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사원이 능력을 숨김-244화 (244/301)

244. SECC (2)

윤 실장은 멍한 얼굴이었으나, 지혁의 얘기는 계속되었고.

옆에서 얘기를 듣는 나머지 세 사람의 표정도 윤 실장과 비슷했다.

‘획기적인 얘기일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게 비즈니스도 아니고. 도대체 뭐 하자는 거지?’

‘현실주의자로 봤는데, 망상가였나?’

지금 모습만 봤을 때는 지혁이 오 부회장보다 더 위험해 보였다.

오랜 시간 준비한 듯 얘기는 꽤 길어졌고.

어느덧 첫 번째 과업 얘기가 끝났다.

“질문 있으세요?”

“질문이요?”

‘50만 명이 들어갈 쉘터를 지하에 만들라고?’

너무 허무맹랑해서, 윤 실장은 질문할 게 없었다.

“질문 없으시면 다음으로······.”

“잠깐만요, 회장님.”

그래도 이렇게 넘어가면 안 될 것 같았다.

“이게······ 가능은 한 겁니까?”

“······.”

“공상 과학 영화에나 나올법한 얘기 아니에요? 어떻게 지하에 그런 큰 규모의 쉘터를 만듭니까? 정부에서 시공 허가는 받을 수 있을까요?”

“질문이 없으신 듯하더니, 한꺼번에 물어보시네.”

지혁은 피식 웃고는 말했다.

“하나씩 답변드리죠. 사실대로 하면 정부에서 두고 보지 않을 테니, 진짜 용도를 잘 숨겨서 설계해야겠죠. 지하철역이 전시에는 대피소로 바뀌는 것처럼요.”

“······.”

“그리고 공상 과학 영화에나 나올 법한 얘기가 아니에요.”

“네?”

“이미 있습니다. 우리가 모를 뿐이지.”

세크는 황당한 눈길로 지혁을 바라봤다.

“서울에도 대규모 쉘터가 있고요. 미국에는 상상도 못 할 거대한 규모로 있습니다. 국가마다 대규모 쉘터는 있어요.”

윤 실장은 지혁을 신뢰하지만, 지금 하는 말들은 믿기 어려웠다.

“그걸 우리가 왜 모르죠?”

“국가 1급 비밀이니까요.”

‘그날’이 벌어진 뒤에야, 세상의 쉘터들은 정체를 드러낸다.

1급 비밀이지만, 지혁은 ‘그 세계’를 경험했기에 알고 있다.

“그리고 민간인을 위한 시설이 아니니, 지금 우리가 알 수가 없죠.”

윤 실장은 선뜻 이해가 안 되어 미간을 찌푸리자, 지혁은 부연 설명을 해주었다.

“정치인과 부자. 혹은 인류에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겁니다. 한계가 있죠.”

“······.”

“쉘터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은 죽을 확률 99%에요. 다쳐서 죽거나, 굶어서 죽거나.”

물론, 그 와중에 살아남는 사람들도 있어서 백 프로는 아니다.

“와······ 이걸 도대체가.”

들리는 얘기가 놀랍고 충격적이어서, 윤 실장은 정신이 없었다.

“이상하게 생각할 거 없습니다. 위정자들이 하는 것처럼, 우리도 자신을 지키기 위해 먼저 움직이는 것뿐입니다.”

“······.”

“이기심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진 본능이에요. 아무리 이타적인 사람이라도 일주일 굶겨봐요. 어떻게 변하나.”

***

‘쉘터를 만들라고. 쉘터를······.’

윤 실장은 얼떨떨한 얼굴로 고개를 젓고 있는데, 지혁은 계속 진행했다.

“그다음······ 고 부장님?”

“네!”

고승윤 부장은 바짝 긴장하여 대답했다. 지금 어떤 대화들을 나눴는지 지켜봤기에 긴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고 이사님이라 부르겠습니다. 관계사 대표들 상대하려면 최소 임원은 되어야 해요. 당연히 그럴 자격도 있으시고요. 발령은 내일 날 겁니다.”

“네, 회장님. 감사합니다.”

“고 이사님께서는 ‘식량 개발 및 구축’을 담당해 주셨으면 합니다.”

“시, 식량 뭐요?”

그답지 않게 말을 더듬거리며 되물었다.

“유통 기한이 길고, 최소한의 영양을 갖출 수 있으며, 부피가 적은 것.”

“······.”

“이런 식량을 개발하여 비축해 주셨으면 합니다.”

고 이사는 지혁의 말을 곰곰이 생각했다.

