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사원이 능력을 숨김-242화 (242/301)

242. 주인이 바뀌다 (2)

선도본관 대회의실.

회의실 주변에 축하 화환이 가득했다.

-결국 이날이 오네.

-그러게 말입니다. 오종건 회장님께서 돌아가실 때까지 하실 줄 알았는데.

-아, 내가 왜 긴장되냐.

각 관계사 대표와 사장급 이상이 이취임식에 참석했고.

선도그룹의 직원들은 사내 방송으로 이취임식을 지켜본다.

선도본관에는 각 매스컴에서 온 기자들이 인산인해로 몰렸으나, 대회의실에는 들어올 수 없었다.

국민적 관심을 받는 일이지만, 지혁의 요청으로 비공개 이취임식으로 진행된다.

행사 시작 5분 전.

모두 착석한 가운데, 한 사람만 기다리고 있었다.

[회장님 도착하셨습니다!]

밖에서 지혁의 도착을 알렸다.

취임식만 안 했을 뿐, 인사발령은 이틀 전에 났다.

-왔다. 왔어.

-꿀꺽.

덜컹!

문소리와 동시에.

수군거림이 멈췄다.

공기의 흐름마저 멈춘 듯, 대회의실에는 긴장감만이 흘렀다.

시가총액 940조. 직원 수 22만 명, 상장사만 16개.

대한민국 최대 기업이자, 세계 10위 안에 드는 거대 기업.

위대한 선도그룹의 차기 회장.

오지혁 회장이 대회의실로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지혁은 들어오자마자, 오종건 명예회장에게 인사했다.

“어서 오게.”

지혁은 자기 자리를 향해 걸어가던 중, 큰 환호와 박수를 받았다.

-오지혁 회장님 취임을 축하드립니다.

-선도그룹의 미래를 부탁드립니다.

-오지혁! 오지혁!

윤 실장이 선창하자.

분위기에 휩쓸려 대회의실에는 지혁을 외치는 소리로 가득 찼다.

젊은 회장이라서일까.

엄숙하고 긴장된 분위기가 아니었다.

시작부터 활기가 넘쳤다.

-오지혁! 오지혁!

최 부회장도 웃으며 그의 이름을 연호했고.

오진원은 꽉 쥔 주먹을 하늘로 뻗으며, 지혁의 이름을 크게 외쳤다.

지혁은 살짝 미소 지으며 자리에 앉았고.

빠르게 주변을 한번 살폈다.

‘진양 형님은 안 오셨군.’

사장급 이상은 다 참석해야 했으나, 오진양은 오지 않았다.

그의 심정을 전혀 이해 못 하는 건 아니기에, 지혁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10시 정각.

사회자는 지혁을 바라봤고.

그에게 시작하라는 듯,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대회의실에 모인 임원 여러분. 그리고 영상으로 보고 계실 선도그룹의 가족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후우-

사회자는 숨을 한번 몰아쉬었다.

“선도그룹 역사상 두 번째 회장 이취임식이죠. 이 역사적인 자리의 사회를 맡게 되어 대단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주먹을 불끈 쥐고, 크게 외쳤다.

“대한민국을 선도하는 기업! 세계를 선도하는 기업! 위대한 선도그룹의 회장 이취임식을~ 시작하겠습니다!”

***

관계사별로 직원들은 대강당에 모여서, 생중계로 이취임식을 시청했다.

[오랜 기간 갖은 풍파에도 그룹을 더욱 위대하게 만들어 주시고 지켜주셨습니다.]

-아······ 슬퍼.

-그래? 난 별 감응 없는데. 나랑 상관없는 분 같아서.

-왜? 신비주의긴 했지만, 직원들 아끼시잖아. 그건 느껴지던데.

-글쎄다. 난 잘 모르겠어.

[오종건 명예회장님의 이임사 듣겠습니다.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짝짝짝.

카메라가 오종건 명예회장을 비추자, 직원들은 일제히 큰 박수를 보냈다.

-큰일 하신 건 확실해. 선도그룹을 성장시키셨잖아.

-명예회장님이 총수 자리를 맡을 때만 해도, 선도그룹이 글로벌 기업은 아니었지.

-후계자가 그룹을 이렇게나 키웠다는 건 선대 회장님의 복이지. 그 반대의 경우도 많으니까.

[임직원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종건입니다.]

오 회장이 입을 열자, 눈시울을 붉히는 직원도 있었다.

