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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이 능력을 숨김-224화 (224/301)

224. 뭔가 이상하다 (1)

상품본부장과 황 팀장은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유 부문장에게 보고했고.

일의 경중을 떠나서, 대표이사가 관심 갖는 일이기에, 유부문장은 곧바로 지혁을 찾아갔다.

“실무자 불러주세요. 얘기 듣고 싶습니다.”

지혁은 기대하지 않았던 좋은 소식이라, 한껏 웃으며 말했고.

유 부문장은 자신 있게 상품본부장과 황 팀장을 호출했다.

“안녕하십니까.”

“수고 많으셨습니다. 어서 앉으세요.”

“네!”

황 팀장은 잔뜩 긴장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가 앉자마자, 윤 실장이 고개를 저으며 박수를 쳤다.

“우와~ 황 팀장 다시 봤네. 어떻게 한 거야? 얘기 들었는데.”

“······.”

“내가 10년 넘게 상품기획 했지만, 시판품 조사 부적합이 이렇게 넘어간 적은 없었는데? 하하.”

지혁도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요. 솔직히 저도 기대 안 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따끔한 매 한 대 맞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하하. 두 분 참 고생 많으셨습니다.”

상품본부장은 황 팀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는 한 거 없습니다. 옆에서 오늘 황 팀장 하는 거 보면서 저도 많이 놀랐습니다. 하하.”

황 팀장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좋은 책임자 만나서 운이 좀 좋았을 뿐인데, 이렇게 띄워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어려운 일 해놓고도, 어리바리한 모습을 보이는 게 재밌어서 모두 큰 소리로 웃었다.

“와~ 이 수줍어하는 모습은 뭐야? 아까 표준기술원에서는 막 들이대더니, 황 팀장 반전 매력 있네.”

상품본부장이 웃으며 한마디 하자, 그의 얼굴은 더 붉게 달아올랐다.

지혁은 만면에 미소를 가득 안고 말했다.

“제가 이래서 황 팀장을 좋아합니다.”

“······.”

아끼는 직원이 좋은 결과를 내서일까?

그답지 않게 약간 오바했다.

황 팀장에 대한 사심을 숨기지 않았다.

“제가 장담하는데, 여기 계신 경영자분들 머지않아 황 팀장의 진가를 경험하시게 될 거예요. 하하.”

지혁은 흐뭇한 얼굴로 황 팀장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고.

다른 사람들은 어색하게 미소 지었다.

‘좀 과한데?’

‘그래 봐야 사고 난 거 수습한 건데.’

‘대표님은 유독 황 팀장한테 약해.’

‘이래서 황 팀장한테는 조심해야 한다니까.’

지혁이 복직했을 때.

모두가 또라이라며 피했지만, 그의 옆에 굳건히 버텼던 한 사람.

그 덕을 시간이 지날수록 톡톡히 받고 있었다.

지혁이 말했다.

“황 팀장님. 그럼 바로 랜덤검사 진행하는 거죠?”

“네, 맞습니다. 분명히 이상 없을 겁니다.”

“네, 사후 조치 잘하시고. 그럼 지금부터 저는 시판품 조사 건에 대해서는 신경 끄겠습니다.”

황 팀장은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대표님. 맡겨주십시오.”

***

일주일 뒤.

지혁은 출근한 후 메일을 확인하다가.

[시판품 조사 건 KC랜덤 검사 보고의 건]

이 제목이 생소하게 느껴졌다.

정말로 그날 이후로 신경 안 쓰고 있었다.

조금의 걱정 없이 메일을 클릭했고.

‘모두 적합.’

황 팀장이 자신 있게 말한 대로 랜덤검사는 ‘적합’으로 판정되었다.

지혁은 피식 웃고는 다른 메일을 확인했다.

대표이사의 업무는 대부분 미팅이다.

출근하여 메일 보는 시간 30여 분 제외하고는 온종일 미팅 혹은 서류 결재다.

여느 때처럼 일하며 하루를 보내고 있는데.

늦은 오후.

“대표님······.”

상품본부장이 죽을상이 되어 대표이사실로 들어왔다.

“어쩐 일이세요? 앉으세요.”

패션상사부문에서 상품본부장은 거의 패션 부문장 역할을 한다.

그러다 보니, 상품본부장과 대표가 만나는 일이 잦은 편인데.

“하아······ 대표님. 죄송합니다.”

“무슨 일인데요?”

“시판품 조사 건 말입니다.”

지혁의 미간이 좁혀졌다.

“그거 아침에 메일 봤는데. 이상 없다고.”

