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사원이 능력을 숨김-255화 (255/301)

255. 먹어야 한다

상자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삼각김밥 모양을 한 정체 모를 갈색 물체였는데.

“이거······ 제가 생각한 거 맞아요?”

자세히 보니······ 뭔지 알 수 있었다.

아주 낯선 음식은 아니었으니까.

윤 실장은 인상을 쓰며, 뒤로 한 두 걸음 물러났다.

“하하. 뭘 그렇게 놀라세요? 안 드셔보셨어요?”

“안 먹어봤습니다. 싫어하거든요.”

번데기였다.

굳은 번데기가 뭉쳐서 삼각김밥 모양을 이루고 있었는데.

‘와······ 비주얼 참······.’

지혁은 번데기를 싫어하거나, 못 먹지는 않지만.

이렇게 뭉쳐져 있으니, 아름다워 보이진 않았다.

윤 실장은 어느새 한참 뒤로 떨어져 있었고.

지혁은 궁금하여 물었다.

“이게 미래 식량입니까?”

“네.”

고 이사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저에게 과업을 주실 때, 10년간 비축할 양을 말씀하셨는데요.”

“······.”

“10년만 살 건 아니지 않습니까? 음식량이 한계가 있다는 게 얼마나 불안합니까? 지속 가능한 게 무엇인지 계속 고민했습니다.”

지혁이 말했다.

“제가 10년을 말씀드린 건, 10년만 살겠다는 게 아니고요. 쉘터에서 버틸 시간을 최대 10년까지로 본 겁니다. 그 이후엔 밖으로 나가서 농사를 짓든 가축을 기르든 해야겠죠.”

고 이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 의도는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10년 뒤에도 쉘터 밖으로 나갈 수 없다면요?”

“······.”

“20년, 30년 뒤에도 쉘터 밖은 사람이 살 수 없는 환경이라면. 그때는 어떻게 합니까?”

“······.”

“그러지 말란 법 없지 않습니까?”

지혁은 심각한 표정으로 그의 얘기를 듣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 있는 말씀이네요.”

“다른 건 몰라도 식량만큼은 절대로 리스크가 있어선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고 이사의 말이 맞다.

다른 건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갈 수 있겠지만, 식량은 다른 문제다.

최악의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확실히······ 아포칼립스에 특화된 사람답다.’

지혁은 고 이사를 처음 봤을 때부터 느꼈었다. 마치 ‘그 세계’의 사람을 만난 것 같은 기분.

생존력 강하며, 터프한 사람.

번데기 삼각김밥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는 윤 실장도 고 이사의 얘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회장님, 하려던 얘기 계속해도 되겠습니까?”

지혁은 미소를 짓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계속하시죠. 이사님.”

새삼 사람 잘 뽑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지혁은 기분이 좋았다.

***

“보시는 바와 같이, 이건 번데기로 만든 겁니다.”

“······.”

“번데기는 하나의 예시이고요. 제가 찾은 미래 식량 자원은 ‘곤충’입니다.”

‘곤충······.’

지혁은 그의 말을 되씹었다.

“설명해 드리기에 앞서, 여러 학술지와 전문가 견해를 참고하여 결정한 사항이라는 걸 말씀드립니다.”

“알겠습니다.”

고 이사는 설명을 시작했다.

“바퀴벌레가 고생대 석탄기부터 지금까지 생존하는, 살아 있는 화석 같은 생물이라는 건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왜 하필 비유해도······.’

윤 실장은 인상을 더 찡그렸다.

그는 곤충, 특히 바퀴벌레를 끔찍이 싫어한다.

“지구의 역사에서 수많은 생물이 멸종해 왔으나, 그중에도 장구히 살아남은 건 곤충들입니다. 왜일까요?”

지혁은 고 이사의 물음에 대답했다.

“글쎄요. 모르겠는데요.”

이번엔 고 이사가 윤 실장을 바라보자.

“저도 몰라요. 묻지 마세요. 곤충 얘기는 하기도 싫어요.”

고 이사는 웃으며 말했다.

“그건 저도 모릅니다.”

지혁과 윤 실장은 황당한 얼굴로 고 이사를 바라봤다.

“평소에 회장님께서는 결과로 얘기하라는 말씀을 즐겨 하시죠.”

“······.”

“곤충들은 결과로 얘기하고 있습니다.”

“······.”

“어떠한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뭔가’가 곤충에게 있는 겁니다.”

