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사원이 능력을 숨김-250화 (250/301)

250. 방법은 하나뿐

“온 거야?!”

지혁은 전화기에 대고 소리쳤고.

앞에 앉은 황 이사는 깜짝 놀랐다.

[자기야.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 아기 놀래~]

“아기 나오려고 해서 전화한 거 아니야?”

지혁은 전화 받으면서 나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출산 예정일 2주 남았는데.’

병원에서 예정보다 조금 빨리 나올 수도 있다고 했었다.

[어머······ 나 실수했나.]

“왜 그러는데?!”

[난 그냥 올 때 떡볶이 좀 사 오라고 전화한 건데.]

“뭐?!”

지혁은 온몸에 기운이 빠졌다.

‘그 세계’에서 마지막 결전을 치른 이후, 이토록 긴장한 적은 없었다.

[미안해. 난 자기가 이렇게까지 놀랄 줄 몰랐어.]

“그럼, 안 놀라겠어? 만삭 임산부가 전화했는데?”

[호호. 어머니도 가까이 사시고, 119도 있는데.]

“그게, 그렇지가 않아.”

지혁의 일순위는 불사조와 수아의 건강이다.

[일할 땐 까똑 잘 못 보길래 전화한 건데······.]

“······.”

[집에 왔다가, 사러 다시 나가려면 번거롭잖아. 온종일 일하고 와서 힘든데.]

수시로 바뀌는 입맛 때문에 지혁은 집에 와서도 먹을 것 사 오느라 바빴다. 수아 나름으로 그를 생각해서 전화한 거였다.

[미안해.]

“아니야. 내가 예민했네.”

지혁은 웃으며 지켜보는 황 이사를 본 후 말했다.

“나 지금 미팅 중이라, 전화 오래 못 하거든?”

[응? 어어.]

“떡볶이만 사가면 돼?”

[아니, 튀김이랑 순대도 사 와. 전철역에 내려서 두 번째 포장마차 집. 두 번째 집이야. 꼭 기억해.]

“그래, 알았어.”

황 이사가 장난스럽게 입 앞에 손을 모으고 작게 소리쳤다.

“사모님~ 화이팅~ 불사조도 화이팅~”

지혁은 피식 웃었다.

[누구야?]

“어~ 성준이 형님.”

[뭐야~ 왜 나이 들어 보이게 사모님이야. 그냥 제수씨라고 불러 달라고 전해줘. 고맙다는 말도.]

“그래~ 알았어. 끊을게.”

[응~ 수고~ 두 번째 포장마차 집이야. 까먹으면 안 돼.]

덜컥.

전화를 끊은 뒤, 지혁이 말했다.

“죄송해요. 미팅 중에.”

“괜찮습니다~ 중요한 일 앞두고 계시잖아요.”

“아내가 고맙다고 전해달래요. 그리고 제수씨로 불러달라네요.”

“네? 에이~ 어떻게. 하하.”

지혁은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불러주세요. 회사에서나 회장이지, 사적으로는 형으로 생각하니까요.”

“에이~ 그러지 마세요. 하하. 근데 뭐가 그렇게 드시고 싶으시답니까?”

지혁은 큰 소리로 웃고는 말했다.

“하하. 떡볶이가 먹고 싶다네요. 전철역에 내려서 두 번째 집에서 사 오라고.”

“네? 회장님 전철 안 타신 지 꽤 되지 않았어요?”

그룹 회장이니 당연히 의전차량이 있으며, 수행 기사와 함께 출퇴근한다.

“그러게 말입니다. 이래서 습관이 무서워요. 전철 타던 게 익숙해져 있어서 아내가 착각하네요.”

“하하.”

지혁은 웃으며 생각했다.

‘오랜만에 전철 타고 집에 가볼까. 그립네.’

***

지혁은 다시 자리에 앉았다.

“이사님, 미팅 계속할까요?”

“네. 뭐······ 예상하셨겠지만, 세크 프로젝트로 말씀드리러 왔습니다.”

“네.”

황 이사는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저에게 무기 비축에 관한 과업을 주셨는데······.”

“······.”

“방법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구매 혹은 생산인데요.”

“네.”

“구매하는 방법은 배제하려고 합니다.”

지혁은 잠자코 그의 말을 들었다.

“여러 경로를 통해 알아봤는데, 대량의 무기를 구매하는 방법은 밀수 외에 없습니다.”

“몰래 들여온다는 얘기죠?”

