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 주인이 바뀌다 (1)
6개월 동안, 선도그룹은 조용했다.
권력의 행방이 결정된 상황.
지혁은 자신의 시간을 기다리며, 벌여놓은 일들을 마무리하기 위해 선도물산에 집중했다.
‘대표님! 네버랜드 베트남 착공 이상 없이 진행되었습니다!’
일주일 전, 여러 난항 끝에 네버랜드의 베트남 사업이 첫 삽을 떴다.
앞으로 약 3년 10개월 뒤에 베트남 호치민시에 네버랜드 베트남이 개장하게 될 것이다.
네버랜드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테마파크의 첫 해외 진출이기에, 매스컴에서 많은 관심을 보였다.
‘무리한 사업이라는 시각이 많은데요.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리조트 부문장은 신문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결과로 보여드리겠습니다.’
선도물산의 임원들은 대표이사인 지혁을 닮아갔다.
건설부문에는 ‘원전의 봄’이 왔다.
요르단 원전 수출 성과가 좋았던 데다가, 정부에서 밀어주니 각국에서 많은 문의가 왔다.
여러 원전 수주를 따내었고, 며칠 전에는 역대 최대규모로 사우디아라비아와 원전 계약을 체결했다.
지혁과 컨설팅 후에 만들었던 영업본부가 큰 역할을 하기도 했지만.
‘아파트 건설은 침체기입니다. 건설부문은 당분간은 플랜트 사업에 집중하겠습니다.’
건설 부문장은 흐름을 읽고 과감하게 집중했다.
영업본부의 능력과 부문장의 집중이 건설 부문에 큰 성과를 가져왔다.
패션부문에서는 콜라보에 집중했다. 과거에 지혁이 했던 것처럼 말이다.
‘대표님, 이번에 부채표 콜라보가 대성공을 거뒀습니다! 전년 동기간 대비 매출 150% 신장했습니다!’
‘하하. 재밌다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터졌군요.’
‘과거에 대표님께서 하셨던 것에서 인사이트를 얻었습니다. 하하. 브랜딩이 약한 시기에는 콜라보가 효과가 좋죠.’
‘영업이익률은 어떻습니까?’
‘황 팀장이 원가절감을 너무 잘해줘서요. 전년과는 비교도 안 되게 좋습니다!’
상품본부장은 입이 귀에 걸렸다.
상사부문.
유 부문장이 이끄는 상사는 단순하다.
‘석유와 가스.’
가장 시세가 올라간 품목에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집중했고.
자원 네트워크를 선점한 덕분에 돈을 쓸어 담고 있다.
유 부문장은 본인의 전략적인 성향답게, 원재료 부족 상황을 예측하여 준비했다.
상사 부문은 당분간 신사업을 하지 않아도, 압도적인 매출을 올릴 것이다.
지혁이 상사 부문에서 딱히 한 건 없으나, 과감하게 리더로 세운 유 부문장이 활약하고 있으니, 영향이 전혀 없다고 할 순 없다.
‘역시, 선도물산이 재밌어. 보람 있고.’
선도물산에 취임한 지 9개월 정도 지났다.
일이 잘 풀릴 때도, 꼬일 때도 있으나, 어쨌건 신명 나게 일하고 있다.
-요즘 회사 다니는 거 너무 재밌지 않아?
-맞아, 빡세도 좋아.
-그러니까. 난 이렇게 일 많이 하는 게 재밌는지 몰랐다니까.
회사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매우 좋았는데. 지혁이 한 역할은 단순했다.
‘과업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성과 나는 대로 보상해 주는 것.’
선도물산은 아주 잘 나가고 있고, 지혁은 지금이 만족스러웠지만.
더 큰 일을 해야 했다.
***
선도그룹 회장실.
커튼 사이로 노을 진 햇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회장실 안에는 오 회장과 최 부회장이 함께 있었다.
“그러게 말일세.”
보험부터 반도체까지.
대한민국에 전체에 걸치지 않은 사업이 없으며, 선도그룹의 영향력은 이제 전 세계로 뻗쳐 있다.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하는 대그룹.
그런 선도그룹을 만드는데, 가장 앞장서 일했던 두 사람이다.
“대한민국 역사의 일부분을 써내셨다고 생각합니다. 이 정도면 충분히 그런 얘기 들을 만하죠.”
“······.”
“존경합니다. 회장님.”
“나도 존경하네. 최 부회장.”
