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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이 능력을 숨김-245화 (245/301)

245. 뒤를 부탁한다 (1)

몇 차례의 폭풍과 함께 세크의 과업 얘기는 끝났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특히 세크, 네 사람.

완전히 얼이 빠져 있었는데.

좀 전까지 지혁이 한 얘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 중이었다.

그저 수긍하기엔 너무 허무맹랑하고.

그룹 총수가 한 말을 무시할 수도 없고.

심각한 얼굴로 고민 중인 가운데.

윤 실장은 지혁의 지시한 ‘쉘터’를 생각했다.

‘50만 명이 들어갈 쉘터를 어떻게 만들라고. 그 정도면 도시급 규모 아니야? 말이 돼? 그래, 말이야 쉽지. 영화에나 나올법한 얘기를······.’

생각할수록 기가 막혔다.

‘아무리 세상에 큰일이 난다고 해도. 그런 발상을 한 것 자체가 대단하다. 진짜.’

맷집 좋은 고 이사도 고개를 푹 숙이고 고민에 빠졌다.

‘섬유 개발이나 하던 사람한테, 식량 개발을 하라니.’

비교적 고 이사에게 목표치를 명확하게 줬다.

‘유통 기한이 긴데, 영양이 좋고, 부피는 작은 식량.’

말이야 쉽지 달성하기 어려운 얘기였고, 그걸 또 50만 명이 10년간 먹을 양을 비축해야 한다고 했다.

고민 중인 이들과 달리, 벌써 구상 중인 사람도 있었는데.

‘우선 비상 연락망을 구축하고······ 근데 통신시설 파괴되면 전화기 못 쓰잖아. 그러면 비상 연락망을 어떻게······. 도로 꽉 차면 대피를 어떻게 시키지? 드론에 태워? 미치겠네.’

구상해보니, 한숨이 더 나왔다. 구체적으로 생각할수록 답이 안 나오는 문제였다.

마지막 과업을 받은 사람.

황 이사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있었다.

‘나보고 범죄를 저지르라고······.’

무기 구매와 제조.

과업 자체가 범죄다. 아무리 간, 쓸게 다 내줄 정도로 믿고 따르는 지혁이지만.

황 이사는 가족이 있는 사람이다.

아내의 모습이 아른거렸고, 속으로 끙끙 앓다가 결국 얘기했다.

“회장님, 정말 죄송한데······ 도저히 주신 과업은 못 하겠습니다.”

“······.”

“회장님께 지금까지 무슨 일을 시키시든 최선을 다해왔다고 자부합니다. 항상 뜻이 있는 일을 지시하셨기에, 회장님이 하시는 일은 무엇이든 지지합니다. 하지만 이건······ 저도 가정이 있는 사람이라.”

지혁은 물끄러미 황 이사를 바라보았다.

“걱정되나요?”

“요즘 수사기관이 얼마나 철저한데, 어떻게 무기를······.”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없었다.

지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걱정될 만하죠. 단순히 어렵기만 한 문제가 아니니까.”

황 이사의 처지를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었다.

“무기 과업과 관련된 웬만한 일정에는 제가 함께 하겠습니다. 서명하거나 결정적인 지시를 할 때는 직접 할 테니까요, 맡아주세요.”

“······.”

그래도 황 이사는 내키지 않는 얼굴이었는데.

“황 이사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에요. 도와주셔야 해요.”

지혁의 부탁이 간절했다.

그가 이렇게까지 말한 적은 없었다.

“하아······.”

황 이사는 한숨을 쉬었다.

그는 지혁에게 너무 약했다.

‘함께 해준다고 하셨으니까······.’

“알겠습니다.”

“낙장불입.”

“네?!”

지혁은 표정을 싹 바꾸고 말했다.

“이걸로 과업은 모두 정리됐습니다.”

황 이사는 황당한 얼굴로 지혁을 바라봤으나, 나머지 세 사람은 키득거리며 웃었다.

“일하시면서 의심스러운 마음이 들 수 있습니다.”

“······.”

“지금부터는 어떻게 하면 잘 해낼지만을 고민하시고, 그 외에 다른 생각은 하지 마세요.”

“······.”

“생각이 많아질수록 어려워집니다.”

***

“지원은 확실하게 해드릴 겁니다. 세크 네 분에게는 관용차를 지원해 드릴 거고, 수행비서와 수행 기사도 있습니다.”

-우와······.

-관계사 대표급 의전인데요?

-대박······.

좀 전까지 부담스럽다며 울상 짓던 네 사람은 이 얘기에 얼굴이 좀 밝아졌다.