‘유통 기한이 긴데, 영양이 좋고, 부피는 작아?’

언밸런스한 조건들이 뭉쳐 있었다.

“이런 게 가능은 합니까?”

쉘터 얘기를 들었을 때, 윤 실장이 했던 질문과 똑같이 했다.

“가능하게 하셔야죠. 고 이사님 개발팀이셨잖아요.”

‘이건 그 개발이랑 다르잖아.’

패션 개발팀에 있던 고 이사는 주로 섬유 개발하는 일을 해왔었다.

지혁은 종목이 다를 뿐, 개발하는 프로세스는 비슷할 거로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성공을 향해 집요하게 움직일 줄 아는 고 이사의 성향을 고려했다.

멍한 얼굴의 고 이사를 향해 지혁이 말했다.

“세상 어딘가에 이미 있을지도 모릅니다.”

“······.”

“상용화되지 않아서 모를 뿐이지, 세상에는 진보된 기술이 꽤 축적되어 있습니다.”

지혁은 추호의 망설임 없이 말했다.

“새로 개발하시든지, 아니면 필요한 것을 찾으세요. 기술력이란 건 구매를 해도 되는 거니까.”

지혁은 책상을 두드리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둘 다 동시에 알아봐도 괜찮겠네.”

“······.”

“선도그룹에는 불가능한 게 거의 없습니다. 선도의료원과 선도바이오로직스(제약회사) 관계사를 활용해도 될 것 같네요.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세크’는 그룹 최상위 조직입니다. 원하는 건 필요한 만큼 협조받으면 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기술 확보하신 후에 대량생산도 진행되어야 합니다. 최소 5년······ 아니, 10년 버틸 양은 있는 게 좋겠습니다.”

“그렇게 많이요?”

“가능한 한 많을수록 좋아요. 쉘터에서 얼마나 버텨야 할지 모르니까.”

“······.”

당장이라도 멸망이 올 것처럼 얘기했고.

시종일관 너무 확고하게 말하니, 세크도 점점 불안해졌다.

“와······ 이거 참.”

고 이사도 고개를 저었다.

맷집 좋고 빡센 그도, 지금은 어질어질했다.

지금까지 선도그룹에 했던 업무들과는 완전히 결이 달랐으니까.

***

“인사실장님.”

“네!”

맹목적 충성심의 일인자답게, 다른 이들과 달리 눈빛이 또렷했다.

도리어 신나 하는 얼굴이었다.

“인사실장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게 제대로 안 되면 우리가 준비한 것들이 아무 소용이 없어지거든요.”

“네! 뭐든 말씀만 주십시오. 열과 성의를 다하여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지혁은 표정이 어느 때보다 무거웠다.

“대피 계획을 세워주셔야 합니다.”

“아······.”

“일이 터졌을 때, 선도그룹의 직원과 가족들을 쉘터로 대피시켜야 하는데. ‘그날’이 근무 중에 터질지, 휴일에 터질지 알 수 없는 거거든요?”

“······.”

“어떠한 상황에서도 빠르게 쉘터로 대피할 수 있는 계획을 구상해 주십시오.”

인사실장은 질문했다.

“직원 중에 국가의 부름으로 동원으로 빠지거나 민방위로 가는 사람들도 있을 텐데, 그들은 어떻게······.”

“그거 다 소용없습니다.”

“······.”

“일 터지면, 다 마비되어요. 아무 소용 없어요. 국가는 사라집니다. 그런 거 신경 쓰지 마시고, 계획 잡으시면 됩니다.”

“아······ 네.”

인사실장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러면, 법에 걸릴 텐데.’

지혁은 대피 계획에 대해서는 좀 더 자세하게 얘기했다.

“대상자를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합니다. ‘그날’이 되면 다들 데려가 달라고 좀비처럼 달려들 거거든요.”

“······.”

“쉘터 수용 한계가 있으니, 계획된 인원만 받아야 합니다. 직계까지만 받는 거로 하고, 가족별 최대 인원수 제한합니다. 소집 시 신분을 확인할 수 있는 절차도 구상하셔야 하고요.”

“알겠습니다.”

“신속하고 빨라야 합니다. 그에 따라 생존자 수가 달라집니다.”

“······네.”

지혁은 계속 얘기했다.

“차량 배치와 이동로도 확보해야 합니다. 도로에 차량이 꽉 막혔을 경우를 가정하세요. 그러니까, 최악의 상황을 고려하고 계획을 세우십시오.”

인사실장은 받아적으며 대답했다.

“네.”