오 회장은 신뢰가 가득 담긴 눈길로 최 부회장을 바라봤다.
“자네가 참 고생 많았지. 젊고, 빠른 발을 가졌던 친구가 어느새 머리가 하얘졌구먼.”
최 부회장은 60대 중반이다.
“그래도 내 눈엔 여전히 청년이야.”
“감사합니다. 최고의 칭찬인데요? 하하.”
선도그룹 회장 이취임식을 하루 앞둔 오늘.
두 노장은 감상에 젖었다.
“아직 충분히 일하실 수 있는데, 아쉽습니다.”
“아니야. 때가 되었어.”
오 회장은 회장직에서 물러나, 명예회장이 된다.
내일부터 그룹 총수로서의 모든 권한은 지혁이 갖게 된다.
“열정을 갖고 일하면 끝이 없어.”
“······.”
“하지만 멈춰야 할 때가 되었으니, 멈추는 게 맞다고 생각하네. 그래야 다음 세대가 크지.”
말은 그렇지만, 노장의 눈에 아쉬움이 가득했다.
최 부회장도 아쉬웠지만, 그의 결정을 존중해주었다.
“네, 힘이 있으실 때 물러나시는 것도 좋은 결정인 것 같습니다. 깔끔해 보이니까요.”
“그렇지.”
“그래서 저도 곧 물러나려 합니다.”
“뭐?! 자네가 왜?”
최 부회장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회장님도 안 계시는데, 저 혼자 남아서 뭐 합니까? 늙은이는 빠져줘야죠.”
“자네가 뭐가 늙어? 아직 70도 안 된 사람이.”
최 부회장은 고개를 저었다.
“만약 회사에서 저를 필요로 한다면, 한발 물러나서 돕고 싶습니다.”
그는 잠시 생각한 후 말을 이어갔다.
“제가 젊었을 적에 봤던 대선배님들 떠올려 봤을 때, 은퇴할 나이가 지나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모습이 아름다워 보이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래?”
“네. 일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나? 혹은 저 나이 되도록 돈이 그렇게 없나?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최 부회장은 웃으며 말했다.
“전 그런 오해 받기 싫거든요~ 일 말고 할 줄 아는 것도 많고, 돈도 좀 있으니까요. 하하.”
“일 말고 할 줄 아는 게 뭔데?”
“골프?”
“예끼, 이 사람아. 놀겠다는 거잖아?”
“평생 일했는데, 좀 놀면 안 됩니까?”
“아니라고는 말 못 하겠군. 하하.”
최 부회장은 자신의 거취를 자연스럽게 밝힌 셈이다. 은퇴하거나, 고문직으로 가게 될 것이다.
“오지혁 대표, 잘할 겁니다.”
“너무 젊어서······ 그게 좀 걱정이야.”
최 부회장은 고개를 저었다.
“나이는 중요치 않습니다. 특히, 오 대표라면요.”
후유-
오 회장은 한숨을 쉰 후 말했다.
“신경 쓰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자꾸 걱정되는군. 이런 생각 관둬야 하는데.”
“······.”
“시들어 거름이 되는 건 자연의 이치잖아? 내 역할은 이제 끝났는데.”
시선은 최 부회장을 향해 있으나, 이건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다.
***
회장 이취임식 하루 전날.
지혁은 선도그룹의 원로들과 주요 정·재계 인사들에게 먼저 인사를 전했는데.
‘취임하기 전에 인사해야, 특별함을 느낀다.’
오 회장의 조언 때문이었다.
주요 인사는 직접 찾아갔고, 그 외에는 전화로 했다.
직접 만나서 인사한 사람 중에는.
“어서 오세요~ 오 회장님.”
산업부 장관이 환히 웃으며 지혁을 맞았다.
“장관님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저 아직 회장 아닙니다.”
“하하. 내일 이취임식이잖아요? 그렇게 불러도 됩니다.”
별로 중요한 건 아니라서, 지혁은 싱긋 웃고 말았다.
“실례지만, 올해 나이가······.”
“32세입니다.”
“와······.”
산업부 장관은 생각했다.
‘재벌 2세가 경영자 자리에 빨리 오르긴 하지만, 이 나이에 그룹 총수 되는 건 못 들어 본 거 같은데.’
“대단하십니다.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산업부 장관은 웃으며 말했다.
