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8. 갈 곳이 없다
원장실에서 지혁을 만난 후.
음성의 한 카페에서 한참을 있다가 겨우 길을 나섰다.
오 부회장은 운전대를 잡고 앞만 보았다.
회사로 돌아갈 정신은 아니었다.
이제 끝났다는 생각뿐.
‘걔가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는 않을 거야······.’
윤리경영위 때를 떠올렸다.
공격 기회가 왔을 때, 지혁은 사정없이 오 부회장을 찍어눌렀다.
사정한다고 해서 받아줄 사람도 아니다.
한참을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서울 요금소가 보일 때쯤, 조금씩 이성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너무 성급했어.’
자신의 행동을 되돌아보다가.
선도그룹에서 어떻게 회사생활을 했는지 파노라마처럼 떠올랐다.
일, 성과, 사고.
그런 것들은 별거 없었다. 아주 짧게 떠올랐다.
그보다 기억에 남는 건, 결국 사람이었고.
‘추 이사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윤리경영위에서 권고사직 당한 이후, 미안해서 연락도 해보지 못했다.
추 이사에게서도 연락은 없었다.
‘20년 가까이 회사생활을 했는데, 기억에 남는 사람은 추 이사뿐이라니.’
추 이사가 이상하리만치 적극적으로 오 부회장에게 다가와 줬기에 좋은 관계를 유지했던 거였고.
지금은······ 오 부회장 옆에 아무도 없다.
그렇게 삶의 전부였던 회사생활에서 결국 혼자 남은 거였고.
‘내가 참······ 나빴구나.’
소모품처럼 쉽게 사람을 내쳤던 행동에 후회가 들었다.
오 부회장을 향해 간절한 표정을 짓던 직원들에게 시선 한번 돌리지 않았었다.
자신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일처럼 말이다.
오너일가이며, 이 회사는 내 것이라는 생각.
“아, 미치겠다.”
입장이 되어봐야 실감한다.
여러모로 두렵고 불안한 마음이 가득하였고.
서울에 도착하여, 집 말고 바(bar)로 방향을 돌렸다.
“독한 걸로 주세요.”
‘만약······회사를 떠나게 된다면······.’
이 생각을 하니, 가슴 속에 찬 바람이 쌩하고 지나가는 것 같았다.
오 부회장은 생계를 위해 회사에 다니는 게 아니다.
직장을 잃는다고 해서, 삶이 어려워질 일은 없겠지만, 자신이 사라질 것 같았다.
수십 년간의 회사생활이 그의 삶의 전부와 마찬가지인데, 그 생활을 끝낸다는 건······.
‘두렵다.’
그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존재가 지워질 것 같은 기분이었다.
오 부회장은 연거푸 잔을 비웠다.
독한 위스키를 물 마시듯 먹었다.
‘오지혁이 어떻게 나올까?’
취기로 정신이 몽롱해지자, 애써 생각 안 하려 했던 지혁이 떠올랐다.
‘또 윤리위를······.’
참담했던 기분이 느껴져서, 다시 잊으려고 술을 더 털어 넣었다.
“손님, 인제 그만하시죠.”
한참을 그렇게 마셨고.
급기야 바텐더가 오 부회장을 말렸다.
시야가 흐려질 정도로 취했고, 그리운 얼굴이 있었는데.
오 부회장은 멍한 눈으로 허공을 보며 중얼거렸다.
“아버지······.”
***
삐비빅-
밤늦은 시간.
“어휴 술 냄새.”
어머니는 오 부회장을 보고, 코부터 막았다.
“술 마셨니?”
“네, 조금요.”
“연락도 없이 이 시간에 웬일이야?”
오 부회장은 본가 밖에서 따로 살고 있다.
“아버지 주무세요?”
“아니, 서재에 계시는 거 같던데. 왜? 무슨 일 있니?”
이 시간에 갑자기 온 게 심상치 않아서, 어머니는 걱정 가득한 눈으로 물었다.
“아니요. 이 근처에 약속이 있어서 술 마시다가, 부모님 얼굴 뵌 지 오래된 거 같아서 들렸어요.”
“그래······ 꿀물 좀 타 줄까? 아줌마~”
오 부회장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저 아버지한테 가볼게요. 오늘 자고 가도 되죠?”
“뭘 그런 걸 물어봐. 가족끼리.”
지금은 ‘가족끼리’라는 말이 뼈아프게 들렸다.
어머니는 오 부회장의 등을 두들기며 말했다.
“그리고 괜찮긴 뭐가 괜찮아. 속 버려. 서재에 가 있어라. 마실 것 가져다줄게.”
