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4. 선도냐? 국가냐? (2)
‘내가 무기 제조에 동조하는 말을 하다니.’
말을 뱉고 난 후, 류 소장은 스스로 황당해하고 있는데.
“그래요. 권총은 리볼버로 가죠.”
옆에서 지켜보던 지혁이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서브 무기는 재래식일수록 좋아요. 주무기가 고장 났는데, 서브까지 작동이 안 되면 낭패니까요. 그렇지 않겠습니까? 류 소장님?”
“무기가 다 고장이 나선 안 되겠죠.”
메인은 성능, 서브는 안정.
전투 시에 총을 두 자루 지급할 생각이다.
“웬만한 군인보다 낫겠네요.”
“방탄복 만드실 수 있습니까?”
계획에 없던 거지만, 방탄복도 물었다.
방탄, 방검복이 있으면 유리하다.
“만들어 본 적은 없으나, 어디서 만드는지는 압니다.”
지혁은 살짝 미소 지었고, 류 소장은 계속 말했다.
“방탄, 방검복 소지는 불법이 아니라서요. 업체 정보 몇 군데 드릴 테니까, 비교해 보시고 결정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군용 만드는 곳이라, 품질은 괜찮을 겁니다.”
황 이사는 웃으며 말했다.
“업체 정보는 저한테 알려주시면 됩니다. 회장님, 인재 영입 잘하신 거 같네요.”
“그러게요. 일타쌍피네.”
낙장불입, 일타쌍피.
회장 입에서 어울리지 않는 싸구려 사자성어가 자꾸 나왔다.
류 소장이 고개를 갸웃하고 있는데.
“아, 소장님. 혹시 도검 제작도 하실 수 있으세요?”
진짜 주력 무기는 ‘도검’이다.
‘그 세계’에서 탄약은 머지않아 소진되며, 생산할 수도 없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칼부림의 시대가 온다.
“도검 또한 업체 정보는 알고 있습니다. 전 총기 제작 외에 다른 건 관여하고 싶지 않네요.”
“아, 네. 업체 정보만 알려주십시오. 나머지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네.”
지혁이 황 이사에게 말했다.
“도검은 저와 꼭 상의하셔야 해요. 어떤 게 필요한 지 제가 잘 아니까.”
‘그 세계’에서 ‘미친 꼽추’로 불리며, 양손에 단검을 들고 현란하게 싸웠었다.
지혁은 펜보다 단검이 편한 사람이다.
‘칼질한 지 오래돼서, 잘 될지 모르겠네.’
안 주머니의 과도를 만지작거리며 생각했다.
한편, 류 소장은······.
‘회장님이, 도검류를 왜 잘 알아?’
말하는 것도 그렇고, 눈빛도.
류 소장은 군인들을 많이 만나봤기에 분위기를 보면 안다.
대화를 나눌수록 지혁에게서 전사의 아우라가 보였다.
“류 소장님.”
“네!”
류 소장이 대답했다.
“스케줄은 어떻게 될까요?”
“스케줄이요?”
“네, 개발 및 완성까지.”
“아······ 그건.”
류 소장은 잠시 생각한 후 말했다.
“아직 말씀드리기가 어렵습니다. 어떻게 눈을 속여야 할지를 먼저 고민해야 해서.”
“······.”
“계획 잡은 후에 다시 보고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서둘러 주십시오. 빠를수록 좋습니다. 언제 필요하게 될지 모르니까요.”
“······네.”
이제 미팅을 마무리 지으려는데, 류 소장이 물었다.
“대표님께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성 대표에게도 절대로 보안 유지해 주세요. 소장님 하는 일에 개입 못 하게 할 거니까.”
“아, 네.”
“선도테크윈에서 이 계획을 아는 사람은 소장님뿐입니다. 간단해요. 저와 황 이사 외엔 그 누구한테도 말하면 안 되는 거예요.”
“알겠습니다.”
***
류 소장이 나간 뒤.
잠시 후, 성 대표가 회의실로 들어왔다.
“대표님 부르셨습니까.”
그는 사람 좋은 미소로 지혁을 바라봤다.
“급한 일은 잘 끝내셨습니까.”
“네, 덕분에요.”
“다행이네요. 근데, 무슨 일로······.”
성 대표는 지혁의 말을 기다렸다.
“세크에 대해서 아시죠?”
“네. 알고 있습니다.”
대표라서, 더 잘 안다.
항상 그룹 회장의 동정을 살펴야 하는 자리이니 말이다.
