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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이 능력을 숨김-248화 (248/301)

248. 쉘터 (2)

“아······ 네. 뭐, 정 그렇게 하셔야 한다면.”

한 대표는 떨떠름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룹 총수가 반드시 해야겠다는데, 더 이상의 논리는 필요 없었다.

하지만, 현실적인 걱정이 없지 않았다.

“다만, 비용이 문제인데······.”

“일단 하세요.”

“선도물산 연간 사업 예산이 있는데, 갑자기 10조 원의 자금을 융통하는 건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룹에서 지원합니다.”

“······.”

“예산은 걱정하지 마시고, 계획 잘 짜셔서 진행만 해주세요.”

지혁은 양 부문장을 향해 말했다.

“공사비가 좀 올라가더라도, 튼튼하게 만들어 주셔야 합니다. 포탄이······.”

지혁은 고개를 젓고는 재빨리 말을 바꿨다.

“큰 지진이 나도 버틸 수 있을 정도로 아주 튼튼하게요.”

‘튼튼’을 두 번 강조했다.

선도물산의 세 사람이 아리송한 표정을 짓자, 지혁은 말을 덧붙였다.

“고객들 안전은 중요하니까요. 안전 제일.”

‘쇼핑몰이 위험할 게 뭐가 있지?’

‘경제성을 강조하는 것도 아니고······ 회장님이 안전 주의자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래도 아리송한 표정을 짓자, 잠자코 지켜보던 윤 실장이 나섰다.

“제가 담당입니다.”

“담당이요?”

한 대표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묻자, 윤 실장이 말했다.

“네, 제가 프리미엄 아울렛 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

“······.”

“지금은 초안이라, 생각나는 대로 얘기하여 좀 의아해하실 수 있는데. 제가 나중에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

리조트 부문의 김 부문장이 물었다.

“혹시 이게 그 세크(SECC) 프로젝트인가요?”

그룹에 회장 직속 조직으로 세크가 생긴 건 전 직원이 알고 있다.

다만, 미래 먹거리를 준비한다는 것 정도만 알뿐, 존재의 의의를 정확히 아는 사람이 없었다.

세크 위원인 윤 실장과 위원장 지혁이 적극적으로 나서니, 김 부문장은 그 생각이 난 것이다.

“네, 맞습니다.”

윤 실장은 지혁의 눈치를 한 번 살폈는데, 그는 살짝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이건 세크 프로젝트의 일부거든요.”

“······.”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전사적 프로젝트이니, 많은 협조 부탁드립니다.”

윤 실장은 지혁을 대신하여 적절한 선에서 설명해주었고.

지혁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

선도물산 세 사람은 약간 멍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고.

지혁은 좀 더 설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쇼핑몰 구조 설계에 윤 실장이 관여하면 알게 될 테니.

“단순한 쇼핑몰이 아닙니다.”

“······.”

“보안 문제라 자세히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쇼핑몰 외에 부수적인 목적이 있거든요.”

“······.”

“쇼핑몰 설계 시에 윤 실장의 요청은 최우선으로 들어주셔야 합니다.”

한 대표가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만약 사업성에 반하는 요청을 하실 경우에는······.”

“그때도 윤 실장의 요청사항이 우선시 되어야 합니다.”

한 대표의 얼굴이 아리송해졌다.

‘지금······ 뭐 하자는 거지?’

신사업으로 프리미엄 아울렛을 하자면서, 사업성이 떨어질지라도 윤 실장의 의견을 들으라고 한다.

‘사업성보다 우선시 되는 게 뭐가 있을까.’

말의 앞뒤가 안 맞는다고 생각했으나, 지혁과 윤 실장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뭔가 중요한 사연이 있는 것 같은데.’

그 사연이 무언지는 알 수 없으나.

한 가지는 확실했다.

무조건 하라는 것.

묻고 따질 수는 있어도, 반드시 해야 한다는 것.

회사 생활 오래 한 사람들이라, 그 정도는 충분히 감 잡았다.

‘오지혁 회장님 지시잖아. 어차피 해야 할 거. 피하지 말자.’

한 대표는 내키지 않던 마음을 바꾸었다.

“부문장님들, 궁금한 거 있으면 지금 물어보세요. 서둘러서 하라시니까.”

한 대표는 부문장들에게 지시했고, 지혁은 살며시 미소 지었다.

