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3. SECC (1)
지혁라인이 회장실 앞에 모였다.
오랜만의 호출이라, 모두 기대 가득한 얼굴이었다.
황 팀장이 윤 실장에게 물었다.
“선도비상대책위원회가 뭐예요?”
“나도 몰라. 용어 말고 들은 게 없어. 근데, 좀 싸하지 않아?”
옆에서 듣던 인사실장이 웃으며 말했다.
“이름 멋진데요. 전 너무 기대되는데.”
고 부장이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맞습니다. 항상 두 가지를 하다가, 요즘 일만 하려니 심심했어요.”
윤 실장은 사람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내가 회장님 오래 모시면서 기운을 느끼거든요?”
“기운?”
“뭔가 심상치 않아.”
그때, 하재웅 이사가 막 도착했고.
“아, 늦어서 죄송합니다.”
“시간 맞춰서 오셨네. 그럼 들어갑시다.”
똑똑.
“회장님, 다 도착했습니다. 들어가겠습니다.”
안에서 지혁이 대답했다.
[들어오세요.]
덜컹.
지혁라인은 안으로 들어간 후, 일제히 박수부터 쳤다.
짝짝짝.
-회장 취임을 축하드립니다.
-선도그룹 장래는 맑음입니다. 하하.
-잘 되셔서 너무 기쁩니다!
회장 취임 후 첫 만남.
지혁의 성공이 너무 좋아서,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다들 축하해주었는데.
“······.”
지혁의 표정은 싸늘했다.
집중하는 표정.
상품본부장과 선도물산 대표를 보낼 때와 같이 중요한 일을 앞두고 보였던, 살얼음 위를 걷는 듯한 그 표정이었다.
지혁라인은 분위기를 눈치채고, 서서히 얼굴에서 웃음기를 거두었다.
“윤 실장님, 문 잠가 주세요.”
“네? 아, 네.”
철컥!
문 잠그는 소리와 함께
꿀꺽.
어디선가 침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여러분과 비밀 얘기를 할 게 있어서요.”
“······.”
“제가 비서실장 해봐서 잘 압니다. 회장실은 보안이 철저하며 방음 처리까지 되어 있습니다. 앞으로는 긴히 할 얘기가 있을 때는 여기서 만날 거예요.”
그게 아니더라도, 지혁은 이제 선도그룹 회장이다.
골목길에서 동료와 캔 커피 마시며 담배 피우는 여유는 포기해야 한다.
회장실 안에는 정적이 흘렀고.
지혁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현업에만 집중하라고 말씀드린 지 얼마 안 됐는데······ 이렇게 부르게 되어 미안합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지혁라인은 진심으로 지혁의 부름을 기다렸다. 그와 일하는 게 흥미로웠고, 이 대단한 남자와 특별한 관계인 게 좋았다.
“제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생겨서, 총수 자리를 맡았습니다.”
“······.”
“그 일에 여러분이 꼭 필요합니다.”
***
모두 지혁의 말에 집중했다.
“지금부터 제가 하는 얘기를 들으시면······ 왜 이런 짓을 하냐고 생각하실 수 있는데.”
“······.”
“그래서 여러분께 부탁드리는 겁니다. 따라주실 것 같아서요.”
지혁은 깊은 신뢰를 보였고,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에 동의했다.
“제가 하려는 일은 신뢰가 중요합니다. 절대로 비밀엄수를 해야 하며, 무조건 믿고 따라주셔야 합니다. 누가 뭐래도 해내야 한다는 신념도 필요하고요.”
지혁은 이해를 쉽게 하려고, 생각해놨던 예시를 들었다.
“비 올 기미도 안 보이는데, 세상이 물에 잠길 거라며 거대한 배를 만들었던 ‘노아의 방주’ 이야기 아시죠?”
영화로도 나온 유명한 이야기라, 교회를 안 다닌 사람들도 그 정도는 알았다.
“지금부터 제가 하려는 일이 그것과 비슷합니다.”
“······.”
“세상에 재앙이 닥칠 것을 전 믿고 있습니다.”
지혁라인은 눈을 끔뻑였다.
‘재앙?’
‘갑자기 무슨 소리야?’
‘신흥 종교에 빠지셨나?’
이단, 사이비를 아주 싫어하는 윤현성 집사는 미간을 찌푸렸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머지않았다고 생각하거든요.”
“무슨 근거로요?”