고 이사는 열변을 토해냈다.

“추측은 할 수 있겠죠. 특별한 영양소가 있다는 것 정도? 그러니까, 우리는 그들의 노하우를 먹는 겁니다.”

윤 실장은 인상을 썼으나, 고 이사는 거침없이 말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노하우를 남김없이 먹으며, 생존능력을 높이는 겁니다.”

윤 실장은 귀마개라도 있으면, 막고 싶었으나.

지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다.

“일리 있네요.”

“분명, 그 노하우는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영양소일 겁니다.”

“어떤 영양소인지 밝혀진 건 없습니까?”

예상한 질문이라는 듯, 고 이사는 술술 말했다.

“’월스트리트 저널’을 참고하면요, 단백질이 풍부하고, 비타민B가 많다고 되어 있습니다. 또한 저지방이며, 철분 및 아연 같은 미네랄이 풍부하고요.”

“영양소 덩어리네요. 그걸 여태까지 왜 안 먹고 살았을까요?”

“꽤 즐겨 먹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과거에 돈이 없어서 고기를 못 먹으니, 번데기와 메뚜기로 부족한 단백질을 보충했습니다. 중국의 경우 못 먹는 곤충이 거의 없다고 합니다.”

고 이사는 윤 실장을 향해 말했다.

“실장님 동남아 가보셨어요?”

윤 실장은 잔뜩 경계하며 대꾸했다.

“왜요.”

“거기선 바퀴벌레 튀김이 길거리 음식인데.”

“에잇! 진짜!”

생각만 해도 메슥거리는지, 윤 실장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해졌다.

지혁은 웃으며 말했다.

“그렇군요. 이미 있는 것에서 발견하신 거네요.”

“하하. 네. 검증이 되어 있다고 할 수 있죠.”

지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고 이사는 설명을 계속 이어갔고.

다른 세크 위원들이 준비한 것과 수준이 달랐다.

아주 세밀하고 꼼꼼했으며, 전문성마저 느껴졌다.

‘개발자 출신답다.’

지혁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얘기를 경청했다.

***

고 이사의 설명은 약간 과하다 싶을 정도였으며, 열정이 느껴졌다.

마치 방판 사원 같았다.

“미래 식량으로서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작은 면적에서 많이 키울 수 있는 겁니다.”

“······.”

“쉘터는 공간이 한정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조그만 방 하나에서도 곤충 수백만 마리가 자랄 수 있습니다. 또한 끊임없이 번식할 수 있죠. 이렇듯 고효율로 육성할 수 있는 큰 장점이 있습니다.”

“그렇겠네요.”

“네, 쉘터와 같은 특수한 상황에서는 결정적인 장점입니다. 소 한 마리 키울 공간에서 수백, 수천만 마리를 키울 수 있으니까요.”

고 이사는 침을 튀겨가며 설명했다.

“게다가 배설물도 없습니다.”

“아하······.”

“소, 닭 등······ 얼마나 많이 쌉니까?”

“그렇죠. 많이 싸죠.”

“곤충은 안 쌉니다. 뭐, 싸기야 싸겠지만 티도 안 나죠. 즉, 오염물질이 적다고 할 수 있는데, 배설물뿐만이 아닙니다.”

고 이사는 검지를 펼치며,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돼지 30%, 닭 35%, 소 45%, 양 65%”

“······.”

“가공처리 후 먹지 못하는 비율입니다. 꽤 많죠? 근데, 곤충은 어떻냐?”

윤 실장이 불안한 눈길로 고 이사를 바라봤다.

“100% 다 먹습니다. 버리는 게 없어요.”

“우웩.”

결국, 윤 실장은 헛구역질했다.

이 얘기를 들은 후, 앞에 놓인 번데기 삼각김밥에 시선이 간 것이다.

“회장님, 죄송합니다. 잠시만 뒤돌아 서 있겠습니다.”

“아니, 뭐 남자가 이렇게 비위가 약하십니까?”

“죄송합니다. 곤충만 그렇습니다.”

윤 실장은 번데기 삼각김밥이 눈에 보이지 않도록 뒤돌아서서, 숨을 골랐다.

지혁은 궁금한 걸 물었다.

“그래도 곤충은 좀 더럽다는 인식이 있는데······ 오염물질을 배출하지 않더라도, 자체에 세균이 많은 건 아닌가요?”

고 이사는 싱긋 웃었다.

