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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이 능력을 숨김-253화 (253/301)

253. 선도냐? 국가냐? (1)

똑똑.

류 소장은 황 이사를 따라서 회의실에 들어왔는데.

긴 책상 한 가운데에 지혁 혼자 앉아 있었다.

‘와······ 위압감.’

대회의실에 함께 모여있을 때와 달랐다.

그룹 회장의 존재감에 지혁 특유의 분위기가 더해지니, 숨이 턱 막힐 정도의 위압감이 느껴졌다.

지혁은 류 소장과 가볍게 인사를 나눈 뒤, 빈자리를 가리켰다.

“그쪽에 앉으세요.”

그가 자리에 앉자, 자연스럽게 말했다.

“황 이사님, 문 잠가 주세요.”

“알겠습니다.”

철컥.

“······.”

싸늘한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

꿀꺽.

어디선가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문은 왜 잠가.’

류 소장은 눈을 끔뻑이며, 지혁의 말을 기다렸다.

“류 소장님.”

“네.”

“제가 소장님과 긴히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요.”

“네, 회장님.”

“그 전에 한 가지 물어볼 게 있습니다.”

지혁은 류 소장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았고.

그럴수록 류 소장의 몸은 움츠러들었다.

“선도입니까? 국가입니까?”

“네?”

“선도 테크윈 직원들이 애국심이 높은 거 같더라고요. 애사심과 애국심 중 어느 쪽인지 묻는 겁니다.”

“······.”

“솔직하게 답변해 주셔야 합니다.”

류 소장은 잠시 고민한 후 대답했다.

“글쎄요······ 둘 다 아니라서 답변을 드리기가 어렵습니다.”

“······.”

“저는 그냥 월급 받고 일하는 사람입니다. 깊숙히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그래도 하나 골라보세요.”

“굳이 둘 중에 고르라면······ 세금 빼가는 국가보다는 월급 주는 회사가 더 좋은 거 같네요.”

“정말요? 국가가 있으니 회사가 있고, 국민이 있는 거잖아요.”

“글쎄요······ 전 잘 모르겠습니다.”

류 소장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숨 쉬는 공기 같아서 그런 걸까요? 저에게 국가관은 그다지 체감이······ 빈민국에 안 태어나서 다행이라는 생각은 하는데. 그게 대한민국에 감사할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태어나보니 대한민국이지, 대한민국이 저를 선택해서 이곳에 태어난 것은 아니니까요.”

지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말이 통하겠네.’

적절한 조건을 제시하면 포섭이 될 것 같았다.

“알겠습니다. 현재 연봉이 어떻게 되죠?”

“연봉은 타인에게 발설하면 안 된다고 했는데.”

황 이사가 웃으며 말했다.

“그룹 회장님입니다. 말씀하셔도 괜찮습니다.”

“아, 네.”

류 소장은 이 질문을 도대체 왜 하는 건가 싶었지만, 회장이 물으니 대답을 안 할 수 없었다.

“1억 정도 됩니다.”

“꽤 받으시네요.”

“연구 수당이 있어서요.”

지혁은 고개를 끄덕인 후 황 이사에게 귓속말했고, 황 이사는 종이 한 장을 꺼내어 뭔가를 써넣었다.

류 소장은 이 모습을 멀뚱히 보고 있었는데.

“류 소장님.”

조용한 가운데 지혁의 갑자기 부르니, 류 소장은 화들짝 놀랐다.

“네? 네. 회장님.”

“저랑 큰일 한번 해보실래요.”

“어떤 큰일을······.”

안 하고 싶었다.

뭘 하려는 건지 몰라도, 분위기가 상당히 부담스러웠다.

“류 소장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네, 일단 어떤 일인지 말씀을······.”

“계약서에 사인을 해주셔야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극비 사안이라서요.”

류 소장은 더 들어보지 않고, 거절하려 했다.

정해진 일만 하며, 큰 문제없이 순탄하게 흘러가는 삶에 만족 하고 있었다.

“죄송하지만, 저는 지금이······.”

“연봉 10억 드릴게요.”

“제가 뭘 하면 되겠습니까?”

***

‘월급쟁이가 연봉 10억 받고, 못 할 게 뭐 있어?’

뭘 시키려는 지 몰라도, 고민할 것도 없었다.

어차피 회사 일 아닌가.

류 소장의 달라진 태도를 보며, 지혁은 속으로 웃었다.

‘역시 셈에 약해. 남색 사람 답다.’

“우선 사인부터 하실래요?”

