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사원이 능력을 숨김-257화 (257/301)

257. 나를 지키는 것 (2)

홍 팀장은 촬영하는 내내 자기 눈을 의심했다.

“다시 한번 강조하는데, 전투 불능이 중요합니다. 다시 일어나서 공격할 수 있는 여지를 주어선 안 됩니다. 한순간의 연민은 내 목에 칼이 되어 돌아온다는 걸 명심하세요.”

지혁은 상냥한 어조로 ‘오 회장과 함께하는 나를 지키는 운동’을 이어갔고.

홍 팀장은 옆에서 함께 지켜보는 윤 실장에게 물었다.

“이게 운동이에요?”

“아······ 뭐 몸을 움직이기는 하니까요.”

만약 녹화방송이었다면, 홍 팀장이 중간에 말렸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그룹 홍보팀의 수장이기에, 회장의 이미지도 챙겨야 한다.

“오늘 집에서 뭐 안 좋은 일 있으셨던 건 아니죠?”

“아니요. 요즘 행복하세요. 2세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돼서.”

“아, 혹시 육아 스트레스로······.”

“아니라니까요.”

윤 실장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좀 과하긴 한데······ 어쨌든 의도한 게 맞기는 합니다.”

그의 교육에 대한 직원들의 반응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상상하게 만드는 거였는데.

‘만약 내가 당한다면······.’

지혁보다 옆에서 시범을 받아주는 비서에게 더 이입이 되었다.

끔찍할 정도로 현실적이어서, 실전에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은 확실히 들었다.

두 번째는 흥미와 재미.

시범을 보이는 지혁의 몸동작이 워낙 현란하니, 보는 재미가 있었다. 젊은 그룹 회장이 직원들에게 직접 뭔가를 알려주는 것도 신기하고.

“이 영상은 반드시 그룹 내에서만 보일 수 있도록 해야겠네요. 유출되지 않게.”

홍 팀장의 말에, 윤 실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게 부탁드립니다.”

“아무리 회장님이란 걸 감안하고 봐도······.”

정상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말은 차마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정도만 해도 윤 실장은 충분히 알아들었다. 왜냐하면 그 또한 비슷한 심정이었으니까.

‘거쳐야 할 과정이야. 이 또한 반복되면 익숙해지겠지.’

보안을 위해, 다음날부터는 아침 체조 시간에 절대로 핸드폰 사용은 못 하도록 했다.

-집에서 연습하고 싶으면 어떻게 합니까?

-한번 봐서는 기억 못 합니다.

간혹 열정을 보이는 이상한 직원들도 있었는데.

“보충을 원하시는 분은 퇴근 후, 재방송해드리니 참고해주세요.”

시간이 지날수록 익숙해졌고.

선도그룹의 문화로 점차 자리 잡았다.

회사에서는 무엇을 하든 월급 받고 하는 일이기에, 적응이 될 수밖에 없다.

‘그날’을 위한 지혁의 교육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

월요일 아침.

관계사별 전 직원이 대강당에 모였다.

‘오 회장과 함께하는 나를 지키는 운동’을 시작한 지 석 달이 지났다.

직원들이 특별교육에 내성이 생겼을 거라는 판단하에, 본격적인 교육에 돌입했다.

-오늘 경영보고 하는 날인가?

-아닐 텐데, 지난주에 했잖아.

-무슨 일인데 그러지. 월요일 아침 바쁜데.

직원들이 웅성거리는 가운데, 강당 위 커다란 화면에 지혁의 모습이 나타났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그룹 회장 오지혁입니다.]

이젠 직원들은 신기하지도 않았다.

매일 아침 ‘운동 TV’에서 보는 얼굴이니까.

-요즘 팀장님보다 회장님 얼굴을 더 자주 보는 거 같아.

-어려웠었는데, 자주 보니까 옆집 오빠 같지 않아?

-야, 너보다 어리셔. 오빠는 무슨.

-회장님이면 오빠야.

[오늘부터 매주 월요일에 교육 시간을 가지려 합니다. 길게 하지 않을게요. 모두 여러분을 위한 것이니, 집중하여 교육받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직원들은 또 전투체육을 하려 하나 싶어서, 화면을 유심히 지켜봤다.

