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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이 능력을 숨김-251화 (251/301)

251. 가장 큰 축복 (1)

“헬리콥터요?”

“네, 저희가 국방부와 일을 많이 하지 않습니까. 유사시에 긴밀히 소통해야 할 경우를 대비해서 헬기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아······.”

지혁은 고민했다.

‘가긴 가야 하는데.’

성 대표가 말했다.

“부담 느끼지 않으셔도 됩니다. 헬기는 선도테크윈 소유입니다. 편히 타시면 됩니다.”

“······.”

지혁은 그 때문에 고민하는 게 아니었다.

그룹 회장을 맞이하기 위해 창원 사업장 전 직원이 모였다.

출산은 개인적인 일이며, 지혁은 그룹의 회장이다.

출장 중에 개인적인 일로 자리를 뜨는 것이니 고민이 되었다.

지혁이 없다고 출산 못 하는 건 아니니까.

“회장님!”

옆에서 황 이사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뭘 고민하세요? 빨리 가셔야죠!”

황 이사는 지혁을 잘 안다.

공사 구분이 철저한 사람. 오죽하면 신입사원 때부터 1분도 놓치지 않고 정시에 퇴근했겠는가.

출근을 일찍 하지는 않지만, 지각 또한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

그래도 선뜻 발걸음을 못 돌리자, 황 이사는 지혁의 팔을 잡아끌며 성 대표에게 물었다.

“헬기 타려면 어디로 가야 합니까?”

“네? 아, 저 아래로 200미터 정도만 걸어가면 됩니다.”

“이사님······.”

지혁이 당혹스러운 얼굴로 황 이사의 손을 떼려 하자, 그는 더 꽉 지혁의 팔을 잡아끌었다.

“뭘 고민하세요. 사모님 혼자 두실 거예요? 장인, 장모도 안 계신다면서요.”

“······.”

“아무리 수행비서가 있고, 시어머니가 계셔도. 사모님한테는 남편뿐일 텐데.”

황 이사는 지혁을 잡고 걸음을 빨리했다.

“빨리 가서 옆에 있어 주세요. 고민할 게 아닙니다. 미팅이야 다음에 해도 되지만, 출산은 한 번뿐이잖아요.”

지혁은 황 이사 등 뒤로 수십 명의 직원을 보았다.

“정 마음에 걸리시면, 저 혼자서라도 일정 소화하고 갈 테니. 염려 마시고 얼른 올라가세요.”

“후유······.”

지혁은 한숨을 쉬었다.

타이밍이라는 게 원래 뜻대로 잘 안되는 법이다.

마음이 불편했는데, 황 이사가 나서주니 고마웠다.

“고맙습니다.”

지혁은 성 대표를 바라봤다.

“미안합니다. 지금 제가 있더라도 일을 제대로 못 볼 것 같네요.”

“아닙니다. 그룹의 경사인데요. 어서 올라가셔서 순산하시기 바랍니다. 미리 축하드립니다.”

성 대표는 웃으며 말했다.

지혁이 헬기에 올랐는데.

황 이사가 아래서 멀뚱히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사님, 뭐해요?”

“네?”

“빨리 타세요.”

“저도 같이 갑니까?”

“그럼 혼자 두고 갈 줄 알았어요?”

지혁 또한 황 이사를 잘 안다.

겁먹고 있는 일이기에, 혼자 남아서 못 할 것이다.

“헬리콥터 난생처음 타보네.”

황 이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헬리콥터에 올랐다.

***

두구두구.

엄청난 굉음과 함께, 헬기는 선도서울병원 옥상에 착륙했다.

전문의와 인턴 몇몇이 옥상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회장님 안녕하십니까.”

의사들이 일제히 인사했고.

지혁은 굳은 표정으로 인사를 받으며 물었다.

“아내는 어떻습니까?”

“지금 분만 대기실에서 진통 중입니다.”

선도서울병원은 초비상 상황이었다.

선도그룹의 회장.

그의 아들이 곧 태어나려 한다. 보통 일이 아니었다.

수아가 도착하기 전부터 연락을 받고, 의료진 수십 명이 비상대기 중이었다.

“안내해 주세요. 아내 빨리 보고 싶습니다.”

“네, 회장님.”

전문의가 앞서서 빠른 걸음으로 걸었는데.

“미안한데, 좀 뛰면 안 될까요?”

“네! 알겠습니다!”

전문의는 뛰어갔고, 그 뒤를 지혁이 쫓았다.

타닥타닥.

복도에서 빠른 걸음 소리가 들렸고.

