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9. 이동 수단
“아 못 타시는구나.”
당연히 탈 줄 알고 물어본 거였다. 자전거도 못 타는 사람이 이런 구상을 해낸 거다.
지혁의 반응이 좋아 보이자, 허 상무는 신나서 얘기했다.
“H아워라고 해야 하나요? 아니면 그날.”
“그날로 통일하죠.”
“네, 그날이 되면, 직원들과 가족들은 자전거로 대피하는 겁니다.”
지혁은 잠자코 들었다.
“그날이 전쟁으로부터 온다고 가정했을 때요. 개전 초기에는 지상군이 없을 거고, 미사일이나, 화생방 공격일 것 같거든요.”
“······.”
“참고로 저 장교 출신입니다. 알오티씨.”
“좋습니다. 계속하십시오.”
“네. 지상군이 아니라면, 자동차나 자전거나 미사일과 화생방 위험에 취약한 건 마찬가지라서요.”
“그렇겠죠.”
“자전거라고 해서 특별히 더 위험할 건 없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빨리 대피소로 몸을 피할 수 있는 게 안전하겠죠. 도로는 차들로 막혀있을 게 뻔하니, 자전거가 빠를 테니까요.”
지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전거는 애들도 탈 수 있고, 노인도 탈 수 있죠. 필요한 경우 어깨에 메고 물을 건널 수도 있습니다. ”
지혁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요. 자전거가 딱이네요.”
허 상무는 고개를 크게 끄덕인 후 계속 말했다.
“자전거 짐받이에 세간 살림을 실어야 하기에, 물동량도 자연스럽게 조절이 됩니다. 한계가 있거든요.”
“······.”
“아무리 많이 챙기고 싶어도, 짐받이 무게 제한 때문에 그럴 수 없을 겁니다.”
“그렇긴 한데. 짐받이에 이삿짐을 실으면 이동하기가 어렵지 않을까요?”
허 상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훈련이 필요하죠.”
“아하······.”
“자전거에 완벽히 숙달되면, 뒤에 웬만한 짐 싣는 건 괜찮지 않겠습니까?”
“아니, 자전거도 못 타시는 분이 어째 그리 잘 알아요?”
“꼭 해봐야 아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허 상무는 그렇게 말한 후, 지혁을 향해 눈썹을 찡끗 올렸다가 내렸다.
‘어째 담백하다 싶었다. 부담스럽지 않으면 허 상무가 아니지.’
지혁은 싱긋 미소 지었다.
허 상무는 인사팀장 시절부터, 아주 적극적인 태도로 지혁을 부담스럽게 했었다.
“혹시······ 너무 재래식인가요?”
“······.”
“저는 최선이라고 생각하는데. 미심쩍은 부분 있으면 말씀 주세요. 다시 고민하여 보고드리겠습니다.”
지혁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지금 계획, 딱 마음에 듭니다.”
“······.”
“어차피 다 재래식으로 돌아갑니다. 미래를 위해서도 ‘자전거 대피 계획’이 좋아요.”
허 상무는 기쁨으로 얼굴이 벌게졌다.
***
“정말 열심히 고민했습니다. 고민한 결과를 알아주시니, 너무 감사하고 좋습니다.”
“아, 네. 뭐 그렇게까지. 제가 감사하죠.”
“아닙니다. 장수는 자신을 인정해주는 주군을 위해 목숨을 걸어 충성을······.”
기분 좋은 허 상무는 주책을 떨기 시작했고, 지혁은 손으로 흔들며 적당한 시점에 끊었다.
“자자. 알겠고요. 그다음 말씀해보세요. ‘자전거 대피 계획’은 알겠는데. 이 계획이 가능해지려면 직원들 모두 자전거를 탈 줄 알아야 하잖아요.”
“네, 맞습니다. 그래서 처음에 잠깐 말씀드렸지만, ‘자전거 출퇴근 캠페인’을 했으면 합니다.”
지혁의 눈이 반짝였고.
허 상무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명목상 ‘지구의 환경과 직원의 건강’을 위한 캠페인입니다.”
“의심 살 일은 없겠네요.”
“하하. 네. 전혀 없을 거라고 봅니다.”
환경과 건강을 위해 자전거 출퇴근하는 걸 이상하게 볼 사람은 없을 것이다.