“네, 이상은 없습니다. 근데······.”

상품본부장은 망설이다가, 서류철에서 출력본 하나를 꺼내어 지혁에게 내밀었다.

‘사전 언론 배포자료.’

지혁은 출력본에 붉은색으로 체크된 항목을 보았다.

‘스타덕 키즈 : 니트 티셔츠.’

지혁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이게······ 뭡니까?”

“······.”

“협의가 되었다고 하지 않았어요?”

“맞습니다. 분명히 저도 옆에서 들었고······.”

결국, 일이 터져버렸고.

상품본부장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사전 언론 배포자료.’

이는 언론 배포를 하기 전에 최종적으로 대상 기업에 알리는 절차다.

기업의 매출과 이미지에 악영향이 갈 수 있는 일이므로, 기관에서는 안전장치의 의미로 사전에 알려준다.

즉, 이대로 간다는 거다.

‘뭔지는 모르지만, 일이 꼬였구나.’

애초부터 어쩔 수 없다며, 내려놓았던 일이었다.

‘운 좋게 넘어가나 싶었는데······.’

때로는 의도치 않아도 매를 맞아야 할 때가 있는 법. 벌어진 일은 어쩔 수 없다.

지혁은 흥분을 가라앉히고, 상품본부장에게 물었다.

“황 팀장님은요?”

“당장이라도 책임자 찾아가겠다고 난리입니다.”

“누구보다도 본인이 제일 속이 터지겠죠.”

지혁은 입맛을 다셨다.

‘어쩔 수 없는 일이야.’

법과 제도로 만들어진 일은 받아들여야 한다.

그게 정신 건강에 좋다.

“알겠습니다. 저도 빨리 그룹에 보고해야겠네요.”

“네······.”

문득, 지혁은 한 가지 미심쩍은 게 있어서 물었다.

“근데······ 왜 책임자를 찾아간다는 거죠? 연락하면 될 일을.”

“아, 그게 아무리 연락해도 받지를 않는답니다.”

“······.”

“기관에 전화하면 다 행방을 모른다고 하고요······.”

고개를 갸웃했다.

‘다 모른다고?’

미심쩍은 느낌이 들었다.

이성보다는 감각에 가깝다.

‘그 세계’에서 살아남으며, 위협을 감지하는 특유의 동물적 감각이 있다.

‘이상해······.’

곰곰이 생각했는데.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 쑤셔보자. 전화 한 통이 어려운 일도 아니고.’

***

상품본부장이 눈치를 보고 있는데.

지혁이 말했다.

“더 하실 말씀 있으세요?”

“아닙니다. 다 보고드렸습니다.”

“네, 그럼 수고하세요.”

상품본부장은 불안한 얼굴로 대표이사실을 나갔고, 지혁은 인터넷으로 표준기술원 전화번호를 찾았다.

상품본부장의 걸음 소리가 멀어진 걸 확인한 뒤, 곧바로 전화했다.

[네, 표준기술원입니다.]

“안녕하세요. 거기 가장 높으신 분이 누군가요?”

[네?]

안내데스크는 멈칫했다가 물었다.

[실례지만 어디시죠?]

“질문은 제가 먼저 했습니다만.”

약간 당황했지만, 적절히 대답했다.

[원장님이십니다.]

“그렇군요. 원장님 전화 연결 좀 시켜주실 수 있을까요?”

[어떤 사항 때문이신지 모르겠으나, 죄송하지만 원장님과의 통화는 어렵······.]

최근 시판품 조사 판정에 불만을 품고, 다짜고짜 사장 바꾸라며 연락하는 영세업자들이 있었다.

자연스럽게 전화를 끊기 위해 하는 말이었는데······.

“선도물산 대표이사 오지혁이라고 합니다.”

[네?]

“아까 어디냐고 물으셨죠.”

[저, 정말요?]

국내 최대 기업의 대표이사가 안내데스크로 전화하여, 원장 바꿔 달라는 상황.

믿기 어려웠지만, 장난 전화라고 생각하고 무시하기에는······.

‘만약 진짜면 어떡해?!’

안내데스크에서 머뭇거리고 있는데, 지혁이 말했다.

“믿으셔도 됩니다. 안내데스크는 대표이사라고 해서 전화 연결했을 뿐입니다. 만약 아니라고 해도 문제 될 게 있습니까?”

지혁의 말이 설득력 있었다.

‘그래. 이 사람은 대표야. 난 대표에게 연락받은 거고.’

만약 문제 생겨도 거짓말 한 사람 잘못인 거지, 안내데스크는 자기 일 했을 뿐이다.