이 또한 다 알아본 듯, 질문에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저도 그런 줄 알았습니다. 연구 결과를 참고해 보면요. 일부 세균을 옮기는 곤충이 있기는 합니다만, 0.5%에 불과합니다.”

“······.”

“도리어 소, 개, 돼지보다 훨씬 덜 해롭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인식, 즉 선입견입니다.”

들을수록 고 이사의 논리가 타당해 보였다.

미래 식량 자원으로 ‘곤충’만 한 게 없어 보였다.

영양가 높고, 키우기 쉽고, 오염물질도 적고.

“잘 씻어서 먹으면 됩니다. 그리고 꽤 맛도 있거든요? 번데기 드셔보셨죠? 얼마나 고소합니까? 입안에서 톡톡 터지고.”

윤 실장은 뒤돌아서서 양손으로 귀를 닫았다 열었다 했다.

“그렇죠. 맛있긴 하죠.”

지혁은 문득 궁금해서 물었다.

“그래서 고 이사님은 곤충 자주 드십니까?”

“연구를 시작한 이후 매끼 곤충으로 식사하고 있습니다.”

“······.”

“오늘 아침에도 번데기 국물에 밥 말아 먹고 왔는데요.”

“아오, 씨발.”

급기야, 윤 실장은 욕을 뱉었다.

***

“아,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그만.”

윤 실장은 곧바로 사과했고.

고 이사와 지혁은 껄껄 웃었다.

지혁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오케이······ 구상하신 거 괜찮은 거 같아요.”

“감사합니다.”

“하지만, 영양만 보고 먹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아무리 살기 위해 먹는다고 해도, 식도락이라는 게 있는데.”

“······.”

“영양소만큼이나, 맛과 비주얼도 중요합니다.”

이제야, 고 이사는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네, 그 부분이 좀 고민이긴 합니다. 뭐, 일주일만 굶겨 놓으면 다들 정신 놓고 먹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만······.”

지혁은 피식 웃으며 생각했다.

‘하여간 말하는 거 보면, 진짜 ‘그 세계’에 살다 온 사람 같다니깐.’

“맛은 어느 정도 잡았는데, 비주얼이 문제입니다. 이 부분은 좀 더 고민하겠습니다.”

“여자들과 아이들도 먹어야 하니까요. 음식 자체에 거부감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알겠습니다.”

지혁은 멀찍이 떨어져서 듣고 있는 윤 실장을 바라보았다.

“윤 실장님이 모델이 되면 되겠네요. 저분이 거리낌 없이 먹을 수 있는 수준이면 될 것 같습니다.”

“네.”

이제 얘기가 다 끝났다는 생각에, 윤 실장은 가까이 다가왔다.

“아······ 볼수록 적응 안 돼.”

고 이사는 생각났다는 듯, 지혁에게 말했다.

“회장님, 어서 드셔보시죠.”

“아······ 저거요.”

번데기들이 똘똘 뭉친 삼각형.

‘그 세계’에서 먹을 게 없어 굶주릴 때, 살아 있는 곤충을 먹어본 적도 있다.

‘영 비주얼이······.’

먹을 게 많은 세상인데, 굳이 아침 식사로 이걸 먹고 싶진 않았지만.

“아침엔 배가 든든하셔야 합니다.”

애써서 준비해 왔는데, 안 먹기도 뭐 했다.

“꽤 맛있습니다. 겉모습 보고 피하던 우리 아이들도, 한번 맛본 뒤부터 즐겨 먹습니다.”

“아······ 애들한테까지 먹이세요?”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전 제가 개발한 걸 믿으니까요.”

지혁은 번데기 삼각김밥을 들었다.

수많은 번데기의 주름이 보인다.

한곳에 뭉쳐진 아비규환의 모습이었다.

‘먹어야지.’

지혁은 대뜸 입에 가져가 한 입 베어 물었고.

윤 실장은 고개를 돌렸다.

우걱우걱.

‘음?’

지혁은 눈이 번쩍 떠져서 한 입 더 먹었다.

쫄깃한 식감에 바삭함이 더해져서, 씹는 맛이 좋았다.

물엿 코팅이 되어, 고소하면서 달콤했는데.

번데기 자체의 담백한 맛 때문인지, 전혀 느끼하지는 않았다.

“어라? 진짜 맛있는데요?”

“하하.”

고 이사는 환하게 웃으며 좋아했다.

‘그날’을 위한 준비는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