“그럼, 맥주를······.”
“혼날래?”
오 부회장은 서재에 가서 문을 두드렸다.
“아버지, 진양입니다.”
[어, 들어와라.]
오 회장은 서재에서 책을 보고 있었다.
“왔냐? 앉아라.”
“네.”
늦은 시간이지만, 오 회장은 왜 왔냐고 묻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그를 맞았다.
“······.”
둘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
할 말이 있어서 왔겠거니 싶어서, 오 회장은 가만히 기다렸다.
오 부회장은 그의 모습을 유심히 바라봤다.
‘많이 늙으셨네.’
아버지의 모습을 자세히 본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오 회장은 어렵고 무서운 아버지지만, 오 부회장은 그를 항상 존경했다.
일을 핑계로 딴짓하지 않았고, 가족을 부양한다며 생색내지도 않았다.
아무리 거룩한 행동을 해도, 도덕성이 무너지면 존경하기 어려운 법인데.
권력과 재물이 있어도, 외도 한번 하지 않았으며 은근히 가정적이었다.
장자를 우선시하는 건 트라우마 때문에 어쩔 수 없었지만, 아내를 존중했으며 자식들에게도 잘 하려고 노력했다.
오로지 회사만 생각하는 아버지라도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죄송합니다.”
“음?”
오 회장은 생각지 못한 말에 고개를 들었다.
“갑자기 무슨 소리냐?”
“죄송합니다. 아버지.”
그제야 오 회장은 안경을 내리고 오 부회장의 안색을 살폈고.
“술 많이 마셨냐?”
“죄송합니다.”
“뭐가 죄송한데?”
“······.”
오 부회장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사고 쳤냐?”
“······.”
오 회장은 안색이 굳어져서 물었지만, 오 부회장은 묵묵부답이었다.
“얘기해.”
“사고를······ 칠 뻔했습니다.”
‘선도’라는 이름을 안전기준 부적합 제품 리스트에 올리는 사고를 칠 뻔했다.
그 사고를 제대로 쳤다면, 오 부회장이 술 취해서 이러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사고 치는 데 실패해서, 오 부회장은 끝났다.
“근데, 뭐가 죄송하다는 거야.”
오 회장은 미간을 찌푸리고, 오 부회장을 보다가 깜짝 놀랐다.
‘울어?’
오 부회장은 미세하게 어깨를 떨고 있었다.
꿀꺽. 오 회장은 마른침을 삼켰다.
‘얘가 왜 이러지?’
큰아들이 이러는 모습을 본 적은 없었다.
“진양아, 무슨 일이냐. 아버지한테 얘기해 봐. 괜찮으니까.”
오 회장의 목소리가 누그러졌다.
그 또한 겁이 났다. 보통 일이 아니겠구나 싶었다.
“전 끝났어요.”
“······.”
“아버지······ 죄송해요.”
“끝나다니. 무슨 소리냐.”
오 회장은 눈이 커져서 말했다.
“누가 끝나. 누가 내 아들을 끝내?”
“······.”
“어서, 말해봐. 뭔데? 대한민국에서 아버지가 못 할 일이 뭐가 있냐?”
“말씀드릴 수가 없어요.”
선도그룹을 위험에 빠뜨리려 했다.
오 부회장은 자신의 못난 행동을 도저히 말할 수 없었다.
“진양아. 뭐든 괜찮다니까.”
오 부회장은 의자에서 내려와, 오 회장 앞에 무릎을 꿇었다.
“아버지, 죄송해요.”
그의 어깨가 아까보다 더 크게 떨렸다.
***
아지트.
지혁은 캔 커피를 마셨고, 황 팀장은 그 앞에서 고개를 돌리고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축하해요. 팀장님.”
“아닙니다. 사고 수습한 건데요. 축하받기는 좀. 하하.”
황 팀장은 말은 이러면서 큰 소리로 웃었다.
그가 문제를 인식하지 못했거나,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면, 크게 터질 일이었다.
“대표님, 걱정 끼쳐서 죄송했습니다.”
“죄송할 거 없어요.”
지혁은 황 팀장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 분과는 어떤 인연일까.’
황 팀장이 의도한 바는 아니었겠지만.
어쨌든 그로 인하여 지혁은 한 손엔 숙적의 상투를 잡고, 다른 한 손엔 칼을 들게 되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네?!”
황 팀장은 지혁의 ‘고맙다’라는 한마디가 의아했는데.
“······.”
지혁의 눈엔 진심이 가득 담겨 있었다.
황 팀장은 지혁을 잘 알고 있기에, 그냥 하는 말이 아니란 걸 느꼈다.