“위험수당도 드릴 거예요. 리스크 높은 일을 하시니 당연히 보상을 해드려야지요.”

지혁은 목소리에 힘을 줬다.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네 분은 이 일에만 집중하세요. 현업에서 다 뺄 겁니다. 내일 아침에 바로 발령 날 거예요.”

황 팀장은 당황한 얼굴로 손을 들었다.

“말씀하세요.”

“회장님,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 전 겸직을 하면 안 되겠습니까? 팀장 맡은 지도 얼마 안 됐고, 소싱 업무를 좋아해서요. 맡겨주신 일은 차질 없이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지혁은 황 이사의 얘기를 다 들은 후 대답했다.

“안 됩니다.”

“······.”

“더 하실 말씀 있나요? 얘기는 들어드릴게.”

황 이사는 눈을 끔뻑거리다가, 고개를 저었다.

“없습니다. 말씀하십시오.”

“그래요.”

지혁은 세크 네 사람을 둘러보며 말했다.

“전략 초안 짜서 보고하세요. 생소한 일이라 시간이 걸릴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많은 시간 들여서 완벽하게 하려 하지 마시고, 보고 후에 수정한다는 생각으로 일해주세요.”

“······.”

“말씀드렸다시피, 제가 이 일에는 전문지식이 있습니다. 저와 상의하면서 수정, 보완해 가는 게 빠를 겁니다.”

“알겠습니다.”

세크는 일제히 대답했다.

지혁은 더 할 얘기가 없었다. 얼추 얘기는 다 끝났다.

“회장님, 질문 하나만 드려도 됩니까?”

윤 실장이 손을 들었다.

“네.”

“회장님은 뭐 하십니까?”

“······.”

“그렇게 중요하다고 여기시는 일이라면, 뭐라도 하실 것 같아서요.”

지혁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전 세크의 위원장이고요. 직원들의 훈련을 담당할 겁니다.”

“훈련이요?”

“직원들의 전투력을 끌어올리는 거요.”

“전투력······.”

쉘터, 식량 비축, 대피 계획 등의 얘기를 듣다 보니.

간단한 단어도 허투루 들리지 않았다.

회사에서 맷집 좋고 업무숙련도가 높은 사람을 지칭할 때 ‘전투력 좋다’라는 표현을 쓰긴 하지만.

지금 지혁이 말하는 건 ‘진짜 전투력’이니까.

“그게 체력과는 큰 상관이 없습니다. 물론 체력이 좋으면 유리한 부분이 있지만, 이 또한 기술적인 부분이라.”

‘전투력······ 기술적인 부분······.’

들을수록 윤 실장은 섬뜩한 기분마저 들었다.

“우리를 지키는 기술이죠. 그게 곧 나를 지키는 길이고요.”

조직이 강할수록, 나 자신은 안전해진다.

아무리 전투력 만렙이어도, 전투를 혼자 할 수는 없으니까.

더 질문은 없었다.

지혁이 미친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으나, 일단 두고 보자는 생각이었다.

오지혁이 하는 일이니까.

***

[인사발령]

1) 윤현성 전무 : 선도물산 전략실장 -> 그룹 비서실장 겸 SECC 위원

2) 허용호 상무 : 선도물산 인사실장 -> SECC 위원

3) 고승윤 이사 : 선도물산 전략실차장 -> SECC 위원

4) 황성준 이사 : 선도물산 생산 1팀장 -> SECC 위원

다음날 이른 아침.

정식 발령이 났다.

윤 실장은 겸직인데, 그룹 비서실장 자리를 비울 수 없어서 그렇게 했을 뿐. 실질적으로는 SECC 위원이다.

- 세크가 뭐야?

- 뻔하지 않아? 오 회장님 이동할 때마다 함께 다니는 사람들이 모두 세크로 발령 났잖아.

- 아······ 뭔지 알 것 같아. 친위대 같은 거겠네.

-그렇겠지. 미래기획실 힘 좀 빠지겠는데?

직원들의 수군거림 속에는 시샘하는 소리도 없지 않았다.

-네 사람 모두 특진했잖아. 특히, 윤 실장님이랑 황 이사님은 두 계급 특진······.

-도대체 황 이사가 한 게 뭐야? 차장이었던 사람을 임원을 시켜?

-회장님 최측근이잖아. 급을 맞춰야 하니까.

- 줄 잘 서는 것도 실력이야. 배 아파하지 마.

비상식적인 인사발령은 계속되었다.

