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사원이 능력을 숨김-263화 (263/301)

외전5. 심상치 않은 일 (1)

“곧 연락되겠죠.”

고 전무의 말에, 허 부사장도 고개를 끄덕이며 거들었다.

“쉘터 전개한 지 몇 시간 안 됐습니다. 조금 더 기다려 보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윤 사장도 이 말에 반박하지는 않았으나, 어딘가 찝찝한 얼굴이었다.

‘느낌이 안 좋아.’

청주 쉘터는 수용 인원이 많아서 현장을 챙기느라 연락이 늦어질 가능성도 있다.

“회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내내 무표정하던 지혁은 청주 쉘터 얘기를 들은 후 심각한 얼굴이었다.

‘여유가 없어.’

여의도 수십만 인파가 몰린 곳에 포탄이 무작위로 떨어졌고.

서울이 무방비 상태에서 당했다.

절대로, 국지전으로 끝날 일이 아니었다.

확전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쉘터를 전개한 것이었다.

몇 시간 전에 기자도 왔었으니, 지금쯤이면 국방부에서도 쉘터를 주시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선도그룹 직원들은 동원령에 응하지 않았으며, 무기까지 소지하고 있으니, 심상치 않게 볼 것이다.

이제 전쟁 여부는 상관없다.

그룹의 운명을 걸고, 루비콘강을 건넌 것이다.

‘연기의 정체가 곧 모습을 드러낼 거야.’

머지않아, 국가 간의 무자비한 전투가 벌어질 것이며, 핵 공격도 당연히 예상하고 있다.

‘그 세계’에서 사람을 대량으로 죽인 연기의 정체.

핵 공격의 후폭풍 혹은 생화학 무기일 거라고 짐작했다.

그 단계까지 가면, 대피 못 한 사람들은 싹 다 죽을 가능성이 높다.

“여기서 청주까지 얼마나 걸릴까요?”

언제 벌어질지 모르는 일이니, 여유를 가질 수 없었다.

“네?!”

허 부사장은 지혁의 물음에 당황했다.

“뭐 하세요? 묻잖아요.”

“아, 네.”

확인된 상황을 참고하여, 재빨리 대답했다.

“고속도로는 막혀 있지만, 국도 상태가 괜찮아서 빨리 가면 3시간 정도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자가용으로는 어렵겠죠?”

“네, 도로에 버려진 차들이 있어서요. 오토바이를 이용하는 게 효율적입니다.”

지혁은 고개를 끄덕인 후 말했다.

“알겠습니다. 제 생각에는······ 지금 기다릴 때가 아닌 것 같아요.”

허 부사장에게 물었다.

“청주 쉘터가 전개가 안 되면, 대피율이 어떻게 됩니까?”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지혁은 최악의 경우를 고려했다.

“시뮬레이션 해본 거 아닌가요?”

“아, 네.”

허 부사장은 긴장하여, 대답했다.

“청주 쉘터가 완벽히 실패했을 경우, 전체 대피율은 60% 정도 됩니다.”

‘80에서 60으로.’

반도체 공장 인원들을 수용하는 쉘터라서 대피 인원이 많다.

“청주 쉘터 가동되지 않았을 때, 대피율 높일 방법은요?”

“가장 가까운 쉘터로 이동시키는 방법이 있는데.”

“······.”

“사람이 많으므로 분산해서 이동해야 합니다. 청주 쉘터 붕괴 시에 화성과 구미로 분산 이동시키는 계획이 있습니다.”

***

지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다들 초반이니 지켜보자고 하시는데, 제 생각은 다릅니다.”

“······.”

“움직일 거면 빨리 움직이고, 포기할 거면 깨끗이 포기해야 합니다.”

“······.”

“위급 상황에서는 타이밍이 중요해요. 그게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심폐소생 조금만 빨리 하면 죽을 사람이 살기도 하잖아요. 그와 비슷합니다.”

나이가 들어도 허 부사장은 여전했다.

지혁이 강력하게 주장하니, 태도를 싹 바꾸고 열일 모드로 돌변했다.

“회장님, 알겠습니다. 바로 경비요원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경비요원으로 괜찮을까요?”

‘경비요원’은 쉘터의 방어와 보안을 책임지는데, 대리급 이하 직원들이 순환근무를 한다.

과장급 이상은 직원은 ‘안전요원’으로 쉘터의 청소, 관리, 운영 등 전반적인 자질구레한 일을 한다.

“괜찮을 거로 생각합니다. 길도 멀쩡하고, 오토바이로 갔다 오는 건데요. 건장한 직원들로 선발하겠습니다.”

실전 경험은 무시 못 한다.

