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3. 허락된 사람만
[국민 여러분께, 알립니다. 지금은 훈련이 아닌 실제상황입니다. 다시 한번 알려 드립니다. 지금은 훈련이 아닌 실제상황입니다.]
사이렌 소리와 함께, 국가 안내방송이 울려 퍼졌다.
[국민 여러분께서는 당황하지 마시고, 비상 대비 물자를 점검하고 화재ㆍ폭발 위험이 있는 가스와 전원 차단을······.]
은은한 울음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재난 안내방송은 계속되었다.
[적 포격 및 항공기, 미사일 공격 발생 시에는 비상용품을 준비하셔서 가까운 대피소로 이동하여 주시고. 대피소 이동이 어려울 때는 도랑, 움푹 파인 곳 등에 최대한 엎드려······.]
순식간에 폐허가 된 서울.
평화로울 땐 상상할 수 없었던 모습인데, 도리어 지금은 예전의 정상적인 모습을 상상할 수가 없었다.
부서진 건물 잔해와 주인 없는 자동차.
길거리에 널린 시체.
특히, 많은 인파가 몰렸던 여의도는 난리였다.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거리는 을씨년스러웠는데.
그 거리를 걷는 한 여성 기자가 있었다.
3년 전 중국-베트남 전쟁에도 종군기자로 파견 나갔던 그녀는, 전시 상황이 크게 겁나진 않았지만.
“하아······ 참담하다.”
그때는 남의 나라였고, 지금은 내 나라와 동포라는 차이점이 있다.
찰칵! 찰칵!
그녀는 2038년 폐허가 된 서울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참담한 건 참담한 거고, 어쨌든 그녀는 기자다.
그녀만 담을 수 있는 이 광경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여의도공원의 축제 현장을 돌아다니며, 끔찍한 모습을 담고 있는데.
띠리링-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통신은 일찌감치 끊겼으나, 현장 기자들은 위성 전화기를 갖고 있다.
“네, 전화 받았습니다.”
[어디야?]
“여의도에 있습니다.”
보도국이었는데, 여기자에게 바로 지시했다.
[제보가 하나 들어왔거든? 지금 과천대로에 갈 수 있나?]
“과천대로요?”
[어, 자전거 경진대회가 열린 거 같다고.]
여기자는 어이가 없어서 말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씀이세요.”
[그래, 말이 안 되지. 지금 내가 보낸 사진 봐봐.]
귀에서 수화기를 떼고, 메시지를 확인했다.
“뭐야?!”
사당역에서 찍은 것 같은데, 남태령 방면으로 웬 자전거 떼가 움직이는 사진이었다.
“이거 지금 찍은 거 맞아요?”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사진에 날짜 있잖아.]
다시 봤는데, 분명 오늘 찍은 사진이었다.
‘특종’
간혹 전시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 발견될 때가 있다.
오랫동안 종군기자로 활약했기에, 그녀만의 촉이 있었다.
여기자는 오토바이에 앉으며 말했다.
“지금 바로 출발할게요.”
[그래, 조심해.]
***
손정진의 자택.
아버지와 어머니는 말다툼 중이었다.
“지금 바로 출발해야 한다니까.”
아버지의 말에 어머니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이 시국에 가긴 어딜 가요! 재난방송 나오는 거 못 들었어요? 돌아다니지 말고 집에서 있으라잖아요.”
그들이 사는 아파트는 미사일 공격에 취약하다.
어차피 현대전은 화력전이기에, 상황 발생 시 약속된 장소로 이동하라는 선도그룹의 지침이 있었다.
선도그룹의 대피 대상은 직원과 직계가족이기에 손정진의 부모도 포함된다.
‘배낭은 다 싸놨는데.’
아버지는 72시간 배낭을 보았다.
반복 숙달의 무서운 점이다. 재난 상황이 터졌을 때, 두 사람은 아무 생각 없이 배낭부터 쌌다.
준비는 끝났으나, 외동아들이 집에 도착하지 않아서 이동하기가 망설여지는 것이다.
어머니는 다시 통화 버튼을 누르며 한숨을 쉬었다.
“전화기는 먹통이고······.”
아버지는 답답하여 소리쳤다.
“임자! 아들 안 만날 거야?!”
“왜 안 만나요! 기다리는 거잖아요! 같이 가야죠!”
“······.”
“자전거도 집에 있고.”
아버지는 혀를 차며, 말했다.
“이렇게······ 본인 아들을 모르니.”
“뭐라고요?”
“그 녀석이 이 상황에서 미련하게 행동할 놈으로 보여? 오늘 여의도 갔잖아. 어느 세월에 강동까지 왔다가 과천으로 가냐고.”
“······.”
어머니는 머뭇거리다가, 따져 물었다.
