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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이 능력을 숨김-235화 (235/301)

235. 권력의 행방 (3)

오진원을 막기 위해, 오 회장이 말했다.

“혜빈아, 문 닫아라.”

“네, 아버지.”

쾅!

그녀는 문 닫으며 한소리 했다.

“어휴. 오빠는 문 좀 닫고 다녀. 어릴 적이나 지금이나.”

오 회장은 뻘쭘하게 서 있는 오진원에게 말했다.

“뭐해? 어서 앉으라니까.”

“······.”

‘좌석 배치가 참······,’

오진원은 4명의 가족을 마주 보고 앉았다.

일 대 다.

면접 장소 배치도와 비슷했다.

오진원은 눈치를 살피다가, 살며시 입을 열었다.

“무슨 얘기를 하시려고······.”

오진원의 앞에 앉은 네 사람은 서로 눈빛을 교환했고, 오 회장이 대표로 말했다.

“선도그룹은 우리 가족의 회사 아니냐?”

동의를 구하듯 말했지만, 오진원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이제 나이가 많이 들었고, 은퇴를 생각해야 하는데.”

“······.”

“네가 총수가 된 이후를 상의하려고 한다.”

오진원은 잠자코 듣다가 화들짝 놀랐다.

‘이렇게 은근슬쩍?’

빠르게 거부했다.

“무슨 말씀이세요?! 누가 총수를 해요?”

“······.”

“잘못 말씀하신 거죠? 에이, 왜 그러세요.”

오진원은 당황한 기색을 숨기며 자연스럽게 넘어가려는데.

가족들의 표정이 무거웠다.

‘분위기 안 좋은데.’

오진원은 계속 떠들었고, 어떻게든 빠져나갈 생각을 하는데.

오진양이 말했다.

“그럼, 네가 해야지. 누가 하냐?”

“······.”

“내가 하냐?”

오진양은 총수를 할 수 없다.

오진원은 그가 사고 친 얘기를 들어서 알고 있다.

‘가족들도 모르지 않겠지.’

가족들 모두 알고 있는 듯했고, 특히 어머니의 표정이 아주 안 좋았다.

‘왜 하필 진양 형님이······.’

이번 일에 큰 타격을 받은 사람이 앞장서서 말을 하니, 오진원은 더 할 말이 없었다.

오진양은 슬픈 얼굴로 말했다.

“생각하는 사람이라도 있냐?”

“······.”

“혹시, 나보고 그 녀석 총수가 되어 떵떵거리며 사는 꼴 보라는 건 아니지?”

“······.”

“너 그렇게 모진 사람 아니잖아.”

오진원은 살짝 눈을 들어, 오 회장의 표정을 살폈다.

그는 시선 한번 흐트러뜨리지 않고, 오진원을 주시하고 있었다.

‘난감하네.’

오진양이 슬픈 얼굴로 말을 쏟아내니, 오진원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의 특징을 고려한 오 회장의 전략이었는데.

오진원이 들어오기 전에 지시했었다.

‘진양아, 네가 시작해라.’

***

오진원은 생각했다.

‘내가 총수가 된다면······.’

그룹 총수가 어떤 삶을 살게 될지, 오진원은 잘 알고 있다.

아주 어릴 적부터, 선도그룹 총수인 아버지를 보며 자랐다.

총수의 엄청난 영향력.

명예와 권력. 그리고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재산.

선도그룹 총수가 대한민국에서 못 할 일은 없다.

정치에도 영향력을 끼칠 정도인데, 기밀이라 가족이라도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낌새는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난 싫어.’

총수에게 개인적인 삶은 없다.

어릴 적, 오진원에게 아버지는 없었고 선도그룹의 회장만 있었다.

책임감과 사명감으로 지켜야 하는 자리.

선도그룹 직원 20만 명을 책임지며, 더 크게는 대한민국의 경제를 책임진다.

명예와 권력이 있지만, 그만큼 헌신해야 한다.

‘나에게 그런 의지가 있을까.’

그런 삶이 싫기도 했지만, 그 엄청난 책임을 감당할 의지가 있을지도 확신이 서지 않았다.

생각할수록······ 얼렁뚱땅 넘어갈 일이 아니었다.

“혜진 누나!”

오진원은 오혜진을 불렀다.

“어?”

갑작스러운 부름에 오혜진은 놀라서 대답했다.

“누나도 지혁이 지지했었잖아요.”

오진원이 지혁의 이름을 거론하자, 온 가족이 표정이 굳어졌다.

