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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이 능력을 숨김-238화 (238/301)

238. 생각이 바뀌다 (1)

다음날.

지혁과 수아는 산부인과에 갔다.

“와······ 사람 많네.”

집 가까운 곳의 산부인과를 왔는데.

토요일이라 그런지, 사람이 정말 많았다.

“다음부턴 좀 멀어도 선도서울병원으로 가자. 대표이사는 주치의 배정해주니까.”

“응······ 우리나라 저출산이라더니, 아닌 거 같아.”

수아는 임산부들로 꽉 찬 병원 내부를 보며 중얼거렸다.

“저출산 맞아. 주말인 데다가, 주변에 큰 산부인과가 여기뿐이라 그런 거겠지.”

지혁은 수아의 어깨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둘은 접수한 후, 한참을 기다렸다.

30분 경과.

1시간 경과.

대략 1시간 30분쯤 정도 지나서, 기다리기 지칠 때쯤.

“윤수아님~”

병원에 올 때만 해도 매우 긴장했었는데, 오랜 기다림 덕분에 진정되어 있었다.

“네~”

기다림에 지친 수아는 벌떡 일어나 빠르게 걸었고, 지혁은 따라가며 말했다.

“조심. 조심. 홑몸 아니잖아. 천천히 가.”

덜컹.

진료실에서 전문의가 두 사람을 맞았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막상 들어오니까, 다시 긴장되었다.

각 잡고 서 있는 두 사람에게 전문의가 웃으며 말했다.

“거기 편하게 앉으세요.”

전문의는 맞은편에 앉아서 수아에게 몆가지 질문을 했다.

“월경하신 지 얼마나 됐어요?”

“한 달 반 정도 됐습니다.”

“테스트기 사용하신 건가요?”

“네. 어제 두 줄 나왔습니다.”

“속이 메스껍거나 불편한 건 없으시고요?”

“그런 건 없습니다.”

전문의는 일어나서, 장갑을 끼며 말했다.

“우선 초음파로 확인해볼게요. 임신 주차가 얼마 안 된 거 같은데. 아직 아기가 보이지 않을 수도 있거든요?”

“······.”

“임신테스트기에 두 줄 나온 건, 임신 호르몬이 있다는 얘기니까요. 만약 안 보여도 실망하지 마시고, 다음 주에 한 번 더 나와 보시면 돼요. 물론, 임신이 아닐 가능성도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간호사는 수아를 다리를 벌리게 해서 눕힌 뒤, 그 위를 천으로 가렸다.

“조금 불편하실 수 있어요~”

꿀꺽.

지혁은 마른침을 삼키고, 초음파 화면을 보았다.

띡- 띡-

적막한 가운데 기계음만 들렸고.

지혁과 수아는 숨을 죽였다.

‘제발······.’

지혁은 화면을 보며, 임신이기를 바랐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 반대였는데.

아기가 생겼다는 걸 받아들이고 나니, 지금은 완전히 생각이 바뀌었다.

“아······.”

화면에 검은 점 같은 게 보였는데.

전문의는 웃으며 말했다.

“아기집이 보이네요. 축하드립니다.”

수아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고.

지혁은 멍한 얼굴로 화면을 바라봤다.

“동그란 검은 원 안에 하얀 점 같은 거 보이시죠? 태아입니다.”

수아의 배속에 잠은 점.

“크기가 1.3cm. 6주 6일 정도 됐네요.”

지혁은 자신의 엄지손톱을 바라봤다.

‘이 정도 크기라는 건데······.’

엄지손톱만 한 아기가 수아 배 속에 있다는 게 너무 신기했다.

“그리고 중간에 깜빡이는 거 보이시나요? 아기가 주차에 비해 성장이 약간 빠르네요. 하하. 심장도 있고요.”

“심장이요? 저만한 게 심장이 있다고요?”

지혁은 놀라서 반문했고, 전문의는 웃으며 말했다.

“한번 들어보실래요?”

“네? 뭘······.”

잠시 후.

쿵쾅! 쿵쾅!

심장 박동 소리가 초음파실을 울렸다.

지혁은 놀라서 눈이 커졌고.

수아는 손으로 입을 가렸다.

전문의가 웃으며 말했다.

“아기 심장 소리예요.”

쿵쾅! 쿵쾅! 쿵쾅!

크기가 엄지손톱만 해도, 심장 박동 소리는 우렁찼고.

엄마 배 속에 잘 있다고, 아기가 힘차게 알려주는 것 같았다.

왈칵!

심장 소리에 지혁의 눈물이 터졌고.

고개를 푹 숙이고 오열했다.

고맙고, 미안하고, 걱정되고, 다행이고.

여러 복잡한 감정이 그의 머릿속을 뒤흔들었다.

***

초음파를 끝낸 후, 다시 진료실로 왔다.