“그럼 자전거는요!”
“길거리에 널린 게 자전거야. 어느 미친놈이 이 시국에 자전거를 타겠어. 임자!”
곧 자전거 타러 갈 사람이 할 말은 아니지만······ 어쨌든 아버지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회사 지침을 하늘처럼 지키는 놈인데. 이미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을지 몰라. 우리도 어서 가자고.”
“······.”
“망설일 때가 아니야! 살 만큼 살았는데, 내가 사는 데 욕심나서 이러는 게 아니라고.”
“······.”
“갈 때 가더라도, 아들 얼굴 보고 가야지.”
손정진은 외동아들이라, 두 사람에게 매우 각별했다.
‘아들 얼굴 보고 가야지······.’
이 말에 어머니는 용기가 생겼다.
“정진이가 정말 과천 아울렛으로 오겠죠?”
“장담할게. 무조건 그리로 온다니까.”
“그렇다면······.”
어머니는 이제 다른 생각이 들었다.
“약간 서운할 것 같은데요? 엄마, 아빠 챙길 생각은 안 하고.”
“무슨 소리야. 그만큼 우리를 믿는 거지.”
“······.”
“자자, 쓸데없는 소리 말고 서둘러. 언제 포탄 떨어질지 몰라.”
두 사람은 준비해 놓은 72시간 배낭을 메고, 자전거가 있는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방탄 헬멧을 쓰고.
“휴우-“
어머니는 숨을 몰아쉬었다.
20년 가까이 살던 집과 세간살이를 두고 떠나려니, 눈물이 고였다.
토닥. 토닥.
아버지가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괜찮아. 긴 여행 갔다 온다고 생각하자고.”
“······.”
어머니는 눈물을 닦고, 페달 위에 발을 올리며 말했다.
“이제, 가요.”
쌩-
자전거에 완벽히 숙달된 두 사람. 라이딩이 시작됐다.
***
과천대로. 밤 11시경.
“와······ 말도 안 돼.”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수백······ 아니, 수천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똑같은 자전거와 헬멧을 쓰고 과천대로를 달리고 있었다.
지금은 전시 상황인 걸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축제의 현장이라 생각할 것이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하나같이 커다란 배낭을 싣고, 표정이 비장했다.
여기자는 취재를 시도했다.
“안녕하세요. 고려일보 기자인데요. 뭐 하나만 여쭤봐도 될까요?”
“······.”
“오늘 뭐 행사 있나요?”
“······.”
“어디 가시는 길입니까?”
자전거를 멈출 생각을 안 하기에, 오토바이로 속도를 맞추어 가며 물었지만.
“······.”
아무도 대꾸하지 않았다.
이것도 한두 명이면 그러려니 하는데, 모두 반응이 똑같았다.
‘왜 대꾸조차 안 하는 거야?’
취향이라고 생각하기엔 행동이 천편일률적이라, 지침 혹은 교육을 받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로 가는 걸까?’
여기자는 따라가 보기로 했다.
얼마 가지 않아서.
‘과천 프리미엄 아울렛’
선도그룹에서 운영하는 대형 점포인데, 과천대로 보인 자전거들은 모두 이곳을 향하고 있었다.
‘이 상황에 자전거를 타고 아울렛을 온다고?’
여기자는 곰곰이 생각했다.
‘비상 물자 구매하러 온 건가? 그렇다고 해도 이건 너무 위험하지 않나?’
의구심을 가득 안고,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했는데······.
‘헉! 뭐야?!’
회색 옷을 입은 건장한 사람들이 자동소총을 들고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웬 총?! 군인은 아닌 거 같은데?’
분명 군인이 아니었다.
군복과는 전혀 상관없는 민무늬 회색 옷.
무장한 인원이 한두 명이라도 이상할 텐데.
지금은 입구, 옥상, 주차장 등.
곳곳에 무장 인원들이 배치해 있었다.
“자, 서두르세요!”
또 희한한 건, 패찰을 목에 걸고 있었는데.
분명 회사에서 쓰는 그 직원 패찰이었다.
그들의 안내를 따라서 자전거를 타고 온 사람들은 입구에서 홍채를 스캔했고.
녹색불이 나오는 사람들만 아울렛 안으로 입장했다.
지금까지 ‘입장 불가’ 판정을 받은 사람은 보이지 않았는데.
‘그냥 들어가면 되는 건가?’
여기자는 총을 든 직원들이 무서웠지만.
별일 없겠거니 싶어서, 홍채 인식 출입구에 줄을 섰다.
“다음이요.”
여기자는 인식 센서에 눈동자를 가까이했는데.
‘삐-!’
붉은색 등이 켜지며, 커다란 경적이 울렸다.
