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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이 능력을 숨김-226화 (226/301)

226. 어떻게 된 일인가? (1)

D-day.

시판품 조사 언론 보도 날.

황 팀장은 살아도 사는 게 아닌 것 같았다.

출근은 했지만, 오늘은 정말 회사 오기 싫었다.

“안녕하십니까.”

“어······ 안녕.”

팀원들이 인사를 해도 받는 건지 마는 건지.

영혼이 빠져나간 듯한 황 팀장을 보면서, 팀원들도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힘드실 만하지.’

‘참 운도 없으셔. 어떻게 오시자마자······.’

특히, 팀원 중에 고개를 못 들고 있는 사람이 있었는데.

스타덕 니트 생산 담당인 김 과장이다.

그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황 팀장에게 텃세 부렸었는데.

자신이 그렇게 못되게 굴었음에도 황 팀장은 어떻게든 그를 보호해주려 했고, 그래서 더 얼굴을 들지 못했다.

황 팀장은 이 일과 관련하여 김 과장을 윗선에 한 번도 노출하지 않았다.

“팀장님······ 죄송합니다.”

김 과장이 다가와서 말하자, 황 팀장은 억지로 웃어 보이며 말했다.

“뭘 죄송해. 일하다 보면 이런 일 생길 수도 있는 거지.”

말은 이렇지만, 황 팀장의 손을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자기는 나한테 다 보고했잖아.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어서 가서 일 봐.”

“······.”

오전 9시 30분경.

‘국표원, 여름의류. 공기 매트리스 등 87개 제품 안전기준 부적합’

시판품 조사 기사가 떴다.

황 팀장은 일부러 기사를 찾아보지 않고 다른 일에 집중했다.

‘때가 되면 들리겠지.’

어차피 결과 나오면, 선도물산 홍보팀에서 알려줄 테니까.

피할 수 없는 매를 굳이 찾아서 맞을 필요는 없다.

오전 11시.

‘이상하다. 왜 연락이 없지?’

이쯤 되면 홍보실에서 연락이 와야 하는데.

팀원들도 이상함을 느꼈는지, 그중 한 명이 인터넷 기사 검색을 해봤다.

“팀장님!”

후유-

황 팀장을 한숨을 쉬었다.

‘올 게 왔구나.’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불려갈 채비를 하고 있는데.

“팀장님! 빠진 것 같습니다! 빠졌어요!”

“뭐가?”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우리 제품이요! 언론에 안 떴어요!”

“뭐어?!”

황 팀장은 믿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좋아하지 않았다.

“그게 무슨 소리야. 말도 안 되는······.”

“정말입니다!”

“······.”

팀원은 기사를 출력해서 황 팀장 앞으로 가져왔다.

“팀장님! 제가 세 번 확인했습니다. 부적합 리스트에 우리 제품은 없습니다!”

황 팀장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출력본을 잡고, 리스트를 확인했다.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아······ 은혜로다.’

황 팀장은 눈을 꼭 감고, 두 손을 꼭 잡고 덜덜 떨었다.

다른 사람들에겐 어떨지 몰라도.

황 팀장에게는 기적이었다.

이 일 때문에 근 2주 가까이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천국과 지옥을 왔다 갔다 했던 일이 아름다운 기적으로 마무리되는 순간이었다.

한 번 더 확인하고 있는데.

덜컹!

“황 팀장!”

상품본부장이 환한 얼굴로 들어왔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에요? 어?!”

***

“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황 팀장은 눈가를 살짝 훔쳤다.

상품본부장의 환한 얼굴을 보니, 실감이 났다.

그녀는 황 팀장의 손을 꼭 잡았다.

“팀장님이 한 거 아니에요?”

“모르는 일입니다. 그때 이후로 따로 연락받은 적은 없었습니다.”

황 팀장은 웃으며 말했다.

“잠적했던 책임자가 돌아온 걸까요?”

“글쎄요. 공무원이 잠적했을 리는 없고······.”

상품본부장은 미심쩍은 표정을 짓다가, 이내 웃으며 말했다.

“어찌 됐든, 황 팀장님이 그때 가서 잘해서 이렇게 된 거죠. 협의된 대로 지켜진 거잖아요.”

“아유, 아닙니다. 상품본부장님께서 도와주셔서.”

좋은 결과는 관계를 좋게 만든다.

서로 불편하고 미안하여 피하고 있던 두 사람. 언제 그랬냐는 듯 한순간에 돈독한 사이로 변해 있었다.