“네, 맞습니다.”

“상관없습니다. 걸리지만 않으면 돼요.”

지혁은 ‘방주 프로젝트’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법은 신경 쓰지 않으려 했다.

“걸릴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

“부피가 큰 데다가, 총기류 반입은 정부에서 엄격히 규제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특별한 상황도 한몫하고요.”

지혁의 표정이 탐탁지 않아 보이자, 황 이사는 덧붙여 설명했다.

“만에 하나 발각된다고 생각 해보십시오. 선도그룹 명의로 밀수를 진행하진 않겠지만, 파다 보면 결국 몸통이 드러날 가능성이 크거든요.”

“······.”

“세계적인 기업이 대량으로 무기를 반입하려 했다······ 여파가 어떨 것 같습니까? 이 때문에 방주 프로젝트 전체가 드러날 수도 있고요.”

“······.”

“그룹이 공중분해 될지도 모릅니다. 리스크가 커도 너무 큽니다.”

“흠······.”

지혁은 생산보다는 구매를 선호했다.

‘검증된 무기를 사용하는 게 좋은데.’

값지불을 많이 하더라도 좋은 걸로 비축하고 싶었으나.

“그래요. 위험하긴 하겠네요.”

“네, 그나마 안전한 밀수가 구매하여 총기 규제가 없는 타국에 비축해두는 건데······ 이건 의미 없습니다.”

논할 것도 없다.

‘그날’이 터지면 운송로가 마비되고 국내로 들어올 수가 없을 테니, 비축해 놓은 무기로 남 좋은 일만 시키게 될 것이다.

“네, 그건 의미가 없죠.”

황 이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서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우리 땅 우리 공장에서 직접 생산하는 겁니다.”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소거법으로 생각했습니다. 불가능한 걸 지워버리니 결론이 간단해졌습니다.”

하지만 지혁의 미간은 찌푸려져 있었다.

‘총기를 직접 생산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닐 텐데······.’

“방법이 있는 거죠?”

“네!”

황 이사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

미팅 시작할 때만 해도 쭈뼛거리더니.

시간이 갈수록 황 이사의 목소리는 커져갔다.

그만큼 고민한 시간이 많았다는 거다.

“저희 그룹에 선도테크윈이라는 관계사가 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자주포 생산으로 유명하잖아요.”

“네. K99 자주포는 다른 나라에 수출될 정도로 굉장히 잘 만든 무기입니다. 세계 4대 자주포라고 불릴 정도죠.”

“네······ 그건 알고 있는데.”

‘방주 프로젝트’에 자주포는 필요 없다.

‘그날’이 오면 운용하기 힘들다. 거대한 흉물이 될 뿐이다.

“선도테크윈은 국방연구소와 협업 관계에 있는데, 평소 한 회사처럼 기술 교류를 활발히 합니다.”

‘기술 교류?’

지혁의 귀가 쫑긋 세워졌다.

솔깃해하는 반응을 보며, 황 이사는 더 자신 있게 얘기했다

“선도테크윈이 개인화기나 대공포를 상품화하진 않았지만.”

“······.”

“기술력은 갖추고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추측됩니다.”

K99 자주포 연구단계부터 치면, 선도테크윈과 국방연구소가 함께 한 지 20년이 넘었다.

충분히 추론이 가능한 얘기였다.

“물론 리스크도 있습니다. 직접 개발 및 생산하려면, 국방연구소의 눈을 피해야 합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어려운 과업일 거라는 생각은 했으나.

이래저래 신경 쓸 게 많았다.

‘아무래도 무기를 만드는 일이니.’

두 사람의 생각은 한 곳에 이르렀다.

‘포섭해야 한다.’

선도테크윈 무기 개발 책임자와는 세크 프로젝트의 진짜 목적을 공유해야 한다.

국방연구소 직원의 눈을 속이기 위해서 말이다.

“선도테크윈 대표 만나보셨어요?”

“아직 안 만났습니다.”

“왜요?”

“그거야······.”

황 이사는 좀 전의 자신 있던 모습은 사라지고, 우물쭈물하며 대답했다.

“직접 만나서 이런 얘기를 꺼내기가 조심스럽습니다. 기밀 공유가 필요할 텐데, 제 독단으로 해서는 안 되는 일 같기도 하고요.”

“······.”

지혁은 잠시 생각한 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네요. 그리고 무기 과업은 제가 함께하기로 했으니까요.”