수아는 소리만 들고도 누군지 알 것 같아서, 눈물이 핑 돌았다.

덜컹!

“수아야!”

“야~ 왜 이렇게 늦게 와~”

수아는 지혁을 보자마자, 끌어안고 펑펑 울었다.

“미안해. 출장 간 게 잘못이지. 불사조가 세상에 나온 다음에 갈걸.”

한편으로는 해외 출장 안 간 게 천만다행이라 생각했다.

“왔니?”

“네, 어머니. 고생 많으셨어요.”

수아 옆에는 어머니도 함께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식사는 하셨습니까.

-갑자기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수행비서 세 명도 함께였다.

“다들 고생 많으십니다.”

한쪽에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가 뻘쭘하게 서 있었다.

“선생님.”

“네, 회장님 안녕하세요.”

“그냥 남편분이라고 호칭해주셔도 됩니다.”

“아닙니다. 회장님인 거 아는데요.”

지혁은 수행비서들에게 나가라고 손짓한 뒤, 의사에게 물었다.

“상황 설명 좀 부탁드립니다.”

“네, 자궁문 4cm 정도 열렸는데······.”

의사의 표정이 어두웠고.

지혁은 다급히 물었다.

“그냥 빨리 얘기하세요. 뜸 들이지 말고.”

“아, 네.”

의사는 긴장한 표정으로 빠르게 말했다.

“아기가 거꾸로 있습니다.”

“그럼 안 됩니까?”

“그대로 출산하게 되면 발부터 나오는데, 머리가 산도에 끼어서 아기가 뇌 손상을 일으킬 수 있고, 태아와 산모 모두 위험할 수 있습니다.”

수아는 계속 훌쩍였고, 지혁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방법은요?”

“제왕절개죠.”

“그럼 바로 합시다.”

“싫어.”

수아가 말했다.

“수술 말고 정상적으로 건강하게 낳고 싶어.”

지혁은 황당한 얼굴로 수아를 바라봤다.

“불사조랑 자기 둘 다 위험하다잖아. 뭘 망설여? 바로 해야지.”

“아직 시간 있다고 했어.”

지혁이 의사를 바라보자, 그는 다시 설명했다.

“좀 더 지켜볼 시간은 있습니다. 다만 진통을 참아야 하는 어려움이 있지만······.”

지혁은 얼굴이 퉁퉁 부어서, 하얗게 질려있는 수아를 바라보았다.

‘아니, 왜 바보같이······.’

“정말 싫어?”

“해보는 데까지는 노력해보고 싶어. 아들이 세상 밖으로 나오려고 애쓰는데. 엄마가 그 정도 고통은 참아야지.”

지혁은 한숨을 쉬고, 의사에게 물었다.

“의학적으로 도움받을 수 있는 건 없습니까?”

“역아 의회전술이라고 있는데, 제가 손으로 배를 만져서 아이를 돌리는 방법이거든요. 현재로선 유일한 방법이긴 하나, 반드시 성공한다는 보장은 못 드립니다.”

“······.”

“그리고 좀 고통스러울 수 있습니다.”

지혁은 수아를 바라봤는데,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 나가서 기다려 주실래요. 저희 둘만 있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에휴······ 쟤는 왜 고집이라니. 그냥 수술받지.”

어머니는 혀를 차며 병실을 나갔고.

[꺄아악-!]

오랜 시간, 병실에서 비명이 그치지 않았다.

***

긴 시간의 노력 끝에 아기는 돌아섰고.

수아는 땀범벅이 되어, 분만실로 이동했다.

“산모님, 힘낼 수 있으시죠?”

의사의 물음에, 수아는 기진맥진한 상태로 입술을 꽉 깨물고 웃었다.

“물론이죠.”

“10cm 열렸거든요. 바로 분만합니다. 회장님은 밖에서 기다리시다가, 부르면 들어와 주세요.”

지혁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지혁은 분만실 앞에서 멈춰 섰고.

잠시 후, 안에서 긴박한 소리가 들려왔다.

[숨 들어 마시고! 하나~ 둘! 힘주세요!]

[억-!]

[거의 다 됐습니다. 마지막입니다. 중간에 힘 빼면 안 돼요. 이 악물고, 한 번에 힘을 빡! 하나~ 둘! 힘주세요!]

[꺄아악-!]

지혁은 초조하게 밖에서 기다렸는데.

[······.]

분만실 안이 조용해졌다.

‘출산했나? 보통 드라마 보면 아기 울음소리 들리던데?’

아무 소리도 안 들리고 조용하니, 도리어 불안했다.

[회장님! 들어오십시오.]