“한 가지 질문드려도 되겠습니까.”

김 부문장이 손들었고.

지혁이 말했다.

“네, 말씀하세요.”

“윤 실장의 요청사항이 쇼핑몰과 어울리지 않아서, 만약 정부에서 태클을 건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혁이 대답하기 전에, 한 대표가 앞서서 차갑게 대꾸했다.

“그걸 왜 회장님께 묻나?”

“네?”

한 대표와 김 부문장은 영업 선후배 사이며, 오랜 기간 함께 회사 생활했다.

아무래도 말이 편하고 거침이 없었다.

“그 정도 문제는 우리가 알아서 해야지.”

김 부문장은 한 대표의 지적을 받고 아차 싶었다.

‘한동안 대표님으로 모셨던 분이라, 습관적으로······.’

지혁과 김 부문장은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선도물산에서 함께 긴밀히 일하던 사이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괜한 질문을 드렸습니다.”

“하하. 헷갈리셨나 보네. 저도 순간 대표라고 착각하고 말씀드릴 뻔했네요.”

지혁의 너스레에 회장실 안에는 짧게 웃음소리가 터졌다.

긴장되던 회장실 분위기가 좀 풀렸다.

한 대표는 일어날 채비를 했다.

“대표님. 그러면 점포 위치부터 구상한 후에 초안 보고 올리겠습니다.”

“아, 점포 위치는 윤 실장이 지정해줄 겁니다.”

“네?!”

한 대표는 당황한 얼굴로 지혁을 바라봤다.

‘구조에 관여할 거라더니, 점포 위치까지 정한다고?’

지혁은 그가 황당해하는 표정을 보고, 두 손을 들며 말했다.

“미안합니다. 헷갈리실 만해요. 명확하게 정리해드릴게요. 점포의 위치, 개수, 일부 구조. 이렇게 세 가지 부분은 관여할 거예요.”

‘그게 다잖아.’

그 세 가지를 제외하면, 선도물산이 할 수 있는 건 몇 가지 없었다.

‘마케팅, 층 구성, 입점 브랜드 정도? 설마, 이것까지 관여한다고 하진 않으시겠지. ’

지혁은 계속해서 말했다.

“이 외에 나머지는 알아서 해주시면 됩니다.”

한 대표는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아······ 근데, 점포 위치는 사업성과 절대적인 연관이 있는데. 그것까지 관여하신다고 하면.”

윤 실장이 대신 대답했다.

“범위를 드릴 겁니다. 그 안에서 점포 위치를 정해 주시면 되는데, 저와 상의해서 진행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

“저도 비즈니스 하는 사람입니다. 사업성은 반드시 고려할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

“하아······ 사람 참 많네.”

선도본관 옥상.

허 상무는 하루의 반나절 이상을 옥상에서 보냈다.

하염없이 아래를 내려다보며 사람들의 움직임과 차량의 이동을 살폈다.

‘아무 일 없어도 차가 이렇게 막히는데.’

오후 5시쯤 되니, 선도본관 앞 시청 일대는 차로 꽉 막혔고.

일부 구간은 걷는 사람이 차보다 빨랐다.

‘대피 계획을 어떻게 세우냐고. 뭔가 터질 조짐이 보이면, 직원들 집에 못 가게 해야 하나? 그럼 가족들은?’

“아오~!”

허 상무는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아무리 고민해도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오늘도예요?”

허 상무는 뒤를 돌아봤다.

“또 왔어?”

황 이사는 담배 연기를 뿜으며 말했다.

“담배도 안 태우시는 분을 옥상에서 자주 뵙네요. 하하.”

“그러게. 자기 몸 생각 좀 해. 담배 너무 핀다.”

황 이사는 담배 태우러 옥상에 수시로 오는데, 그때마다 허 상무를 만났다.

“하하. 담배 태우는 저보다 지금은 허 이사님이 더 안 좋아 보이시는데요?”

“하아······ 대피 계획이라니.”

허 상무는 한숨을 쉰 후 말했다.

“황 이사는 일 잘 풀리나 봐? 어디 좋은 무기상이라도 찾았어?”

“아니요.”

황 이사는 어깨를 으쓱하고 말했다.

“과업이 말도 안 되게 어려우면, 도리어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아요.”

“······.”