“계약서 주십시오.”

무슨 일인지, 묻지도 않았다.

‘연봉 10억 원.’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룹 회장이 하는 약속이니 빈말은 아닐 거로 생각했다.

류 소장은 계약서를 살폈는데.

방금 말한 연봉 금액부터 확인했다. 진짜였다.

그 외에 별다른 내용은 없었으나, 특이한게 있다면 서명란 바로 위에 ‘각서’가 있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보안 유지.’

‘임무 완수까지 최선을 다할 것을 맹세.’

‘가족의 이름을 걸고 약속함.’

‘기밀 누출 시 어떠한 대가도 지불하겠음.’

.

.

.

.

모두 약속에 관한 거였는데, 섬뜩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무슨 일을 시키려고, 이렇게까지······.’

“뭐 하세요? 어서 서명하세요.”

“아······ 계약서 내용이 좀······ 어떤 일을 하는 지도 안 나와 있고요.”

“나와 있을 텐데? 거기 잘 보세요.”

‘SECC 위원으로서, 회장 지시 사항을 반드시 완수한다.’

“이게 임무입니까?”

“네, 계약과 동시에 바로 SECC로 발령 날 거예요.”

“그럼 근무지는······.”

“자세한 건 서명 후에 말씀드릴게요.”

“······.”

왠지 모를 꺼림칙함.

류 소장은 펜을 들고 고민하다가.

‘연봉 10억 원.’

이 문구가 눈에 계속 박혔다.

‘서명 : 류승재’

결국, 서명했다.

“이름 옆에 지장도 찍으세요.”

“지장까지요?”

지혁은 어서 하라는 듯, 턱을 살짝 움직였고.

류 소장은 입맛을 다시며, 엄지에 빨간 인주를 발라서 이름 옆에 찍었다.

이렇게 지혁의 낚시질에 걸렸다.

“황 이사님. 계약서 회수하세요.”

“네.”

사사삭.

곧바로 황 이사는 류 소장이 서명한 계약서를 가져간 후, 미소 지으며 말했다.

“회장님 직속 조직. 세크 위원이 되신 걸 환영합니다~”

“아, 네. 일단 감사합니다만······.”

지혁은 웃으며 말했다.

“아까 물어보셨던 거요. 근무지는 같습니다. 창원 사업장에 계시면 됩니다.”

“아, 그거 다행이네요.”

류 소장은 이곳에 20년 가까이 근무했으며, 창원은 삶의 터전과 같다.

“앞으로 제가 드리는 특별 지시를 이행해 주시면 되고, 가족에게도 비밀 지켜주셔야 합니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지혁은 황 이사에게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말했다.

“류 소장님과 함께하려는 업무에 관해 설명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황 이사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소장님, 지금부터 들으시는 얘기는 절대 보안입니다.”

“아, 네.”

보안. 보안. 보안.

같은 얘기를 왜 이렇게 반복하나 싶었다.

“회장님께서는 미래에 올 수 있는 큰 위험을 대비하고자, 세크라는 선도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들었고요. 몇 가지 과업이 있는데, 저는 무기 분야를 맡고 있습니다.”

“······.”

“앞으로 류 소장님은 저와 함께 무기 개발과 비축을 해 나갈 건데요. 대공포, 개인화기······.”

황 이사의 얘기가 진행될수록.

류 소장의 눈은 점점 커졌다.

도대체 무슨 소리를 싶었다.

“대략 다 말씀드렸는데, 궁금한 거 있으면 질문하세요.”

질문에 하기에 앞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 사람들 제정신이야?!’

***

‘무기?! 아니, 무기를 만들자고? 미친 거 아니야?’

격한 말을 쏟아내고 싶지만, 앞에 앉은 사람은 선도그룹 회장이다.

‘하아······ 어쩐지 꺼림칙하다 했어. 정상적이지 않은 일은 다 사연이 있는 법인데. 경솔했다.’

얘기를 듣고 나니, 당장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었으나.

이미 계약서에 서명하고, 지장까지 찍었다.

속은 듯한 기분에 불쾌함마저 느꼈으나.

마음을 겨우 진정시키고 말했다.

“무기를 만들어서 뭘 하시려는 겁니까?”

황 이사가 말하려 했으나, 지혁이 손짓 후 대신 대답했다.

“말씀드렸다시피, 미래 불안을 대비하려는 겁니다. 요즘 국제 정세 불안하잖아요.”

“국방부가 걱정해야 할 일을 왜 회장님께서······.”