의사의 부름에 황급히 안으로 들어갔는데, 핏덩이 하나가 의사의 손 위에 올려 있었다.

숨을 쉬려고 배가 위아래로 헐떡이는데, 아직 울지 않았다.

“얘······ 왜 안 울어요?”

의사는 대답 대신 가위를 쥐여주었다.

“탯줄 자르십시오.”

싹둑.

-응애앵애앵~!

불사조의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분만실이 떠나갈 듯, 있는 힘껏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주르륵-

지혁은 불사조를 안고, 눈물을 쏟아내었다.

‘태어났구나. 태어났어.’

기쁘고, 걱정되고, 행복하고.

손바닥만 한 아기를 안고, 한참을 들여다봤다.

눈도 못 뜨는 조그만 녀석은 맹렬히 울었다.

“손가락, 발가락 다 있고요. 항문도 뚫려 있습니다. 아주 건강합니다.”

의사는 지혁에게 불사조의 상태를 확인시켜준 뒤.

“회장님, 득남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짝짝짝.

그때 분만실 밖에서 박수 소리가 들렸다.

울음소리를 듣고, 대기 중이던 의사들과 비서들이 온 것이다.

-회장님! 축하드립니다!

-사모님도 축하드려요~

-선도그룹의 경사입니다!

-하하하.

모두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짝짝짝.

큰 축복을 받으며 태어난 오지혁의 아들.

이 아이는 선도그룹의 20만 명. 아니, 직원의 가족들까지 합하여 50만 명의 목숨을 살린 셈이다.

태어난 것 자체가 선행이며, 복이다.

지혁의 마음을 바꾸게 했으니까.

있는 힘을 다해 선도그룹을 살리기로 말이다.

***

이튿날.

오 명예회장이 병원에 방문했다.

“아가야, 수고했다.”

“큰아버님, 누워서 인사드려서 죄송해요.”

“아니다. 좀 더 있다가 와야 하는데, 손주를 빨리 보고 싶어서 말이야. 하하.”

그는 기분이 좋은지, 연신 싱글벙글하였다.

“오 회장, 축하하네.”

“감사합니다.”

악수하며 말했고, 지혁은 깍듯이 인사했다.

오 명예회장이 수아에게 말했다.

“우리 손주 빨리 보고 싶구나.”

“네, 신생아실에 있어요. 아직 밖으로 나오면 안 된다고 해서······.”

“괜찮다, 내가 가서 보면 되지.”

지혁이 일어나며 말했다.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신생아실.

보통은 여러 아기가 모여서 관리받는데, 불사조는 신생아 때부터 VVIP라서 독방을 쓴다.

“아이고~ 귀여워라. 아빠 똑 닮았네.”

“하하. 그렇습니까? 전 잘 모르겠는데.”

오 명예회장은 창을 통해 불사조를 물끄러미 보다가 말했다.

“잘 부탁한다.”

“네?”

“내 손주 잘 부탁한다고. 잘 키워야 해.”

지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잘 키워야죠.”

“가볍게 하는 말 아니다.”

80이 넘은 노인의 눈에 회한이 담겨 있었다.

“내가 보기에 진양이와 진원이는 결혼 안 할 거 같고, 만약 하더라도 아기를 가질지 모르겠다.”

“······.”

“앞으로 내가 살면 얼마나 살겠냐. 조카 손주의 아들이긴 하지만, 다행이라 생각해. 선도그룹 회장의 아들이니까.”

“······.”

“그룹의 운명을 책임질 아이야.”

오 명예회장은 막 태어난 아기에게 부담을 팍팍 주고 있었다.

“쟤 태어난 지 이제 하루 됐어요.”

“시간은 중요하지 않아. 핏줄과 근본이 중요하지.”

“······.”

연세가 많은 분이라, 지혁은 그러려니 했다.

“아, 네가 부탁한 거 말이야.”

“결정하셨습니까?”

“그래. 고민 많이 했다. 마음에 들지 모르겠지만······.”

오 명예회장은 수첩에 뭔가를 적은 뒤, 지혁에게 보여주었다.

‘오시안’

그는 지혁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28세 손이 ‘시’자 돌림이거든?”

‘오시안······.’

“굳셀 시, 편안할 안. 그 어떤 상황에서도 확고하게 평안하라는 의미로 지은 거다. 태명 불사조처럼 말이야.”

지혁은 빙그레 미소 지었다.

‘시안이.’

“어떠냐? 맘에 안 드냐? 다른 후보도 있어.”

지혁은 세차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주 마음에 듭니다. 큰아버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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