회장 직속 조직이 생겼다고 하여, 관심 두고 지켜보고 있었다.
“류 소장을 세크 위원으로 발령내려 합니다.”
“네? 갑자기 왜요?”
성 대표로는 의아했다.
‘연구소에서 무기 연구만 하고, 생산설비 점검하던 사람을······ 왜?’
“세크에서 필요합니다.”
“······.”
“세크가 하는 일은 모두 보안이라서요. 더 자세한 얘기는 말씀 못 드리는 점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
“앞으로 류 소장이 무슨 일을 하든, 보고 받지도 말고 궁금해하지도 마세요. 근무지가 선도테크윈 창원 사업장일 뿐, 소속은 세크라는 걸 알고 계시면 됩니다.”
성 대표의 동공이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혹시 이거 때문에 선도테크윈에 오신 건가요?”
‘음?’
지혁은 성 대표의 날카로움에 살짝 놀랐다.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자, 성 대표는 눈치를 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회장님 말씀대로 관여하지 않겠습니다. 그룹에서 발령을 냈는데, 따라야죠. 근데, 저 부탁 하나 드려도 되겠습니까?”
“말씀하시죠.”
“저도 세크 위원으로 써주시면 안 될까요?”
지혁과 황 이사는 눈이 동그래져서 서로를 바라봤다.
세크 위원이 되고 싶다며 자원한 사람은 성 대표가 처음이었다.
“다른 뜻은 없습니다. 예전부터 회장님 흠모해왔고요. 언제까지 촌구석에 있고 싶지 않습니다. 대표직까지 올랐는데, 중앙에서 일해보고 싶습니다.”
지혁은 가만히 성 대표를 관찰했다.
‘나한테 우호적이고, 지금 하는 말도 진심으로 보이긴 해. 사람도 괜찮아 보이고.’
황 이사도 비슷한 생각이었는지, 지혁에게 귓속말했다.
“회장님, 괜찮지 않을까요? 류 소장 신분도 더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을 거 같은데요.”
‘흠······.’
지혁은 잠깐 고민했지만······.
“죄송합니다. 지금은 어렵고요. 때가 되면 꼭 부르겠습니다.”
일은 벌일수록 리스크는 커지며, 사람은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성 대표가 괜찮아 보이긴 하지만, 지금은 세크 위원을 늘리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크에서 다루는 일은 보안이 생명이니까.
“아, 아쉽네요. 알겠습니다.”
“기억할 테니, 너무 서운해 마십시오.”
“······.”
“지금은 류 소장하는 일에 간섭도 궁금해하지도 않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됩니다.”
성 대표는 싱긋 웃고는 말했다.
“원하는 방식은 아니지만······ 알겠습니다. 말씀주신 대로 따르겠습니다.”
***
토요일.
시간이 흘러, 수아와 시안이 집에 오는 날이다.
두 사람을 맞이하기 위해 지혁은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였다.
이제 집 안에서 완벽한 한 가족이 된다.
두 사람이 오기 전에, 앞으로 시안을 어떻게 돌봐야 할지 많은 얘기를 나눴었다.
회사 일로 집안일에 신경 쓰기 어려운 상황이라, 육아를 수아 혼자 감당하기 버거울 것 같아서 지혁이 제안했었다.
‘베이비 시터 쓰자.’
‘난 싫어.’
‘왜? 애 키우는 거 장난 아니라던데.’
‘내가 회사 나가는 것도 아니고, 집에 혼자 있는데. 굳이 왜?’
수아는 자식 돌봄에 있어서 고지식한 부분이 있었다.
‘자기답지 않게 왜 그래? 쉬운 길 놔두고 왜 어렵게 가? 돈 많은데 굳이 왜 사람을 안 써?’
‘몰라, 안 내켜.’
‘온종일 쓰지 말고, 일정 시간만 도움받아도 되잖아.’
‘싫다니까.’
생각해서 하는 말이었는데, 수아가 불편한 기색을 보여서 관뒀었다.
그래서······ 결국 집 안에 세 사람이 남았고.
-응애앵~
시안이 울기 시작했다.
침대에 눕히자마자 우는 시안을 보며, 수아와 지혁은 난감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애는 우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젖 줘 보는 게 어때?”
지혁의 물음에 수아가 턱에 손을 괴고 말했다.
“그거 아니야, 먹은 지 얼마 안 됐어.”
“그래? 그럼 쉬 한 건가?”