“함께 걱정하면 좋지 않습니까. 철저히 대비하는 거죠.”

류 소장은 멍하니 지혁을 보며 생각했다.

‘걱정 병에 걸리셨나······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혁은 덧붙여 설명했다.

“생산한 무기는 오로지 비축만 합니다. 방어용이며, 불시의 상황이 벌어지지 않는 한 절대로 사용하지 않을 겁니다.”

너무 진지했다.

제정신인 것 같았다.

그래서 류 소장은 더 불안했다.

‘엿됐다.’

발 빼고 싶어도, 너무 늦었다.

없던 일로 하는 것보다, 위험성에 대해 알리고 설득하는 게 낫겠다 싶었다.

“회장님, 죄송하지만 국방부에서 이걸 모를 수가 없습니다.”

“······.”

“저희 사업장에 국방연구소 직원들이 수시로 오고요, 심지어 출장 사무소도 있습니다. 생산라인에 올려져 있는 무기들을 모를 수가 없습니다.”

“그 또한 류 소장님께서 해야 할 일입니다.”

“······.”

“국방연구소 분들 잘 아시잖아요. 시스템도 잘 아실 거고. 20년간은 이 일에 종사하셨는데.”

류 소장은 입을 벌리고 얘기를 들었다.

“발각되지 않을 시스템을 강구해 주시고, 그를 위해 필요한 건 황 이사에게 요청해주세요.”

“······.”

“연봉 10억 원을 드리는데, 그 정도 능력은 발휘해 주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좋다고 받은 ‘연봉 10억 원’이 이렇게 발목을 잡을 줄 몰랐다.

“혹시 무를 수 있습니까?”

혹시나 해서 물어봤는데.

지혁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가 좋아하는 말이 있습니다. 낙장불입. 인생은 낙장불입입니다.”

“······.”

“돌아갈 생각 마시고, 받아들이세요.”

***

하아······.

류 소장은 한숨을 쉬었다.

‘평온하던 삶에 왜 이런 날벼락이 치는 건지.’

“저 그룹 회장입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비밀 유지만 잘 해주시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거 불법인 거 아시죠?”

“네. 지금은 법이 있으니까, 불법이겠죠.”

대꾸하는 것도 이상하고.

대화를 나눌수록 머릿속만 혼란스러워졌다.

‘에라, 모르겠다.’

“어떤 무기가 필요하신 겁니까?”

이 물음에, 황 이사가 나섰다.

“우선 대공화기부터 말씀드리면요. 지금 상용화 앞둔 30mm 소구경 포와 55mm 이상 대구경 포 둘 다 필요합니다. 필요 수량은 총 100문인데······.”

류 소장은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뜬다.

“비축용이라면서요? 뭘 그렇게 많이 만듭니까?”

쉘터 지점이 10개라 많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 이상은 설명하진 않았다. 류 소장에게는 무기 관련 얘기만 생각이다.

“필요해서 만듭니다. 그리고 지대지 기관포도 있어야 하는데, 이 역시 요구 수량은 비슷합니다. 지대지 포 가능하시죠?”

“지대공 체계와 크게 다르지 않아서요. 딱히 어려울 건 없는데······.”

“그럼 됐네요.”

황 이사는 그다음 개인화기를 얘기했다.

“개인화기 용으로 자동소총과 권총 두 가지를 비축해 놓으려 하거든요.”

“총은 안 만들어봤습니다.”

“만드실 수 있잖아요.”

“······.”

“모델을 정해 놓는게 개발하기가 명확할 것 같아서요. 자동소총은 M4 카빈처럼 했으면 합니다.”

“미군 제식 화기 아닙니까?”

“잘 아시네요. M4 카빈처럼 이동하기 간편하게 총열이 길지 않고, 개머리판 접을 수 있는 가벼운 형태면 좋겠습니다.”

류 소장은 황 이사의 요청사항을 수첩에 기록했다.

“권총은 모델을 아직 못 정했습니다. 자동소총 고장 혹은 근접 전투 시에 사용할 목적이거든요?”

“방어용이라면서요.”

“방어 전투요.”

“······.”

“자동소총의 대체재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중점 사항은 고장이 잘 나지 않아야 합니다. 효율이 좀 떨어지더라도요.”

류 소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무의식중에 말했다.

“그러면 리볼버네요. 작동원리가 워낙 단순해서 가장 고장이 덜 나죠. 재장전할 때 번거로운 단점은 있지만.”

그는 말을 뱉고 난 후 생각했다.

‘내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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