팀원들은 두 사람에게 축하 인사를 보냈다.

-축하드립니다!

-우리 팀장님이 사고 처리를 잘하신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하하.

-고생하셨습니다!

상품본부장은 시계를 본 뒤, 말했다.

“이럴 때가 아니지. 대표님 궁금해하실 테니까, 바로 가서 말씀드리죠.”

“네? 뭐 이런 일로 찾아뵙는 건.”

상품본부장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사소한 일이라도, 좋은 일일 때는 상사 자주 찾아뵙는 게 좋은 거예요.”

황 팀장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습니다. 가시죠.”

대표이사실.

“안녕하십니까!”

힘차게 인사하며 상품본부장이 먼저 들어갔는데.

“어?”

“본부장님 안녕하십니까.”

윤 실장이 상품본부장을 맞았다.

“대표님은요?”

대표이사실에는 윤 실장만 있었다.

“오전에 외근이 있으셔서요.”

“아······.”

상품본부장이 아쉬운 표정을 짓자.

윤 실장은 살며시 웃으며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좋은 일이 있어서 말씀드리려고 왔는데.”

“무슨 일인데요?”

상품본부장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시판품 조사 부적합 리스트에서 저희 제품이 빠졌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잘됐네요.”

윤 실장은 그다지 놀라는 표정이 아니었고.

상품본부장과 황 팀장의 의아해하는 모습을 보이자.

‘너무 영혼 없었나.’

짝짝짝.

“와~ 정~말 축하드립니다. 하하!”

윤 실장은 리액션을 일부러 크게 했고.

그제야 두 사람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표님이 절대로 내색하지 말랬어.’

윤 실장은 목소리 톤을 높여서 말했다.

“그때 합의된 게 늦게나마 이행되어서 다행이네요. 황 팀장 고생 많았어.~”

“감사합니다.”

완벽한 거짓말을 위해, 윤 실장은 한마디 더 했다.

“대표님이 나가신 지 얼마 안 됐거든요. 가시기 전에 기사 확인하셨어요. 이 일에 관심이 많으시잖아요.”

황 팀장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엔 좋은 성과로 신경 쓰이게 해드려야지······.’

“기사 보시고서, 대표실로 찾아오면 축하 인사 전해달라고 하셨어요. 고생 많으셨다고.”

“하하. 네! 감사합니다.”

상품본부장은 큰 소리로 대답했다.

윤 실장이 기운찬 목소리로 말했다.

“자, 이제 이 일은 일단락되었으니까, 성과에 집중해보시죠. 다음 경영보고에서 상품본부 성과가 1페이지에 장식될 수 있도록요. 하하. 저 상품본부 출신 아닙니까~”

상품본부장은 윤 실장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알았어요. 내가 면 세워 드릴게요.”

윤 실장은 황 팀장도 바라봤다.

“황 팀장도 잘 부탁해?”

“네! 알겠습니다!”

***

‘이 사람들이······.’

오 부회장은 아침에 기사를 확인하자마자, 충북 음성으로 차를 몰았다.

수행기사도 없었다.

급한 마음에 직접 차를 몰았고.

1시간 30분 거리를 1시간 만에 주파하여, 표준기술원에 도착했다.

탁! 탁!

빠른 걸음으로 복도를 걸었다.

‘먹고 배짱이야? 이렇게 뒤통수를 쳐?!’

오 부회장은 오래전부터 공들인 몇 곳이 있는데, 표준기술원은 그중 하나였다.

그 덕분에 선도전자는 오 부회장이 대표로 재직하는 동안, 단 한 번도 시판품 조사에 오르내린 적이 없다.

물론, 품질이 좋은 이유가 크겠지만, 단순히 그뿐만은 아닐 것이다.

‘어머.’

리셉션 직원은 황소처럼 다가오는 오 부회장을 바로 알아보았다.

대한민국 국민 중에 오 부회장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선도그룹에서 대중에게 얼굴이 가장 잘 알려진 사람이니까.

“아, 안녕하십니까.”

“원장 있어요?”

“네?”

오 부회장은 ‘님’자를 붙이지 않았다. 기분도 더러운 마당에 그따위 예의를 갖추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원장이요. 원장. 당신네 원장.”

“······.”

꿀꺽.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리셉션 직원은 마른침을 삼켰다.

“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실례지만, 어디라고 전해드릴······.”

