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사원이 능력을 숨김-252화 (252/301)

252. 가장 큰 축복 (2)

일주일 휴가를 내고, 병원에 수아와 함께 있었다.

회사 복귀하기 전 일주일만이라도 직접 다 수발하려 했다.

“세수는 내가 할 수 있어.”

“가만 있어 봐.”

애 낳느라 죽을 둥 살 둥 고생했다. 고맙고 미안해서 뭐라도 하고 싶었다.

아내 수발을 드는 것 외의 시간엔 수시로 시안을 보러 갔다.

“시안이 자고 있습니까?”

벽면에 붙은 스피커로 간호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호호. 회장님 또 오셨어요?]

“하하. 자주 오게 되네요.”

처음엔 지혁을 어려워하던 신생아실 간호사도, 수시로 얼굴을 비추니 편해졌다.

[안 자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네.”

잠시 후, 시안은 간호사 품에 안겨서 나타났다.

유리 벽을 사이에 두고 있지만, 볼 때마다 신기하고 이뻤다.

[시안이가 엄마보다 아빠를 더 빨리 익히겠어요.]

“네? 하하. 그래도 엄마를 먼저 기억하겠죠.”

수아는 모유 수유를 하느라, 때 되면 시안을 만나러 간다.

“저도 빨리 안아보고 싶네요.”

간호사는 웃으며 대답했다.

[내일부터 모자동실 가능하니까요. 안아보실 수 있을 거예요.]

“아, 정말요? 시안이가 오는 겁니까?”

[네~ 일정 시간 동안만요.]

“아, 기대되네요. 시안아~ 내일 보자~”

다음날.

시안이가 정말로 회복실로 왔다.

탯줄 끊었을 때 이후, 두 번째 만남이었다.

“우리 아들~”

지혁은 이동식 침대에 놓인 시안이를 번쩍 들어 안았다.

“자기야, 머리 흔들리지 않게 조심해.”

“응? 어어.”

깨지기 쉬운 유리 조형물 드는 것처럼, 지혁은 엉거주춤 시안을 안았고.

“호호. 그렇다고 너무 과하게 조심하지는 말고.”

“안는 것조차 무섭다. 잘못될까 봐.”

“나도 그래~ 시간 좀 지나면 안는 자세도 익숙해지고 하겠지.”

이 조그만 몸이 포근하고, 따뜻했다.

푹한 향이 느껴졌고.

몸이 작아서 그런지, 아기를 안은 손바닥에서 심장 박동이 강하게 느껴졌다.

‘살아 있구나.’

당연한 사실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내 아이.

형언할 수 없는 기분이다. 신비하고 소중했다.

지혁은 시안을 오래 안고 있는 게 불안하여, 곧 다시 침대에 눕혔고.

“······.”

한동안 아무 말 않고, 누워서 바둥대는 시안이를 바라보았다.

한없이 이쁜데, 한숨이 나온다.

‘이게 무슨 기분일까.’

기쁘면서도 불안함.

이제껏 살면서 느껴보지 못한, 거대한 책임감이 그의 어깨를 짓눌렀다.

지혁에게도 그런 존재가 생긴 것이다.

수아는 지혁의 무거운 얼굴을 보며 말했다.

“너무 그러지 마.”

“응? 뭘?”

“내가 자기를 몰라? 표정만 봐도 알지.”

“······.”

“부모로서 길러야 할 의무는 있지만, 운명까지 책임질 순 없어.”

지혁은 그녀의 말을 곰곰이 생각했다.

‘운명까지 책임질 수 없다······.’

수아는 말했다.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자. 성인이 되어 배우자를 만났고, 때가 되어 아이를 낳은 것뿐이야. 순리대로 온 거라고. 심각할 필요 없어.”

지혁은 그녀의 말을 곰곰이 생각한 후, 피식 웃었다.

“우리 아내가 참 성숙하네.”

“애 낳고 나니까, 머리가 좀 깨는 것 같아.”

“하하.”

두 사람은 가볍게 웃었다.

“그래~ 때로는 생각을 너무 많이 안 하는 게 좋긴 해.”

지혁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나 이제 출근해야 하거든?”

“알아. 그룹 회장님이시잖아. 자리 오래 비우면 안 되지.”

“출근하면 바로 창원부터 갔다 와야 할 거 같아. 당일에 올 거지만, 아무래도 멀리 가는 거라 미리 얘기해주는 거야.”

시안이 태어난 날에, 지혁이 어디서 왔는지 얘기해줘서 수아도 알고 있다.