안내데스크는 곧 태도를 달리했다.

[대표님, 안녕하십니까.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연결해 드리겠습니다.]

뚜- 뚜-

약 10초 후.

덜컥.

[네, 전화 받았습니다. 표준기술원장입니다.]

“원장님, 안녕하세요. 선도물산 대표이사 오지혁이라고 합니다.”

[네, 대표님. 반갑습니다. 어쩐 일로 전화 주셨습니까?]

원장은 안내데스크로부터 대표라고 안내받았기에, 의심하지 않았다.

“우리 회사 제품 중 이번 시판품 조사 부적합 대상에 올라간 게 있습니다.”

[아, 그래요?]

원장은 잘 모르겠다는 듯 대답했다.

“좀 억울한 부분이 있는데요.”

황 팀장에게 들었던 얘기를 그대로 해주었다. 표준기술원에 방문하여 협의하기로 한 내용까지 말이다.

[흠. 네.]

원장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꾸하며 잠자코 들었다.

지혁은 수화기를 통해 들리는 그의 목소리 톤과 호흡을 관찰했다.

‘모른다는 듯이 전화 받더니······ 다 아는 것 같은데?’

얘기를 할수록, 반응과 추임새가 너무 자연스러웠다.

“자초지종은 다 말씀드렸는데요. 협의가 끝난 내용은 지켜주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사전 언론 배포자료에 문제는 없는 거로 알고 있습니다.]

“자료 문제가 아니라, 협의된 내용을 지켜달라는 말씀을 드린 겁니다.”

[전 잘 모르겠습니다. 법대로 했고 이상 없는 거로 알고 있습니다.]

‘이상해. 꼭 준비된 답변 하는 거 같아.’

호흡과 말투의 흐름이 기계적이었다.

[안타깝네요. 심심한 위로의 말씀 드립니다. 이만 끊겠습니다.]

성과는 없었지만.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었다.

***

‘분명히 뭔가 있다.’

단순히 한 번의 통화였지만, 확실히 느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꾸리한 뭔가가 작동되고 있음을.

‘그게 뭘까.’

전화를 끊고, 한참을 생각했으나.

‘혹시, 국가전력 홍 부사장이 앙심을 품고?’

바로 고개를 저었다. 그럴 이유가 없었다.

아무리 고민해도 딱히 떠오르는 건 없었는데.

그러다가······ 생각이 한 곳으로 모여졌다.

‘뜻대로 안 되게 하면 드러나겠지.’

“윤 실장님!”

지혁은 문밖을 향해 소리쳤고.

덜컹.

바로 윤 실장이 들어왔다.

“네, 대표님.”

지혁은 곧바로 지시했다.

“표준기술원에 대해서 알아보세요.”

“네? 갑자기요? 뭐에 대해서요?”

“그냥 다요. 위아래 어떤 기관이 있는지, 조직도, 부처별로 하는 일 등.”

“네 알겠습니다.”

“얼마나 걸릴까요?”

“그거야 뭐, 자료 수준에 따라서 다르죠.”

지혁은 시계를 본 후 말했다.

“두 시간 뒤에 뵙죠.”

“겨우 두 시간이요?”

“서둘러주세요.”

윤 실장은 지혁의 굳은 얼굴을 보고, 토를 달 상황이 아니란 걸 느꼈다.

“알겠습니다.”

두 시간 뒤.

윤 실장은 보고서를 들고 안으로 들어왔다.

“대표님, 보고드리겠습니다.”

“네, 실장님.”

지혁은 하던 일을 멈추고, 윤 실장 얘기를 듣기 위해 소파로 왔다.

“아······ 우선 개괄적인 내용부터 말씀드리면요.”

“네.”

“표준기술원은 산업통상자원부의 소속기관으로서······.”

“잠깐! 잠깐!”

지혁은 윤 실장이 보고를 시작하자마자, 말을 끊었다.

“어디 소속기관이라고요?”

“산업통상자원부······.”

지혁은 잠시 멍한 얼굴을 짓다가, 큰 소리로 웃었다.

“하하. 뭐야. 고민할 것도 없네.”

“네? 뭔가요?”

얼마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게 연락받았었다.

‘도울 일이 있으면 연락 달라고.’

“법이고 뭐고 찍어 누르면 되는 거잖아.”

“그러니까, 뭐가요.”

윤 실장은 지혁이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나 싶었다.

“인사드리러 가야겠네.”

“어디를요?”

지혁이 물었다.

“산업부가 어디 있죠?”

“세종시에 있습니다.”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말했다.

“내일 세종시 출장 스케줄 잡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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