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7. 어떻게 된 일인가? (2)
보도 당일 아침.
원장은 시판품 조사 기사를 확인하고 나서, 불안해졌다.
“하아······ 어쩔 수 없이 빼긴 했는데······.”
며칠 전.
원장은 산업부 장관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었다.
[원장님. 장관입니다.]
“네! 장관님! 안녕하십니까!”
[잘 지내셨죠?]
“하하. 네.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장관은 대뜸 본론을 얘기했다.
[이번 시판품 조사 건 관련해서 제가 민원을 받았는데요.]
“네? 시판품 조사요?”
원장은 의아했다.
가습기처럼 국민적 관심을 받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시판품 조사는 장관이 관심 가질 사항은 아니다.
[표준기술원과 협의된 대로 이행했고, 이상 없음이 확인되었는데도 사전 보도자료 리스트에 올랐다고 하던데······.]
뭔지 알 것 같았지만, 확실히 하기 위해 물었다.
“어느 회사가 말씀이십니까?”
[선도물산이요.]
“······.”
원장은 의아했다.
‘그걸 장관님이 어떻게 알지?’
장관이 물었다.
[제가 들은 정보가 사실이 아닙니까?]
“혹시 그 얘기는 어디서 들으셨습니까?”
장관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민원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출처를 밝히지 않겠다는 뜻이었고, 원장은 더 묻지 못했다.
[그리고 제가 알고 있는 정보가 틀리냐고 물었는데······이 물음엔 왜 대답을 안 하시죠?]
원장은 고민했다.
‘이 정도 얘기하는 거 보면······.’
어느 정도 알고 있다는 거였다.
사실을 부인할 수도, 긍정할 수도 없었다.
장관은 원장의 대답을 더 기다리지 않았다.
[선도물산은 리스트에서 빼세요.]
“네?!”
원장은 당황하여 말했다.
“사전 언론 보도자료까지 나갔는데요?”
[사전이지 공식 자료는 아니잖아요.]
“다른 업체들에도 리스트가 공유되었는데, 선도물산만 빠지면 반발이······.”
[그건 원장이 알아서 하세요. 실수는 바로 잡아야죠.]
“······.”
[왜요. 실수가 아니에요? 의도적이었나?]
끙······.
원장은 대답하지 못했고.
장관은 짧게 한숨을 쉬고 말했다.
[이상한데.]
“······.”
[아까부터 답변을 가려서 하시네요.]
“······.”
[문책도 하지 않고, 실수를 바로 잡을 기회를 주겠다는데, 고마워하지는 못할망정······.]
원장은 유구무언이었다.
오 부회장과 부적절한 관계가 있었다고 말할 수는 없으니까.
[선도물산을 리스트에서 빼지 못할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
[안 되겠네요. 이번 시판품 조사 시작부터 결론까지 상세하게 보고하세요. 그리고 감사팀 보낼 테니까, 그렇게 알고······.]
“장관님!”
그의 말이 끝나기 전에, 원장은 다급하게 불렀다.
앞뒤 가릴 상황이 아니었다.
후환이 두렵다고 해서, 목을 걸 수는 없는 일이니까.
“선도물산 리스트에 빼겠습니다!”
[······.]
“실수는 당연히 바로 잡아야죠. 다른 업체들과의 형평성 문제 때문에 잠시 고민했었습니다만. 이상 없는 제품이 사전 보도자료에 올라간 건, 저희 쪽 실수이니 바로 잡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수화기 너머 아무런 말이 없다가.
[그럼 빨리 조치하세요.]
“네! 장관님.”
그렇게 선도물산은 최종적으로 리스트에서 빠지게 되었다.
며칠이 지나.
막상, 보도 당일이 되어 시판품 보도 기사를 보고 나니, 불안했다.
‘분명 연락이 올 텐데.’
원장은 계속 핸드폰만 들여다보며, 초조해했다.
오 부회장이 가만 있을 사람이 아니란 걸 아니까. 그리고 먹은 게 있으니까.
***
오전 10시쯤.
[원장님. 선도물산 대표님께서 오셨습니다.]
화들짝!
원장은 갑작스러운 인터폰과 ‘선도’라는 말에 깜짝 놀랐다.
“누, 누구?”
[선도물산 오지혁 대표님이십니다.]
‘오진양 부회장이 아니구나. 근데, 이 사람이 웬일이지?’
원장은 지혁을 만나본 적이 없다.
‘감사 인사라도 하러 온 건가.’