수아는 재빨리 기저귀를 들춰봤다.
“깨끗한데?”
-응애앵~
시안은 계속 울었다.
“하아······ 미치겠네.”
두 사람은 땀을 뻘뻘 흘렸다.
“어디 아픈가?”
“다시 병원 가?”
“방금 왔는데?”
수아는 계속 우는 시안을 더 두고 볼 수 없어서, 일단 들어서 안았다.
-······.
“어?”
수아가 안자마자 울음을 멈추었다.
지혁은 의아했다.
“뭐지?”
수아는 잠시 생각한 후 알겠다는 듯 말했다.
“아~ 알겠다. 여기 어색했나 봐.”
“······.”
“우리한테는 익숙한 집이지만, 시안이한테는 첫 집이잖아.”
“아······ 이 쪼그만 게 그런 걸 느끼나?”
이제 손바닥 두 개 겹친 정도 크기가 된 시안을 보며 지혁은 웃었다.
“그럼~ 얘도 사람이야. 왜 못 느끼겠어.”
수아는 시안을 어르며 말했다.
“어이구~ 우리 아들~ 몰라봐서 미안하다.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서.”
“하하. 아빠도 처음이라. 빨리 익숙해질게.”
그때, 시안이 살짝 눈을 찡그렸는데
지혁과 수아는 웃었다는 생각에,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세 식구의 시작.
모두 다 처음이라, 서툴고 어색하지만.
당분간은 밤잠도 포기해야겠지만.
그래도 좋았다.
이 작은 아기 하나가 들어온 것만으로도, 집이 꽉 차는 것 같았다.
***
“하암~”
지혁은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연신 하품했다.
키득키득.
윤 실장은 그 모습을 보며 좋아했다.
“이제야, 애 아빠다워 보이네요~”
고소하다는 듯 웃는 윤 실장을 보며, 지혁은 피식 웃었다.
“뭐가 그렇게 좋으세요?”
“원래 내가 겪은 고생을 누군가 똑같이 겪게 되면 기분 좋은 법이에요.”
“참나······ 심보 참 멋지십니다.”
지혁은 연신 하품하며, 다크써클이 턱 밑까지 내려와 있었으나.
그래도 웃었다.
“많이 힘들어요?”
“힘들지 않다면 거짓말이죠. 하하. 그래도 뭐······ 견딜 만합니다.”
“······.”
“밤에 잠만 잘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그게 참 쉽지 않네요. 두 시간마다 깨어대니.”
“출근해서 일해야 하는데. 방 따로 쓰고 자는 게 낫지 않아요? 원룸에 사는 거 아니잖아요?”
지혁은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수가 없어요. 몰랐다면 모르는데, 아내가 고생할 게 뻔히 보이니까요.”
윤 실장은 생각했다.
‘차가운 사람이, 안 어울리게 애처가란 말이야.’
“뭐······ 그러실 수 있겠네요.”
똑똑.
“들어 오세요.”
누구냐고 묻지도 않고, 들어오라고 했다.
이른 아침부터 회장실을 찾아올 사람은 세크밖에 없기에.
덜컹.
“안녕하십니까.”
고 이사였는데, 한 손에 네모난 작은 상자를 들고 있었다.
“아, 네. 고 이사님. 어쩐 일이세요?”
세크 프로젝트가 진척 중인데, 아직 고 이사가 맡은 ‘식량 프로젝트’만 보고가 없었다.
지혁은 그의 성격을 알기에 잠자코 기다리고 있었는데.
“회장님, 아침 식사하셨습니까?”
“네? 아니요. 요즘 잘 못 챙겨 먹습니다.”
출근할 때쯤, 수아와 시안은 밤새 씨름하다가 뻗어 있는 경우가 많고.
지혁 또한 최근엔 늦잠 잘 때가 많아서, 아침밥은 생각도 안 하고 있다.
“그러실 것 같아서 챙겨 왔습니다.”
“고 이사님이 아침을요?”
그는 만면에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지으며 상자를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미래 식량입니다. 비축할 필요 없이, 쉽게 양육해서 신선하게 먹을 수 있습니다. 영양분도 좋고요.”
계획이 아닌, 결과물을 만들어오느라 시간이 걸렸다.
성격 급한 고 이사답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확-
그가 펼친 상자 내용을 보고.
“헉, 뭐, 뭐야?!”
윤 실장이 미간을 확 찌푸리며 소리쳤고.
지혁의 눈도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