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사원이 능력을 숨김-256화 (256/301)

256. 나를 지키는 것 (1)

세크 프로젝트.

허무맹랑했던 얘기들이 하나둘씩 실체를 보이고 있었다.

진행은 전반적으로 순조로웠다.

그룹 회장이 직접 챙기는 프로젝트이다 보니, 불만 혹은 의구심이 있더라도 표면적으로 드러날 수 없었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랬던 것은 아니다.

“쇼핑몰 지점을 서울에 하나도 안 둔다고요?”

가장 큰 예산이 들어가는 ‘방주 프로젝트’.

일명 ‘쉘터’를 만드는 일이며, 공식적으로는 ‘프리미엄 아울렛’ 프로젝트다.

사업 규모가 크기에, 사업성을 따져야 하는 실무자들로서는 시키는 대로 넘어갈 수 없었고.

쇼핑몰 위치 선정에서 결국 충돌했다.

선도물산 회의실에서 윤 실장은 한 대표와 양 부문장, 김 부문장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회장님 없다고 작정하고 덤벼드네.’

사업안 미팅이었는데, 윤 실장 혼자 왔다.

“네, 서울에는 지점을 두지 않습니다.”

“왜죠?”

“프리미엄 아울렛은, 문화와 쇼핑이 복합된 공간입니다. 대규모로 만들어야 하는데, 서울에는 그만한 공간도 없으며 부동산 비용도 많이 듭니다.”

현재 세계그룹과 현재그룹이 프리미엄 아울렛 사업을 주도하는데, 그들 또한 점포 대부분을 도시 외곽에 짓고 있다.

“가보셨다면, 아실 텐데.”

윤 실장은 일부로 뾰족하게 말했다.

지혁도 없고, 일 대 삼이라 방어적인 자세를 취한 것이다.

“흠!”

질문을 했던 양 부문장은 헛기침한 후 입을 다물었다.

리조트 부문의 김 부문장이 말했다.

“네, 그건 그렇다 칩시다. 부천, 청주 지점도 이해해요. 거긴 큰 도시니까.”

“네.”

“화성, 구미, 거제는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

“주변에 대도시가 있는데요. 지방 대도시는 중심지가 아니면 부동산이 많이 비싸지 않습니다.”

“······.”

“아무리 프리미엄 아울렛은 자가용 이용 고객이 많다고 해도, 굳이 교통도 불편한 먼 곳에 만들어야 합니까?”

꿀꺽.

윤 실장은 마른침을 삼켰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저희가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주세요. 아무리 세크 위원의 지시사항이 우선이라지만, 이 사업을 운영해야 하는 건 선도물산입니다.”

***

건설부문, 양 부문장도 의견을 덧붙였다.

“상식적으로, 화성 대신 수원. 구미 대신 대구, 거제 대신 양산 혹은 김제로 해야 하지 않습니까?”

“······.”

“부산도 해운대 아니면 많이 안 비쌀 텐데. 후보지에서 부산이 빠졌다는 것도 이해가 안 가고요.”

윤 실장이 대답했다.

“거제가 부산 지역을 아우르는 겁니다.”

“부산에 쇼핑몰 많은데, 굳이 바다 건너 거제까지요?”

“바다는 건너야 하지만, 다리가 연결되어 있어요.”

“참나······.”

양 부문장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고.

김 부문장이 말했다.

“진짜 이유를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주십시오. 전략실장으로 계실 때 안 그러셨잖아요.”

윤 실장이 선도물산 전략실장으로 있을 때, 부문장들과 여러 프로젝트를 함께 했었다.

‘말도 많고, 논리적이던 사람이······ 도대체 왜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거야?’

부문장들은 볼수록 윤 실장의 태도가 이해가 안 되었다.

한참을 가만히 있던 윤 실장은.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렇게 말씀드려서 죄송합니다만.”

“······.”

“기밀입니다.”

“네?!”

김 부문장은 황당한 얼굴로 윤 실장을 바라봤는데.

윤 실장은 굳은 표정으로 다시 말했다.

“더 말씀드리기 어려운 일입니다. 제한된 설명으로 이해시켜드리기도 어렵고요.”

김 부문장뿐만이 아니라, 한 대표와 양 부문장도 황당해했다.

“처음 이 일을 말씀드렸을 때처럼, 제안한 지역 안에서 사업장을 선정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김 부문장이 얼굴이 벌게져서 물었다.

“아무것도 협의할 수 없다는 말입니까?”

“죄송합니다.”

“까라면 까라는 거죠? 이럴 거면 미팅을 왜 하는 겁니까?”

“······.”

형식적이며, ‘통보’ 목적의 미팅.