아무리 그래도 보도자료 나간 지 1시간 만에 온 건 이상했다.
“들어오라고 하세요.”
어찌 됐든, 오 부회장은 아니므로 크게 긴장하지 않았는데.
똑똑. 덜컹.
“안녕하세요. 원장님.”
원장은 차가운 인상에, 창백할 정도로 하얀 얼굴의 지혁을 바라보았다.
‘매력 있네.’
처음 만났지만, 언론을 통해서 지혁이 누군지는 알고 있었다.
“대표님, 처음 뵙겠습니다.”
두 사람은 악수한 후, 소파에 앉았다.
“이 먼 곳까지 어쩐 일로······.”
지혁은 웃으며 말했다.
“보도자료 잘 봤습니다.”
원장은 속으로 생각했다.
‘역시······ 그거 때문에.’
갑작스러운 방문이라 좀 불안했었는데, 용건을 확인하니 안심이 되었다.
“늦게라도 협의 사항 지켜주셔서 다행입니다.”
“네? 아닙니다.”
‘협의 사항을 지켰다’라는 말에 원장은 살짝 당황했는데······.
“제가 장관님께 부탁했거든요.”
원장의 눈이 동그래졌다.
‘출처가 이쪽이었어? 근데, 뭘 이렇게 대놓고······.’
들은 귀를 의심하며 한 번 더 생각했다.
‘장관님은 쉽게 만날 수 있는 분이 아닌데.’
둘이 무슨 사이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고,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하지만 지혁은 생각할 틈을 주지 않았다.
“혹시 제가 원장님을 난감하게 했나요?”
“······.”
“뭔가 좀 드신 것 같던데······.”
원장은 눈을 부릅떴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
“생사람 잡지 마세요! 어디 큰일 날 소릴!”
원장의 몸이 사시나무 흔들리듯 떨렸다.
한번 찔러본 건데, 과하게 반응했다.
‘확실히 뭔가 있네.’
원장을 만나기 전, 표준기술원에 이 일과 관련된 사람들에게 이 일이 변경된 배경을 확인했었고.
선도물산의 제품이 갑자기 사전보도자료에 오른 건 원장 지시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를 움직인 게 경쟁사인지, 선도그룹 내부의 다른 인물인지는 아직 확실히 알 수 없지만.
뭔가 있는 건 확실해 보였다.
‘밀어붙여야 해.’
“정황이 뻔하지 않습니까?”
“······.”
“정황이 확실하면, 증거 찾는 건 시간 문제에요.”
부릅뜬 원장의 눈이 흔들렸다.
“잘 모르시겠지만, 저는 절대로 당하고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지혁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저와 선도물산을 건드렸으니, 책임을 지셔야죠.”
“제가 뭘 어쨌다고 그래요! 그리고, 결국엔 문제없게 됐잖아요? 언론 자료에서 빠졌는데······.”
지혁은 벽에 걸린 시계를 본 후 말했다.
“지금부터 5분 드립니다. 그 안에 이 일을 사주한 사람이 누군지 알려주시면, 더 문제 삼지 않을게요.”
“아니, 왜 자꾸 소설을 쓰시냐고요! 사주는 무슨 사주!”
“1분 지났습니다.”
“······.”
지혁은 무표정한 얼굴로 시계만 보고 있었다.
“잘 생각하세요.”
“왜 굳이······.”
“3분 지났습니다.”
원장은 입술을 깨물었다.
어차피 저질러진 일이니 오 부회장이 찾아올 건 뻔하고.
앞에 있는 이 차가운 남자는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할 것 같았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이왕 죽을 거.
뭐라도 해보고 죽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원장은 결국 털어놓았고.
“와······.”
지혁은 그의 얘기를 듣고,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 일의 뒤에 오 부회장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었다.
“이 형님······ 대단하네.”
약간은 탄복한 마음도 들었다.
거의 숨통을 끊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빨리 반격을 준비할지는 몰랐었기 때문이다.
“형님이요?”
어차피 목적은 달성했으니, 실체만 확인할 생각이었는데.
배후에 오 부회장이 있다는 걸 안 이상, 이대로 넘어갈 순 없었다.
원장은 지혁의 눈치를 봤다.
“전 다 얘기했으니, 이만······.”
지혁과 빨리 헤어지고 싶었다.
“오 부회장님이 뭘 해주셨습니까?”
“네?”
“아무것도 없이 그분 부탁을 들어주진 않았을 거 아니에요.”
“······.”
“제가 생각하는 그거 맞죠?”
원장은 불안한 얼굴로 생각했다.