“알았어~ 헬기 보내주셔서 고맙다고 전해줘.”

***

선도본관.

회장실 앞에 수많은 화환이 놓여 있었다.

“이게 뭐야?”

지혁이 출근할 때면 윤 실장이 가장 먼저 그를 맞이한다. 언제 혼잣말을 들었는지, 시니컬하게 대꾸했다.

“뭐긴, 뭡니까? 득남 축하 화환이죠.”

지혁은 윤 실장을 힐끔 보고 말했다.

“오랜만입니다.”

“네~ 잘 지내셨어요?”

윤 실장은 지혁의 얼굴을 살피며 말했다.

“음······ 생각보다 안 피곤해 보이시네?”

“네?”

“이건 아기 아빠의 모습이 아닌데.”

지혁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고, 웃으며 말했다.

“아직 병원에 있거든요. 신생아실에 있어서 밤에 따로 자요.”

“아~ 그렇겠구나. 겪은 지 오래돼서 헷갈렸네요. 괜히, 억울할 뻔했네.”

“하하.”

“들어가시죠.”

회장실로 들어가니.

-짝짝짝

케이크를 가운데 두고, 세크 위원들이 동그랗게 서 있었다.

-회장님~ 득남 축하드립니다.

-휘이익~

-너무 축하드립니다.

지혁은 얼떨떨하여 고개를 숙였다.

“아, 감사합니다. 뭐 이렇게까지. 민망하네요.”

그룹 회장으로서 출산했다는 사실이 묘하게 민망했다.

아주 정상적인 결혼 관계를 통해 태어난 아이인데, 이상하게 좀 그랬다.

‘오시안 님. 당신의 출생을 축하합니다.’

케이크에 위에 초콜릿 시럽으로 쓰인 문구도 영 어색하고.

“아드님 이름이 오시안 맞죠?”

허 상무의 물음에 지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이거 누구 아이디어입니까?”

“접니다~ 문구 마음에 드십니까? 하하.”

허 상무는 득의양양한 얼굴로 웃었다.

“그럴 줄 알았습니다. 허 상무님답네요.”

최대한 자연스럽게 케이크를 한쪽으로 치운 뒤.

“황 이사님 오늘 창원 가야죠.”

“출근하시자마자요?”

“끊긴 데부터 다시 시작해야죠.”

KTX로 가도 시간이 꽤 걸려서 지혁은 서두르려는데, 윤 실장이 말했다.

“그전에 기다리고 계시는 분이 있습니다.”

“네? 누구요?”

“커뮤니케이션팀 팀장님이요.”

“······.”

“언론사에서 궁금해한다고, 배포 자료 만들어야 한다던데요.”

윤 실장은 살짝 미소 지으며 말했다.

“대한민국이 주목하는 선도그룹 회장님이시지 않습니까. 득남 소식이니, 매스컴에서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죠.”

지혁은 한숨을 짧게 쉬었다.

‘별걸 다 신경 써야 하는구나.’

“빨리합시다. 들어오시라고 하세요.”

윤 실장은 바로 호출했고.

잠시 후, 문 여는 소리와 함께 홍 팀장이 들어왔다.

“회장님,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빨리하죠. 저희 출장 가야 해서요.”

찰칵. 찰칵.

셔터 소리와 함께, 선도그룹 회장의 출산 인터뷰는 시작됐다.

***

정오가 좀 지나, 창원에 도착했다.

“에헤이······ 이거 참.”

먼젓번에 왔을 때 의전은 충분했으니, 아무것도 준비하지 말라고 사전에 알렸으나.

-가정 안에 경사! 회사의 경사! 축복을 축하드립니다.

-회장님이 본을 보이는 선도그룹. 일보다 가족 중심.

-부모님 되신 걸 축하드립니다.

출산 축하 인사가 더해져서, 전보다 플래카드가 더 많아졌다.

직원들 만나러 왔는데, 출산 축하받으니 민망했다.

“회장님, 안녕하십니까. 다시 오셨네요.”

성 대표가 웃으며 지혁을 맞았다.

“지난번에 미안했습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헬기 지원해 주신 덕분에 늦지 않게 갈 수 있었습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회장님 거 쓰신 건데요. 하하.”

옆의 황 이사가 말했다.

“휴가 복귀하시고 바로 오신 겁니다. 창원 사업장 직원들에게 미안하시다고요.”

성 대표는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영광입니다. 하하. 자,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성 대표를 따라서 사업장을 시찰했다.

K99 자주포, K101 탄약 운반 장갑차, K777 사격지휘 장갑차······.