윤 실장은 입술을 깨물었다가, 한마디 더 했다.

“선도물산이 운영할 ‘쇼핑몰’에는 특수한 목적도 있습니다. 단순한 사업장만은 아닐 거라는 말씀 정도만 드릴 수 있습니다.”

김 부문장이 뭔가 물으려 하는데, 윤 실장은 재빨리 이어서 말했다.

“회장님 특별지시입니다.”

그 순간.

한 대표는 화성, 구미, 거제 사업장의 특징을 눈치챘다.

‘그러고 보니······.’

“자자, 그만들 하시죠.”

부문장들이 질문하려는데, 한 대표가 말렸다.

‘화성 선도전자 캠퍼스.’

‘구미 선도전자 가전 생산공장.’

‘거제 선도중공업 조선 사업장.’

대도시에서 떨어진 후보지 세 곳에는 선도그룹의 대규모 공장이 있으며, 많은 직원이 근무한다.

‘대도시라서 얘기가 안 나왔지만, 후보지 청주에도 반도체 공장이 있잖아.’

대전과 세종 대신, 청주가 후보지로 올라간 이유도 비슷해 보였다.

“윤 실장님.”

“네, 대표님.”

“혹시, 프리미엄 아울렛을 직원 복지와 연결하려는 의도십니까?”

윤 실장의 눈이 커졌다.

‘음? 괜찮은데?’

한 대표의 질문이 솔깃했다.

괜찮은 핑곗거리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이 왔을 때 살리려는 게, 어찌 보면 직원 복지라고도 할 수 있지.’

“공교롭게도 모두 선도그룹 공장과 가까운 곳이네요.”

“하아······ 이것 참.”

윤 실장은 자연스럽게 뒤통수를 긁으며 순발력을 발휘했다.

“깜짝 선물인데.”

“······.”

“직원들에겐 비밀로 해주십시오. 외지에 근무하는 직원들에게 삶의 질도 높이고 할인 혜택도 많이 해주려는 회장님의 깊은 뜻이거든요.”

“아~”

이제야 선도물산 세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직원을 잘 챙기셨지.’

‘전 직원 간담회에서 가스라이팅 당한 직원들 구해주신 것도 그렇고.’

‘이 사실을 알면, 직원들이 감동하겠는데.’

윤 실장은 태연한 얼굴로 말했다.

“회장님께서는 직원을 고객보다 우선시하십니다.”

김 부문장은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아휴~ 진작 말씀하시지.”

양 부문장도 웃으며 말했다.

“저희도 경영자입니다. 그런 건 공유해주셔도 돼요~ 당연히 비밀 유지하죠.”

윤 실장은 고개를 끄덕인 후 대답했다.

“그럼, 세분만 알고 계십시오. 전달해 드린 후보지로 진행해 주시고, 해당 조건에서 사업성 구상해 주시는 거로 알겠습니다.”

“네.”

마지막에 약간은 고압적으로 지시했으나, 세 사람 고개를 끄덕였다.

윤 실장 뒤에 버티고 있는 사람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

시간이 갈수록 직원들의 자전거 사용률은 올라갔다.

사내에 자전거 동아리도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다른 동아리와는 차원이 다른 빵빵한 지원 탓에 갈수록 숫자가 늘어났고.

직원 가족에까지 자전거 열풍이 불어 100만 원 현금 선물을 타가는 직원 수도 많아졌다.

‘자전거 출퇴근 캠페인’이 인사 고과에 반영되는 게 컸기 때문이다. 가족들이 알아서 직원들을 독려했다.

자전거로 출퇴근을 안 하는 사람이 적어지니, 자전거 출퇴근은 ‘승진의 필수조건’이 되었다.

선도그룹만의 특별한 문화로 자리 잡아가고 있었다.

창원 1 사업장의 인근에 무기 생산라인을 따로 만들었다.

위치는 류 소장과 황 이사, 지혁만이 알고 있으며, 절대 보안을 유지했다.

보안 유지를 위해 생산라인에 근무하는 작업자들은 모두 농아인(청각, 언어 장애인)으로 구성했다.

무기 개발과 생산. 모두 순조롭게 진행 중이며, 보안 사고만 터지지 않는 한, 문제 될 일은 없어 보였다.

류 소장은 무기 개발에 내공이 깊었고, 이 일에 가족이 걸려 있기에 보안에 철저했다. 황 이사는 안심하고 그에게 일을 맡길 수 있었다.

고 이사가 지혁에게 보고했을 때부터 완성형에 가까웠던 ‘미래 식량 개발’은 필요한 걸 보완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는데.

‘갈아서 넣을 것인가, 즙을 짤 것인가.’

비주얼 극복이 관건이었다.