“공직 생활 30년 하면서, 사람 보는 눈이 좀 생겼거든요? 제가 오 회장님 처음 뵈었을 때, 범상치 않다고 느꼈는데. 역시나네요. 하하.”
“······.”
“제 눈썰미가 아직 죽지 않았나 봅니다.”
지혁은 이어서 국토건설부와 국방부를 찾아갔다.
예방 목적이 컸지만, 다른 이유도 있었다.
앞으로 지혁이 하려는 일과 관련이 있을 만한 곳들이라, 수장의 얼굴을 익히기 위함이었다.
-어이구, 어서 오십시오.
-반갑습니다. 와~ 뉴스로만 만났던 유명 인사를 뵙네요. 하하.
신임 선도그룹 회장이 예방한다는데, 마다할 장관은 없었다.
쉽게 정부 주요 직책자들을 얼굴을 읽혔고.
‘법과 제도를 피해 가야 할 텐데.’
지혁이 계획한 일들은 현재는 불법이라고 불릴 만한 것들이다.
하지만 ‘그 세계’가 오면 아무 의미 없다.
힘과 생존 외에는 그 어떤 정의도 없는 곳이니까.
법 지키다가 골로 가는 것 보다, 위험을 무릅쓰고 힘을 키우는 게 더 중요했다.
바쁜 일정을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정신 바짝 차리자.’
‘그 세계’에서 돌아와서 회사생활 했던 건, 지혁에겐 애들 장난과 비슷했다.
앞으로가 문제다.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 되는 큰 숙제의 시작.
‘그 세계’가 오기 전에 준비되기 위해서는, 세상을 속여야 한다.
***
이취임식 날
지혁은 평소처럼 새벽에 일어나서 체력단련을 했다.
불사조가 생긴 이후부터, 훈련량을 늘렸다.
“아~ 개운하다.”
“자기는 오늘 같은 날도 운동해?”
“오늘 같은 날이 뭐?”
지혁이 아무렇지도 않게 대꾸하자, 수아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참나, 회장은 당신이 되는데, 왜 내가 잠을 못 잔 거야?”
“잠 못 잤어?”
“어! 떨려서!”
지혁은 싱긋 웃고는 수아의 배에 귀를 가져다 대었다.
“불사조야~ 넌 잘 잤냐? 엄마는 못 자도, 넌 잘 자야 한다~”
“뭐야? 난 안중에도 없어?”
“모두 다 못 잘 필요는 없잖아.”
“칫.”
수아가 토라진 표정을 짓자, 지혁은 아차 싶었다.
‘임신 중에는 조그만 것도 서운하게 하지 말랬지······.’
“농담이야. 농담. 알지?”
“몰라. 방금 좀 서운했어. 기억될 거 같아.”
“에이~ 왜 그래~ 농담 한마디도 못 해?”
“일기장에 적어 놓을 거야.”
“어이구~ 출근 준비해야겠다.”
이럴 땐 피하는 게 상책이다. 재빨리 욕실로 들어갔다.
잠시 후, 지혁이 나갈 채비를 하자.
수아가 뒤뚱거리며 현관 앞으로 왔다.
임신 7개월.
배가 많이 불렀다.
“그냥 누워 있지. 뭘 나와.”
“오늘은 배웅해야지. 특별한 날이잖아.”
“특별은 무슨. 별거 아니라니까.”
“이리 와 봐.”
수아는 지혁을 향해 양팔을 벌렸고.
지혁은 멈칫했다가, 수아의 배가 압박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포옹했다.
토닥토닥.
수아는 지혁의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그동안 고생 많았고, 축하해. 내 남편이지만, 참 대단해. 어떻게 이 자리까지.”
“안 사람의 내조 덕분이지.”
“호호.”
수아는 기분 좋은 듯 웃으며 말했다.
“불사조야~ 너희 아빠가 선도그룹 회장이셔. 그런 분 아들로 태어나는 게 정말 좋지 않니?”
불사조의 성별은 아들이다.
지혁은 성별을 확인한 후, 뛸 듯이 기뻐했었다. ‘그 세계’에서는 아무래도 남성이 살아남기가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콩. 콩.
“어머, 얘 방금 발로 찼어. 알아듣고 대답한 건가? 호호.”
수아는 미소를 지었고.
지혁은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녀가 부른 배를 안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볼 때면, 좋으면서도 가슴 한구석이 아팠다.
수아의 배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불사조야~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될게.”
아주 살짝······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아빠가 꼭 지켜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