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2. 도적같이 찾아왔다 (2)
‘쉐에엑-’
큰 행사에서 보는 에어쇼라고 생각했는지.
수많은 전투기가 날아가는데도, 하서연은 마냥 신난 얼굴이었다.
레스토랑 안의 사람들도 아직 상황을 눈치채지 못했다. 황홀한 눈길로 창밖 풍경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호텔 라운지, 50층.
여기서는 지상의 모습이 정확히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보이는 건 수많은 인파와 불꽃인데.
불꽃축제 중에 그걸 보는 건, 특별한 일은 아니다.
‘사이렌 울린 뒤에 움직이면 늦는다.’
선도그룹에서 교육받은 내용이다.
현장에 있는 사람은 사이렌이 울리기 전에 더 빨리 재난 상황을 인지할 수 있다.
그럴 때는 상황 판단 후 빠르게 움직이라고 했었다.
‘내가 대리 때쯤이었나.’
11년 전.
지혁은 회장으로 취임한 이후 비상 대피 방법과 생존요령을 직원들에게 교육시켰다.
처음엔 어이가 없었으나, 반복적이고 집중적인 교육으로 체득이 되었다.
‘대피해야 해. 망설이면 안 돼.’
손정진은 교육받은 대로, 몸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와~ 너무 이뻐. 올해 불꽃놀이는 에어쇼도 하고······.”
하서연은 황홀한 얼굴로 바깥 풍경을 보고 있는데.
“서연아.”
손정진은 다른 사람에게는 들리지 않도록, 목소리를 죽이고 말했다.
“네, 오빠.”
‘어머, 이제 하려나?’
하서연은 손정진의 프러포즈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빠 믿지?”
“그럼요······.”
하서연은 몸을 배배 꼬면서 말했다.
“지금부터 오빠가 하려는 거에 대해서 절대로 의심하면 안 돼?”
“의심? 호호. 안 해요. 어서 말해봐요.”
“······.”
“언제까지 기다리게 할 거야······.”
하서연은 홍조 띤 얼굴로 고개를 숙이고 중얼거렸다.
“지금부터 오빠랑 1층까지 뛰어 내려갈 거거든?”
“······네?!”
하서연은 갑자기 뭔 소리인가 싶어서 손정진을 바라봤다.
“1층? 뛰어서?”
“쉿!”
손정진은 목소리를 죽이고 말했다.
“살려면 그렇게 해야 해.”
“갑자기 무슨 소리예요······.”
“오빠 믿는다고 했잖아.”
“······.”
“제발 믿어줘. 오빤 서연이랑 같이 살고 싶어.”
‘같이 살고 싶어?’
하서연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게 프러포즈인가?’
프러포즈는 특별이벤트로 준비하는 경우가 많으니, 손정진이 하자는 대로 가보기로 했다.
“알았어요. 근데, 꼭 뛰어가야 해요? 엘베 타면 안 돼요?”
“안돼. 지금은 그런 거 타는 거 아니야.”
재난 상황에서는 엘리베이터 타면 안 된다고 배웠다. 손정진은 선도 생존 교육에서 알려준 지침을 철저히 따르기로 했다.
‘꽃무늬 원피스 입었는데.’
하서연이 우물쭈물해 하는데,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덥석!
손정진은 하서연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
“헉! 헉!”
비상구로 진입한 뒤.
손정진은 하서연의 손을 잡고 미친 듯이 뛰어 내려갔다.
숨이 턱까지 차올라서, 하서연은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좋은 레스토랑에서, 불꽃놀이 감상하다가······ 이게 웬 날벼락이야.’
손정진이란 남자가 정상인인가 싶은 의심이 들었다.
“오빠! 도대체 뭔데요? 왜 얘기를 안 해줘요!”
“······.”
손정진은 이렇게 뛰어가는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다.
설명해봐야 이해도 못 할 것이며, 현 상황을 받아들인다면 멘붕이 와서 빠르게 움직이지 못할까 봐 우려한 것이다.
‘혹시, 여태 결혼 못 한 이유가······.’
20층쯤 내려왔을 때, 합리적인 의심이 들기 시작했고.
탁!
결국 하서연은 손정진의 손을 뿌리쳤다.
“헉! 헉!”
비상계단에서 두 사람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마주 봤다.
“뭐냐고요. 왜 얘기를 안 해줘요!”
“······.”
“혹시, 프······.”
프러포즈라면 이렇게까지 안 해도 된다는 말을 하려다가, 헛다리 짚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관두었다.