아침에 SECC 인사발령 후, 2시간 뒤에 대표급 인사발령이 났는데.

[인사발령]

오지혁 회장 : 그룹 회장 -> 그룹 회장 겸 SECC 위원장

- 거봐. 거봐. 내가 뭐랬어.

- 자기 사람한테 대놓고 힘 실어주네. 세크에서 뭐 하려는 지 모르겠지만, 조직 구성원이 5명이잖아? 위원장은 회장님이고.

- 최고 권력 조직 탄생이네.

오지혁 회장의 체제하에 조직 개편과 인사이동이 있을 거라는 예상은 했지만.

빠르고 충격적이었다.

[인사발령]

한원철 사장 : 그룹 비서실장 -> 선도물산 대표.

그룹 비서실장을 맡았던 한 전무는 사장 승진과 함께 선도물산 대표직을 맡게 되었다.

한 대표는 승진보다도 선도물산에 돌아가게 된 걸 좋아했으나.

지혁에게 다짐받아야 했다.

‘영업 인사로 요직 채우지 말고, 현재 진행 중인 일들은 잘 마무리 지으세요. 선도물산은 제가 유심히 보고 있습니다.’

‘······.’

‘비서실장 하시느라 고생 많으셨고, 내 사람이란 확신이 들어서 보내는 거니까요. 기대에 부응해 주시기 바랍니다.’

‘네 알겠습니다.’

반쪽짜리 대표였으나.

회장의 지시니, 한 대표는 따를 수밖에 없었다.

충격적인 인사발령 가운데서, 직원들의 관심을 가장 많이 받았던 것은······.

[인사발령]

오진원 부회장 : 선도전자 대표이사 -> 그룹 부회장.

***

오진원은 빠른 걸음으로 선도본관으로 도착했다.

그의 눈빛은 다급해 보였다.

당황스럽고 약간은 화도 난 듯한 얼굴.

로비에서 마주친 직원들이 인사를 건네어도, 무시하고 지나갔다. 인사받을 정신이 아니었다.

‘이런 게 어딨어.’

대표급 인사발령 뒤에, 지혁은 관계사 대표와 사장급 인사에게 전체 메일을 보냈다.

내용은 크게 두 가지이며 길지 않았으나, 의미는 전혀 간단하지 않았다.

‘SECC는 회장 직속 조직입니다. 앞으로 SECC 위원이 하는 일에는 조건 없는 협조를 바랍니다. 협조 못 하겠으면 저에게 직접 말씀해주세요.’

첫 번째는 세크에 절대적인 권한을 부여하는 거였고.

그다음은······.

‘그룹 부회장 직무를 만듭니다. 저는 SECC의 위원장 업무에 집중합니다. 오진원 부회장이 회장 직무 대행이라고 보시면 되고, 앞으로 회장의 의사결정이 필요한 모든 일은 오진원 부회장에게······.’

오진원으로서는 뒤통수 맞은 기분이었다.

회장실에 도착하여 거칠게 문을 두드렸다.

“회장님! 선도전자 대표입니다!”

인사발령이 이미 났지만, 자신을 대표로 칭했다.

[들어오세요. 부회장님.]

지혁은 그를 부회장이라고 불렀다.

덜컹.

오진원은 콧김을 뿜어내며 회장실로 들어왔고, 지혁은 의자에 앉아 태연한 얼굴로 그를 맞았다.

오진원은 들어오자마자, 소리치듯 말했다.

“아니, 회장님. 이런 경우가 어딨습니까?”

“출근하신 겁니까?”

“네?”

지혁은 손가락으로 옆을 가리켰는데, 은은한 망치질 소리가 들렸다.

“부회장실 공사 거의 끝났는데, 어떻게 아시고 딱 맞춰서 오셨네요.”

“회장님!”

오진원은 약이 올랐고.

지혁은 해맑게 웃었다.

“내가 회장 하기를 그렇게 싫어했는데, 부회장직을 주면서 회장 일을 하라고요?!”

“······.”

“진짜 너무 한 거 아닌가요? 다 알면서?”

지혁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대답했다.

“약속하셨잖아요.”

“뭘요?”

“도와주신다고.”

“······.”

“제가 회장이 되면 적극적으로 도와주신다고 했잖아요.”

지혁은 그를 향해 환히 웃으며 말했고.

오진원은 황당한 얼굴로 마주 보다가.

터져 나오려는 말을 겨우 참았다.

하마터면, 속마음을 그대로 뱉을 뻔했다.

‘야이, 양아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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