사업장 입구 쪽에 화력 체계 무기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좀 더 안으로 들어가니 생산라인도 보였는데.

“지금부터는 기동체계 라인입니다. 끝에 보이는 게 대공체계인데, 이번에 상용화할 30mm 대공포가 있습니다.”

지대공과 지대지 포는 ‘그날’ 초기에 꼭 필요하다. 전투기와 전차가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지혁은 기동체계 라인은 대략 보고, 곧바로 대공체계 라인으로 갔다.

“안녕하십니까.”

반백의 머리에 학자의 모습에 가까운 한 남자가 지혁에게 인사했다.

“대공체계 연구소장 류승재입니다.”

“반갑습니다. 오지혁입니다.”

지혁과 악수하며 류 소장은 깍듯이 인사했다.

성 대표가 말했다.

“류 소장님, 소개 부탁드립니다. 회장님께서 대공포에 관심이 많으시더라고요.”

“네. 저희가 상용화를 앞둔 30mm 대공포는 소구경탄으로 포탄 7열장 개틀링 포 분당 5,600발······.”

그의 설명을 들으며 황 이사가 물었다.

“대구경 포는 없습니까?”

“누구신지?”

지혁이 대신 소개했다.

“세크 위원입니다. 선도테크윈 관련 사업 담당자입니다.”

“아······ 세크요.”

류 소장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회장 직속 조직이 생겼다는 건 들어서 알고 있었다.

“네, 대구경 포는 없습니다.”

“······.”

단호박 답변이었다.

부연 설명은 없었다.

“흠! 혹시 원한다면 개발은 가능합니까?”

“가능합니다.”

“······ 아, 네.”

류 소장은 황 이사를 힐끔 본 후 부연 설명을 했다.

“대공라인의 기관포, 개틀링 포 체계에서 못 만들 건 없습니다. 시간이 좀 필요할 뿐이죠.”

“좋네요.”

성 대표가 회의실로 안내하며 지혁에게 말했다.

“회의실로 모시겠습니다. 사업 보고 준비했거든요.”

“네, 류 소장님도 함께 가시죠.”

“네?”

그룹 회장이 일개 연구소장에게 함께 가자고 제의했다.

성 대표도 고개를 갸웃했으나, 곧바로 말했다.

“네, 함께 가시죠.”

***

회의 동안 지혁은 류 소장의 이마를 살폈다.

‘남색’

지혁이 상품기획 팀장일 때, 물류에서 상품기획팀으로 이동시켰던 문규태 과장과 같은 색이다.

룰을 중시하며, 권위적이지만. 자신의 권위를 인정해주면 약해진다.

또한 이 색을 띠는 사람들은 셈에 약하다.

“이상 사업 보고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짝짝짝.

“회장님, 혹시 궁금한 거 있으십니까?”

지혁은 선도테크윈에 사업 보고받으러 온 게 아니다.

“없습니다. 설명을 잘 해주셔서요.”

“네, 그럼 다음 일정으로······.”

황 이사가 손을 들었다.

“저, 대표님 죄송한데.”

지혁은 회의 중 황 이사에게 귓속말했었다.

‘자리 좀 만들어보세요.’

성 대표의 말을 끊고, 황 이사가 얘기했다.

“그룹에 급한 일이 생겨서요.”

“네?”

“빈 회의실 하나만 마련해 주실 수 있으세요? 보안 문제 때문에 주변에 사람 없고, 방음 잘 되는 곳으로요.”

“아, 네 알겠습니다.”

성 대표는 곧바로 사업장 내의 한 공간을 마련해주었다.

“CCTV 사각지대고요. 방음 확실합니다. 국방연구소와 기밀 회의할 때 사용하는 곳입니다.”

“네.”

지혁과 황 이사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고.

회의는 마무리되어, 참석자들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잠시 후.

“류 소장님?”

대공체계 연구소에 황 이사가 찾아왔다.

“어? 황 이사님? 어쩐 일이십니까?”

그룹에 급한 일이 있다며 먼저 나갔던 사람이 연구소를 찾아왔다.

의아하여 눈을 동그랗게 뜨고 보고 있는데.

황 이사가 류 소장에게 다가와 귓속말로 말했다.

“잠깐 저 좀 따라오시죠.”

“네?”

“쉿. 내색하지 마시고요. 조용히.”

류 소장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무슨 일이시길래······.”

황 이사는 주변을 돌아본 후, 좀 전보다 더 작은 소리로 말했다.

“회장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