오 부회장은 도끼 눈을 뜨고 여직원을 보았다.

특권의식.

리셉션은 그가 누군지 알고 있어도, 업무 절차상 확인하는 거였지만.

오 부회장은 자신의 신분을 묻는다는 것 자체가 기분 나빴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리셉션 직원은 많은 사람을 상대해 봐서, 눈치가 빨랐다.

일 나겠다 싶은 생각에, 더 묻지 않고 재빨리 인터폰을 들었다.

“아······ 정말요?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선도그룹 오진양 부회장님이신데······.”

잠시 후, 리셉션 직원은 난감한 얼굴로 인터폰을 끊은 뒤.

“저······ 부회장님?”

“······.”

“지금 미팅 중이라 좀 기다려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미팅? 얼마나요?”

“1시간 정도······.”

“뭐어?!”

오 부회장의 목소리가 올라갔으나, 리셉션 직원은 어쩔 수 없었다.

“흡!”

오 부회장은 목소리가 터져 나오려다가 간신히 참았다.

어찌 됐든 여긴 남의 회사.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젠장······ 1시간이나.’

“미리 연락하고 오셨으면 좋았을 텐데······.”

“뻔한 얘기 하지 마세요.”

오 부회장은 지적질 비슷한 것도 듣기 싫었다.

어쩔 수 없이 기다렸고.

정확히 1시간 뒤.

“부회장님?”

오 부회장은 울그락붉으락한 얼굴로 바라봤다.

“저 따라오시죠. 모시겠습니다.”

“갑시다.”

오 부회장은 리셉션 직원을 따라서 복도를 걸었다.

***

‘대회의실’

오 부회장은 리셉션 직원이 안내한 곳을 보며 물었다.

“뭡니까? 원장 만나러 왔다니까?”

“원장님께서 여기서 뵙자고 하셨습니다.”

“뭐요? 왜요?”

리셉션 직원은 난감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걸 저에게 물으시면······.”

“흠!”

오 부회장은 생각했다.

‘하긴, 모르겠구나. 원장 만나서 직접 물으면 되지.’

“알겠어요. 수고했어요.”

“네.”

저벅. 저벅.

오 부회장은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는데.

대회의실 정 가운데에 원장 혼자 앉아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원장은 오 부회장을 향해 인사했지만.

오 부회장은 그의 인사를 받지도 않고 쏟아부었다.

“이보세요. 지금, 뭐 하는 겁니까?”

“······.”

“그동안 아무 생각 없이 당신한테 이것저것 해다 준 줄 알아요?”

“······.”

“먹었으면, 먹은 값을 해야지. 뒷감당 어떻게 하려고 일을 이따위로 처리합니까?”

“······.”

“내가 아무 증거도 없이 선물을 했을 거 같냐고. 그것도 돈 선물을!”

원장은 묵묵부답이었다.

굳은 얼굴로 가만히 앉아 있을 뿐이었다.

‘이 양반이 정신이 나갔나.’

놀라거나 떠는 기색이 있어야 하는 게 정상인데.

그는 돌부처처럼 앉아서 계속 어딘가를 힐끔거리며 볼 뿐이었다.

“말을 잃은 건가. 할 말이 없는 건가?”

“······.”

“이봐요. 원장!”

돌처럼 굳은 원장의 얼굴 위로 굵은 땀방울 하나가 흘렀고.

그때.

“와······.”

어디선가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분명 대회의실에는 원장과 오 부회장 둘만 있었는데.

이 목소리는 뭔가 싶었다.

오 부회장 황급히 주변을 돌아보았고.

“설마 했는데······ 부회장님이셨어요?!”

다시 들린 목소리에 창가를 확인했고.

커튼 뒤에서 사람 실루엣이 보였다.

실루엣은 곧 모습을 드러내었고, 오 부회장은 얼굴을 확인한 후 그대로 얼어버렸다.

지혁이었다.

오 부회장은 큰 충격에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고.

“대단하십니다. 진짜. 맷집이 있으시네.”

지혁은 원장을 향해 나가라는 듯 손짓했고.

그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도망치듯 대회의실을 빠져나갔다.

쾅!

문이 닫힌 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오 부회장은 몸이 얼어서 꼼짝도 못 했다.

“하다 하다 이제······.”

그를 보는 지혁의 눈이 무섭게 번쩍였다.

“그룹을 위험에 빠뜨리려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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