아무리 신체조건이 좋고, 체력이 좋다 해도 지혁의 눈엔 신생아들이다.

“회장님, 허 부사장님 말씀대로 하시죠.”

황 실장은 지혁의 표정이 심상치 않아 보여서, 재빨리 말했다.

지혁은 고민했다.

재난 상황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조금 더 생각하다가.

‘일 터진 지 얼마 안 됐으니, 아직 사람들이 돌변하진 않았겠지.’

“황 실장님.”

“네.”

“빠른 전개가 중요합니다. 지금 바로 출발시키시고, 이동 간에 문제가 발생하면 절대로 대응하지 말라고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무리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 목표는 상황 파악이니까요. 뭔가 하려 하지 말고, 눈으로 확인만 하고 오라고 해주세요.”

지혁은 신신당부했다.

전투의 무서움을 모르는 사람들이라, 무리수를 둘 수 있기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상황 파악에 목적을 두고, 절대 무리하지 말라고 하겠습니다.”

지혁은 한 번 더 신신당부했다.

“임무 실패해도 괜찮으니, 위험한 일에 절대로 나서지 말라고 해주세요.”

“네. 안전 제일.”

위험 상황에 투입할 수 있는 특화된 팀이 있다. 아직 준비가 더 필요한 상황이고, 단순한 확인 임무이기에 경비요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회장님.”

잠자코 듣던 윤 실장이 말했다.

“이왕 보내는 거 기술자도 함께 가도록 하는 건 어떻습니까?”

“······.”

“쉘터가 전개 안 되는 게 기술적인 문제일 수도 있으니까요. 빠른 해결을 위해······.”

지혁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 보내는 경비요원들 다 죽을 수도 있거든요.”

“네?!”

세크 위원들은 놀라서 지혁을 바라봤다.

의구심 가득한 눈빛이었는데.

지혁에겐 너무 당연한 얘기였다.

“지금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

“과감해야 할 때와 조심해야 할 때가 있는데, 상황 파악이 안 된 지금은 조심해야 합니다.”

“······.”

“사람도 자원입니다. 특히 기술자 같은 분들은 절대로 잃어선 안 됩니다.”

지혁의 뜻을 이해한 세크 위원들은 더 얘기하지 않았다.

잠시 후.

경비요원 3명이 청주 쉘터를 향해 출발했다.

***

새벽 1시. 대부분 잠자리에 든 시각.

쉘터 안은 완전히 조용해졌다.

밖은 들어오려는 외부인들과 홍채인식 대기 중인 직원들 때문에 소란스러웠지만.

쉘터 안은 평화 그 자체였다.

지혁은 룸으로 가기 전에 쉘터 안을 돌면서 살폈다.

‘내가 있을 때 그날이 와서 다행이야.’

처음 옥정호에서 돌아왔을 때만 해도, 죽기 전까지 ‘그날’이 오지 않기를 바랐었지만.

시안이 생기고, 선도그룹의 사람들을 살리기로 마음먹었을 때부터는 살아 있을 때 그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랐었다.

슥- 슥-

빗자루질하는 안전요원을 향해 지혁은 가볍게 인사했다.

“수고하십니다~”

안전요원도 인사하려다가.

“엇?!”

지혁의 얼굴을 확인하고서는 깜짝 놀랐다.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네~ 안녕하세요.”

지혁은 웃으며 말했다.

“류광환 이사님이시죠?”

재우 인터내셔날의 류광환 이사.

지혁이 상품기획 1팀장일 때, 선도물산에 찾아와 다짜고짜 스카우트 제의를 했던 사람이다. 그때는 재우 인터내셔날의 인사팀장이었는데.

선도물산 대표의 비리 문제를 알려 줬었다.

고마운 마음에 지혁이 그에게 약속했다.

‘선도그룹만 격변한 세상에 적응할 준비가 되어 있을 겁니다. 원하면 받아줄게요.’

“네, 류광환 맞습니다. 회장님,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하하.”

“그때 말씀이 이런 것일 줄은······.”

지혁은 일주일 전, 재난이 터질 조짐이 보일 때쯤, 그에게 연락했었다.

평시 상황 일지라도, 선도그룹 회장이 직접 전화해서 불러준다면 안 갈 사람은 없다.

“저는 사실 그런 말씀 하셨던 거 기억도 못 했는데······ 정말 감사합니다.”

“약속은 지킵니다.”

‘약속’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킨다. 갚아야 할 빚이라고 생각하기에.

지혁은 웃으며 류 이사가 들고 있는 빗자루를 보며 말했다.