“반 포기 상태에요. 무기를 어떻게 구해요.”

“그러다 회장님께 혼날 텐데?”

“혼나면서 아이디어를 구해야죠. 뭐. 몇 가지 떠오르는 건 있는데, 너무 리스크가 커서.”

허 상무는 한숨을 쉬고 말했다.

“난 어려운 것보다도 부담감이······ 만약에 회장님이 말대로 일이 벌어진다면. 내 계획에 따라 생존자 수가 결정되는 거잖아.”

허 상무는 아래에 길거리의 사람들을 보며 말했다.

“문명의 이기가 무서운 게. 지금 편하게 쓰고 있는 전기, 동력 등 모든 게 마비된다고 생각하면······ 다 장애물이야. 길거리가 장애물 천지가 되는 거라고.”

“쉽지 않으실 것 같아요.”

‘생존자 수’가 결정되는 과업. 부담될 수밖에 없다.

“근데, 설마 ‘그날’이 오겠어요?”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회장님 말씀이라서······ 왠지 불안해.”

황 이사는 이 말을 부인하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으며.

하 상무는 다시 시선을 옥상 아래로 내리며 고민에 빠져들었다.

쉘터 지점화 아이디어는 윤 실장으로부터 공유받았다. 덕분에 대피 경로는 수월하게 구상할 수 있었으나.

이동 방식을 짜는 게 쉽지 않았다.

‘도로는 차로 꽉 막힐 게 뻔하고······.’

“아! 상무님. 오토바이 어때요?”

황 이사의 말에 허 상무는 고개를 저었다.

세크는 서로의 과업에 대해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얘기해주기도 한다.

“생각해봤지. 전 직원이 운전할 줄 알아야 하는데, 쉽지 않잖아.”

“가르치면 되잖아요.”

‘가르친다’라는 말이 귀에 꽂혔으나, 연료를 쓰는 이동 수단은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오토바이는 사람의 힘으로 갈 수 있는 게 아니잖아. 만약 기름이 없으면 혹은 불이라도 붙으면 낭패잖아.”

“그럼 달리기해야 하나요?”

“달리기?”

“네. 이건 사람의 힘이 동력이잖아요.”

전 직원을 마라토너로 만들 순 없다.

가족 중에 노인이 있을 수도 있다.

황 이사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한 거였는데.

허 상무는 눈이 번쩍 떠졌다.

“그래······ 사람의 힘이 동력이고, 모르는 사람은 가르치면 되는 일이지. 탈 수 없는 곳은 들고 이동해도 되고.”

“네?”

허 상무는 동공이 수십 차례 움직이다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찾았다!’

“황 이사! 고마워~”

허 상무는 황급히 옥상을 내려갔고, 황 이사는 멀뚱히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

똑똑.

[회장님, 허 상무입니다.]

“네.”

덜컹.

허 상무는 상기된 얼굴로 회장실로 들어왔다.

지혁은 싱긋 웃으며 물었다.

“허 상무님이 두 번째군요.”

“네?”

“두 번째 초안 보고라고요.”

“아, 네.”

말하지 않아도, 그가 왜 왔는지 눈치챘다.

“구두로 보고드려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편하게 얘기해주세요.”

누구한테 보여주려는 계획이 아니다.

보고는 의미만 통하면 되며, 결과가 중요하다.

“대피 경로를 구상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는데, 이동 방식 때문에 시간이 지체됐습니다.”

“네, 그럴 것 같아요.”

도로는 보나 마나 차들로 꽉 찰 테고, 이동 속도가 느려지면 그만큼 위험에 노출될 테니.

구상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거로 예상했다.

“이게 맞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허 상무는 눈을 빛내며 말했다.

“자전거 출퇴근 캠페인을 벌였으면 합니다.”

‘자전거?’

지혁의 눈에 이채가 빛났다.

“훈련이 필요하거든요. 자전거를 못 타는 직원들도 있을 테니까요.”

“아······.”

이 정도만 말해도 그가 무슨 생각을 해왔는지, 알 것 같았다.

‘훈련해서, 자전거로 대피한다.’

타이어 펑크만 조심하면, 도로에 차들이 많아도 막힐 일은 없을 것이다.

“흥미롭네요.”

지혁은 의자를 바투 앉으며 물었다.

“허 상무님은 자전거 잘 타세요?”

“아니요. 못 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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