-직접 뵌 적은 없지만, 우리 회장님 좋더라.

-난, 불안해. 선도그룹의 기둥이 빠져나가는 기분이랄까.

-하아······.

오종건 명예회장은 선도그룹의 상징이며, 회사에서의 존재감은 절대적이었다.

그런 그가 총수 자리에서 물러난다니, 어찌 보면 불안함을 느끼는 게 당연했다.

[벌써 30년이 좀 넘었군요. 그동안 여러분과 함께 회사 생활한 걸, 매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알고, 전 세계가 알다시피, 우리 선도그룹은 위대한 여정을 했고요. 그 모든 건 여러분이 있기에 가능했습니다.]

전 직원들 보는 앞에서 생중계로 연설하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는데.

나이가 들었어도, 목소리는 청년처럼 까랑까랑했다.

[그동안 함께 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오 명예회장은 깊숙이 허리를 숙여 인사했고.

짝짝짝

큰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전 우리 선도그룹이 피치, 고글을 뛰어넘는 인류 최대의 기업이 되기를 소망했습니다. 나름 애썼으나, 그 모습을 결국 보지 못하는군요. 그것 하나가 좀 아쉽습니다.]

그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대강당은 고요했다.

[하지만 때가 되면 떠나야겠지요. 그게 세상 이치 아니겠습니까? 문제없이 명예롭게 퇴진하는 것도 큰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 있으나, 이젠 오지혁 회장과 여러분께 맡기겠습니다.]

-아 왜 눈물 날 거 같지?

-꼭 아빠가 떠나는 거 같아.

대강당 한쪽에서는 훌쩍이는 소리도 들렸다.

[마지막으로 당부 한 말씀만 드리겠습니다. 선도그룹은 지금 잘 나가고 있습니다. 브랜드 가치 세계 5위이며, 국내에서는 우리에게 비교할 기업이 없죠. 하지만 앞으로는 어떨까요?]

오 명예회장은 ‘위기’라는 말을 즐겨 쓴다.

[위기입니다. 우리보다 앞선 기업은 따라잡히지 않기 위해 사력을 다해 달리고 있고요, 뒤에선 경쟁자들이 쫓아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그런 환경 속에 살고 있습니다.]

후우-

오 명예회장은 마이크를 떼고, 한숨을 쉬었다.

[퇴임하는 마당에 제가 이런 소리를 하고 있네요. 아직 떠날 때가 안 됐나? 하하.]

그의 농담에 전직원들이 다 함께 웃었다.

[위기 때마다, 선도그룹은 한 단계 성장해 왔습니다. 위기의 기회를 놓치지 않길, 오지혁 회장과 전 직원들에게 당부드립니다. 잔소리하게 될 것 같아서, 이만 마칩니다.]

오 명예회장은 웃으며 말했다.

[직원 여러분, 선도그룹을 잘 부탁드립니다.]

짝짝짝!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

선도본관 대회의실.

짝짝짝!

오 명예회장이 앉은 뒤에도, 박수는 계속 이어졌고.

사회자는 박수가 그치길 기다리다가, 진행하기 위해 한마디 했다.

“박수가 지금까지 이어지는 걸 보면, 다들 많이 아쉬우신가 봅니다. 하하. 그래도 다음 차례 진행해야겠죠?”

사회자가 얘기한 뒤에도, 박수는 좀 더 이어졌다.

“자! 이제 신임 회장님 모셔서, 취임사 듣겠습니다!”

지혁의 등장 예고에, 대회의실에 긴장감이 흘렀다.

“최연소 대표이사에 이어, 최연소 그룹 총수가 되셨습니다. 대한민국은 물론이며, 세계가 주목하고 있죠. 위대한 선도그룹을 이끌어갈, 기적의 남자!”

사회자는 지혁을 향해 손을 쭉 뻗으며 소리쳤다.

“오지혁 회장님, 모시겠습니다! 큰 박수······.”

뒤의 말은 엄청난 환호에 묻혔다.

-오지혁! 오지혁!

-회장님! 취임을 축하드립니다!

-또 기적을 이루셨네요! 하하!

-오지혁! 오지혁!

박수갈채 속에 지혁은 마이크 앞에 섰다.

“감사합니다. 오지혁입니다.”

설렘이 가득한 임직원들과 달리, 지혁의 표정은 차분했다.

“무거운 책임감을 안고, 이 자리에 섭니다. 앞으로 할 일이 많습니다.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

-무엇이든 돕겠습니다!