이젠 회장 취향이 독특한가보다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정부의 재난 대응 체계가 잘 되어 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전 산불 사태, 태풍에 대응하는 모습을 보면서 의구심이 생겼죠. 과연 나와 소중한 사람들의 생명을 믿고 맡길 수 있겠는가······ 이 질문에 확신하기 어려웠습니다.]

지혁은 적절한 이유를 만들어 냈다.

난 ‘그 세계’에서 왔고, 대비해놓지 않다가 일 터지면 바로 뒤진다고 말할 순 없으니까.

[정부가 무능하다기보다는 우리가 그런 세상 속에 살고 있는 거예요. 인구는 많은데, 대응 인프라는 제한적이죠. 특히, 큰 재난이 터지면 제대로 작동되기 어렵습니다. 이에, 자신 스스로를 지킬 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강당에 모인 직원들은 지혁이 또 무슨 소리를 하려나 싶어서 멍하니 화면만 바라봤다.

[그래서 매주 월요일 아침에 생존 교육을 진행하고자 합니다. 오늘은 첫 시간이라 개괄적인 내용만 하고 끝낼 건데요. 다음 시간부터는 단계별로 세부적으로 진행할 겁니다.]

-와······ 진심이 느껴져. 대박.

-그러니까. 진짜 진심이라고?

-걱정 병에 걸리신 게 맞는 듯.

-근데, 큰 홍수나 대형 화재가 났을 때 정부에서 제대로 대응 못 한 건 사실이잖아.

-그건 어쩔 수 없는 거 아닐까?

-그래서 의존하지 말고, 스스로 살길을 찾으라고 하시는 거잖아.

[생존에는 세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하나씩 설명해 드릴게요. 첫 번째는 지식입니다. 만약 수돗물이 안 나오고, 전기가 끊기며, 핸드폰이 터지지 않는 상황이 발생한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아, 가스레인지도 안 켜지고요.]

대강당 안은 조용해졌다.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핸드폰 배터리가 20% 아래로 내려가도 불안해지는 게 현실이니까.

[대부분 당황하겠지만, 생존 지식이 있는 사람들은 당황하지 않을 겁니다. 지식이 있어야 침착해지고, 그래야 헤쳐나갈 길이 보입니다.]

직원 모두 지혁의 말에 집중했다.

[생존 지식은 머리로 익히는 게 아닙니다. 직접 실습해보고, 반드시 시행착오를 겪어봐야 합니다. 유연한 사고가 필수적이거든요. 준비한 A가 되지 않았을 때, 곧바로 B를 생각해 낼 줄 아는 사고 말입니다.]

일부 직원은 수첩을 꺼내어 받아 적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생존 지식에서 시행착오는 필요합니다. 그러니, 앞으로 알려드리는 지식은 반드시 실습을 해보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가족들과 여행 다니거나 놀러 다니실 때, 캠핑해보시길 권해 드립니다.]

-아······ 캠핑.

-나 요즘 그거 많이 하는데.

[차박 말고, 텐트 치는 캠핑이요. 생존 지식을 습득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화면 속의 지혁은 눈을 똑바로 뜨고, 직원들을 응시했다.

[나와 가족, 그리고 이웃까지도 살릴 수 있는 지식입니다. 평화로운 시대일수록, 생존 지식을 갖춰놓는 건 필수입니다.]

***

선도본관 회의실.

홍 팀장은 생존 교육 촬영 중이었는데, 이젠 크게 놀랍지도 않았다.

‘이상한 데 꽂히신 거 같아.’

재벌가들은 취향이 독특하다는 얘기를 들어봤다.

‘뭐, 비도덕적인 건 아니니까, 돈을 흥청망청 쓰는 것도 아니고.’

이해하기 힘들지만, 나쁠 건 없다고 생각했다.

“생존 요소 두 번째는 ‘장비’인데요. 생존 상황에서는 에너지 소모를 극도로 줄여야 하므로, 적절한 장비를 활용하여 효율성을 높이는 게 매우 중요합니다.”

아무리 봐도 너무 전문적이었다.

홍 팀장은 옆의 윤 실장에게 물었다.

“혹시 회장님 베어 그릴스 같은 거 하셨어요?”

“베어 그릴스는 사람 이름인데요.”

영국 SAS 대원 출신으로, 생존 전문가로 명성이 높으며 여러 다큐멘터리를 찍은 사람이다.

