖아요. 업계 돌아가는 소식도 듣고. 하하.”

속이 뻔히 보이는 접근.

‘이게 된다고?’

상품본부장은 미심쩍은 눈으로 황 팀장이 수작 부리는 걸 뒤에서 지켜봤다.

“뭐, 그럽시다. 따라오세요.”

황 팀장에게는 상대방의 적의를 무장해제 시키는 매력이 있다.

이런 사람이 목적성을 띠면 무서워진다.

“하하, 네. 본부장님 뭐 하세요?”

황 팀장은 멍한 얼굴로 있는 상품본부장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이게 되네?!”

***

좀 전에 서글서글하던 모습과는 달랐다.

황 팀장은 자리를 잡자마자, 자초지종을 설명하며 무섭게 집중했다.

책임자는 묵묵히 들어주었다.

상품본부장은 이런 상황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책임자가 아주 철벽같아 보였는데······.’

황 팀장은 그 철벽을 살살 녹이고 있었다.

말발이 수려한 것도, 뭔가 특별한 기술을 부리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억울한 부분이 있으셨네.”

책임자는 황 팀장에게 넘어가 버렸다.

“맞습니다. 하아~ 세상일이라는 게 참 마음 같지 않아요.”

책임자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어쨌든, 지금 매장에 문제 되는 제품은 없다는 거죠?”

“네, 맞습니다.”

“증거자료 제시할 수 있습니까?”

“물론이죠. 얼마든지 제시할 수 있습니다.”

“흠······.”

책임자는 잠시 고심하다가, 말했다.

“오케이. 그럼 이렇게 합시다. 사이즈별 2장씩 랜덤검사 하고, 문제없으면 브랜드 자체 시정 조치로 끝내는 거로 하죠.”

불끈!

황 팀장은 주먹을 꽉 쥐었고.

상품본부장은 놀라서 눈이 커졌다.

‘이게 진짜 된다고?’

짧은 시간 동안 이 말을 세 번 생각했다.

누군가의 업무 능력을 보면서 놀란 건, 지혁 이후에 처음이었다.

‘사람은 끼리끼리 논다더니.’

성향은 다르지만, 확실히 황 팀장에게도 지혁 못지않은 ‘특출남’이 있었다.

“하하!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황 팀장은 책임자의 손을 잡고 연신 흔들며 웃었으며.

책임자도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하하. 그래요. 잘됐네요.”

상품본부장은 어이없어서 이 두 사람을 바라볼 뿐이었다.

***

회사로 돌아가는 길.

상품본부장은 운전 중에 옆 눈으로 황 팀장을 힐끔 봤다.

‘순딩해 보이는데, 새삼 다시 봤어.’

순진한 얼굴 뒤에 강단이 있었고.

무엇보다도 사람을 자기편으로 만드는 재주가 뛰어났다.

간혹 회의 시에 얼굴 마주할 때는 느낄 수 없던 거였다.

온종일 함께 시간을 지내 보니, 그의 진가가 보였다.

‘대표님이 이래서 황 팀장을 챙기는 건가?’

이해가 되지 않던 부분이 어렴풋이 알 것 같기도 했다.

“황 팀장님.”

“네! 본부장님.”

황 팀장은 싱글벙글 웃으며 상품본부장을 바라봤다.

어려운 일을 성사했다는 기쁨에, 그는 내내 싱글벙글이었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봐도 돼요?”

“물론이죠~ 뭐든 물어보십시오.”

“대표님과는 어떻게 가까워지신 거예요? 두 분 엄청 친하잖아요.”

“아~”

황 팀장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친하다기보다는 제가 그분을 모시는 거고, 대표님이 절 받아주신 거죠.”

자리에 없어도 지혁을 아주 깍듯하게 대했다.

“네, 뭐 어쨌든요.”

“그냥······.”

황 팀장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분이 찾아와주셨죠.”

“찾아와요?”

“네. 저도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찾아와서 선택해 주셨습니다.”

“······.”

“꽃과 나비 같다고 할까요.”

상품본부장은 순간 소름이 돋았다.

‘표현이 좀······.’

남자끼리 쓸만한 표현은 아니었다.

“황 팀장님 결혼하셨다고 했죠?”

“하하. 네. 했습니다.”

상품본부장은 안도의 한숨을 내쉰 후, 말했다.

“황 팀장님은 충성심이 대단한 거 같아요. 대표님도 팀장님을 매우 아끼시는 것 같고.”

이 말에 황 팀장은 조금의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충성심이라······ 전 보은이라고 생각하는데.”

“보은이요?”

“네. 대표님이 해주신 걸 생각하면, 제가 하는 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

상품본부장은 다시 한번 곁눈질로 황 팀장을 보았는데.

뭐라 그리 좋은지, 얼굴이 환히 빛나고 있었다.

“당연히 따를 수밖에 없죠.”

그리고 황 팀장은 상품본부장을 향해 큰 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근데, 이것저것 다 떠나서, 우리 대표님 사람 자체가 너무 멋지지 않습니까? 막 따르고 싶지 않습니까?!”

아니라고 대답하면, 절대로 안 될 것 같았다.

“그, 그렇죠.”

상품본부장은 어색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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