-일하고 싶습니다! 말씀만 하십시오!

-오 회장님뿐입니다!

-하하.

몇몇 임직원의 주책에 웃음소리도 터졌고.

지혁은 장내가 조용해지길 기다렸다가 말했다.

“이제 제가 얘기하겠습니다.”

“······.”

지혁의 표정은 진지하며 싸늘했다.

“세 가지 포부가 있습니다. 지금부터 여기 계신 분들과 TV로 보고 계신 임직원 여러분 앞에서 엄숙히 약속드립니다. 전 반드시 이 포부를 실천시키겠습니다.”

대회의실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첫째, 선도그룹을 초일류 기업으로 만들겠습니다.”

“······.”

“지금 일류기업이긴 하나, 초일류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명예회장님께서 직접 하지 못하여 아쉬워했던 부분. 피치, 고글, 테슬로를 뛰어넘는 인류의 미래를 좌우하는 초일류 기업. 제가 만들겠습니다.”

이 얘기들 듣고, 직원들은 작은 소리로 수군댔다.

-포부가 너무 허무맹랑한데.

-취임식이잖아. 원래, 취임식 때는 그래.

-오 회장님 빈말 안 하기로 유명하잖아.

-그러니까, 진짜 할 거 같아. 그래서 불안해.

지혁은 그다음 포부를 말했다.

“두 번째는, 세상이 망해도 살아남는 기업으로 만들겠습니다.”

“······.”

두 번째 포부를 들은 후, 직원들은 어리둥절해 했다.

-이게 무슨 소리야?

-세상이 망해도 살아남아?

-무슨 느낌인지 알 것 같기도 하면서도, 모를 것 같은데.

이 포부의 속뜻은 지혁만이 알고 있다. 윤 실장도 아직 모른다.

사회자가 말했다.

“회장님, 두 번째 포부에 대해서 부연 설명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이해 못 하는 직원들이 있을 것 같아서요.”

지혁은 사회자의 말에 싱긋 웃으며 말했다.

“말 그대로입니다. 세상에 어떤 일이 생겨도, 우리 회사는 건재할 거라는 말입니다.”

“아~ 인플레이션, 디플레이션, 유동성 위기 등이 와도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기업을 만들겠다는 뜻이군요.”

사회자가 덧붙여 설명해주었고.

지혁은 이 얘기에 대꾸하지 않았다.

“마지막 포부입니다. 모두 잘 들으십시오. 가장 중요합니다.”

지혁은 카메라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우리 직원 여러분들과 그의 가족들.”

대회의실에 모인 사람들은 미심쩍은 눈길로 지혁의 입에 집중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보호하겠습니다. 저와 선도그룹의 이름으로요.”

“······.”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지혁은 간곡한 어조로 말했다.

“퇴사하거나 이직하지 마십시오. 진심으로 생각해서 하는 말입니다.”

“······.”

“전 선도그룹만 보호할 거니까요. 제 역량이 그거밖에 안 됩니다.”

모두 어리둥절해 하는 가운데, 지혁은 힘주어 다시 한번 말했다.

“선도그룹에 계셔야만 합니다.”

활기차게 시작한 이취임식은 아리송한 궁금증을 남기고 마쳤다.

***

다음날.

지혁은 선도본관 회장실로 출근했다.

회장 취임과 동시에 윤 실장은 그룹 비서실장으로 발령 났으며, 직급도 전무로 승진했다.

그는 라인을 아주 제대로 타고 있다.

‘참나, 세상일은 모른다더니.’

윤 실장은 얼떨떨한 얼굴로 일일 보고를 준비했다.

‘내가 그룹 비서실장에, 전무라니······ 참.’

“윤 실장님.”

일일 보고를 하려는데, 지혁이 먼저 말했다.

“네, 회장님.”

“우선 보고서 내려 두시고요.”

“네?”

윤 실장은 지혁을 잘 안다.

‘중요한 얘기를 하려나 본데.’

왜냐고 묻지 않고, 보고서를 내려놨다.

“내 사람들 모두 소집시켜 주세요. 오늘 바로요.”

지혁라인을 호출하라는 거였으며, 윤 실장은 알아듣고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소집 주제는 뭐라고 알릴까요?”

“SECC”

“네?”

갑작스러운 영어 스펠링에 윤 실장은 눈이 동그래졌다.

“Sundo Emergency Countermeasures Committee.”

“······.”

“선도비상대책위원회. 모임의 목적입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