설문조사를 해봤을 때, 곤충 자체에 기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아무리 영양가 있고, 효율이 높아도 못 먹겠다고 하면 말짱 도루묵이다.

어느 방향으로 가든, 원료명은 숨겨야 할 수도 있다.

어려운 일들도 훌륭한 조력자들과 함께 하나씩 풀려갔고.

선도그룹의 경영 상황 또한 순항 중이다.

이대로 ‘그날’이 오기 전에 모든 준비가 끝나기만을 바랐다.

그러려면 서둘러야 한다.

“윤 실장님.”

“네.”

“시간 됐죠?”

“꼭 라이브로 하셔야겠습니까?”

“그래야 현실감이 있죠.”

“······.”

윤 실장은 짧게 한숨을 쉬고 말했다.

“커뮤니케이션 팀, 옆 방에서 대기 중입니다.”

“네.”

***

선도물산 스타덕 디자인실.

[직원 여러분 안녕하세요. 모두 자리에 위치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침 9시 정각. 사내 방송이 울렸다.

매일 이 시간에 안내 방송과 함께 맨손 체조 음악이 나온다.

평소와 다른 방송에 모두 귀를 쫑긋 세웠다.

[회장님 지시사항으로, 오늘부터 맨손 체조 대신 새로운 프로그램을 진행합니다.]

이승주 팀장은 평소에 맨손 체조 방송은 신경도 안 썼으나, 회장님 지시사항이라고 하니 빠릿하게 움직였다.

“다들, 뭐해. 하던 일 멈추고 자리 대기해.”

“네, 알겠습니다.”

[TV 전원을 켜주시기를 바랍니다.]

얼마 전에 팀별로 스탠드 TV가 하나씩 설치되었었다.

-뭔가 했더니.

-설마 이것 때문에?

팟!

TV를 켰더니.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지혁 회장입니다.]

-어머. 어머. 회장님이다.

-깜짝이야. 아침 체조를 회장님이 주관하시는 거야?

-파격도 너무 파격이다.

-그러니까, 오 명예회장님은 입사 후 한 번을 볼까 말까였는데.

지혁은 편안한 미소로 말했다.

[직원들의 건강을 제가 직접 챙기려 하는데요. 이름하여 ‘오 회장과 함께하는 나를 지키는 운동’입니다.]

-어머~ 어쩜 말씀도 잘하셔.

-카메라 많이 받아보셨잖아.

-화면발 좋고~

직원들이 지혁을 칭찬하는 소리를 들으니, 이승주 팀장은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그가 신입사원일 때부터 함께 한 특별한 사이라서, 자부심이 있다.

[자존감이라는 건 나를 지킬 수 있을 때 나오는 것이며. 그래야 업무 능률도 올라갑니다. 나 자신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열심히 따라 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이 체조 덕분에 회사에서 큰 성공을 이뤘을지도 모릅니다.]

지혁은 동기부여를 위해, 약을 쳤고.

직원들은 눈을 반짝였다.

-무조건 열심히 해야지.

-해 보자.

[하루에 하나씩 알려드릴 거고요, 숙지하시면 되는데. 방식에 구애받지 마시고, 상황에 따라 응용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화면 속에 젊고 건장한 비서가 나타났다.

[웬 괴한이 나타났네요. 이렇게 제 손을 잡으면요.]

비서가 지혁의 팔목을 잡았다.

[최선은 잡히지 않는 것이죠. 미심쩍어 보인다 싶으면 선제공격을 하는 게 좋은데, 그건 고급반이니까. 일단 손목이 잡혔다고 칩시다.]

지혁은 곧바로 잡히지 않은 다른 손으로 비서의 손목을 잡았다. 그리고, 곧바로 입을 비서의 팔로 가져가 무는 시늉을 했다.

[물면 됩니다. 살점이 떨어질 정도로, 있는 힘껏요. 깊이 물어서 정맥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면 더 좋습니다. ]

[으악-!]

비서가 물린 팔을 붙잡고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이자, 지혁은 무릎으로 비서의 낭심을 수차례 가격했다.

[한 번으로 안 됩니다. 괴로워하더라도, 쓰러질 때까지 계속 가격을 합니다. 정확히 안 맞으면 반격할 수 있거든요.]

비서가 쓰러지자, 지혁은 발뒤꿈치를 보이며 말했다.

[뒤꿈치로 쓰러진 괴한의 눈동자를 짓밟습니다. 양쪽 눈 다요. 확실하게]

이승주 팀장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고.

‘이게······체조라고?’

팀원들은 인상을 쓰며 두 손으로 입을 가렸다.

[이렇게 전투 불능 상태로 만드는 겁니다. 간단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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