그 순간······,
찰칵!
입구에 선 직원들이 일제히 총을 겨누며 소리쳤다.
-동작 그만!
-떨어지지 않으면 발포한다!
-당장 돌아가라!
여기자는 당황하여 뒷걸음질 쳤고.
자신을 겨눈 총구들을 보며, 너무 놀란 나머지 다리가 후들거렸다.
“죄, 죄송합니다. 저는 고려일보 기자인데요······.”
찰칵!
-마지막으로 경고한다. 돌아가지 않으면 발포한다.
여기자는 뒷걸음질 치다가, 순식간에 뒤돌아서는 있는 힘을 다해 도망쳤다.
***
과천 쉘터 안.
손정진의 부모는 도착하자마자, 아들부터 찾았으나.
“손 팀장님은 아직 안 오셨습니다.”
안내요원으로부터 소식을 듣고는, 어머니는 아버지의 등을 때리며 울었다.
“이것 봐요! 기다렸다가 같이 와야 한다니까!”
“······.”
“아들이 우리 찾느라 집 주변에서 헤매고 있으면 어떻게 해요. 흑흑.”
아버지는 또한 불안해졌고,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안내요원이 말했다.
“우선 배정된 룸으로 들어가서 쉬고 계십시오. 룸 안의 TV로 바깥 상황 볼 수 있거든요. 거기서 확인 하시는 게 편하실 겁니다.”
두 사람은 룸으로 들어간 뒤, 짐도 풀지 않고 하염없이 TV만 보았다.
안전한 곳은 금세 소문나기 마련인 법.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과천 쉘터 입구에 사람들이 몰렸다.
자격이 되지 않는 사람들을 쫓아내기 위한 공포탄 소리가 점점 잦아졌고.
그럴수록 두 사람은 불안했다.
‘제발······.’
두 손을 꼭 모으고 TV만 보고 있는데.
“어!”
아버지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소리쳤다.
“아들! 아들!”
TV 속에 손정진이 한 여자를 옆에 두고, 경비요원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아이고~ 아들! 안 들어오고 뭐 해~!”
어머니는 막상 손정진의 얼굴을 보니 애가 더 닳았다.
***
과천 쉘터 입구.
“안 됩니다. 신원 확인된 분만 들어가실 수 있습니다.”
“이봐요! 말이 됩니까?! 어떻게 나 혼자 들어가요!”
손정진은 흥분하여 소리쳤다.
“나 선도물산 상품기획 1팀장이라고요! 상품 1팀이 어딘지 몰라요?!”
경비요원은 완강했다.
“신원은 확인했습니다만, 임원이 요청하더라도 허락된 인원만 입장시키라는 분부가 있었습니다.”
“······.”
“직계가족이 아니면, 들어갈 수 없습니다.”
직원 본인과 직계가족만 쉘터에 들어갈 수 있다.
하서연은 옆에서 눈물을 펑펑 쏟았다.
오던 중에 자전거가 펑크 나서, 오랜 시간 걸어서 힘겹게 도착한 곳.
본능적으로 이곳에 들어가면 안전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안 된다는데 어쩔 수 없었다.
“어서, 들어가요. 오빠라도 살아야지.”
“서연아!”
손정진은 미쳐버릴 것 같았다.
“젠장!”
답답한 마음에, 힘으로 경비요원을 밀쳐봤는데.
찰칵!
어디선가 장전하는 소리가 들렸다.
“룰에 예외는 없습니다. 경거망동하지 마십시오.”
“으아악~!”
손정진은 괴성을 질렀고, 눈가에는 눈물이 맺혔다.
꽉!
그는 잠시 서서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하서연의 손을 잡았다.
“가자.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어.”
“오빠······.”
“난 너 없으면 안 돼. 서연아.”
서연이 밀쳐내는 걸, 억지로 손을 잡고 뒤돌아서려는데.
[아아, 너 정진이냐?]
어디선가 확성기 소리가 들렸는데.
지혁의 목소리였다.
‘회장님?!’
[옆에 누구셔? 누구길래, 그렇게까지 하는 거냐?]
지혁 또한 CCTV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손정진은 과천 쉘터 쪽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제 배우자가 될 사람입니다!”
[그래?]
피식.
확성기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멍청한 놈. 그럼, 가족이 되면 되잖아?]
“네?!”
잠시 후.
위이잉-
과천 쉘터에서 문이 열리며, 지혁이 나타났고.
입구를 지키던 경비요원들과 홍채 인식을 기다리던 모든 직원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지혁은 손정진에게 다가가 말했다.
“지금 여기서 결혼 서약해라. 증인은 나다.”
“······.”
“그리고 같이 들어가.”
왈칵!
손정진은 털썩 주저앉아, 눈물을 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