윤 실장이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지혁은 본인이 직접 봤다고 얘기할 수는 없었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상황이 그렇잖아요.”
“······.”
“중국과 러시아는 세력을 확장하며 서방세계와 계속 부딪히고, 우리나라는 바로 위에 큰 위협을 얹고 살죠.”
지혁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당장 내 집 앞에 포탄이 떨어져도, 크게 이상할 게 없을 시국입니다. 장사정포 수백 기가 서울을 조준하고 있고. 그건 군대 가보신 분들은 다 알잖아요.”
“아니, 그거야······.”
윤 실장은 황당한 얼굴로 말했다.
“없었던 위협이 아니잖아요? 그 상태로 60년을 넘게 평화롭게 잘 살았는데요?”
“불안한 평화죠.”
지혁은 흔들림 없이 말했다.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유리잔이라고 생각합니다.”
“······.”
“한번 떨어지면 박살 나는 거죠. 전의 모습은 흔적도 없이요.”
틀린 말은 아니지만, 윤 실장은 지혁이 지금 이 자리에서 이런 얘기를 하는 게 어이가 없었다.
‘그래서 뭘 어쩌자는 건데? 우리가 뭐 국방부야?’
“저는 우리 운명을 그 누구에게도 맡길 수 없습니다.”
지혁은 ‘그 세계’를 떠올렸다.
‘그 세계’에서 군인과 경찰을 본 적은 없거든.’
“아무것도 안 하고, 타인에게 의지하여 불안함을 안고 살아갈 순 없어요. 우리한테 힘이 없는 것도 아니고요.”
얘기를 이어갈수록 점입가경이었고, 지혁라인은 황당함을 넘어 멍한 얼굴이 되었다.
“여러분과 가족을 지키는 게, 앞으로 제가 하려는 일입니다.”
윤 실장이 물었다.
“확신하고 계시는데, 만약 재앙이 닥치지 않는다면요?”
지혁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했다.
“그러면 땡큐죠. 감사해하며, 잘 먹고 잘살면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
대가를 지불하여, 미래를 대비하겠다는 것.
논리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
‘보험’과 비슷하다.
다만, 너무 극단적인 손해를 가정하여, 보험료가 상당히 비쌀 것이라는 게 문제지만.
“그······ 노아의 방주?”
입 밖으로 내는 걸, 윤 실장은 민망해했다.
“구체적으로 뭘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으나, 비용과 인력이 드는 일일 것 같은데요.”
“많이 들겠죠.”
“······.”
“하지만 나와 가족의 목숨이 담보라면, 그 정도 보험은 들 수 있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월급에서 까는 것도 아니고 회사가 지원해 주는 건데.”
‘회사 지원’이라는 말에, 윤 실장은 더 할 말이 없었다.
***
“취지는 설명해 드렸습니다. 더 자세한 얘기는 함께하실 분들에게만 말씀드리겠습니다.”
“······.”
“선택권을 드리는 겁니다. 의심 없는 믿음이 필요하고요. 과정 중에 위험한 일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지혁은 시계를 보았다.
“5분 드리겠습니다. 함께 못 하는 거로 의사표시 하셔도 아무런 불이익 없고 서운하게 생각 안 할 거예요. 전 이미 회장이 되었고, 이 과정까지 도와주신 것만 해도 전 충분히 감사하게 생각하니까요.”
5분의 시간 동안.
지혁은 가만히 사람들을 지켜봤다.
머뭇거리는 표정의 한 사람이 보였다.
“하 이사님?”
“네?!”
그는 화들짝 놀랐다.
“나가셔도 됩니다.”
“······.”
“정말 괜찮아요. 지금 아니면 못 그만둡니다. 관두려면 기회는 지금뿐이에요.”
선도물산 생산본부장 하 이사는 머뭇거리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죄송합니다. 전 이제 현업에만 집중하고 싶습니다. 회장님 말씀을 못 믿는 건 아닙니다.”
“이해합니다. 퇴사나 이직만 하지 마시고 회사 잘 다녀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진심으로 그를 생각해서 한 말이었다.
“알겠습니다. 이 자리에서 들은 얘기는 절대로 함구하겠습니다.”
“네.”
하 이사는 허리를 숙인 후 회장실 밖으로 나갔다.
덜컹!
그가 나간 뒤.
지혁은 네 사람을 돌아봤다.
“모두 결심이 서신 거죠?”
“······.”