“야, 갑자기 무슨 소리야?”

오혜진은 매우 당황했다. 그녀가 지혁을 지지한 건 비밀이었으니까.

“이 마당에 뭘 숨기세요. 지금 다 까놓고 얘기하는 자리 아니에요?”

“어머, 얘 좀 봐. 상도덕이······.”

오진원은 지금 이판사판 공사판이다.

“지혁이가 총수 자리에 어울린다고 생각해서 지지했던 거 아니에요?”

“······.”

오진원은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으나, 쉽게 대꾸하지 못했고.

그다음으로 오혜빈도 끌어들였다.

“혜빈아, 너도 그렇잖아.”

“오빠! 왜 나한테······.”

오 회장의 눈이 커졌다.

‘혜빈이도?’

오혜진은 권력욕이 있어서, 뒤에서 술수를 부릴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가장 사랑하는 막내딸이 지혁을 밀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오혜빈은 오 회장의 눈치를 살피며 황급히 말했다.

“오빠 왜 없는 소리를 해.”

“너야말로 왜 없는 소리 하냐?

“······.”

“우리 셋이 밥도 함께 먹었었잖아. 앞으로 잘해보자고.”

오 부회장의 입이 벌어졌다.

“와······ 혜빈이 너.”

오혜빈은 울상을 지으며 입을 삐죽였다.

“진원 오빠 너무해.”

오진원은 생각했다.

‘미안하다. 내 코가 석 자라.’

이 폭로로 분위기가 바뀌었다.

어머니는 충격이 큰 듯, 머리를 감싸 쥐었고.

오 회장은 막내딸로부터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잠시 정적이 흐르다가.

오 회장 오혜진과 오혜빈을 바라봤다.

“너희들이 지혁을 찾아가서 돕겠다고 한 거니?”

오혜진과 오혜빈은 크게 도리질하며 대답했다.

“아니요!”

“그럴 리 없죠! 저희가 굳이 왜요!”

오 회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지? 지혁이가 회유한 거지?”

오혜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거절할 수 없는 분위기였어요. 걔가 몰아붙이는 거 전문이잖아요.”

“어머, 언니한테도 그랬어요? 저한테도······.”

‘헛······.’

오진원은 허를 찔린 기분이었고, 오 회장은 얘기를 계속했다.

“그래서. 지금은 어떠냐? 이직도 지혁이 지지하냐?”

오 회장의 물음에, 오혜진은 오진원을 향해 물었다.

“진원아. 지난 일은 의미 없어. 지금 이거······ 지혁이 뜻이라며?”

“······.”

“그래, 내가 지혁이를 지지했었지. 그런데, 그 사람이 널 지목했잖아. 그럼, 과거 일은 상관없는 거 아니야?”

오진원은 할 말이 없었다.

가만히 듣던 오혜빈도 거들었다.

“그때는 오빠가 안 한다니까, 지혁이를 지지했던 거야.”

더 할 말이 없어졌지만.

그래도, 이대로 있을 순 없었다.

***

“왜요? 가족 떼고, 그룹만 생각해봐요.”

“······.”

“지혁이 잘하잖아요. 지금 우리 그룹에 그만한 인재가 있어요?”

“······.”

“가능성도 가능성이지만, 지금까지 해온 걸 생각해보세요.”

최근 3년간 선도그룹에 몇 번의 위기가 있었는데, 지혁이 나서서 해결했다. 심지어 오 회장이 테러당할 뻔한 일을 지혁이 몸을 던져 막기도 했었다.

그룹의 뿌리 깊은 사조직 세력을 근절했으며, 정치에 이용당하고 버려지던 직원들을 구해줬다.

그리고, 선도물산.

부임한 지 3개월도 되지 않았음에도,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모두가 어렵다고 생각했던 요르단 원전 계약 건을 직접 비행기 타고 날아가서 해결했으며.

뻔한 비즈니스 구조를 완벽히 개편하여, 선도물산에 신선한 활력을 불어넣었다.

선도물산 전 직원은 지금 지혁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있다.

이런 분위기라면 선도생명을 제치고 그룹 2위 자리를 차지하는 것도 시간문제다.

이 모든 걸, 오너일가는 잘 알고 있다.

그룹의 굵직한 일에 항상 촉각을 곤두세우기에.

게다가 눈엣가시인, 지혁이 하는 일이니까.

“지혁이도 우리 가족이에요. 남이 아니잖아요.”

“······.”

오진원은 마음을 다해 말했다.