인사실장의 계획에 따라서, 살 수 있는 사람의 수가 결정된다.

지혁의 얘기를 들으며 책임감을 느꼈으며, 절로 마른침이 삼켜졌다.

‘부담스러운데.’

“인사실장님?”

지혁은 인사실장의 초점이 흐려 보이자, 그의 이름을 불렀고.

“네? 네! 회장님.”

“집중하세요.”

“네, 죄송합니다.”

“흠. 대피한 다음에는 쉘터에서 살아가야 하잖아요?”

“네.”

“한정된 공간과 자원에서 살아갈, 질서와 법규를 정리해 주셨으면 합니다.”

“아······.”

“그러니까, 쉘터 법체계를 구축해 주신다고 보면 되는데, 우리 회사 법무팀 자문해서 하시면 되고······.”

지혁의 얘기는 갈수록 가관이었다.

‘진짜구나. 진심이네.’

유독 ‘대피 계획 및 커뮤니티 구축’에 대한 얘기가 길어졌고, 인사실장은 그럴수록 부담을 느꼈다.

‘내 것만 왜 이렇게 많은 거야?’

지혁이 말했다.

“원래 두 분께 나눠서 맡길 계획이었는데, 이렇게 되었네요. 인사실장님은 워낙 탁월하시니까, 혼자서도 충분히 잘하실 거라 믿습니다.”

“네······.”

항상 씩씩하게 대답하는 인사실장도, 이번만큼은 그럴 수 없었다.

이미 얼굴에 다크써클이 드리워졌다.

***

“황 팀장님?”

“네?! 네!”

황 팀장은 겁먹은 얼굴로 대답했다.

앞선 세 사람의 과업이 너무 무시무시하게 들렸기 때문이다.

“딴생각하셨어요? 왜 이렇게 놀라세요?”

“아, 아닙니다!”

“지금이라도 나가고 싶으시죠?”

“네?”

황 팀장은 순간 고민했다.

‘그래도 되나? 지금이라도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나갈까.’

“미안하지만, 황 팀장은 해당 사항 없습니다.”

“아······ 네. 그럼요. 나갈 생각도 안 했습니다······.”

지혁은 웃으며 말했다.

“황 팀장님도 앞으로 이사라 부를게요. 이유는 아까 고 이사님께 설명해 드린 것과 같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임원이 되었다.

기뻐할 일이지만, 지금은 감응을 느낄 정신이 없었다. 지혁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긴장될 뿐.

“마지막 과업이네요.”

“······.”

“황 이사님은 무기 체계를 구축합니다.”

.

.

.

.

“네?!”

“미쳤네. 미쳤어.”

윤 실장이 급기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회장님, 말씀 중에 죄송한데. 병원에 가보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진짜 괜찮은 거 맞아요?”

무기를 구축한다니.

지금까지는 참고 들었으나, 나가도 너무 나갔다고 생각했다.

지혁은 윤 실장의 말을 무시하고 말했다.

“개인 총기류와 대공포 알아봐 주시고. 방독면도 인당 세 개씩은 필요합니다. 아 그리고, 가장 중요한 도검류가 있어야 하는데, 25cm 길이가 활용도가 좋거든요? 충분히 여유 있게 준비를······.”

눈빛에 약간 광기가 서려 있었고.

세크는 모두 경악하여, 멍하니 그의 얘기를 들었다.

‘무기를 준비하라니.’

‘그게 가능한 얘기야?’

‘어쩌려고 그래? 멸망은 모르겠고, 그 전에 감방부터 가는 거 아니야?’

윤 실장은 격양된 목소리로 말했다.

“회장님, 말씀 좀 들어보세요. 조금이라도 가능성 있는 얘기를 하셔야지. 개인화기와 대공포를 어디서 구한단 말입니까? 그리고 그거 불법이잖아요?”

지혁은 태연히 말했다.

“구하려면 다 구해집니다. 못 구하면 만들어도 되는 거고요.”

“그걸 만들어요? 어떻게요?”

“우리 그룹은 방산 사업도 하고 있습니다. 선도테크윈이라고.”

“와······.”

윤 실장은 어이가 없어서, 할 말을 잃었고.

지혁은 쓴웃음과 함께 말했다.

“불법? 그게 뭐가 중요합니까? 죽고 난 다음에도 법 찾을 건가요?”

“······.”

“지금 쓸 게 아니라. 그날, 우리를 지키기 위한 방어용 무기입니다.”

그의 눈빛엔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살아남기 위해서 못 할 게 뭡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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