“혹시······ 제가 모르는 뭔가가 있나요?”
“······.”
지혁은 잠시 고민했다.
이 일과 관련된 오 부회장 얘기는 윤 실장에게도 하지 않았다.
‘성준이 형은 괜찮겠지. 얘기를 들어보고 싶기도 하고.’
“그게······ 사실은요.”
지혁은 시판품 조사와 오 부회장이 관련된 얘기를 해주었고.
듣는 내내 황 팀장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와······ 오 부회장님 대박. 이런 얘기 저한테 해주셔도 됩니까?”
“입 무거우시잖아요.”
황 팀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 일이 결국은······ 대표님께서 해결해 주신 거였군요.”
지혁은 손사랫짓하며 말했다.
“아니에요. 황 팀장님이 하신 거예요. 전 옆에서 약간 도운 거고.”
황 팀장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최대 경쟁자를 결국 꺾게 되셨네요.”
처리의 문제일 뿐, 게임은 끝난 거나 다름없다.
“그렇죠. 근데 좀 씁쓸하긴 해요. 어쨌든, 형이니까.”
“그래도 끝을 보실 거잖아요.”
“물론이죠.”
황 팀장은 가만히 있다가.
“대표님, 저 예전부터 궁금했던 게 있는데.”
“네.”
“총수를 하려는 진짜 이유가 뭐예요?”
지혁은 황 팀장에게 왕후장상의 씨가 어딨냐며, 총수가 되고 싶다고 했었다.
하지만 황 팀장은 그와 오랜 시간 함께하며, 옆에서 본 모습이 있다.
“물욕 없으시잖아요? 권력욕도 없으시고.”
“······.”
“형제들 대하시는 거 보면, 아버지에 대한 복수도 아닌 것 같고. 나름의 뜻이 있으실 거로 생각하지만, 참 이해가 안 되거든요.”
지혁은 입을 꾹 다물었고.
황 팀장은 그의 눈치를 보면서.
‘괜한 걸 물었나?’
다른 얘기를 꺼내며 화제를 전환하려는데.
“총수가 되고 싶은 게 아니에요.”
그 누구에게도 한 적 없는 솔직한 얘기를 했다.
“오 부회장님만 아니면 됩니다.”
이마의 색에 관한 얘기는 하지 않았지만.
“네? 왜요?”
그와 비슷한 얘기를 했다.
“내 선도그룹을 그에게 맡길 수 없거든요.”
“아······.”
***
오 부회장의 행보를 생각했을 때.
지혁의 말에 어느 정도 수긍이 갔다.
‘나름의 사명감이 있으셨구나.’
“저도 대표님 같은 분이 그룹 총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적임자죠. 하하.”
황 팀장은 웃으며 물었다.
“부회장님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그래도 제 형님이니까······.”
지혁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최대한 고통 없이, 깔끔하게 끝내야죠.”
“······.”
꿀꺽.
그의 말이 참 섬뜩하게 들렸다.
‘하여간 말을 참 무섭게 하셔.’
“처리 방식에 대해 고민 중입니다. 최대한 빨리 결정해야죠.”
황 팀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대표님답게 지혜롭게 잘하실 거라고 믿습니다.”
지혁은 황 팀장과 악수하며 말했다.
“팀장님이 많이 도와주세요.”
“네. 뭐든 분부만 내려주십시오.”
두 남자는 서로를 향해 활짝 웃었다.
그날 밤.
지혁은 야근 중이었다.
오 부회장 처리 방식이 계속 고민되었고.
그 때문에 업무가 밀렸다.
‘어떻게든 오늘 중으로는 결정 내려야지.’
위잉-
늦은 밤. 적막한 사무실에 핸드폰 진동음이 울렸다.
‘오종건 회장님(큰아버지).’
핸드폰에 뜬 이름을 보고, 웬일인가 싶어서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네, 회장님, 오지혁입니다.”
[어, 오 대표. 어디야?]
“아직 사무실에 있습니다.”
[그래, 잘됐네.]
수화기 너머로 잠시 숨 고르는 소리가 들렸고.
[만날 수 있을까?]
“언제 찾아뵐까요? 원하시는 시간 알려주시면 최대한 맞추겠습니다. 내일 뵐까요?”
[지금 봤으면 좋겠는데.]
‘지금?!’
지혁은 시계를 보았는데, 밤 10시가 막 지난 시간이었다.
‘이 늦은 시간에 왜······.’
[잠깐이면 되네. 성북동으로 올 수 있겠나?]
‘그것도 집으로.’
운명이 다가왔을 때의 느낌이 있다.
피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알겠습니다. 바로 출발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