“제가 총수 자리를 원치 않는 것도 있지만, 다들 냉정하게 생각해보셔야 해요.”

“······.”

“선도그룹은 가족회사라고 하셨죠. 그러니까, 우리 가족을 위해 가장 이기적인 선택을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오진원은 답답한 듯 책상을 두드리며 말했다.

“제가 가까이서 봐서 안다니까요. 지혁이는 진짜 인재에요. 모두를 위해서 지혁이가 되어야 해요.”

여간해선 오진원은 큰 소리를 내지 않는다.

그런 그가 격정적으로 말을 하니, 가족들은 잠자코 듣게 되었고.

오 회장 또한 그의 말을 유심히 들었는데.

‘최 부회장이 말한 것과 비슷하네.’

가까이서 봐왔기에 안다며, 지혁을 적임자로 미는 게 최 부회장과 똑같았다.

‘하긴, 나나 가족들은 지혁이를 자주 보는 건 아니니까.’

최재훈 부회장과 오진원.

회사에서 가장 존경을 받는 사람들이며, 사심 없이 일하는 사람들이다.

이 두 남자가 이렇게까지 지혁을 밀고 있으니.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나.’

지혁이 특출난 사람인 건 알고 있다.

‘나보다야 당연히 지혁이를 잘 알겠지······.’

내 자식 이외의 사람에게 뺏길 뻔한 자리를 운 좋게 가져왔고.

지금도 그의 마음속에 후계자는 오진원밖에 없지만.

조금은 지혁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

“오지혁이 도대체 널 어떻게 했기에, 이렇게까지 그 녀석을 지지하는지 모르겠는데.”

오 부회장이 말했다.

“내가 보기엔 넌 걔한테 심리적으로 지배당해서 조종당하고 있는 거야.”

오진원의 미간이 찌푸려졌으나, 오 부회장은 계속 얘기했다.

“그 녀석이 우리 가족에게 어떻게 했는지 잊은 거니?”

오 부회장은 억울함이 가득 담긴 눈으로 격정적으로 말했다.

“그리고 내가 걔한테 뭘 잘못했어?”

“······.”

“이거 다 오지혁이 시작한 거야. 난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다고. 걔한테 큰 실수를 한 적도 없고. 아니, 생각해봐. 난 부회장이고, 걘 일개 팀장이었는데. 실수할 게 뭐 있어? 안 그러냐?”

그의 말이 틀리지 않기에, 오진원은 잠자코 들었다.

이 싸움은 지혁이 시작한 게 맞다. 그 이유는 아직도 정확히 모른다.

“아버지에 대한 복수 때문에? 혹은 권력에 대한 욕심?”

오 부회장은 피식 웃고는 말했다.

“차라리 그런 목적이라면 이해하기 쉽지. 난 도대체가 걔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니까? 여기 아는 사람 있으면 설명 좀 해줘 봐.”

“······.”

“속을 모르겠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런 예측 불가능한 놈한테 총수를 맡기자고?”

그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진원아. 네가 뭘 봤는지 모르겠지만, 난 이건 아니라고 봐. 오지혁은 정말 아니야.”

오진원은 지혁을 두둔했다.

“형은 지혁이를 잘 몰라요.”

“넌 걔를 그렇게 잘 알아? 몇 번이나 얘기해봤냐? 만난 지 얼마나 됐어?”

함께한 시간만 따지고 보면, 잘 안다고 말하긴 어렵다.

“형이 우려하는 거. 저도 모르는 바는 아니에요. 하지만, 확실한 건······.”

오진원은 자신 있게 말했다.

“지혁이는 회사 생각만 해요. 오로지 회사 생각만.”

“······.”

“그건 확실합니다.”

“너는······.”

오 부회장이 반박하려는데, 오 회장이 막았다.

“이제 그만하자. 아직 때가 아닌 것 같구나.”

그는 오진원을 바라봤다.

“지금은 너한테 선택하라는 게 아니라, 받아들이라는 얘기를 하려고 만난 자리다.”

오진원은 입을 꾹 다물었다.

“아무래도 갑작스럽겠지.”

오 회장은 한숨을 쉰 후 말했다.

“앞으로 3개월 준다.”

“······.”

“그동안 마음 정리해. 피할 수 없는 운명은 받아들이는 게 좋다.”

“······.”

“네가 내 아들이라는 건 변함이 없으니까.”

오진원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고, 오 회장은 한숨을 쉬었다.

‘나도 좀 시간이 필요하고.’

그 또한 혼란스러웠고,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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