그룹 비서실장 윤현성 전무
선도물산 인사실장 허용호 이사
선도물산 전략실차장 고승윤 부장
선도물산 생산 1팀장 황성준 차장
네 사람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불안함이 있었으나, 지금까지 그들이 봤던 지혁의 모습을 믿었다.
“좋습니다.”
지혁은 고개를 끄덕인 뒤, 말했다.
“지금부터 여러분을 세크(SECC)라고 부르겠습니다.”
‘세크?’
모두 그 의미를 궁금해했는데, 곧바로 지혁이 설명해 주었다.
“SECC. Sundo Emergency Countermeasures Committee의 약자입니다.”
“······.”
“선도비상대책위원회. 공식적인 선도그룹 회장실의 부속 조직이고요. 그룹에서 위치를 따지자면, 미래기획실의 상위조직입니다.”
세크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미래기획실의 상위조직?’
‘그 의미가······.’
지혁은 곧바로 설명하였다.
“직급 상관없이, 여러분이 하고자 하는 일은 선도그룹에서 누구도 막지 못합니다.”
“······.”
“여러분이 곧 저입니다. ‘방주 프로젝트’를 완성하기 위해, 세크에게 절대 권한을 줄 겁니다.”
지혁은 눈빛을 빛내었다.
“각자 제가 과업을 드릴 건데, 선도그룹의 역량을 활용하여 달성해내면 되는 겁니다.”
“······.”
“그 어떤 관계사 대표도 여러분의 요청에 불응하지 못할 겁니다.”
***
세크는 생각했다.
‘부담이 확 되는데.’
‘관계사 대표까지 주물러서 하라고?’
‘도대체 뭘 시키시려고······.’
지혁이 말했다.
“여러분의 역량을 믿습니다. 주체적으로 하시되, 중요 의사결정 과정에서만 절 배석 시켜주셨으면 합니다. 위험을 대비하는 거······ 제가 가장 자신 있는 부분이거든요.”
‘그 세계’에서 수년을 살아남았다.
생존능력과 전투 경험이야말로, 지혁의 최고 주특기다.
“과업은 크게 네 가지입니다. 그중 좀 까다로운 부분에는 두 분을 배치하려 했는데.”
세크는 총 5명으로 계획했었는데, 지금 한 명이 포기하여 4명이 되었다.
“그럼 한 명 더 선발하면 되잖아요.”
인사실장의 말에 지혁은 고개를 저었다.
“검증되지 않은 인재를 쓸 수는 없습니다. 가르치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갑니다.”
지혁은 윤 실장을 불렀다.
“윤 실장님!”
“네······ 네?!”
“혹시 벙커에 대해서 아십니까?”
“벙커······요?”
윤 실장은 잠시 생각한 뒤 대답했다.
“군대 벙커 말씀하시는 겁니까? 대략적인 의미 정도는 압니다. 적의 공격으로부터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는 시설 같은 거였던 것 같은데······.”
윤 실장은 기억을 더듬었다.
‘내가 군 전역 한 지가 언제더라.’
지혁은 곧바로 지시했다.
“첫 번째 과업입니다. 윤 실장님께서 초대형 벙커 구축을 맡을 건데, 우리가 만들 벙커는 복합적인 목적이 있어서 쉘터라고 부르겠습니다.”
위험을 피하고, 보호해주며, 주거 기능까지 있어야 하기에, 지혁은 ‘쉘터’라고 지칭했고.
윤 실장은 황당해서 입이 떡 벌어졌다.
‘회사원 보고 뭘 만들라고? 미쳤네······ 미쳤어······.’
설마설마했었는데, 지혁은 진짜였다.
“대략적인 가이드라인을 정해드리자면, 미사일 공격에도 버틸 깊이와 두께여야 합니다. 당연히 쉘터는 지하에 있는 게 유리하겠죠.”
“······.”
“50만 명이 들어갈 공간이었으면 합니다. 우리 선도그룹 직원들과 가족인데. 50만 명은 적정인원이며, 최대인원으로 말씀드린 게 아닙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을 고려해서, 더 들어갈 수 있는 여유가 있어야겠죠.”
“······.”
“단순히 대피만 하는 곳이 아닙니다. 오랜 시간 버틸 수 있도록 산소 배출구 등을 고려하셔서, 반영구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곳으로 구축해 주셔야 하며······.”
지혁은 준비한 얘기를 쏟아내었고.
윤 실장의 얼굴은 갈수록 일그러졌다.
‘이 미친 소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