“저······ 이거 쓰세요.”

지혁은 전문의에게 휴지를 받아서 눈가를 닫았다.

수아는 옆에서 그의 어깨를 토닥여주었고.

그 모습이 전문의는 이상하게 보였다.

‘사연이 있나.’

보통 임신 사실을 확인하고 나면 아내가 감격스러워하고 남편이 위로해 주는데, 이 집은 반대였다.

“임신 축하드립니다. 임신 확인서 등 안내 사항은 간호사가 알려줄 건데요. 정부 혜택 놓치지 말고 잘 챙기세요. 그리고 임신 초기엔 조심하셔야 해요. 힘쓰는 거나 무리한 일 하지 마시고.”

“네.”

“혹시 뭐 다른 거 궁금한 거 있으세요?”

수아는 수첩을 꺼내었다.

“하나씩 말씀드릴게요.”

“네, 대기 환자분들 많으니까, 빠르게 부탁드릴게요.”

속사포로 궁금증을 물었고, 의사는 짧고 간결하게 대답해주었다.

“남편분은 궁금한 거 없으시고요?”

“성관계는 하면 안 되죠?”

지혁의 물음에, 수아는 놀라서 그의 어깨를 때렸다.

“뭐, 그런 걸 물어봐?”

“물어봐야지. 그게 가장 조심해야 할 건데.”

전문의는 어이없었지만, 표정을 숨기며 대답해줬다.

“네, 성관계는 피하시는 게 좋습니다.”

“임신 기간 내내 피해야 합니까?”

“1개월은 절대 조심하시고, 될 수 있으면 3개월까지는 피하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그 이후에 하셔도 되지만, 9개월부터는 다시 피하셔야 합니다.”

“네······ 3개월에서 9개월까지 가능.”

지혁은 머릿속에 입력해놨다.

의사 선생님께 인사한 후 병원으로 나왔다.

“자기는 뭐 그런 걸 물어봐?”

“왜? 중요하잖아? 조심하려고 물어본 건데.”

수아는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이내 끄덕였다.

“하긴 중요하긴 하네. 근데, 좀 민망했어.”

“하하. 뭘 민망해. 의사 선생님인데.”

둘은 손을 잡고 걸어가다가.

수아가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아, 아기 태명 지어야지.”

“태명?”

“응. 정식 이름 짓기 전에 애칭 같은 거. 보통 부르기 쉽게 짓던데?”

“······.”

지혁은 잠시 고민했고.

수아는 웃으며 말했다.

“천천히 생각해 봐~ 나도 고민해 볼 테니까.”

“불사조.”

“······ 응?!”

“태명······ 불사조라고 하자.”

“그게 뭐야~”

수아는 장난치지 말라며 눈을 흘겼는데.

지혁의 표정은 진지했다.

“그 어떤 격한 환경에서도 살아남으라고.”

“······.”

지혁은 수아의 배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앞으로 넌 불사조야. 알겠지?”

***

“아가~”

어머니가 집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아이고~ 이게 웬일이니. 잘했다. 잘했어~”

임신 소식을 접한 후, 어머니는 지혁의 집으로 달려왔고.

수아를 보자마자, 얼싸안고 등을 두드리며 좋아하셨다.

“어머니, 등 너무 세게 두드리지 마세요. 살살.”

옆에서 지혁이 컨트롤했다.

“어머, 그랬니? 아가야. 미안하다.”

“호호. 어머니 괜찮아요. 축하해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축하? 축하는 내가 받아야 하는 거 아니니? 호호.”

여기 있는 세 사람 모두 축하받아야 할 일이다.

셋뿐이던 가족에 새로운 가족이, 조용하던 집에 아기 울음소리라 들릴 것이다.

지혁의 가족에게는 굉장한 축복이었다.

“호호. 맞아요. 어머니도 할머니 되신 거 축하드려요~”

“고맙다~ 태명 지었니?”

수아는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불사조요.”

“불······ 뭐?”

어머니는 황당한 눈빛으로 수아와 지혁을 보았다가,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호호. 어~ 그래~ 너무 이쁘게 잘 지었네. 어디 한번 불러보자. 불사조야~ 할머니 왔어. 엄마 배 속에 잘 있니? 호호.”

어머니는 팔을 걷어붙이셨다.

“아가, 뭐 먹고 싶니? 얘기만 해라. 다 해줄 테니까.”

“아니에요~”

“해주고 싶어서 그래. 뭐 먹고 싶어?”

“저······ 그럼 잡채.”

“알았어! 금방 해줄게!”

어머니는 음식을 뚝딱 만드셨고.

배 속의 아기까지 네 식구는 저녁상 앞에 앉았다.

“잘 먹겠습니다~”

수아는 행복한 얼굴로 저녁 식사를 했고.