“쉬엄쉬엄하시지, 뭘 이렇게 열심히 하세요.”

류 이사는 고개를 저었다.

“이렇게라도 해야 마음이 편합니다. 선도그룹과 세상 사람들한테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입사한 지 일주일밖에 안 됐지만, 어쨌든 류 이사와 가족들은 살아남게 되었다.

“회장님, 필요한 일 있으면 언제든 불러주십시오. 제가 특수 부대 출신이거든요.”

나이 60의 남자가 호기롭게 하는 말.

지혁은 노병의 무서움을 안다. 그의 말을 얕보지 않았으며, 고마웠다.

“알겠습니다.”

지혁은 가볍게 인사한 후, 쉬기 위해 룸으로 향했는데.

“어서 와~”

회사 다닐 때 그랬던 것처럼.

수아는 자지 않고, 지혁을 기다리고 있었다.

***

누웠지만, 잠이 쉽게 오지 않았다.

‘38만 명······.’

목표는 50만 명이었지만, 쉘터 대피에 성공하는 인원은 38만 명 정도로 예상했었다.

불시의 상황으로 사망한 직원도 있을 거고, 선도그룹보다는 국가의 지침을 따르는 쪽으로 마음 바꾸는 직원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목숨을 책임진다는 것.

지혁은 쉽게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뒤척이다가, 잠깐 졸았을 때.

위이잉-

위성전화기가 울렸다.

아침 8시.

[회장님, 지휘통제실로 나오셔야겠습니다.]

시간 구애받지 말고, 중요한 일 있으면 언제든 연락 달라고 했었다.

지혁의 룸은 지휘통제실 바로 옆이다.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휘통제실.

지혁은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대뜸 물었다.

“무슨 일······ 음?!”

피투성이에 옷 여기저기 찢긴 경비요원이 한편에 앉아 있었다.

그를 보자마자 지혁은 직감했다.

‘일이 터졌구나.’

윤 사장이 미안해하는 얼굴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급히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아서.”

“잘하셨습니다.”

30대 초반의 경비요원은 지혁을 보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으나.

지혁은 그를 앉히며 말했다.

“괜찮아. 앉아 있어.”

“네, 회장님.”

“본대로 얘기해 봐.”

경비요원은 보고를 시작했다.

주인 없는 차들이 늘어선 건 외에는 청주까지 가는 길에 특이한 건 없었다.

“근데, 청주에 진입하여 쉘터에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더니.”

“······.”

“쉘터 주변엔 사람 벽이 세워진 게 아닐까 싶을 정도 인파가 몰려 있었습니다.”

지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청주가 서울보다 파악이 빠르네.’

오늘 오후쯤이면 과천 쉘터의 주변도 그렇게 변할 것이다.

“사람들 뚫고서 간신히 쉘터 앞까지 접근했는데, 한 남자가 군중을 주도하고 있었습니다.”

“······.”

“자신이 선도그룹 출신이라면서, 이 모든 사태가 선도그룹이 기획한 일이라고······.”

허 부사장이 인상을 쓰며 이죽거렸다.

“미친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지혁이 회장을 맡은 뒤로, 선도그룹은 눈부신 발전을 하여 고글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했다.

국가를 뛰어넘는 초일류 기업이니, 군중들은 그의 얘기를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쉘터의 존재에 대해서도 아는 듯했습니다.”

‘그걸 어떻게······.’

쉘터의 존재는 극비이며, 아는 사람은 극소수다. 경비요원의 말이 믿겨지지 않았다.

그는 또 충격적인 말을 했다.

“그리고 선도 직원들은 쉘터를 막아선 사람들과 대치 중이며, 일촉즉발 분위기였습니다.”

윤 사장은 경비요원의 말을 끊고 물었다.

“그러니까, 직원들이 아직 대피를 못 했단 말이야?”

“확신할 수는 없으나, 그렇게 보였습니다.”

지혁은 경비요원에게 물었다.

“함께 간 두 명은 어떻게 됐나?”

“폭도들이 저희를 발견한 후 몰려와서······ 저만 간신히 빠져나왔습니다.”

“하아······.”

허 부사장은 한숨을 쉬었고, 세크 위원들도 근심 가득한 표정이었는데.

‘준비가 안 되었어도, 어쩔 수 없어.’

결심이 선 이상, 지혁은 망설이지 않는다.

“황 실장님.”

“네, 회장님.”

“SST 대기시키세요.”

SST(Sundo Special Team).

세크 위원들은 이를 특임대라고 부르는데.

야구, 축구, 농구, 레슬링, 태권도 등 선도그룹의 스포츠팀 선수들로 구성된 특수임무팀이다.


2