“그러니까요, 그 사람과 비슷한 경력을 지니셨다든지.”

윤 실장은 어깨를 으쓱하며 웃었다.

“그걸 제가 어떻게 압니까. 저도 궁금한데요? 뭔가 하긴 하셨을 거 같긴 한데. 그죠?”

“······.”

지혁은 카메라를 향해 초집중 중이었다.

“통상적으로는 72시간 배낭을 마련합니다. 즉, 3일 안에 안전 장소로 대피한다는 건데, 우리 선도그룹은 1일이면 됩니다. 직원의 80%는 12시간 안에 대피시키는 계획이며, 외진 곳에 근무하는 분들도 24시간 안에는 컷 할 수 있도록 준비 중입니다.”

홍 팀장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지금 뭐 준비해요?”

“계획 말씀하시는 거예요. 우리를 지키기 위한 계획.”

“아······.”

꿀꺽.

카메라 감독은 마른침을 삼켰고.

지혁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

“식수가 가장 중요합니다. 생존의 기본은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는 겁니다. 여러분이 지나가는 길에 물이 전혀 없을 수 있다는 걸 가정해야 합니다. 그래서 식수부터 준비해놓습니다. 1일 배낭 기준으로 인당 2리터 물통 하나면 될 것 같네요.”

“······.”

“정수키트, 최소한의 식량. 되도록 조리가 필요 없는 식량이 좋겠죠? 불피우는 건 신중히 해야 합니다. 사람들 달려들 수 있거든요. 재난 상황은 무법천지라고 보시면 됩니다. 사람을 제일 조심하셔야 해요. 그다음 보온기구, 나침반, 지도, 라이터······.”

지혁은 가장 기본적인 생존 장비를 얘기하였고.

“마지막으로······ 가족사진입니다.”

“어머.”

어느덧 지혁의 강의에 이입된 홍 팀장은 손으로 입을 막았다.

“언제 어느 때 이별하게 될지 모릅니다. 가족사진은 필수입니다.”

***

직원들이 모인 대강당에는 정적이 흘렀다.

활기차게 시작해야 할 월요일 아침이 착 가라앉았다.

‘가족사진······.’

‘가슴을 울리네.’

‘하긴 재난 상황이라면······.’

직원들은 부모, 아내, 자식을 떠올렸다.

[소중한 사람을 추모하기 위해, 혹은 생이별하게 되었을 때 다시 찾기 위해서 가족사진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이유는요.]

지혁의 눈이 빛났다.

[생존 의지를 북돋는데, 큰 힘이 됩니다.]

-······.

[생존 의지. 이게 세 번째 요소입니다. 생존의 가장 근본이며······생존 지식, 생존 장비에 선행되어야 하는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혁은 강조하기 위해 목소리에 힘을 주고 한 번 더 말했다.

[생존 의지!]

지혁은 손을 귀에 가져다 대며, 말했다.

[여러분 뭐라고요?]

-생존 의지입니다!

직원들은 화면 속의 지혁을 향해 큰 소리로 대답했다.

지혁은 표정을 굳히고 말했다.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정신력을 말합니다. 어떻게든 살아남겠다! 난 죽지 않는다! 이런 마음가짐이요.]

-······.

[사막에 떨어뜨려 놔도 살아남는다는 얘기 있죠? 그거 그냥 하는 말 아닙니다. 진짜 가능한 일입니다. 생존은 의지입니다.]

직원들의 눈빛이 비장하게 바뀌었다.

[살아남아야죠. 여러분의 자식들과 부모님은 누가 지킵니까? 국가와 회사가 나 자신만큼 내 사람들을 챙겨줄 수 있을까요?]

-······.

[내 가족과 공동체를 위해, 그리고 나를 위해. 반드시 살아남아야 합니다.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절대로 포기하지 마십시오. 포기하면 끝입니다.]

지혁은 ‘그 세계’에서 봤던 수많은 주검을 떠올렸다.

‘계속 이렇게 평화롭기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 아무리 대비해도 직원 모두가 살아남지는 못할 텐데.’

대비를 할 뿐, 지혁은 그 누구보다도 평화를 바랐다.

참혹하고 끔찍한 풍경을 직접 봤으며,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기에.

강당에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

지혁의 묵직한 음성이 울렸다.

[생명은 장난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 살아남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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