덕분에 지혁도 맛있는 음식을 먹어서 좋았다.

“얘야. 임신 초기엔 조심해야 하는 거 알지?”

“네, 알아요.”

“그래, 항상 조심해라. 주변 얘기 들어보면, 은근히 잘못되는 경우 많더라. 과하다 싶을 정도로 항상 조심을······.”

지혁은 어머니의 말을 잘랐다.

“어머니, 그런 말씀은 하지 마세요.”

“응?”

지혁이 정색하자, 어머니는 살짝 당황했고.

수아가 지혁을 말렸다.

“조심하라고 하시는 말씀이잖아.”

쿵쾅! 쿵쾅!

아기의 심장 소리.

어제 초음파실에서 들은 이후, 자꾸 귓가에 맴돌았고.

지혁은 결단은 내렸다.

“자기야.”

“응?”

“내일 회사 가서 휴직서 내.”

“······음?! 갑자기?”

“회사에서 못 받아들이겠다고 하면 퇴사해.”

수아는 당황했다.

“상의도 없이 갑자기 그러라고 하면······.”

지혁은 목소리는 차가웠다.

“내가 가장이라며? 이건 상의가 필요 없는 일이야.”

지혁은 단호하게 말했다.

“무조건 따라줬으면 해. 안전 제일.”

수아는 당황한 얼굴로 지혁을 보다가,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알았어.”

***

지혁은 월요일에 출근하자마자.

‘아, 도저히 못 있겠다.’

임신 사실 확인 후 첫 출근.

주말엔 수아를 돌보느라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일단, 정리 좀 하자.’

지혁은 윤 실장을 불렀다.

“미안한데, 연차 좀 쓰겠습니다.”

출근한 지 10분 만에 일어나는 지혁을 보며, 윤 실장은 황당했다.

“아니, 대표님. 요즘 너무한 거 아니에요?”

“······.”

“아무리 목표 달성을 하셨다고 해도, 너무 막 나가시잖아. 지난주에 이틀 연차 쓰고, 이번 주엔 출근하자마자 또 연차에요?”

“······.”

“아무리 대표고 위에 사람 없다지만, 당일 연차는 아니죠. 본을 보이셔야 할 분이······.”

쾅!

지혁은 얘기를 끝까지 듣지 않고, 대표이사실을 나가버렸다.

윤 실장은 인상을 쓰며 중얼거렸다.

“회사 선배로서, 군기 좀 잡아야 하나. 이거.”

이런 얘기는 지혁이 없을 때만 한다.

강남대로.

지혁은 정처 없이 걸었다.

아무 생각하지 않고 발길 가는 대로.

인생을 뒤흔들 만한 사건이 일어난 거라, 자신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선릉역을 지나고, 종합운동장역을 지나.

정처 없이 걷고 또 걷다가.

‘이게 아파트 단지야?’

웬 거대한 아파트 단지에 들어섰다.

중앙에 길고 거대한 공원이 있고.

지상에는 차 한 대도 다니지 않는다.

아파트 단지 앞에는 8차선 도로가 있고, 남쪽 큰길 건너엔 엄청난 규모의 가락시장이 있으나.

이 아파트 단지는 고요했다.

주변환경과는 상관없이, 딴 세상 같았다.

‘새 아파트라 그런 건가?’

어떤 위험 요소 없이 해맑게 뛰어노는 아이들과 곳곳에 배치된 경비원들.

‘여기 부모들은 애 키우는 데 걱정이 없겠네.’

외부환경과 완벽히 구분된 모습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걸음을 멈추고.

한동안 벤치에 앉아 멍하니 아파트 단지 풍경을 바라보다가, 날이 어수룩해졌다.

가로등이 환하게 켜졌는데, 어찌나 밝은지 밤도 낮처럼 밝았다.

이 모습 또한 유심히 보고 있는데.

한 경비원이 다가왔다.

“실례합니다. 혹시 입주민이십니까?”

“아닙니다. 지나가던 사람이에요.”

“아까부터 지켜봤습니다. 죄송하지만, 지나가는 분이시면, 이제 갈 길 가 주셨으면 합니다.”

“관리하시는 거군요?”

“네? 아, 네. 그게 제 일이니까요.”

지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세상이 바뀌어도 안전한 환경.’

생각 정리는 끝났다.

‘선도그룹은 충분히 그걸 만들 역량이 있지.’

불사조를 위해서 아빠가 뭘 해줘야 할지, 명확히 정리했다.

지혁은 방향이 정해지면, 망설이지 않는다.

항상 그래왔다.

“네, 가보겠습니다. 수고하세요.”

“네.”

지혁은 아파트 정문을 빠져나오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진원 형님. 접니다.”

건널목 앞에 서서 신호를 기다렸다.

“죄송한데. 총수······ 제가 해도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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