“대략 구상한 걸 말씀드리자면, 캠페인에 참여할 직원에겐 자전거를 제공합니다. 이왕이면 비싸고 좋은 거로 줘야 동기부여가 될 겁니다.”
“그렇겠죠.”
“도로 환경이 안 좋은 곳이나 흙길에서도 다닐 수 있는 MTB 자전거를 제공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가격대 50만 원대 정도.”
지혁은 동의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전거를 제공한 후에 미션을 줍니다. 예를 들어, 한 달간 하루도 빠짐없이 자전거로 출퇴근한다든지, 집이 먼 사람은 일정 거리까지 자전거로 운행을 하는 등의 방식입니다.”
“미션을 달성하면요?”
“네. 달성하면 직원 가족들에게도 자전거를 주는 겁니다.”
“오호······.”
완전히 파격적인 캠페인이다. 보통 회사에서 캠페인을 하면 직원을 대상으로 하지, 가족들까지 챙기지 않는다.
허 상무는 덧붙여 말했다.
“범위는 자녀와 조부모까지입니다.”
“하하. 직원들이 눈을 켜고 달려들겠는데요?”
“네. 4인 가족이 미션 성공하면 200만 원 상당의 물품을 받는 거니까요.”
지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만약 미션에 실패하면요?”
“제공한 자전거의 반값을 내게 하려 합니다.”
“아······ 그 때문에 직원들이 참여를 안 하면 어떡합니까?”
명목상은 ‘환경과 건강’이지만, 속뜻은 ‘생존을 위한 준비’다.
이 캠페인의 진짜 목적은 전 직원이 자전거를 타게 하는 데 있다.
“한 가지 단서를 달까 합니다. 캠페인 참여에 부담을 느끼지 않을 조건이요.”
“그게 뭔데요?”
“그건 생각해 봐야 합니다.”
“네······ 많은 직원을 참여시키는 게 중요합니다.”
지혁은 고민하다가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다.
“아! 인사고과에도 반영하면 어떨까요?”
“자전거 출퇴근을요?”
“안 될 게 뭐 있습니까? 그룹 총수가 하겠다면 하는 거죠.”
허 상무는 빙그레 미소 지었다.
“그렇게 해주신다면 효과는 확실히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요. 고과에 반영하기로 합시다. 캠페인 참여하면 가산점 받는 거로.”
“네, 알겠습니다.”
허 상무는 대답한 뒤, 지혁을 우러러보았다.
이상한 낌새를 느낀 지혁은 그의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너무 대놓고 보시는데요.”
“우리 회장님은 진심으로 직원을 생각하시는군요.”
“······.”
“어떻게든 살려내시려고······ 직원들이 회장님의 이런 마음을 알아주면 참 좋을 텐데.”
지혁은 고개를 저었다.
“모르는 게 좋죠. 알게 된다는 건, 그날이 왔다는 거니까요.”
허 상무의 눈이 하트로 변했다.
“회장님,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어휴, 부담스러워.’
지혁은 혼자보다는 누군가와 함께 있는 걸 좋아하지만.
허 상무와는 오랜 시간 함께 있는 게 힘들다.
“회장님이 최곱니다.”
“적당히 하시고, 미래기획실 인사지원팀 부르시죠. 바로 자전거 캠페인 논의합시다.”
***
다음날.
전 직원에게 공지 메일이 떴다.
‘자전거로 출퇴근 해볼까? 캠페인 참여하고 자전거도 받고.’
공지 메일에는 지혁과 허 상무가 나눈 얘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고.
직원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혜택 장난 아닌데? 이거 메일 잘못 보낸 거 아니야?
-미션 성공하면 가족들한테까지 자전거를 다 준다고? 진짜?
-자전거도 ‘트렉 MTB’야. 이거 70만 원 넘는 건데. 4인 가족이면······ 280만 원.
-30분만 기다려 봐. 정정 메일 올 거야. 말이 안 돼.
30분이 더 지났지만, 정정 메일은 없었다.
-진짠 가봐.
-그룹 회장실에서 주관한다잖아.
-역시······ 회장님이라서 통이 큰 건가.
-미션이 좀 빡세긴 하다. 한 달간 하루도 빠짐없이 연속으로 자전거로 출퇴근해야 한다잖아.
캠페인 얘기하느라, 업무는 마비되었다.