“힝······ 진짜.”
하서연은 황망하고 속상해서 눈물이 핑 돌았고.
손정진은 그 모습에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이 상태로는 더 못 가. 일단 얘기해주자.’
“서연아, 사실은 지금······.”
하서연은 물끄러미 손정진을 바라보았다.
“전쟁 난 거야.”
“······네에?!”
‘불꽃놀이 중에 전쟁이라니.’
하서연은 황당해했지만, 손정진은 이 판단에 확신이 있었다.
미국과 중국 간에 심상치 않던 분위기가, 최근에 더욱 심각해졌으며.
특히, 지난주부터 북한의 무기들이 가동되고, 이동식 무기에는 유류를 채운다는 소식을 접했었다.
국방부와 선도그룹 직원들만 아는 정보다.
회사에서 위험 동향을 매주 정기적으로 알려주고, 특별한 사안이 있을 때는 ‘특별알림’으로 수시로 알려준다.
최근에 ‘특별알림’이 많아져서 손정진은 위험 상황은 잘 인지하고 있었고, 그로 인해 몇 가지 이상징후만으로도 상황 판단을 할 수 있던 것이다.
“오빠,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손정진은 하서연이 지금 자신의 얘기를 어떻게 들을지 충분히 이해한다. 그 또한 11년 전에 오지혁 회장이 미쳤었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래도 월급 받으니까, 체념하고 하라는 대로 한 거였는데.
“서연아, 일단 내려가자. 조금만 더 내려가면 돼. 내려가서 얘기하자.”
손정진도 자신이 잘못 판단한 것이길 바랐다.
1층에 도착하면, 모든 게 드러날 것이다.
“······ 알았어요.”
하서연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타닥! 타닥!
손정진은 다시 하서연의 손을 잡고 1층을 향해 달렸다.
***
비상계단 3층.
하서연은 이제야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음을 느낄 수 있었다.
‘왜 이렇게 사람이 많아?’
텅 비어 있던 비상계단에 조금씩 사람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3층부터는 사람들로 막혀서, 더 내려갈 수가 없었다.
손정진은 인상을 썼다.
“하아, 젠장.”
뒤로 사람들이 점점 채워져서, 다시 올라갈 수도 없었다.
‘늦었네. 조금만 빨랐어도.’
비상계단에 엉켜서 꼼짝달싹 못 하는 상황이 가장 위험하다고 배웠다.
하서연은 손정진의 팔을 꼭 붙잡고 말했다.
“오빠, 무서워요.”
“괜찮아.”
‘어떻게 할까. 어떻게.’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흉기가 있으면 위협이라도 해서 길을 만들 텐데.’
이 또한 교육받은 건데, 프러포즈하러 나오는 길에 칼을 소지할 수는 없었다.
흉기 외에, 주먹과 목소리를 활용할 수도 있다.
이대로 아무것도 못 하고 위험해 빠져있느니, 난리를 쳐서라도 길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러면 서연이가 날 멀리하겠지.’
고민하다가, 마음을 다잡았다.
‘일단 살아야지. 미친 짓 한번 하자!’
주변에 약해 보이는 남자를 타겟으로 잡고, 폭주해보려는데.
‘쾅~!’
가까운 곳에서 포탄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꺅!
-사람 살려!
아래층에서 비명이 터져 나옴과 동시에, 사람들이 위층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어? 어?! 왜 이래.
-아래 뭐 있나 봐. 어서 뛰어!
공포심으로 눈이 돌아간 사람들이, 사람을 밀치고 밟으며 위로 무섭게 올라왔고.
손정진의 뒤에 있던 사람들도 다시 위층으로 올라갔다.
‘아, 하나님 감사합니다.’
미친 짓을 안 해도 된 게 참 감사했다.
“오, 오빠! 우리도 위로······.”
“아니야, 서연아. 위로 밀려가지 않게 벽에 최대한 밀착하고 버티고 있어.”
‘우당탕!’
밀치고 넘어지고.
비상계단은 순식간에 아비규환으로 변했다.
공포로 질려서 다른 사람의 사정 볼 여유는 없었고, 마구잡이로 위로 올라갔다.
잠시 후, 다쳐서 쓰러져 있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비상계단 아래층은 텅 비워졌다.
쓰러지지 않고, 제자리에서 잘 버텨낸 두 사람.
손정진이 말했다.
“서연아, 이제 내려가자.”
계단 여기저기에 쓰러진 사람들을 보니, 하서연은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서연아, 서둘러야 해.”