‘자충수였나.’
“그게 맞다면······ 부회장님이 그냥 넘어가지 않을 텐데.”
“······.”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선물을 주진 않거든요. 그건 아시죠?”
원장은 계속 대꾸하지 않았다.
“받을 건 받고,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으니······.”
꿈틀.
원장의 이마의 힘줄이 솟았다가 사라졌다.
“분명히 뒤탈이 있을 텐데.”
지혁은 원장에게 제안했다.
“지금부터 제가 하라는 대로만 하면, 보호해 드릴게요.”
“······.”
“뒤탈 생기지 않도록요. 어떻습니까?”
지혁이 내민 손.
지금 그 손을 잡으면, 모든 걸 인정하는 꼴이 된다.
하지만, 원장 또한 수많은 사람을 만나봤으며, 산전수전 다 겪고 원장 자리까지 오른 사람이다.
지혁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입장은 어느 정도 정해졌다.
‘적대해서는 안 될 사람.’
원장은 고민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미 벌어진 일이며.
지금 그에겐 다른 선택지는 없었으니까.
“뭘 하면 됩니까?”
***
지혁의 앞에 선 오 부회장은 자포자기한 얼굴이었다.
‘이렇게 끝인 건가.’
자신의 운명을 알 것 같았다.
완전히 잘못 걸려들었다.
자신이 파 놓은 함정에 스스로 빠졌다.
도망갈 곳도 핑계 댈 것도 없었다.
그저 당하는 수밖에.
“어떻게 알았어?”
오 부회장은 어렵게 입을 열었고.
지혁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말했다.
“글쎄요.”
오 부회장은 지혁은 태연한 얼굴을 보며, 오진원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상대가 안 될 사람은 건드리지 말아야죠.’
이제야 그의 말을 듣지 않은 게 후회가 되었다.
‘진원이 말대로 가만히 있었어야 했나.’
이번엔 완벽했다고 생각했었다.
일이 이렇게 풀릴 거라곤 전혀 상상 못 했다.
“궁금한 게 있는데.”
“네.”
오 부회장은 지혁을 바라봤다.
“왜 1시간이나 기다리게 했어? 진작 끝내버리지.”
“부회장님이니까요.”
“······.”
“누구나 그렇지만, 부회장님은 급할 때 판단력이 매우 흐려지는 경향이 강하죠.”
지혁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커튼 뒤에서 부회장님이 실수하기를 기다렸다가, 하시는 말씀 주워 담았죠. 근거가 있으면 편해지니까요.”
‘하아······.’
완벽히 걸려들었다는 걸 깨달았다.
조금의 가능성도 보이지 않았다.
***
“형님도 아시겠지만.”
지혁은 오 부회장을 형님이라고 불렀다.
“이제 다 끝났어요.”
오 부회장은 얼빠진 얼굴로 있다가, 피식 웃었다.
“그래, 난 끝났지. 사실 몇 달 전에 끝난 거 아니었냐?”
지혁은 차분히 말하는 그의 모습이 의아했다.
“하지만······ 쉽게 총수가 될 거로 생각하지 마.”
“총수······.”
지혁은 그 말을 되뇌다가, 피식 웃었다.
“제 목표가 총수라고 생각하시는구나.”
지혁이 워낙 작은 소리로 중얼거려서, 오 부회장은 이 말을 듣지 못했다.
“형님은 그룹을 위험에 빠뜨리려 했어요.”
그는 지혁을 무너뜨리기 위해, 회사 명성에 먹칠하려 했다.
KC 검사는 회사 이미지 관련 있고, 심한 경우엔 그룹이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
“더 두고 볼 수가 없네요.”
꿀꺽.
오 부회장은 떨리는 눈빛으로 지혁을 바라봤다.
끝.
두 사람의 관계에 끝이 가까워져 왔음이 느껴졌다.
오 부회장은 창밖을 바라봤다.
‘허망하다.’
이 세상에 있는지도 몰랐던 친척 동생이 어느 날 다가와서.
자신을 곤경에 빠뜨리더니, 이제······ 어쩌면 그로 인해 회사를 나가게 될 수도 있다.
“반항하지 마세요.”
자포자기한 오 부회장의 귀에 지혁의 잔인한 음성이 잔잔하게 들렸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였을까.’
뒤늦은 후회다.
게임은 끝났다.
“많이 고통스럽지 않게.”
지혁은 말이 오 부회장의 귓가에 날카로운 칼처럼 박혔다.
“단칼에 끝내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