고가의 자전거를 거저 주는 미션에 직원들은 열광했다.
-자전거 있는 사람은 돈으로 준대.
-회장님이 미쳤어요.
-이거 참여 안 하면 바보 아니야?
-고과에도 반영한다잖아. 자전거 사업하시려고 그러나? 너무 적극적인데?
아무리 솔깃한 이벤트여도, 엄두를 못 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몸치이거나, 자전거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들.
-미션 성공 못 하면, 반액 돌려 내라잖아.
-성공 못 할 리가 있어? 아래 비고란 못 봤구나?
‘미션 실패는 포기했을 경우입니다. 참여하신 후에 ‘포기’를 선언하지만 않으면, 실패는 인정되지 않습니다. 참여 후, 1년 뒤에 달성하셔도 됩니다.’
포기하지만 않으면, 실패는 없다는 소리다.
즉, 캠페인에 지원하여 자전거 받고, 미션을 하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것.
직원들을 무조건 참여시키려는 지혁의 의지가 담겨 있었다.
‘매일 저녁 라이딩 교육반 신설. 교육비 무료. 저녁 식사 제공.’
직원들은 선도그룹이 자전거 사업에 진출하려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너무 적극적이었다.
‘가족 전원 자전거 라이딩 인증 시, 현금 100만 원 선물.’
직원들의 참여율은 높았고, 반응도 좋았으나.
지혁에게 한가지 오해가 쌓였다.
-회장님이 자전거 오타쿠였나 봐.
-진짜?
-그게 아니면 이런 캠페인이 말이 돼?
-하긴······ 몸이 탄탄해 보이시는 게.
사실은, 지혁도 최근 자전거를 배우고 있다.
그 또한 자전거를 가져본 적도 타본 적도 없었다.
***
한 달이 지났다.
‘자전거 출퇴근 캠페인, 참여율 90%’
직원 참여율이 90%가 되었다.
선도그룹 20만 명 중 18만 명은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될 거라는 건데.
90%면 상당히 높은 수치지만, 2만 명이 빈다.
2만 명이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좋다고 할 수만은 없는 수치였다.
“회장님, 죄송합니다. 추가 혜택을 알려도 따라오지 않는 직원들이 있네요.”
“······.”
“어떻게, 강제로라도 안장에 앉힐까요? 살고 싶으면 배우라고. 페달 좀 밟으라고.”
허 상무는 진지한 얼굴로 말했지만.
지혁은 피식 웃었다.
“하하. 그랬다가 큰일 나게요? 신고당해요.”
“답답해서 그렇습니다. 답답해서. 아니, 이렇게 다 퍼주는데, 왜 안 배우는 걸까요?”
지혁도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다.
“밥숟가락 떠서 입 안에까지 넣어줬는데, 그래도 씹지 않겠다는 건 어쩔 수 없는 거죠.”
“······.”
“우리는 최선을 다할 뿐, 완벽할 순 없습니다. 저 역시 안타깝지만, 따라오지 않는 2만 명은 알아서 살 방도를 찾아야겠죠.”
허 상무는 본인이 맡은 일이라, 지혁처럼 쿨하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좀 더 노력해보겠습니다.”
“그래요. 너무 스트레스받지 마시고요.”
“네, 이만 가보겠습니다.”
허 상무는 고개를 숙인 후, 회장실을 나갔다.
지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을 보았다.
‘그날이 오면······ 우리 직원들 몇 명이나 살릴 수 있을까.’
세상일이 뜻대로 안 된다는 건 잘 알지만.
끔찍한 결말을 생각하면, 한쪽 가슴이 쓰린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고 이사와 황 이사가 오래 걸리네.’
과업을 준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식량’과 ‘무기’ 또한 속도를 내야 하는 중요한 일이기에,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내일쯤 찾아가 볼까.’
똑똑.
회장실 문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회장님, 황 이사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네~”
지혁은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말도 안 되는 과업을 주었는데도, 어떻게든 준비해서 오는 세크 위원들이 참 든든했다.
“회장님, 안녕하십니까.”
“네, 어서 오세요. 앉으세요.”
“네.”
위잉-
황 이사가 막 앉자마자, 전화기 진동 소리가 들렸다.
‘수아♥’
지혁은 눈을 부릅뜨고, 재빨리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업무 시간에 그녀가 전화하는 일은 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