“오빠는 왜 반대로 움직여요. 사람들 다 올라가는데.”
손정진은 어떻게 설명할까 생각하다가.
“주식을 생각해 봐. 남들이 살 때 파는 사람이 돈 벌잖아.”
“······.”
“그거랑 비슷해. 지금은 반대로 가야 하는 거야. 그래야 살아.”
손정진은 그녀의 손을 강하게 잡아끌었고, 결국 하서연은 그를 따라 아래로 내려갔다.
1층 도착.
“꺅~!”
길거리 모습을 보고, 하서연은 비명부터 질렀다.
여기저기 쓰러진 주검.
주인 잃은 팔다리.
몸이 반쪽만 남은 채 숨을 헐떡이는 사람.
여의도불꽃놀이에 100만 명의 인파가 몰렸었다.
그 주변에 포탄이 떨어졌으니······.
“젠장······.”
놀라기는 손정진도 마찬가지였다.
배우기는 했어도, 현실로 접하는 건 처음이다. 그 또한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흑흑······ 오빠, 이게 뭐예요! 갑자기 왜 이래!”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이곳은 축제의 현장이었다.
매주 생존 교육 때마다, 마지막에 지혁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날은 도적같이 찾아온다.’
지금이 딱 그랬다.
정진은 주변을 살폈다.
상공에 전투기는 보이지 않으며, 포탄 소리도 멀리서 들렸다.
포탄이 떨어지는 중이라면, 전철역에서 대기할 생각이었는데.
지금은 움직여야 할 때다.
“서연아, 너 자전거 탈 줄 아니?”
“탈 줄은 아는데······ 그건 갑자기 왜요.”
‘따릉이’가 손정진의 눈에 들어왔다.
‘가장 가까운 선도 프리미엄 아울렛이······ 과천.’
손정진은 10년간 자전거로 출퇴근했기에, 대략 거리 짐작이 된다.
‘빠르면 1시간이면 간다. 멀지 않아.’
손정진은 정신을 바짝 차렸다.
‘생존 의지’
지금 가장 필요한 건 ‘생존 의지’였다.
그는 하서연의 어깨를 꽉 잡고 그녀의 눈을 똑바로 봤다.
“서연아, 오빠 말 잘 들어.”
“······.”
“우리 살자. 살아남자.”
“······.”
“지금부터 아무 생각 말고, 페달만 미친 듯이 밟는 거야.”
“······.”
“주변에 뭐가 보이든, 어떤 상황이든 개의치 말고, 무조건 밟아. 알았지?”
손정진의 무서운 기세에, 하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가자!”
두 사람의 따릉이는 출발했다.
***
불꽃놀이 10분 전.
이촌 한강공원.
지혁은 잔디밭에서 시안과 캐치볼을 하고 있었다.
12세. 초등학교 5학년인 시안의 공은 묵직했다.
휙- 퍽!
“인마! 손 아프잖아.”
지혁의 핀잔에 시안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에이~ 뭐 그 정도로 엄살이세요.”
“뭐?!”
시안은 커갈수록 지혁을 쏙 빼닮았고.
‘그 세계’를 경험하지는 못했으나, 특별한 아버지 덕분에 강하게 자랐다.
휙- 퍽!
지혁 또한 봐주지 않고 공을 세게 던지자.
시안은 글러브 안에서 손 저림을 느끼며 웃었다.
‘역시, 우리 아빠가 재밌어.’
시안은 친구들과는 시시해서 캐치볼 안 한다.
다시 있는 힘껏 던지려는데.
“시안아~ 잠깐만.”
띠링!
최근 심상치 않은 분위기 때문에, 지혁은 핸드폰 알림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윗동네 발사 대기 중. 정확도 99%.]
“하아······.”
미국의 사설 첩보 업체에 의뢰하여 수시로 정보를 받고 있는데.
수수료가 비싼 만큼, 정확도가 높다.
그들이 정확도 99%라고 할 정도면, 기정사실이나 마찬가지였다.
‘결국, 그날이 오는구나.’
이제 12살 된 아들을 바라봤다.
착잡한 기분이 들었지만, 감상에 빠진 건 잠시였다.
곧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황 실장님, 접니다. 쉘터 전개하세요.”
전화를 끊은 뒤, 시안에게 무덤덤하게 말했다.
“시안아, 자전거 타러 가자.”
시안 또한 아무렇지도 않게 물었다.
“온 거예요?”
“그런 것 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