황 이사는 멋쩍게 웃었다.

지혁은 시계를 본 후 말했다.

“선도테크윈이 어디 있나요?”

“본사 사무실은 마포구에 있고요. 사업장은 창원에 있습니다.”

“연구소, 생산시설은 사업장에 있겠죠?”

“네, 맞습니다.”

잠시 생각한 후 말했다.

“선도테크윈 대표한테 내일 사업장에서 보자고 해주시고요.”

“네.”

“내일 출근해서 바로 창원으로 갑시다.”

“알겠습니다.”

***

다음날, KTX로 출발하여 정오쯤 창원중앙역에 도착했다.

“회장님! 안녕하십니까!”

창원역 바로 앞에 검은색 세단 3대가 대기 중이었다.

“선도테크윈 대표 성규원입니다.”

“반갑습니다.”

지혁은 그와 악수하며 말했다.

“뭘 직접 마중을 나오셨어요. 사업장에서 뵈면 되는데.”

“아닙니다. 그룹 회장님 방문은 처음이라, 기쁜 마음으로 나왔습니다.”

“그래요?”

두 사람은 천천히 차를 향해 이동하며 대화를 나눴다.

“네, 규모도 작고, 변방의 관계사라서 관심을 잘 못 받습니만.”

“······.”

“우리 직원들은 국가 방위를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방문해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성 대표는 차 문을 열어주며 말했다.

“20분 정도 걸립니다. 사업장에서 뵙겠습니다.”

창원 1사업장.

넓고 낮은 회색 건물이 대지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대단히 크네. 축구장 세 개는 합쳐놓은 거 같은데.’

지혁은 차 안에서 사업장 전경을 유심히 보았다.

‘회장님 방문을 환영합니다!’

‘선도그룹 화이팅! 선도테크윈 화이팅!’

‘국가 방위를 선도하는 기업! 선도테크윈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사업장 현관에는 여러 개의 현수막이 걸려있고.

수십 명의 임직원이 도열해 있었다.

‘국가 방위······.’

좀 전에 성 대표와 대화할 때도 그렇고, 현수막에서도 보이는 ‘국가 방위’라는 말이 신경 쓰였다.

덜컹.

차 문이 열리며, 성 대표가 가장 앞서서 지혁을 맞아주었다.

“회장님 환영합니다.”

-환영합니다!

-영광입니다!

-어머 너무 멋지시잖아.

-우리 아들이랑 동갑내기로 보이는데······.

직원들은 젊은 회장의 등장에 난리가 났다.

지혁은 웃으며 성 대표에게 말했다.

“환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이 제가 회장이 된 후 첫 관계사 방문입니다.”

“아, 그렇습니까? 하하. 정말 영광입니다.”

지혁은 성 대표를 따라 사업장으로 들어서며 말했다.

“얼마 전에 K99를 에스토니아에도 수출하셨다면서요?”

“네~ 아주 효자 상품입니다. 여러 나라에서 많은 문의가 오고 있고요. 도입한 국가에서도 만족도가 높습니다.”

“혹시 지대공포는 없습니까?”

“엇? 어떻게 아셨습니까? 얼마 전에 개발해서 상용화 앞두고 있습니다.”

“지대지는요?”

“그건 개발 막바지 단계입니다······.”

성 대표는 의아했다.

‘알고 물어보는 건가?’

“좋네요!”

지혁은 웃으며 생각했다.

‘타이밍 좋네.’

사업장 내부를 둘러보려는데.

위잉-

지혁은 핸드폰 확인 후, 양해를 구했다.

“죄송합니다. 잠깐 실례하겠습니다. 여보세요?”

[자기야, 나 양수 터졌어.]

“흡!”

지혁은 눈을 부릅떴다.

전화기를 든 그의 손이 덜덜 떨렸다.

아무리 냉철해도 지금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 일단. 옆에 수행비서 있지? 빨리 병원부터 가고. 어머니께 전화. 아니다. 어머니께는 내가 전화할 테니까. 어서 서둘러.”

수아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알았어. 언제 와? 지금 바로 올 수 있지? 빨리 와.]

지혁은 지금 창원에 있다.

“아······ 그게.”

도저히 창원에 있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회장님, 출산입니까?!”

황 이사는 눈치를 채 물었고. 지혁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아······ 하필 멀리 있을 때.”

‘출산?’

옆에서 지켜보던 성 대표가 말했다.

“사업장에 헬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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